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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대표 중편소설> 재심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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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등록일
2024-03-28 14:47:21
조회수
27
재심 再審



자백만큼 뿌리 깊은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증거는 없다. 사실관계를 판단하는 사람들이 자백에 너무 큰 비중을 부여하기 때문에 자백이 증거로 제출되면 재판은 더 해볼 것도 없게 되어 버리고 실질적인 의미에서 진짜 재판은 자백을 얻어낼 때 이루어진다.
― 미국 연방대법관 윌리엄 브레넌

……물론 재심 절차는 늘 매우 까다로우며 받아들여지는 일이 드물다. 이처럼 재심이 어려운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래도 오심이 너무 많아 차라리 덮어두려는 게 아닐까. 정말이지 오심은 너무나 많다.……
― 마르크 베네케 · 리디아 베네케



1. 2016년 2월 초순경.
재판이 시작되기 전 수원지방법원 3호 법정에는 (기자들로 보이는) 몇 명의 사람들만 앉아있다. 이들은 1996년 강도살인, 강도강간, 특수감금,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바 있는 김영남의 재심재판을 취재하기 위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재심재판은 오후 2시에 시작될 예정이다.
수원지방법원은 지난 달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 김영남의 청구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를 결정한 것이다. 법원은 그 사건을 다시 재판해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가리게 된다.
물론 재심청구 당시 검찰은 수사절차상 사소한 하자는 이미 치유되었을 뿐만 아니라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재심 이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청구기각의 결정을 내려다 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보내긴 했었다.
그 당시 (1997년을 말한다) 화성경찰서는 수원지검으로 사건을 송치하면서 의견서에서, ‘…… 피의자의 범죄행위는 형법 제334조 (특수강도), 제338조 (강도살인) 및 제339조 (강도강간)에 해당하는 범죄로서 참고인의 진술, 압수물, 국과수의 DNA 검사 보고서, 시체 검안서, 피의자의 자백 등으로 범증이 인정되오니 기소하심이 상당하다고 사료됩니다.’라고 결론을 내렸고, 담당 검사는 대충 형식적으로 보강 수사를 하고 나서 기소했으며 1심 재판의 7차 공판기일에 검사는 엄숙하게 논고문을 읽은 뒤 사형을 구형하였다.
공판기록에 의하면 변호인은 ‘피고인을 위하여 유리한 변론’을 했고 피고인은 ‘저는 무죄입니다. 억울합니다.’라고 최후 진술을 했다고 기재되어 있고, 2주일 뒤인 선고 공판에서는 재판장은 지금까지 진행된 재판을 바탕으로 주요 범죄 사실을 요약해서 설시하면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지극히 사무적인 어조로 사형을 선고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 법정에서 열린 마지막 공판기일에 항소심은 1심의 사형선고를 무기징역으로 감형하였고 이에 검사와 피고인 모두 대법원에 상고하였지만 대법원은 양쪽 상고를 모두 기각해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

훨씬 나중 일이지만 (그러니까 피고인이 20년 동안이나 옥중 생활을 한 다음에서야), 대한변협 인권위원회 법률구조단은 김영남의 탄원서를 접수해서 검토한 다음 지난해 여름 재심청구를 하였다.
재심청구 이유로 피의자를 임의동행이라는 명목으로 연행하여 불법 감금하는 등 수사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는 점과 지문이나 손수건, 몽둥이 등 기타 물증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 재심 청구인의 진술이 애매모호하고 자꾸 번복된 점, 사건 당시 유일한 목격자 겸 피해자가 진술을 번복하고 있다는 점, 자술서는 경찰이 불러준 대로 그대로 작성한 점, 유일한 핵심 증거인 DNA 감정 결과를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재심을 청구한 것이다.

그 탄원서에는 성경을 무척 많이 인용하고 있었다. 수십 장에 이르는 구구절절한 장문의 탄원서 내용을 요악하자면 다음과 같다.
저는 제 자신이 무죄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수사기관에서는 DNA가 일치한다고 하나 저는 그 감정 결과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저는 그 여자를 본 적도 없고 접촉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해서 그 여자의 몸속에 제 DNA가 들어가 있겠습니까. 진실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 진실을 하느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인간이 하는 일에는 항상 오류와 착오가 끼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서 DNA 감정에 오류가 있음을 이유로 재심청구를 하고자 합니다.
