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칼럼에 부끄러움과 배움에 대해 썼었다. 그런데 부끄럽게 배운다는 생각으로도 역부족일 때가 있다.

재판을 마치고 돌아설 때 ‘오늘도 배워간다’라는 생각이 나를 격려하지 못할 때, 할 일은 많지만 정작 무엇부터 들여다볼지 몰라 눈알만 굴리게 될 때, 구구절절 옳은 말 같은 상대방 서면을 받아들고 막막할 때.

필립 로스의 소설 ‘에브리맨’에는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고 프로는 아침에 일어나서 그냥 일을 하러 간다’는 표현이 등장하지만, 영감을 찾든 그냥 일을 하든, 결국 계속하는 사람만 프로가 된다. 저연차 변호사인 나는 이런 역부족의 순간에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업무 시간 30분 전 선호하는 위치에 주차까지 마치면 시작이 좋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제일 먼저 보는 대자연의 장엄함 앞에(윈도우 로그인 화면) 나의 피조물 됨을 상기하자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텀블러를 챙겨 탕비실로 가 미온수를 조합해 자리로 돌아온다. 인트라넷에 접속하고, 재판과 미팅 일정을 확인하여 폰 알람을 설정한다. 이제 오전 일과 시작이다. 일단 ‘그냥 일을 하러 가서’ 몸에 밴 사소한 행동들을 하다보면 어느새 계속 할 수 있는 내가 된다.

때로는 차라리 잠시 한눈을 팔면서 영감을 기다려보는 쪽을 택하기도 한다. 무용해 보이는 일들로부터 뜻밖의 도움을 얻어 돌아오곤 한다.

요즘은 벌목이 한창인 사무실 앞 숲을 하염없이 바라본다든지, 의뢰인이 건넨 녹음파일 재생용 스피커로 클래식을 틀어 방 안 가득 채워본다든지, 또는 혹은 동시에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 한 꼭지를 읽는다. 팔을 걷어붙이고 책상 청소를 하거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공원을 산책하는 일도 소중하다. 어김없는 계절의 변화는 나도 잠잠히 내 일을 계속하라는 응원 같다. 근래 바작바작 소리가 따라오는 낙엽길은 특별한 위로이기도 하다.

마음만큼 잘하지 못하더라도 먼저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은 애정하는 곡, 윌 스미스의 ‘Gettin’ Jiggy Wit It’을 들으며 어깨춤을 섞어볼 거다.

/조은성 변호사

강원회·법무법인 위 원주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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