-
얼마 전 입사한 새내기 변호사가 제 방을 찾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준비서면 작성을 위하여 회사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과거 서면을 참고하고 있는데,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작성자를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새내기 변호사를 옆에 두고 제가 새내기 시절에 썼던 준비서면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제가 썼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던 어설픈 서면을 후배 앞에서 마주하려니 부끄러움이 몰려왔습니다. 지금이라면 다르게 썼을 것 같은 미숙한 표현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변호사가 직무상 보관하는 서류의 반환청구권도 3년이면 소멸시효가 완성하는데
청변카페
이문원 변호사
2022.07.25 09:16
-
인류학자 김현경의 책 ‘사람, 장소, 환대’에는 ‘타자를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에 대한 질문을 괄호 안에 넣은 채 그를 환대하는 것을 말한다’는 문장이 나온다. 책을 읽은 후 오래 지나 ‘환대’라는 단어를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다시 만났다. 물론 책의 저자가 쓴 ‘(절대적) 환대’는 ‘나의 해방일지’의 ‘추앙’과 오히려 가까운 의미일 수 있겠으나, 나는 오늘 도무지 추앙할 수 없는 세상과 타자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해서도 환대 내지 환대해보려는 시도가 의미있을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청변카페
조은성 변호사
2022.06.27 09:14
-
올해 5월은 숨가쁘게 지나갔다. 그리고 6월이 됐다. 나의 첫 출마는 뜨겁게 끝이 났다.내가 성년이 되고 첫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시대에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면서 신념에 대해 자연스럽게 고민해보게 되었다.선거를 출마자로서 경험하면서, “선거는 이기는 게 우선이다” “왜 무엇무엇 하지 않느냐?”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선거는 정말 이기는 게 우선인가? 때로는 질 지도 모르는 전투에 최선으로 임하는 도전이 필요하다. 태도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때문이다. 올바른 과정이 결국 올바른
청변카페
송혜미 변호사
2022.06.13 09:30
-
언어를 잃어버릴 때가 있다. 언어를 잃은 자리에 시계의 심상만이 떠오른다. 태엽에 끌려, 무색한 숫자들을 훑어, 영원할 것처럼 같은 곳에 돌아오다가, 어느덧 멈춰버리는, 그런 시계바늘.어떻게 보면 변호사는 언어의 전문가다. 글로 적힌 규범들의 의미를 찾아내고 산만한 사실들을 요건사실, 구성요건 등 이름을 붙여 그 규범들의 의미에 갖다 붙일 수 있도록 언어로 정리하는 것이 그 직업의 본령이니 말이다. 뭘 받아 내야 하는 사람이든, 억울한 사람이든, 죄지은 사람이든,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법의 세계에서 법의 언어로 무언가를 말하려고
청변카페
안성훈 변호사
2022.05.30 09:45
-
2년여 간 우리를 고통에 빠뜨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세가 수그러들고 있다. 따뜻해진 날씨만큼이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종료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한동안 침체되어 있던 사회 분위기도 훈훈해지고 있는 듯 하다.그간 법조계에도 코로나19는 다소간의 영향을 미쳤다. 일단 업무의 형태가 상당히 유연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사내 변호사들의 재택근무가 눈에 띄게 확대되었고, 송무 변호사들도 격일 근무 혹은 재택 근무를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재택 근무가 행복했다는 분들도 있지만, 워킹맘인 나로서는 재택근무는 일과 육아 모두 놓치게
청변카페
조우선 변호사
2022.04.26 09:53
-
영화 ‘시네마 천국’에는 한 병사와 공주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병사는 왕이 개최한 무도회에서 아리따운 공주를 보고 첫 눈에 반합니다. 병사는 신분차이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잘 알면서도 사랑을 고백합니다. 마침내 공주가 말합니다. “내 방이 보이는 곳에서 100일 동안 나를 기다려준다면 그 때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겠어요.”병사는 공주의 방 창문 아래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다렸고, 공주는 창문을 통해 그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렇게 100일이 가까워 올 무렵 병사는 이미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99일째 되는 날
청변카페
이문원 변호사
2022.03.28 09:16
-