교화위원이 늘 똑같은 충고를 했습니다. ‘참회를 하세요. 그러고 나서 돌아가신 분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늘나라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지요. 저는 그때마다 ‘제가 믿는 것은 오직 하느님밖에 없어요. 하느님은 구원을 받으려면 먼저 회개하고 나서 용서를 빌라고 했지요. 그렇지만 저는 그 여자의 얼굴도 모르는데 어떻게 용서를 빌 수 있나요.’라고 되물었지요.
저는 처음에는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는 무기징역으로 감형이 되었습니다.
제가 뭘 알겠습니까마는 교도소에서 들은 바로는, 우리 헌법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되어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근원인 생명권을 박탈하는 것이므로 헌법 정신에 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심 판사는 헌법에 위반하여 저에게 사형을 선고하였습니다.
2심 판사는 나이가 좀 들었더라고요. 그래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좀 더 깊었겠지요. 제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깊이 뉘우치고 있다고, 초범이라고, 범행을 주도한 것이 다른 사람이라고 하면서 감형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깊이 뉘우친 적이 없습니다. 뉘우칠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철조망으로 몇 겹이나 둘러싸인 담장 속 감옥에서 20년간이나 살았답니다. 20년 동안 누구 하나 면회 오지 않았지요. 딸이 최근에서야 몇 번 보낸 편지가 전부였지요.
저는 특별한 이유 없이 두 번이나 가석방 심사에서 신청이 기각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계획적인 범죄로 죄질이 너무 나쁘고 성폭행의 재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감형을 받기 위해서 거짓이라도 반성문을 한 번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감방 사람들이 빽이 없어서 그런다고 그러더라고요. 법무부에서 누가 밀어줘야 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돈이 있어서 국선변호사가 아니라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를 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저도 알고 있지요. 유전무죄 무전유죄 말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제가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제 자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끝까지 싸워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고아나 다름없으니까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국선변호사는 너무 형식적이었습니다. 제 사건에 대해서 아무런 성의가 없었습니다. 빨리 자백하라고 다그쳤을 뿐입니다. 그래야만 된다고 했습니다.
자유가 그리워요. 벌써 50살이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인생을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제가 목포에서 어떤 여자와 몇 년간 동거한 적이 있었는데 딸이 하나 있었고 그 여자가 혼자서 잘 키웠지요. 올해 25살인데 목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도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도 해야 될 것 아닙니까. 상대방이 아이의 아빠가 강도 살인자로서 무기 징역수라고 한다면 그래도 그 아이를 선뜻 받아들일까요. 제가 가령 석방이 되더라도 세상은 전과자를 받아들여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낙인은 아이들까지, 그 아이의 아이들까지 대대로 찍히게 될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20년 동안이나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는데 무죄로 나가게 된다면 정부를 상대로 형사보상 청구소송을 제기해야 될 것입니다. 징역 20년에 해당하는 기간에 대해서 국가로부터 형사보상금을 받아야만 됩니다.

이몸의 죄 없음을 밝혀 주소서. 하느님이여, 들으소서.
이토록 울부짖는 소리 모르는 체 마옵소서.
이 애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이 입술은 거짓을 모르옵니다.
“너는 죄없다” 판결하소서.
당신의 눈은 결백한 사람을 알아 보십니다.
내 마음을 샅샅이 뒤져 보시고
밤새도록 심문하고 불에 달구어 걸러 보셔도
무엇 하나 나쁜 것이 내 입에서 나왔사옵니까?
남들이야 무얼 하든지
이 몸은 당신의 말씀을 따라
그 험한 길을 꾸준히 걸었사옵니다.
가르쳐 주신 길을 벗어난 적이 없사옵니다.
나는 당신을 부릅니다.
하느님, 대답해 주시리라 믿사옵니다.
귀를 기울이시어 나의 말을 들어 주소서.


2. 첫 번째 증인은 이 사건의 피해자인 정태수 (52세) 였다.
