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창피당하기를 진심으로 기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걸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것도 인생에 독이 된다. 내가 그랬다.

부끄러움 당하는 게 무엇보다 싫으니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았다. 어떤 행동, 말, 결정 그리고 나의 사소한 기호조차도 누군가에게는 우스운 꼴로 비칠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모조리 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이렇게 안전하게 살아온 내가 긴 업무 공백의 두려움을 떨치고 송무 변호사로 돌아가게 된 건 부끄러움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나서부터다.

‘위험은 그것을 감수한다는 것만으로도 할 만한 가치가 있다.’ 때마침 읽고 있던 책 속의 한 문장도 나를 떠밀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고, 면접에 참석하는 모든 과정이 내게는 심각한 위험을 감수하는 것으로 느껴졌으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돼, 바라던 결과가 아니어도 돼. 위험을 감수하는 것만으로도 이 일은 가치가 있어’라고 되뇌었다.

내가 아는 한 변호사는 부끄러울 수 있는 일과 상황에 자주 노출되고(구태여 예시를 열거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 와중에 부끄럽지 않은 척, 잠시 착오한 척 때론 맞는 척 우기기까지 시전해야 할 때가 부지기수며 종종 그 능청스러움으로부터 업무적 노련함 내지 위기 모면 능력을 칭찬받고 우쭐하기도 한다. 하지만 꾸준히 그렇게 살다가는 요란한 빈 수레로 공허나 물리쳐야겠지.

부끄러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자 내적 해방이 찾아왔다. 기꺼이 부끄러움을 당할 준비가 되자 면접의 순간도, 다시 선 법정도, 마주하는 사건과 의뢰인도 배움의 시간과 공간과 재료가 되어줬다. 부끄러움에서 배워가기로 하자 이렇게 지면을 빌어 글을 쓸 기회도 생겼다. 즐거운 경험이다.

매일 부끄러움에서 배운다. 번복하고, 철회하고, 수정하고, 때론 사과하고 양해를 구하며 그렇게 부끄러움을 감당해가며 배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처럼 나는 삶에서 배워야만 하는 것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 한참은 더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꾸준한 인간은 반드시 배우고 한 걸음 더 성장한다는 것을 믿으며, 오늘도 배우러 간다.

/조은성 변호사

강원회·법무법인 위 원주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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