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열풍이 한창이던 때, ‘제분업체 G의 성공신화’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하얀 곰을 마스코트로 내세운 G는 업력 70여 년의 한 제분업체에서 보유하고 있는 대표 밀가루 브랜드인데, 다소 심심해 보이던 밀가루업체의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하고 소위 ‘힙(hip)’한 브랜드들과 콜라보레이션을 하며 맥주, 팝콘을 판매하거나 굿즈를 판매하는 팝업스토어를 열기도 했다. 옛 브랜드의 변신이 이색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MZ세대의 취향과 맞아떨어지면서 G는 그야말로 새로운 성공신화를 썼다고 평가된다.

G가 브랜드 마케팅의 대표 성공사례로 기록될 수 있었던 데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G가 아직 밀가루 업체이던 시절, 한 쇼핑몰 회사가 이 브랜드 상표를 무단도용해 티셔츠를 만들어 판매하는 걸 우연히 G 관계자가 발견했다. 그는 쇼핑몰 회사에 내용증명으로 온갖 으름장을 놓는 대신, 그에 앞서 상품이 굉장히 트렌디하게 잘 만들어졌음을 깨달았다. 곧장 그 쇼핑몰 회사에 연락을 해서 브랜드를 이용해 여러 상품을 제작하는 콜라보레이션을 제안했고 G 유행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만약 내가 그 관계자였다면? 글을 읽는 것을 잠시 멈추고 생각해본다. 하루에만 수차례 쏟아지는 검토 요청들 중에서도 법적 리스크를 역이용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을지 모른다. 법전과 판례에 나와 있는 정답을 열심히 찾아가며 어떻게 하면 우리 상표권을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은 변호사의 당연한 도리이지만, 동시에 법적 조언이라는 미명하에 있는 가장 쉬운 해결책이기도 하다. 그렇게 “바쁘니까” 또는 “경영판단은 내 분야가 아니니까”라는 핑계로 눈 앞의 쉬운 정답만 찾으며 회사에도, 심지어 내 인생에서도 G의 성공신화처럼 빛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도 책상 위에 펼쳐진 수많은 법률검토 요청에 그만 고민을 놓고 가장 가까운 정답의 길을 택하고 싶다. 그러나 언젠가는 누군가의 찬란한 레트로 열풍과 성공신화가 나로 인해 쓰여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오늘 내가 보내는 법률검토가 과연 진정으로 ‘정답’인지, 어려운 물음을 되뇌어 본다.

/권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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