이 사건의 피해자가 피의자로 지목됐던 사람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증인석에 선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후 2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정태수는 여전히 20년 전 과거에 갇혀있었다. 그는 증인석에서 20여 년 전의 일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변호사가 증인신문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증인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증인은 대략 20년 전의 일인데 지금 자세히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서 그걸 잊어버릴 수 있겠어요? 도저히 말이 안 되지요. 그러나 잊어버리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잊을 건 잊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때가, 그러니까 사건이 발생한 시점이 기억나십니까?」
「1996년 가을경이었습니다. 그때 벌써 바닷가는 바람이 불면서 많이 추웠거든요.」
「그 장소가 어디였습니까?」
「화성시 서신면 궁평항 근처 바닷가였습니다. 그리고 해안가로 갈대밭이 쭉 이어져 있었지요.」
「그때 궁평항에 가게 된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희는 주말에 제부도로 내려갔는데 거기서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궁평항까지 간 것이지요.」
「그러니까 궁평항에 갈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그냥 간 거죠. 바닷가가 한적하고 황혼녘이 아름답다고 해서요. 그리고 언젠가 화옹방조제 공사가 시작되면 그쪽 바다는 볼 수 없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는 궁평항에서 하룻밤을 묵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때 희생된 여자 분과는 어떤 관계였나요?」
「연인 사이였지요. 오랫동안…… 근 5년이나 깊게 사귀었지만 결혼 문제로 티격태격하고 있었지요.」
「그게, 그러니까 결혼 문제가 어쨌단 말씀인가요? 그 당시 증인의 나이와 그 여자 분의 나이는 얼마였지요?」
「저는 33살이고 여자 쪽은 36살이어서 연상이었습니다. 여자 집에서 결혼을 서두르고 우리 집은 여자가 나이가 많다고 꺼려하는 편이었지요. 그래서 집안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오래된 일이고…… 쓸데없는 이야기…… 여자한테는 미안했지요. 두 번이나 임신중절 수술을 했었거든요.」
「기억하기가 괴로운 일이겠지요. 그러나 여기는 엄숙한 법정입니다. 그때 일을 상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때 여자와는 무슨 대화를 나누었나요?」
「우리는 자동차 안에서 결혼 문제로 또다시 옥신각신 하고 있었지요. 제가 시간을 좀 더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난데없이 차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어떻게 되었나요?」
「나는 끌려 나와서 야구 방망이인지 몽둥이인지 맞아서 정신을 잃었고…… 나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제 자동차의 트렁크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때 차는 영흥도 십리포 해수욕장의 골목길에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계속 주먹과 발로 두드리고 악을 쓰니까 지나가던 사람이 경찰에 신고해서 구출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는 차 안에서 성폭행을 당한 뒤 목이 졸려 숨졌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나중에 보니까 저의 지갑과 여자의 핸드백이 사라진 것입니다.」
「증인이 먼저 얻어맞고 정신을 잃었기 때문에 여자가 당한 장면 등은 보지 못했겠네요.」
「그렇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고 해야겠지요.」
「여기 피고인이 보이지요? 그 얼굴이 기억나는가요?」
「아니요.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날 범인을 목격하지 않았던가요? 어떻습니까?」
「그 당시 겨울의 초저녁이어서 어두웠습니다. 우리는 차 안에 불을 켜지 않고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닥친 일이라 범인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범인들은 두 사람이었거든요. 그들의 목소리는 기억하시겠습니까? 혹시 사투리를 사용하던가요?」
「둘 다 경상도 악센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목소리가 여자처럼 가늘고 차분했습니다.」
「피고인은 전남 목포 출신으로 경상도 쪽에는 가본 적도 없다는데 경상도 악센트로 말할 수 있을까요.」
「그건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들이 했던 말 중에서 기억이 나는 게 있나요?」
「한 남자가 차문을 열면서 ‘이 자식을 내가…… 여자는 네가 차지……’라고 말했던 게 기억납니다. 그리고 뭐라고 자기들끼리 씨부렁거렸는지, 외쳤는지 도대체 기억할 수가 없지요. 그때 뒤통수를 얻어맞고 기절했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 당시 수사 과정에서 범인의 인상착의와 그들이 말한 내용을 상세히 진술을 했는데요, 어떤가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렇지요…… 그때는 사건이 일어난 지 6개월이나 지나있었지요. 그러니까 경찰은 그때까지 범인의 윤곽도 몰랐습니다. 여자의 시체를 발견하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여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랐습니다. 저는 범인을 하루빨리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상세히 말했겠지요. 범인이 안 잡히자 여자 집에서는 저를 무척 원망하고 있었거든요.」
「경찰이 범인들의 인상착의와 그들의 대화 내용에 대해서 무슨 힌트를 주지 않았나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검사가 반대신문을 했다.
