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 변호사
이문원 변호사

얼마 전 입사한 새내기 변호사가 제 방을 찾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준비서면 작성을 위하여 회사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과거 서면을 참고하고 있는데,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작성자를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새내기 변호사를 옆에 두고 제가 새내기 시절에 썼던 준비서면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제가 썼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던 어설픈 서면을 후배 앞에서 마주하려니 부끄러움이 몰려왔습니다. 지금이라면 다르게 썼을 것 같은 미숙한 표현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변호사가 직무상 보관하는 서류의 반환청구권도 3년이면 소멸시효가 완성하는데, 제가 쓴 서면은 회사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어 시효도 없이 돌아오는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반가운 일도 있었습니다. 어릴 때 가깝게 지내던 선배가 판례 리서치 중 제 이름이 기재된 판결문을 보았다면서 연락을 걸어온 것입니다. 제가 특별히 자부심을 느끼는 선도적 판례였기 때문에 더욱 어깨가 으쓱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제가 패소한 판결도 영원히 기록으로 ‘박제’되어 있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의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과거의 좋은 모습은 자부심으로 삼되, 부족했던 모습만은 훌훌 털고 앞날을 새롭게 꾸려나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기억되기를 원치 않는 자신의 모습이 온라인에서 확산되지 않도록 삭제를 요구할 권리인 ‘잊힐 권리’는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자신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선한 본성에서 유래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부는 최근 아동·청소년의 ‘잊힐 권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제를 개선한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요건과 범위는 정책적 논의를 통하여 확정되어야 하겠지만, 판단능력이 미숙하고 살아갈 날이 많은 아동·청소년에 대해서 더욱 특별히 잊힐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의지만은 분명하게 읽힙니다.

변호사 패소 판결은 역사에 박제되지만, 미숙한 유소년기의 흑역사는 잊힐 수 있길 바랍니다.

/이문원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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