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유중원 대표 단편선> 영현병, 김재수 하사
 닉네임 : 유중원 변호사  2018-09-08 13:36:51   조회: 40   
영현병, 김재수 하사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면 귀신들이 온다.
바람에 불려 말을 타고 구름을 차면서
땅에서는 풍악이 일고 우는 듯 흐느끼는 듯
비파 소리 늴리리 피리 소리.


열대지방의 늦은 오후.
화장터 건물은 야전병원에서 조금 떨어진 숲으로 우거진 작은 언덕 위에 숨겨져 있었다. 오후 늦게 또는 석양이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우뚝 솟은 화장터의 벽돌 굴뚝에서 죽은 병사의 시체를 태우면서 나오는 하얀 연기가, 가냘픈 연기가, 슬픈 연기가, 영혼을 상징하는 연기가 곧게 피어올라 하늘로 올라갔다.
가끔 바람에 실려 시체 타는 냄새가 병동까지 날아들었다.
영현병이었던 김재수 하사는 화장터에서 혼자 소각로를 담당했다. 그는 누구나 싫어하는 시체 태우는 일을 했다. 항상 술에 얼큰히 취해서 불콰한 얼굴로 시체들을 잘 태우기 위해 기다란 쇠꼬챙이로 타다 남은 살점과 뼈들을 뒤적여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더 깊은 소각로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들 시체는 주로 작전이 끝난 뒤 전선에서 왔다.
그러나 암암리에 김 하사에 대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열대지방의 우기에 접어들면 몇 달 동안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는 날이 계속되고, 그 우울한 날에는 그는 어김없이 노릿노릿하게 구워진 주로 종아리 살점을 안주 삼아 술을 통음한다는 것이었고, 술에 만취하고 나면 무어라고 계속 웅얼대면서 장대비 속을 몽유병자의 몸짓으로 몇 시간씩이나 흐느적거리며 동생을 찾으러 다닌다는 것이다.
진짜 알코올 중독자라는 소문도 돌았고, 알코올 중독자는 대부분 폐울혈로 죽기 때문에 그도 끝내 폐울혈로 죽게 될 것이라고 쑥덕거렸다.
내가 상당히 회복되고 난 후 맑은 공기를 쐬기 위해 병원 주변 숲 속을 어슬렁거릴 때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외로운 사람인 그와 가끔 만나게 되었다. 그때 나는 너무 외로웠으니까 답답한 병동 밖으로 나가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시원한 바람도 쐴 겸 말동무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중간 키에 의외로 균형잡힌 탄탄한 몸매를 하고 있었다. 덥수룩한 머리칼이 넓은 이마를 덮고 있다. 처음 만난 순간 맑은 눈빛으로 찬찬히 뜯어보듯 바라보았다. 그는 전혀 어둡고 답답하다는 인상을 풍기지 않았다. 나는 어느 정도 괴물처럼 생긴 인간으로 미리 단정하고 있었는데 내심 당황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아도 식인종처럼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눈은 하나밖에 없고 치즈나 우유를 주로 먹고 살다가 가끔씩 사람 고기로 포식하는 외눈박이 거인 퀴클롭스는 절대 아니었다.
그가 말했다.
“쫄병…… 어디 소속이야?”
“백마 30연대입니다.”
“병명이 뭐야? 작전에서 당한 것 같지는 않은데…….”
“의사도 모른대요.”
“의사가 병명도 모른다고? 네가 꾀병 부리는 거 아냐. 조기 귀국하려고…….”
“그건 아니에요. 죽다 겨우 살아났거든요.”
“네 꼴을 보니까 그런 것 같군.”
“제 모습이 불쌍해 보이나요?”
“그러면…… 내가 괴물처럼 무섭게 보이나? 그런가? 우리…… 자주 만나자고. 화덕을 보여줄 수 있어. 거기는 나 혼자밖에 없으니까. 무서워서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거야. 귀신은 나오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구. 귀신은 내가 밤에 혼자 있을 때만 나타나는 거야.
