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네마 천국’에는 한 병사와 공주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병사는 왕이 개최한 무도회에서 아리따운 공주를 보고 첫 눈에 반합니다. 병사는 신분차이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잘 알면서도 사랑을 고백합니다. 마침내 공주가 말합니다. “내 방이 보이는 곳에서 100일 동안 나를 기다려준다면 그 때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겠어요.”

병사는 공주의 방 창문 아래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다렸고, 공주는 창문을 통해 그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렇게 100일이 가까워 올 무렵 병사는 이미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99일째 되는 날 병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버립니다. 하루만 더 지나면 공주와의 사랑이 이루어질지도 모르는데, 병사는 아무런 설명 없이 홀연히 떠나버립니다. 영화도 관객 각자의 해석에 맡길 뿐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병사는 자신의 사랑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임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100일을 다 채우고도 공주가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남은 삶이 너무나 괴로울 것임을 알기에 자신이 먼저 돌아서는 선택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다른 설에 따르면 99일이나 고통 속에서 기다리는 자신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았던 공주의 마음속에는 어차피 자신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어쩌면 병사는 공주가 다른 왕자를 만나 더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며 99일간의 꿈으로 만족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병사와 공주 사이에 날짜변경 자오선이 있어서 날짜를 착각한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공주는 병사를 오래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도대체 병사가 어떤 마음으로 단 하루만 남겨둔 채 돌아섰을지 생각하며 잠 못 이루는 나날이 이어질 것입니다. 사람은 무척이나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듣지 못한 공주로서는 수긍도 반발도 하지 못하고 찝찝하게 살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설득력 있는 판결 이유는 그 자체로 분쟁을 잠재우는 권위를 갖습니다. 최근에는 소액사건에도 판결이유를 기재하는 판사들이 있어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주 아무런 이유의 기재가 없는 심리불속행 기각판결을 받고서, 공주의 찝찝했을 마음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이문원 변호사

서울회·법무법인(유한)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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