「증인은 경찰조사에서 범인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한다고 하지 않았는가요? 그때, ‘어두운 밤에 본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습니다. 얼굴을 기억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지요.」
「처음에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어서 ‘범인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다’고 진술했는데 그건 조서에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왜 형사에게 항의하지 않았나요?」
「저는 당연히 그렇게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 사건 이후 증인은 어떻게 되었나요? 증인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냐는 말입니다.」
「전 그 충격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고 지금까지 혼자서……」
「그러면 결혼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요?」
「그렇지요. 어떻게 결혼을……」
「그러니까 저 피고인이 증인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버렸네요. 증인은 그 당시 경찰이나 검찰에서 사실대로 진술하였지요.」
「그때는 사실대로 진술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니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막히면 형사들이 이것저것 가르쳐주었거든요.」
「뭘 가르쳐줬나요?」
「저는 진짜 모르겠더라고요. 진실이 뭔지 말입니다. 저는 그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칠대로 지쳐있었습니다. 그래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습니다.」

그 당시 강력계장이었던 김중권이 증인으로 나왔지만 시종일관 20년 전 일이어서 도무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재심 청구인에게 조사 과정에서 강압적으로 대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적은 전혀 없었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변호사가 신문했다.
「증인은 당시 화성경찰서의 강력계장이였고 이 사건으로 특진까지 하셨지요. 그리고 몇 년 전에 정년퇴직하셨네요. 그러니까 이 사건 수사를 사실상 주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사건 당시 당초 용의자는 물론이고 범행 도구, 지문 등 별다른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지요. 초동 수사에서 실수한 거 아닌가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왜? 기억나지…… 지금 자신의 실수를 덮기 위해서 기억나지 않는다고 변명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오래된 일입니다. 벌써 20년이 지났지 않습니까?」
「그렇다고요?」
「그렇지요. 엊그제 일도 까마득한데요.」
「강력계 형사라고 하더라도 살인사건은 특수할 겁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어버릴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아무튼 기억나지 않습니다.」
「나는 수사관 경력이 20년이 넘었어. 쭉 계속해서 이쪽에만 있었단 말이지. 나를 가지고 놀 생각일랑 꿈에도 하지 말어. 나는 네 놈이 범인인지 이미 알고 있다고. 빨리 자백하라고. 그래야만 너한테 유리한 거야. 그렇지 않아? 라고 말한 적이 있었지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피의자의 임시 거처인 빈 농가 주택을 압수 수색했지만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지요. 압수 수색을 할 때는 다른 경찰관 1명이 입회해야 하지만 증인은 그때 혼자서 한 게 아닙니까? 압수조서도 작성하지 않았고. 그건 범인의 집을 수색했지만 단서가 될 만한 증거물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피의자는 그 당시 사체유기 장소도 모르는데 억지로 그곳에 데리고 가서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현장검증을 했었지요.」
「아닙니다.」
「현장검증 당시 피의자가 제대로 범행을 재연했나요. 어딘지 어색하지 않던가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당시 수사 상황이 기록에 은연중에 드러납니다. 증인이 범인보다 범행이나 범행 도구, 현장 상황 등에 대해서 훨씬 많이 알고 있었고, 그래서 증인이 피고인에게 그것들을 일일이 가르쳐준 것처럼 보이는데 어떤가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때 피해자는 범인의 인상착의에 대해서 오락가락했기 때문에 몽타주조차 만들 수 없었지요. 인상착의가 정확했다면 당연히 만들었을 거 아닙니까.」
「기억나지 않습니다.」
「증인은 경찰에서 오랫동안 범죄 수사를 하였으니까 ‘비밀의 폭로’라는 말을 알고 있겠지요. 다시 말하면 범인의 자백이 진실하다면 범죄 현장에서도 드러나지 않았고 직접 수사한 형사도 미처 몰랐던 오직 범인만이 알 수 있는 새로운 사실이 반드시 밝혀진다는 것인데, 그 당시 피고인의 자백에서도 그러한 비밀 폭로가 있었는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피의자를 연행하고 나서 피의자와 피해자 간 대질을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피해자가 피의자를 보고 나서 범인인지 여부를 특정해야 할 것 아닙니까.」
「이미 DNA가 일치한 것으로 확정된 이상 대질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DNA가 있는데 왜 쓸데없이 대질을 하겠습니까. 그건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변호사는 무력하고 비참한 기분에 휩싸였다. 매서운 눈초리로 전직 형사의 양심을 꿰뚫을 듯 노려보았다.