나도 언젠가는 불 속으로 들어가게 될 거야. 제때 죽는 것이 중요한데 말이야. 사람들은 너무 일찍 죽거나…… 너무 늦게 죽게 되거든…….”
하지만 그는 늘 바닥으로 시선을 깔고 반쯤 쉰 목소리로 자신과 대화하듯 조용히 말했다. 그는 의외로 순박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인생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 겉늙어버린 것처럼 보였으니까 자기모순적이었다.
야전병원을 둘러싼 열대의 숲은 무겁고 음산했다. 그날 오후, 하늘은 낮고 거대한 먹구름이 뒤엉킨 채 몰려왔다. 번갯불이 번쩍이고 천둥이 치며 무섭게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스콜이 그치고 잠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바나나 나무의 넓은 잎들이 하늘거린다. 황혼녘이 되어 어둠이 내린다. 숲에는 적막감이 흘렀다.
그날도 여전히 술에 취한 채 (오후 작업이 시작되면서부터 마신 술이거나, 아니면 비가 내렸기 때문에 마셨을 수도 있다. 그는 어처구니없이 죽은 자들이 불쌍해서, 죽은 자들의 망령을 위로하기 위해서,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그들이 생각나니까 그때마다 술을 마실 수밖에 없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였다.) 무덤덤하게 그가 말했다.
“네가 사랑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그게…… 대상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하나님이든지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말이야.”
“저는 사랑은 여자하고만 하는 줄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서 여자와 자본 적은 있나?”
“그건 모르겠는데요.”
“모른다고?”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그런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네놈이 날 놀리고 있는 거야! 내가 이미 파악하고 있었지. 너는 완전한 숙맥이야. 숙맥이란 게 바보라는 말인데, 알고 있어?
끝까지 지킬 자신이 있으면 그렇게 하라고. 무슨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저는 지금 마음속에서부터 변하고 있어요. 그게 느껴져요.”
“그럴 수 있겠지. 죽다가 살아났으니까. 내가 지금부터 무슨 이야길 해줄 수 있지. 너무 놀라지는 말라구. 어쩔 수 없었다니까. 어쩔 수가…….
비 오는 날은 싫어. 지긋지긋하지. 슬프고 우울하단 말이야. 불의 유혹을 견딜 수 없어 꼭 죽고 싶다니까. 불꽃이 동생 얼굴로 변하지. 동생이 환하게 웃고 있는 거야. 그럴 땐 소각로 속으로 내가 들어가고 싶어. 불꽃이 활활 너울거리며 춤을 추고 위로 솟구칠 때는 그 유혹을 참기 힘들지.
그 아인 비밀에 가득 찬 수수께끼였지. 난 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지. 유령처럼 신비로운 존재였지. 항상 반쯤 꿈꾸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거야. 내가 일방적으로 짝사랑했던 건 아냐. 그도 태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은근히 좋아했었지.
그러니까 그가 떠났을 때 불같은 질투와 격렬한 감정, 알 수 없는 욕망 때문에 굉장한 고통을 느꼈던 거야. 그 고통이 납덩어리처럼 가슴을 억눌렀지.
난생 처음으로 그런 감정을 느꼈거든.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감쪽같이 사라졌던 거야.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중대한 정신병이라고 하면서……. 나는 그를 의심하지. 그럴 수밖에 없었지.
나는 그가 언젠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그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 되었지.
그 유혹을 뿌리치려면 술을 진창 퍼마시고 지워버려야만 하지. 술에는 고기 안주가 필요해. 그렇지 않나? 약간 짭짤하긴 한데…… 허벅지 살은 닭고기 가슴살처럼 퍽퍽하고 종아리 살이 질기면서도 쫄깃쫄깃하다고. 종아리 살에는 하얀 지방질은 전혀 없는 거야. 그 살코기는 씹는 질감이 최고지. 맛있어서 눈물이 나지.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남자의 다리, 종아리에 매력을 느꼈던 거야. 여자의 음부같이 무릎 안쪽 우묵한 부분에서부터 완만하게 튀어나와 젊은 여자의 엉덩이 혹은 젖가슴처럼 부드럽고 매끈매끈하고 정맥의 푸르스름한 핏줄이 보일 듯 말 듯 감춰져 있는 살덩이.