요즘 MZ세대 사이에서는 ‘갓생 살기’가 유행입니다. 신을 뜻하는 ‘god’과 인생을 뜻하는 ‘생’을 합쳐서 만들어진 신조어가 바로 ‘갓생’입니다. 문언대로라면 타의 모범이 되는 완벽한 삶을 뜻하겠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반대로 아주 소소한 하루의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지키는 생활 챌린지입니다. 이들은 아침 7시에 일어나기, 하루 30분 산책 다녀오기, 탄산음료 먹지 않기와 같이, 타인이 보기엔 작을 수 있지만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도전 목표를 세웁니다. 그리고 작은 목표를 이뤄내면 오늘 하루 ‘갓생’을 살았다고 하여 SNS에 공유하
청변카페
권민 변호사
2022.02.28 09:21
-
‘논리적 비약’이란 말은 주로 논증의 허점을 힐난하는 말로 사용되지만, 이것이 항상 온당한 용법은 아니다. 무엇이 옳거나 그르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즉 당위를 말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비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예컨대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만으로는 ‘지구가 태양을 돌아야 한다’는 당위를 말할 수 없다. 온갖 설명들은 ‘그래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할 수 있는 논거일지는 몰라도 ‘돈다’와 ‘돌아야 한다’ 사이의 간극을 메우지 못한다. 지구가 태양을 돌아야만 한다면 그렇게 만드는 것은 그것을 원하는 인간의 믿음과 의지일 뿐
청변카페
안성훈 변호사
2022.01.24 09:18
-
개업 변호사 입장에서 진행하기 좋은 사건은 무엇일까? 앞서 개업을 한 선배들에게 물어보면 이혼, 상속 사건이라고 말한다. 승패가 뚜렷하지 않고 누구 하나 압도적으로 승리할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심리적인 부담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반대로 가장 힘든 사건은 무엇일까? ‘내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수임했는데 전부 패소하는 원고 사건’이 아닐까 생각한다.패소 판결문을 받아들면 온갖 생각이 앞선다. 내가 게을러서 사건의 쟁점을 잘못 파악했나, 상대방의 반박에 대한 재반박이 소홀했나, 재판부의 의중을 못 알아차리고 승소를 자신했나 등
청변카페
조우선 변호사
2021.12.27 09:17
-
얼마 전 칼럼에 부끄러움과 배움에 대해 썼었다. 그런데 부끄럽게 배운다는 생각으로도 역부족일 때가 있다.재판을 마치고 돌아설 때 ‘오늘도 배워간다’라는 생각이 나를 격려하지 못할 때, 할 일은 많지만 정작 무엇부터 들여다볼지 몰라 눈알만 굴리게 될 때, 구구절절 옳은 말 같은 상대방 서면을 받아들고 막막할 때.필립 로스의 소설 ‘에브리맨’에는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고 프로는 아침에 일어나서 그냥 일을 하러 간다’는 표현이 등장하지만, 영감을 찾든 그냥 일을 하든, 결국 계속하는 사람만 프로가 된다. 저연차 변호사인 나는 이런
청변카페
조은성 변호사
2021.11.22 09:18
-
날씨가 부쩍 추워진 요즘 저는 두 건의 따뜻한 판결을 받았습니다. 하나는 난민행정 관련 법무부 지침 정보공개 거부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이고, 다른 하나는 군인 성전환자 고(故) 변희수 하사에 대한 강제전역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입니다. 무보수 공익활동으로 참여한 두 건의 행정소송에서 좋은 결과를 받으니 여느 큰 소송에서 승소했을 때의 만족감과는 다른 순수한 기쁨이 있었습니다.어쏘변호사의 공익활동은 어려운 점이 적지 않습니다. 개업변호사나 파트너변호사라면 당당하게 자기 시간을 쪼개서 공익활동에 나설 수도 있겠지만, 어쏘변호사는 어쩐지
청변카페
이문원 변호사
2021.10.25 09:17
-
레트로 열풍이 한창이던 때, ‘제분업체 G의 성공신화’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하얀 곰을 마스코트로 내세운 G는 업력 70여 년의 한 제분업체에서 보유하고 있는 대표 밀가루 브랜드인데, 다소 심심해 보이던 밀가루업체의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하고 소위 ‘힙(hip)’한 브랜드들과 콜라보레이션을 하며 맥주, 팝콘을 판매하거나 굿즈를 판매하는 팝업스토어를 열기도 했다. 옛 브랜드의 변신이 이색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MZ세대의 취향과 맞아떨어지면서 G는 그야말로 새로운 성공신화를 썼다고 평가된다.G가 브랜드 마케팅의 대표 성공사례로 기
청변카페
권민 변호사
2021.09.27 09:24
-
많은 청년 변호사들과 마찬가지로 필자도 공직에서 법조경력을 쌓아왔다. 공익법무관 말년을 중앙부처에서 보낸 것이 공직 입문의 계기가 되었다. 복잡다기한 행정법 관계를 입법·행정의 단계에서부터 적절히 다루려면 법률가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상당수 부처에서 송무와 법률자문을 공익법무관에게 맡기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민간경력채용 등을 통해 정식으로 변호사를 임용하는 수가 늘고 있다.이어서 기초지자체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기초지자체는 국민과 가장 밀착된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므로 기초지자체의 잘못된 법 집행은 국
청변카페
안성훈 변호사
2021.08.23 09:58