「아니다,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만 말하는 게 아니지요. 왜? 무슨 일로 증인으로 나오셨습니까?」
「증인이란 게 기억나는 범위 내에서 진술하는 거 아닙니까? 왜 진술을 강요하나요? 변호사에게 그런 특권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겠지요. 다시 질문을 시작하겠습니다. 그 당시 수사의 단서가 되었던 것들이 있었다면 아직 경찰서에 보관되어 있는가요?」
「사건이 종결되면 돌려줄 것은 돌려주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전부 폐기합니다.」
「폐기한 목록을 기록한 문서는 있는가요?」
「지금은 어쩐지 모르지만 그때는 없었습니다.」
「그러면 DNA자료는 어떻게 되었나요? 손수건도?」
「그런 자료는 국과수에 영구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검찰에 송치되기 전까지 3차례에 걸쳐 자술서를 작성했네요. 그러니까 자술서와 4차례에 걸친 피의자신문조서, 참고인이 진술한 내용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고 약간 뒤죽박죽이란 말이지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려 볼까요.
첫째, 범행 전후 상황과 시간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피해자는 황혼녘이어서 아직 어둡지는 않았다고 하면서 범인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한다고 했는데 나중에는 어두운 밤이었고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둘째, 범행 수법과 사용한 도구가 일치하지 않지요. 피의자가 여자를 죽일 때 처음에는 둔기를 사용했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목 졸라 죽인 것으로 되어 있거든요. 이는 국과수에서 뒤늦게 피해자가 목졸려 죽었다는 회신을 보내온 이후 바뀐 거란 말입니다. 그리고 그 둔기 역시 야구방망이라고 했다가 팔뚝만한 각목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돌멩이라고 하였지요. 여자의 목을 조를 때도 장갑을 끼었다고 했고 그 장갑을 갈대밭에 던져버렸다고 했는데 그 장갑은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셋째, 피의자들이 남자의 지갑과 여자의 핸드백을 빼앗았다고 했는데 그 부분 진술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빈 지갑과 핸드백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피의자는 당초 땅에 묻었다고 했다가 막상 그 장소에 가서 파보니까 아무것도 안 나왔단 말이죠. 그래서 추궁하니까 이번에는 바다에 던졌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넷째, 여자의 사체를 유기한 장소 역시 오락가락했거든요. 결국 사체를 찾아내서 국과수에서 부검을 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체는 바닷가 갈대밭에 묻혀 있는 것을 예민한 코로 시체의 냄새를 맡도록 훈련받은 수색견의 도움을 받아 6개월 만에 겨우 발견한 것이거든요. 전에 몇 차례 수색을 했을 때 지나친 곳이었지요.」
「죄송합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자료인 지문을 채취하지 못했어요.」
「그거야 범인들이 장갑을 끼고 하면 그렇지요. 또는 헝겊 같은 걸로 여기저기를 닦았겠죠. 그런 흉악범들은 그 정도는 빠꿈이입니다. 잘 알고 계실텐데요.」
「수사 당시 각본을 써놓고 그 각본에 따라서…… 다시 말씀드리면 여자의 손수건에 묻은 체액과 피의자의 DNA검사 결과에 맞춰 피의자의 진술을 짜 맞춘 것이 아닌가요?」
「그럴 리가…… 어떻게 변호사가 그런 황당한 말을 할 수가……」
「DNA 검사가 그렇게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DNA 검사를 못 믿으면 뭘 믿을 수 있겠습니까.」
「DNA 검사를 믿고서 피고인에게 강압적으로 또는 폭압적으로 하여서 조사한 것이 아닌가요?」
「그런 일 없습니다. 절대로 없습니다.」

그 당시 범인의 자백 외에 경찰이 제시한 유일한 증거는 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정액이 묻은 하얀 손수건이었다. 국과수는 손수건에서 나온 DNA와 피고인의 DNA를 비교 분석해서 일치한다고 했다.