온몸을 쥐어뜯고 태워버릴 듯한 짜릿함……, 죽음처럼 불안한 짜릿함을 느끼게 되지. 으흐흐흐……
나는 울면서……, 울면서 꼭꼭 씹는 거야.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고. 그리고 목구멍 속으로 꿀꺽 삼키는 거지. 중대한 정신병을 치료해야 하니까.
그렇지만 내가 제대하고 나면 불고기나 바비큐를 먹을 수는 없을걸. 이것저것 생각이 날 거니까.”
“그걸 제가 전부 믿으라구요?”
“믿건 말건 내가 알 바 아니야. 그렇지만…… 쫄병…… 이건 비밀이야…… 어디 가서 나불거리면 안 되는 거야…… 그러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 지금 너한테 술을 멕이고 싶지만 참는다. 몸이 그 모양이니. 어디 견뎌내겠어…….
귀신을 본 적이 있나? 아니면 귀신을 믿기는 해?”
“귀신이 있다고요?”
“그렇다니까.”
“아마 안개일지도 모르죠. 귀신은 있다고 믿으면 있고, 없다고 생각하면 그런 것 아니겠어요?”
“귀신들은 밤에만 나타나지. 밤은 낮과는 다른 거야. 밤이 되면 이상한 기운이 찾아오니까 술꾼은 술을 마시고 싶고 도둑들은 도둑질하고 싶은 은밀한 욕망이 생기는 거야. 귀신들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밤은 귀신의 시간이 되는 거지.
그런데 귀신들은 나를 무서워한다니까. 내가 귀신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그래서 사람들도 나를 무서워하지. 알겠어? 내 몸에는 부적이 있어. 그건 닳아서 반질거리는 사람 뼛조각이야. 그게 날 보호해 준다고.”

워낙 은밀한 소문이었다.
그가 영창에 가지도 않고 또한 조기 귀국을 당하지 않는 것을 보면 영현부대의 장교들은 틀림없이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알고 있으면서 시치미를 떼고 모른 체했을 수도 있었다.
그들은 멀리 떨어진 사무실에 앉아서 화장보고서를 쓸 뿐 소각로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더욱이 어떤 병사도 밤마다 귀신이 출몰한다는 화장터의 소각로를 담당하는 직책을 결사적으로 기피하였으므로 그 이외에는 당장 할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김 하사에게 귀신이 붙어 있다고 수군거리며 그와 대면하는 것 자체를 꺼렸다. 그는 귀국 만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 관계자의 끈덕진 종용에 따라 귀국을 연기하면서까지 그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야전병원으로 이송된 지 벌써 20여 일이 지났다. 절체절명의 위급한 상황은 벗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병세는 더 이상 호전되지 못하고 답답한 상태에 빠져 있다. 여전히 수십 알의 형형색색 알약과 엉덩이 주사, 수액에 의지하는 지루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온몸이 땀에 끈적거리면서 수액이 일정한 간격으로 방울 방울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나는 기다렸다. 지루함과 절망을 이겨내기 위해서 기다렸다.
우리는 그날 오후 늦게 만났다. 김하사는 작업 물량이 없다면서 나트랑에 이틀 동안이나 무단외출을 나갔다가 슬그머니 귀대했다.
내가 말했다.
“나트랑에는 …… 이틀 동안이나?”
“할 일이 좀 있었지. 미군 보급창 사람들도 만나고. 밤에는 잠을 푹 잤지. 정말 행복했어.”
김 하사가 우울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면서 얘기를 하게 되면 좋은 담배 맛을 음미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담배가 다 타고 나서 그가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네 얼굴을 보니 여전히 그렇구나.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어. 더 나빠진 것도 같고.”
