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은 갓 스무 살이 된, 법적으로만 성인이었지 사회적으로나 정신적으로는 아직 미성년자나 다름없는 아이였다. 다만 범죄전력만큼은 여느 성인 못지 않았는데, 이번 공소사실 역시 죄명도 많고, 죄질은 더욱 좋지 않았다.

그런 피고인에게 연민의 감정을 갖게 된 건 아마 네 번째쯤 접견을 한 이후부터였을 거다. 드라마나 영화 속의 이야기처럼, 평생 내 일일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는 그런 환경을 실제로 살아냈던 아이에게 나는 차마 “그래도 네가 잘못했다”며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이미 그 아이에게 무수하게 내려졌을 판단이나 단죄 대신 그저 한번은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어른이 우리 사회에 있었다는 ‘경험’을 주고 싶었다.

밤을 새워 최후 변론을 쓰고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몇 번을 소리 내 읽었는지 모른다. 연습이 무색하게 결국 법정에서 울컥하고 말았지만, 후에 피고인이 보낸 편지에 담긴 마음과 사건 결과에서 나타난 재판부의 동조, 특히 피해자 부모님의 관용은 그 순간의 부끄러움을 전부 이길 만큼 큰 선물로 남았다.

물론 안타깝게도 ‘그 후로 그 아이는 착한 사람이 되었다’는 해피엔딩은 없다. 당연히 그렇게 되었다면 너무 좋았겠지만, 어쩌면 그런 바람도 내 욕심이나 이기심일 수 있기 때문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그때 바로 내가 그리던 모습의 변호사였지 않나 싶다. 대가를 기대할 수 없는 이를 위해 나의 시간과 노력을 들였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 감정의 이름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여타 사선 사건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와는 분명히 다른, 오직 국선 사건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매번 고민을 하다가도 국선 사건을 맡는다. 지난날의 열정은 꽤나 식어 이제는 간신히 온기만 남은 정도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부여된 사회적 책무를 잊지 않기 위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바랐던 자격증이 아니었기에 그 사실을 끝내 기억하고 싶은 마음으로. 오늘도 서면 말미에 이름을 적는다. 피고인의 국선변호인 변호사 OOO.

/임지선 변호사

서울회·동부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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