그 당시 유흥준 경정이 사건 수사를 담당하면서 피의자신문조서를 직접 작성하였는데 그가 증인으로 나왔다. 그러니까 김중권 증인이 피의자에게 질문하고 피의자가 답변하면 그걸 유홍준 경정이 조서에 기재했던 것이다. (이 사건 당시에는 경장 계급이었다.)
「지금 인천 부평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있지요.」
「세월이 무척 빠릅니다. 정년이 3년 남았습니다.」
「증인은 피고인을 기억하고 있지요? 그가 그때 제대로 자백을 했는가요?」
「피고인이 그때 너무 자연스럽게 자백을 했는데 무엇 때문에 지금에 와서 부인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유일한 물증은 정액을 닦고 버린 손수건 하나뿐이었는데 국과수 조사 결과 DNA가 일치했습니다. 그래서 피의자가 범인이 틀림없구나 하는 확신을 가지고 수사에 임하게 됐습니다. 피고인은 진범이 틀림없습니다. DNA가 말해주고 있지요.」
「그러니까 이 사건에서는 DNA가 있으니까 증거가 충분했다는 말인가요?」
「그렇지요. DNA검사 결과 일치한다고 나오지 않았습니까.」
「DNA 검사를 그렇게 확실할 수 있을까요? 제가 알기로는 보통 일상생활에서도 우리 몸에는 남의 DNA가 묻을 수 있다고 하던데요. 다시 말하면 지하철을 탄다던가 남이 앉았던 의자에 앉으면서도 얼마든지 DNA 접촉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서로 부딪치고 엉켰을 경우에도 DNA가 남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 사건의 경우에는 피의자의 정액에서 나온 DNA이니까 그 경우와는 다르다고 해야겠지요.」
「그렇다면 말입니다…… DNA가 유일한 증거인데 그게 그렇게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까?」
「국과수 결과는 믿을 수밖에 없지요.」
「증인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알고 계시겠지요. 그 사건은 나중에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만. 그 당시 국과수는 사건 현장에서 채취한 정액을 분석하면서 B형으로 잘못 추정했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인데 그 때문에 그 당시 수사가 혼선을 빚었고 그 결과 진범을 놓치게 됩니다.
국과수가 의도적으로 그랬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런 터무니없는 과실도 있고 실수도 하지 않겠습니까?」
「국과수는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최고의 기관입니다.」
「이 사건의 경우 DNA 말고는 이를 보강하는 정황 증거나 간접 증거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뭔가 간과한 것이 아닌가요?
살인의 과정을 역추적하면 스토리텔링이 될 것이고 거기에 뭔가 짚이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증인은 오랜 수사 경험상 직감이나 직관이 있었을 텐데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 당시 수사에 임하는 피의자의 연약하고 애처로운 모습을 보았다면 말이죠.」
「수사에서 감상주의는 금물입니다. 냉철하거나 냉혹해야……」
「과학적 근거는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그것만이 유일무이하다고 할 수 있나요?」
「이 사건에서 DNA는 정말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오랫동안 피의자를 대면해서 수사하다 보면 어떤 피치 못할 육감이 떠오를 텐데요. 그거 오랜 수사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거 아닌가요.」
「저는 그 영화에 나오는 박두만 형사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직감인지 직관인지 믿지 않습니다. 그거 악마라고 할 수 있어요. 온갖 감정, 상념, 기억, 편견, 고정관념, 자기 기만, 자의식, 분노, 망상, 위선 등이 범벅이 되어 뒤섞여 있습니다.
그런 게 무의식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겁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절대로 믿어서는 안됩니다. 저는 오직 과학적 자료를 믿습니다.」
「그렇단 말이죠……」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 수 있어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연쇄 살인범이나 사이코패스도 인상을 보면 아주 연약하고 애처롭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형사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순한 양처럼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증인은 정의감이 투철한 경찰로서 그 열성적인 태도는 칭찬받아야만 마땅하겠지요. 그러나 증인은 피의자가 범인이 틀림없다는 확신에 사로잡혀서 피의자가 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걷어 차버린 것이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진술할 때 피의자의 얼굴과 눈을 살펴보았지요. 안면은 창백했고 눈의 초점이 몇 번씩이나 바뀌어 눈이 마치 헤엄이라도 치는 것처럼 흔들려서 안정되지가 않았습니다.