“잘 모르겠어요. 그저 그래요. 그래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절망적인 발작만은 일어나지 않으니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그 발작이 왜 생기느냐 하면 네 머릿속에서 악마들이 마구 뛰어노니까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의사 말을 무조건 믿는 게 아니야. 거의 모든 사람들이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하는데 의사라고 안 하겠어. 자기 몸은 스스로 판단하는 거야.
여긴 군대야, 군대라니까. 아무도 생명에는 신경 안 써. 모두 귀국 박스에만 정신이 팔려 있지. 쫄병 하나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한다니까. 내가 널 소각로에 밀어넣고 싶지는 않구먼. 그러면 눈물을 많이 흘리게 될 거야.”
“제가 지금 뭘 알겠어요?”
“김 대위는 서울의대를 수석 졸업했다고 했어. 그래서인지 고집이 대단하지. 직속 상관인 내과 과장 말도 안 들어. 그런데 말이야. 그 과장은 당해도 싸지. 아랫사람들에게 아주 무례하게 굴기로 소문이 났거든.
본론으로 돌아가자고. 주치의가 병명조차 모른단 말이지. 병명도 모르면서 무슨 약을 주고 있는 거야? 아무런 근거가 없는 가설만 믿고 있는 거지. 너는 지금 오직 진정제에 의지해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거지.
이상한 게…… 네가 지금쯤 피해망상 증세를 보여야 하는데…… 운명으로 받아들인 거야? 아니면 뭐야?
네 병은 신비한 거야. 다시 말하면 전문의가 병명조차 알 수 없는 병이라면 인간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병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임상의학의 한계를 벗어난 거지. 그렇다면 네가 죽을 때까지 무한정 기다리는 거 아니겠어. 의사가 지금 자신의 예감을 숨기고 있다고 할 수 있어.
그러면 아주 특별한 처방이 필요하겠지. 안 그런가?”
“무슨 말씀을……?”
“내가 보기에는 무슨 좋은 약이……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특효약 같은 게 있을 것 같다는 거지. 농담하는 게 아니야. 네가 너무 걱정스러워. 몰골이 그렇다니까. 네 부모님이 보았다면 대성통곡을 할 거라고.
시내에 나가면 중국 노인이 하는 아편 집이 있어. 자신이 지독한 중독자인데 아주 멀쩡하지. 질이 좋은 아프가니스탄제 검은 알약을 솜씨 있게 말 줄 알지. 전통적인 대나무 파이프를 사용하는 거야. 그게 최고거든.
그 검은 연기를 몇 번 마시면 좋아지지 않을까.
그게 인간들이 알 수 없는 신비한 망각 작용을 한다니까. 궁극적인 진통제이고 진정제라고 할 수 있겠지.
또 한 가지가 있어. 그 집에는 딸이라는 소문도 있고 첩이라는 소문도 있지만 약간 귀가 먹은 점쟁이인지…… 주술사인지…… 가 있단 말이야. 내가 보기에는 그 여자는 얼굴에 신기가 흐른다고. 그러니까 틀림없이 특효약을 만들어줄 수 있을 거라고. 뒷방에서 가끔 영험하다고 소문난 무슨 약을 조제하고 있거든.
내가 영현부대 차로 데려다줄 수가 있지. 헌병들도 우리 차는 귀신 나온다고 해서 얼씬도 하지 않으니까.”
“그건 아니에요. 내가 이 몸으로 어떻게 병동을 빠져나갈 수 있겠어요. 가령 빠져나간다고 해도 아마 탈영병으로 처리할 거예요.
열심히 치료해 주시는 분들께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뭐.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말라고. 진심으로 생각해서 그런 거니까.
네가 좋다면 차라리 아편 단지를 이리로 가져올 수도 있는데. 중독이란 게 쉽게 되는 게 아니야. 우리 아버지도 그걸 오랫동안 했지만 지금까지 아주 건강하시단 말이야. 그러니까 중독이 되지 않도록 조금씩 조절하면서 치료가 끝날 때까지 먹는 거지.”

얼룩은 하얗고 몸통은 새까만 너무나 얌전한 개.