-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송무를 하게 되면서 생기게 된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일까? 주변에서 물어보면 나는 ‘의뢰인의 사건에 감정이입하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한다.처음 막 변호사로서 사건을 맡게 되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나는 주변에 내 사건의 의뢰인이 얼마나 억울한지, 그 사람이 겪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클 것이며 소송의 상대방이 얼마나 비도덕적인 성향을 가진 악인인지를 말하는 일이 잦았다.그런데 10년차 변호사가 된 지금의 나는 처음과는 달리 점점 내가 맡고 있는 사건을 사건 자체로 보게 되고, 당사자의 감정에 지나치게 이입을
청변카페
조우선 변호사
2021.07.26 09:17
-
부끄러움, 창피당하기를 진심으로 기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걸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것도 인생에 독이 된다. 내가 그랬다.부끄러움 당하는 게 무엇보다 싫으니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았다. 어떤 행동, 말, 결정 그리고 나의 사소한 기호조차도 누군가에게는 우스운 꼴로 비칠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모조리 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이렇게 안전하게 살아온 내가 긴 업무 공백의 두려움을 떨치고 송무 변호사로 돌아가게 된 건 부끄러움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나서부터다.‘위험은 그것을 감수한다는 것만으로도 할 만한 가치가 있다.’ 때마
청변카페
조은성 변호사
2021.06.28 09:18
-
법률서적 중에는 유독 ‘이론과 실무’라는 제목을 단 것이 많다. 이론적인 깊이와 실무적인 감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책이라는 저자의 자부심이 담긴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론과 실무 사이의 괴리를 당연히 전제하는 점이 눈에 띈다. 실정법규와 그 해석이 다르고, 법의 일반적인 해석과 구체적인 사건에의 적용이 다르고, 실체법적 판단과 그 절차가 다르고, 제도의 설계와 집행 기관의 관행이 다르므로, 이론과 실무가 같으리라는 생각이 오히려 순진하다.새내기 송무 변호사가 겪는 시행착오도 대부분 실무에 대한 무지에서 온다.
청변카페
이문원 변호사
2021.05.24 09:13
-
피고인은 갓 스무 살이 된, 법적으로만 성인이었지 사회적으로나 정신적으로는 아직 미성년자나 다름없는 아이였다. 다만 범죄전력만큼은 여느 성인 못지 않았는데, 이번 공소사실 역시 죄명도 많고, 죄질은 더욱 좋지 않았다.그런 피고인에게 연민의 감정을 갖게 된 건 아마 네 번째쯤 접견을 한 이후부터였을 거다. 드라마나 영화 속의 이야기처럼, 평생 내 일일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는 그런 환경을 실제로 살아냈던 아이에게 나는 차마 “그래도 네가 잘못했다”며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이미 그 아이에게 무수하게 내려졌을 판단이나 단죄 대신
청변카페
임지선 변호사
2021.05.10 09:14
-
손실회피편향이란 만약 같은 정도의 이익을 얻고 손실을 보게 되었다면 이익으로 얻은 기쁨보다 손실로 인한 괴로움을 더 크게 느끼는 심리기제를 말한다. 즉, 손해를 싫어하는 심리를 말한다. 길에서 1만 원을 잃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은 1만 원을 주웠을 때 느끼는 행복감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2배의 차이가 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고 한다.본인에게도 손실회피편향이 있는지 테스트 해보자.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100만 원을 벌고, 뒷면이 나오면 50만 원을 잃는 게임을 단 한 번만 할 수 있다면 이 게임을 할 것인가. 확
청변카페
김판기 변호사
2021.04.19 09:42
-
올 초 의뢰인들로부터 동시다발적으로 연락을 받게 된 일이 있다. 검찰청으로부터 고소·고발 사건 결과를 통지한다는 문자를 받고 사실 확인을 위하여 연락한 것이었다. 알아보니 올해 1월 1일부터 시작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인하여 검찰이 수사권이 없는 사건을 경찰로 보내는 ‘타관이송’ 결정 때문이었다. 새로운 정책이 시행된다는 사실은 필자나 의뢰인이나 모두 알고 있었을 터지만 새해 벽두부터 느닷없이 날아든 문자로 인하여 의뢰인들에게 사정 설명을 하느라 꽤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제도 변경 초창기라 혼선이 있겠지만 사건 진행이 느려진
청변카페
송경한 변호사
2021.03.22 09:31
-
필자가 겪었던 한 상담 건 중 입사 시 학력위조로 회사에서 해고통지를 받았다는 사례가 있었다.학벌 지상주의와 취업난이 맞물려 학력을 허위로 위조했던 위의 사건에서 필자는 의뢰인에게 “입사할 때 이력서 등에 학력이나 경력을 사칭 혹은 은폐나 허위기재 한 경우, 향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사용자가 이를 근거로 근로자를 징계 또는 해고할 수도 있지만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정당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상담 후 검토 중에, 과거 학력 및 자격증 위조 등이 논란이 되었던 여러 뉴스들이 떠올라 한편으론 씁쓸했다. ‘능력보
청변카페
강성신 변호사
2021.03.15 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