입술이 마르는지 자꾸 혀를 내밀어 입술을 닦았고 손끝이 가늘게 떨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은 피의자들이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그 반대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요? 자신이 한없이 억울하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생전 처음 경찰서에 불려와 낯선 환경에서 장시간 조사를 받으니까 위축되지 않겠습니까. 죄 없이 잡혀 온 피의자는 혹독한 조사를 받으면서 충격을 받고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다는 게…… 그게 수사학 교과서에도 나오는 정립된 이론 아닌가요.」
「아닙니다. 아니지요. 그러고 나서 눈물을 흘렸지요. 아! 남자의 눈물은 진실한 것입니다. 여자의 눈물과는 다르지요.」
「피의자는 당시 진술이 논리정연하지 않고 일관성이 없었지요. 그건 자신이 실제 안 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요?
증인은 어떻게 해서든지 DNA에 맞춘 자백을 받아내려고 한 것이 아닌가요? 어떤 시나리오를 만든 겁니다. 그 과정에서 온갖 무리수가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무죄추정이라는 대원칙을 걷어차 버린 것이죠.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언도 있습니다만 이 법언은 수사 과정에서도 적용되어야 할 텐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건 순수한 이론에 불과한 것입니다. 수사는 이론이 아니고 현실이란 말입니다. 무죄추정이 아니라 도저히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흉악범을 어서 빨리 잡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형사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범인을 무조건 잡아야 한다.’
그 시절 형사들의 굳은 신념이었습니다.
제가 오히려 묻고 싶습니다. 피해자의 인권은 어떻게 보호해야 하지요? 왜 범죄자들의 인권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또한 국민들의 법감정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범인을 빨리 잡으라는 국민들의 성화를 어떻게 견뎌낼 수 있나요?
우리는 흉악한 범죄자를 증오하고 분노합니다.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죄송한 마음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진범을 잡는게 중요합니다. 기회를 놓치면 안되겠지요.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입니다. 중대한 사건일수록 수사가 지체되면 증거 자료가 사라지기 쉽습니다. 그러면 수사관들의 열의가 급속히 식어버리죠.」
「수사관들의 어쩔 수 없는 변명으로밖에 볼 수 없는데요.」
「고문은 유사 이래 오랫동안 적법한 수사 방법이었습니다. 수천년 동안이나 말입니다. 지금은 강압 수사라고 합니다만 그게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수사관들도 인간이고 인간에게는 어떤 한계가 있는 겁니다. 제가 수사했지만 고문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증인은 ‘거짓 자백’을 ‘슬픈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을 아시나요? 슬픈 거짓말을 하기로 마음먹은 피의자는 자신이 알게 된 사건의 일부 내용에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범인인 척 연기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실제 범행을 저지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술이 자꾸 어긋나는 것이지요. 그때는 수사관이 나서서 힌트를 주고 암시를 주면서 ‘이렇지 않은가?’, ‘그때 그랬었지’ 추임새를 집어넣는 것이 아닌가요?
노련한 수사관인 증인은 피의자가 진실을 말하는지 어떤지를 분간할 줄 아는 충분한 능력이 있을 텐데요. 수사관은 진실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대신 이미 만들어놓은 시나리오에 피의자가 동의하도록 온갖 수단을 쓰는 거 아닌가요? 피의자에게 이미 범죄를 저질렀지만 지금 혼란스러워서 기억을 하지 못하는데 자백하는 것이야 말로 최선의 선택이라고 설득했겠지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피의자는 그때 상상력까지 발휘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주 순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최대한 인간적 대우를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형사로서 실체적 진실을 알고 싶은 거지 피의자가 소설을 작문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고한 사람이라면 하지도 않은 사건의 죄를 인정하는 자백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요. 더욱이 무고한 사람이 재판에서 유죄가 되는 경우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단 말이지요. 증인의 생각은 어떤가요?」
「글쎄 말입니다. 저도 자신 있게 말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피의자가 자백을 하고 나서 기뻐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안도감을 느낀 것이지요.