나는 그때 김 하사보다는 그 개가 더 보고 싶고 그리웠다. 가끔 꿈속에도 나타났다. 개 주인은 그를 ‘덕구’라고 불렀다. 김 하사는 가끔 그 개를 데리고 다녔다. 그는 주인 없이 부대 주위를 헤매고 다니던, 그 당시 야윌 대로 야위어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고 더군다나 한쪽 뒷다리를 약간 절룩거렸던 그 잡종 개를 거둬 정성껏 키우고 있었다. 이제는 제법 살이 올랐고 뒷다리는 정상을 되찾았다.
내가 말했다.
“우리 아버지처럼 키워서 잡아먹으려고……. 그걸 설명하기가 난감해요. 아버지는 개를 무척 사랑했어요. 그렇지만 잡아서 보신탕을 해먹었어요.”
그가 정색을 하며 대꾸했다.
“나도 보신탕을 좋아했지. 그래도 덕구는 그런 게 아니야.
내 동생이야. 동생이고 자식 이상이지. 건강한 개는 새 주인을 만나면 따라가지 않으려고 앞발로 버티고 낑낑거리며 뻗대는 거야. 그러나 덕구는 그렇지 않았지. 애원하는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던 거야. 다시는 도망가지 않게 잘 키울 거야.
그렇고말고. 어떤 놈이 손을 대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장교라고 해도 말이지.”
우리가 그 이야기를 할 때 덕구는 졸고 있는 듯 눈을 감고 한껏 느긋한 자세로 누워 있다. 나는 그것이 낑낑대거나 짖어대는 개 짖는 소리를 여태 들어본 적이 없었다.

1970년 가을경에 나는 상처와 고통이 치유되기는커녕 여전히 심연 깊은 곳에 앙금처럼 쌓인 채로 귀국하게 되었다.
나는 카렌다에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귀국 특명을 손꼽아 기다린 것도 아닌데 귀국 날짜가 잡힌 것이다.
그러나 귀국을 얼마 앞두고 있었을 때 장기복무 하사였던 영현병 김 하사가 마침내 귀국 명령을 받자마자 키우던 개를 화장하고 나서 리볼버 권총으로 자신의 심장을 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신이 자살하기로 예정한 바로 그 날 화장실의 소각로 앞에서.
나는 퇴원하기 하루 전 그와 마지막 만날 때부터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상한 이야기이지만 그의 죽음은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는 그날 불면증에 시달리는 우울한 표정으로 “사람들이 날 그냥 좀 내버려두었으면 좋겠어. 만약 귀국 명령을 받게 되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차피 내려오지 않겠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흔해 빠진 말로도 위로나 격려 따위의 말을 입 밖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그의 육신 역시 훨훨 타는 소각로에 들어가 한 줌 재로 변했을 것이다.
그는 왜 그런 내밀한 것들을 나에게 이야기했을까?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중간에 끼어 있는 자신의 위치를 마침내 자각했던 것인가. 왜 하필 나에게 그걸 털어놓았을까? 그는 누구에겐가 털어놓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인육을 먹는 괴기스러운 모습을 직접 본 것은 아니었다. 아마 순진한 날 놀려먹기 위해서거나 또는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 잔뜩 겁을 주려고 그렇게 말했는지 모른다. 아니면 호기심에서 한 점을 씹어 먹은 일이 있었는데 그걸 가지고 너무 과장해서 말했거나.
그는 장교처럼 머리를 길렀었다. 그것도 아무도 간섭을 하지 않으니까 도저히 군인의 머리라고는 할 수 없는 약간 히피처럼 어지럽게 헝클어진 장발이었다. 그때 양쪽 뺨 위로 홍조가 슬며시 번지면서 귓불이 빨갛게 달아올랐었던가? 내 힘없는 멍한 시선마저 마주치지 않으려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건 그랬다. 지금도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이 하고 싶어서 계속 웅얼거렸다. 약간 비논리적일 때도 있었고, 가끔 목이 메이기도 했고, 깊은 울림의 목소리로 말할 때도 있었지만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의 말에 대해 추임새를 넣으며 맞장구를 치지도 않았고 방해하지도 않으면서 다 들었다.)
