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 비약’이란 말은 주로 논증의 허점을 힐난하는 말로 사용되지만, 이것이 항상 온당한 용법은 아니다. 무엇이 옳거나 그르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즉 당위를 말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비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만으로는 ‘지구가 태양을 돌아야 한다’는 당위를 말할 수 없다. 온갖 설명들은 ‘그래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할 수 있는 논거일지는 몰라도 ‘돈다’와 ‘돌아야 한다’ 사이의 간극을 메우지 못한다. 지구가 태양을 돌아야만 한다면 그렇게 만드는 것은 그것을 원하는 인간의 믿음과 의지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일어나야 직장에 지각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는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당위에 이를 수 없다. ‘짤리지 않으려는 의지’가 나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게 하는 것뿐이다.

당위를 말하기 위해서 비약할 수밖에 없다는 말은 곧 누구도 일방적으로 무엇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엇이 옳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 우리는 합의한다. 가령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존엄하다고 인정하고 약속함으로써 존엄하게 된다. 누구든지 남을 우습게 여긴다면 언제든지 자기도 우습게 될 수 있다. ‘존엄을 잃기 싫다’는 갈망, 좀 거칠게는 ‘비참해지기 싫다’는 갈망, 더 거칠게는 ‘죽기 싫다’는 갈망이 약속이 성립하는 근원적 갈망이다. 요컨대 우리는 나의 삶을 위해 서로의 존엄을 보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훌륭한 제도다. 민주주의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고정되고 절대적인 결론을 항구적으로 유지하고자 하지 않고 단지 옳고 좋은 것에 대하여 끊임없이 토론하고 합의할 수 있도록 장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가치에 대하여 부지런히 타협하고 살아가기 위한 약속이지 어떤 것에 관하여 절대적인 가치를 선언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공식은 아니다.

올해는 우리가 살아갈 여러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합의할 계기들이 많을 것 같다. 나의 삶과 모두의 존엄을 위해, 여러 삶의 이야기가 부지런히 공론장에 드러나고 좋은 합의를 이뤄가는 민주주의적인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안성훈 변호사

부천시청 감사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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