다시 말씀드리면 자백할 기회를 얻어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된 것에 대하여 마음 편안하게 생각한 것이지요.」
「사람들은 고문이 없는 한 무고한 사람이 거짓자백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요. 그리고 고문당하지 않고 자백했다면 당연히 그 사람이 범인일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신체적인 위해를 가하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였을 때 더 쉽게 거짓자백을 하는 게 아닌가요?」
「그 당시 피의자는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에 있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건 증인의 생각에 불과하겠지요. 물론 증인이 허위자백에 빠뜨리려는 악의로 가득 찬 형사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증인은 증거에 충실하려고 했고 어떻게 해서든지 피의자를 성실한 인간으로 갱생시키고 싶다는 열의에 가득 차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형사 생활을 하면서 범인을 검거해서 처벌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종종 되새겨봅니다. 어차피 범인이 그 죄를 깨닫고 반성하고 회개하지 않는 한 피해자도 고이 잠들지 못할 것이고 그렇다면 범인이 갱생한다고 볼 수도 없을 것입니다.
저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자백하지 않은 범인이 반성할 리가 없습니다. 자백은 반성과 뉘우침의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자백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에도 뉘우치거든 용서해주라고 했습니다. 자백하고 반성하고 그러면 피해자가 눈을 감을 수 있겠지요.」
「일반적으로 피해자는 범인을 타인과 착각하는 경우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겠지요. 그러나 원래 인간의 기억은 틀리기 쉽고 바뀌기 쉬운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으로 알 수 있지만 기억이건 망각이건 어느 것도 믿을 바가 못 됩니다.
특히 피해자는 공포 때문에 또는 범인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기억 때문에 범인을 침착하게 바라보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도망갈 수 있는 길이나 자신의 안전 확보와 관련된 물건에 주의를 두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요.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에는 밤이었고 피해자는 차에서 끌려나와 순간적으로 뒤통수를 맞고 기절했기 때문에 범인을 기억하기가 곤란하지 않았을까요?」
「그건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바닷가 여기저기를 뒤진 끝에 6개월 만에 시체를 찾았는데 어떻게 목을 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나요?」
「국과수는 여자의 목뼈가 압박으로 휘어졌고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자가 소리를 지르니까 실수로 목을 조른 것인가요? 또는 끝나고 나서 조른 것인가요? 아니면 처음부터 목을 졸라서 죽은 후 시간을 한 것인가요?」
「그건 알 수 없었습니다.」
「피의자에게 그 부분 진술을 받지 않았는가요?」
「그 부분은 피의자가 명백하게 진술하지 않고…… 질문을 하니까 얼버무린 것으로 기억합니다.」
「30년 간 수사를 하셨는데 과연 진실이 존재하던가요? 형사소송에서는 흔히 실체적 진실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진실에 이르는 길은 엄정하고 험하겠지요. 하지만 누구는 반쪽의 진실은 허위보다 무섭다고 했습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아니기도 하다고요? 그렇다면 증인은 이 사건의 온전한 진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변호인이 이미 알고 있잖아요. 나도 그만큼만 알고 있지요. 시험하지 마세요. 자신이 판단하지 않고 남에게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지요. 직무유기란 말입니다.」
「변호인으로서 정당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지요. 때론 진실과 허위의 경계선은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지요. 가끔 절망적인 경우가 있지요. 그건 신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데 30년이 걸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그때 화성에서 일어난 2건의 살인사건에 대해서도 피의자에게 추궁을 한 사실이 있지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때 피고인이 그 2건에 대해서도 자백하지 않았던가요?」
「자백했습니다.」
「그런데 왜 2건은 기소하지 않았는가요?」
「검찰에서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해서…… 그렇게 한 거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은 다른 사건에서는 알리바이가 있어서 피의자의 범행은 불가능했지요. 저는 당초부터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게 없었습니다.」
「증인은 조서에 있는 것 말고 참고가 될 만한 것이 생각나는 게 있습니까?」
「글쎄요…… 없는 것 같습니다…… 세월이 그렇게 흘러 버리지 않았습니까? 제가 20년 만에 저 사람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군요. 죄가 무엇인지? 이미 충분히 처벌을 받은 게 아닐까요.」
「증인은 이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고 나서 그 후 재판의 경과에 대해서 예의주시하고 그 결과를 알아보았는가요.」
「저희 경찰은 일단 사건을 검찰에 넘기면 법률 전문가인 검사가 어련히 알아서 재수사도 하고 그러고 나서 자신이 있어 기소하니까 재판에서 유죄가 되든 무죄가 되든 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때부터는 수사와 공소의 주체인 검찰의 책임인 것입니다.」
작성일:2024-03-28 14:47:21 175.209.21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