“글쎄. 우리는 전쟁터에 내몰린 군인이다. 허무하기 때문에. 이판사판이었으니까. 우린 피차 너무 외로웠고 말들을 쏟아낼 상대가 필요했기 때문에. 대화할 상대가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야. 아니면 혼자서 씨부렁거려야 되니까.
나는 여자도 좋았지만 나중에 남자를 알고 나서부터는 남자가 더 좋았거든. 처음부터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없었어. 그런데 정신병자 취급을 하니까 쉬쉬할 수밖에 없는 거야.
난 덕구를 벗어날 수 없었다. 단순히 바람피우는 정도가 아니었으니까. 도대체 그를 이해할 수가 없지. 그렇다니까. 내가 칼날에 비소를 묻혀서 그의 가슴을 찌르기 전에는. 그가 떠났을 때 며칠 동안이나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지. 진실은,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내 고통은 시작된 거야. 그때 잠깐 동안이지만 심한 편두통을 앓았다니까.
아무튼 귀국해봤자 별 수가 없지. 날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영현병은 맨날 시체 치우는 일을 한다. 이제 시체는 푸줏간의 고깃덩어리로 보이지.
나는 귀신과 통한다니까. 귀신은 소각로에서 재가 된 사람들의 혼령인 거야. 그래서 귀신과 대화할 수 있지. 나라도 한 맺힌 억울함을 끝까지 들어 주어야 한다니까.
나는 지옥의 유황불을 상상한다. 쇠막대기로 불꽃을 헤집는 작업은 나를 전율케 하였다.
하느님이 계신지 모르겠어?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신다면 교회에 나갈 수 있을걸. 교회는 연약한 여자들이나 다닌다고 생각했지만. 그런데 군목을 만난 일이 있었어. 그자의 번지르르한 말을 들으니까 정나미가 떨어졌다고. 나에게 하느님을 들먹이며 무슨 훈계를 하길래 박차고 나와버렸지.
나는 더 이상 비밀을 지키고 싶지는 않지. 너에게는 말이야. 우리 부모님은 소록도에 살고 계셔. 좀 작은 초가집에 살고 있지만 아주 행복하게 잘 살고 있지. 국가에서 다 지원해주니까. 오히려 날 걱정한다고.
4월이면 소록도에는 온통 벚꽃이 피지. 나는 꿈에 나타나는 남쪽 바다를 잊을 수가 없지.
아편은 특효약이야. 머릿속이 몽롱하면서 모든 걸 잊게 해주거든. 상쾌해, 아주 상쾌하다고. 그 귀머거리 여인은 내 애인이었어. 미군들과 거래를 했다고. 주로 항생제를 빼내서 여자에게 갖다주면 그걸 베트콩에게 넘겼어. 그건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치료약이니까 아주 인도적인 행위였다고 할 수 있지. 그렇지 않은가. 그렇게 해서 그 여자를 자주 만났다고. 진짜 흰가루로 영험한 약을 만들었어. 내가 장담할 수 있지.
나도 의학적인 지식이 있다고. 의사들은 엉터리야, 엉터리라구. 현대의학이 만능은 아니라니까. 엄연히 한계가 있는 거야.
그래도 기적이 일어났네. 네가 회복되었으니. 다시 생각해 보면 죽을 운명은 아니었던 거야. 저승사자가 너를 데려가기에는 너무 미안했던 거지.
나트랑을 떠나고 싶지 않아! 동서남북 골목길을 손바닥 보듯이 샅샅이 알고 있으니까 마치 고향 같다니까. 그러니까 내게는 3년이 지났어도 고향병이나 향수병은 없어.”
그는 평생 고독했고 만나는 사람 모두가 타인에 불과했으리라. 나 역시 낯선 사람이었고 여전히 혼자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이야기는 자신에게 들려주는 독백이었을 것이다.
2018-09-08 13:36:51
14.xxx.xxx.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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