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성 변호사
조은성 변호사

인류학자 김현경의 책 ‘사람, 장소, 환대’에는 ‘타자를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에 대한 질문을 괄호 안에 넣은 채 그를 환대하는 것을 말한다’는 문장이 나온다. 책을 읽은 후 오래 지나 ‘환대’라는 단어를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다시 만났다. 물론 책의 저자가 쓴 ‘(절대적) 환대’는 ‘나의 해방일지’의 ‘추앙’과 오히려 가까운 의미일 수 있겠으나, 나는 오늘 도무지 추앙할 수 없는 세상과 타자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해서도 환대 내지 환대해보려는 시도가 의미있을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드라마 속 구씨와 염미정은 서로의 볼품 없음과 누추함, 정직하지 못함, 그 모든 것을 어쩌지 못하고 부유하는 초라함까지 모두 ‘괄호 안에 넣었다’. 구씨와 염미정의 서사가 자극적 요소 없이도 자못 치명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마치 생물학적 개별성과 정신적 고유성이 부여되기 이전으로 거슬러 간 듯, 구씨 삶의 거침이나 미정 삶의 부침 그리고 그 간극 따위 발붙일 틈 없는 거다.

같은 견지에서 구씨가 밤 생활을 청산하고 절주한다거나, 미정이 조이카드 정규직으로 승승장구한다든가 하는, 우리가 심신의 평안을 위해 기어이 상상하고 마는 외양의 변화는 ‘해방’과 무관하다.

다만 ‘나의 해방일지’ 후반부는 변함없이 추앙할 수 없는 인간 군상을 향한 구씨와 미정의 환대로 인해 혁명적이라 할 만하다. 미정은 돈 떼먹고 적반하장인 구 남친 찬혁을 환대해주었다. 구씨는 술에서 깨어나면 자기에게 달려들던 환영(幻影)을 환대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것이 ‘환대’라고 믿게 되었다. 내 반경에서, 가장 가깝게는 나 자신을, 하루 한 날을, 마주하는 사람과 주어지는 일을 그저 환대해보려는 일.

드라마는 미정이 해방일지를 계속 쓰는, 언뜻 열린 결말 같지만 실은 명확한 결말로 막을 내렸다. 본 중 가장 힘 있는 엔딩이었다. 아무나 할 수 없지만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친절한 작별인사이기도 했다.

 

/조은성 변호사

법무법인 위 원주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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