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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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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대표 에세이> 최인훈의 「광장」을 어떻게 재평가할 것인가

닉네임
유중원
등록일
2024-01-27 12:05:39
조회수
38
최인훈의 「광장」을 어떻게 재평가할 것인가
작가는 이 소설에 나오는 역사적 배경, 실재, 맥락, 시대적 상황,
시대 정신 등을 온통 오해, 왜곡, 부정, 조작하였다. 소설로는 사이비 소설이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생전에 「廣場」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했다.
1960년이 젊은이들의 해였다면 그것은 또한 최인훈의 해였다. 전후에 발표된 가장 중요한 장편 중의 하나라고 평가된「광장」이 바로 그해 10월에 독자들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이데올로기와 사랑이라는 암초에 걸려 자살하지 않을 수 없었던 한 지식인의 외로운 자기성찰이 그려져 있는「광장」을 그는 그 이후에 네 번이나 고쳐 썼다. 여기에 실린「광장」은 그가 마지막으로 고친 결정판인데, 거기에서 그는 그 어느 때 보다도 겸허한 목소리로 사랑의 위대성을 전해주고 있다. (여기서 결정판은 1961년 초판이 발행된 후 30년이 지나서 문학과지성사에서 재판으로 나온 1989년 판을 말한다.)
「광장」은 지금까지 해방과 전쟁, 분단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하는 주인공 이명준의 깊은 갈망과 고뇌를 그린 작품으로 남북 간 이념, 체제에 대한 냉철하고도 치열한 성찰을 담고 있는 소설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해방 후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살아 있는 지식인의 표상인 崔仁勳의 대표작으로 또한 세대를 거쳐 거듭 읽히며 사랑받고 있는 전후 한국 문학의 새 지평을 연 기념비적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이 소설은 문학사상사가 선정한 ‘한국 명작소설 100선’에서 1위로 꼽혔고 (물론 명작소설 선정을 누가 했고 선정의 근거는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대학 국문과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가장 먼저 숙독해야 할 필독서로 꼽혔고, 내가 파악한 바로는 무려 200편이 넘는 논문 등이 발표되었다. 단일 작품으로는 그 유례가 없으며 수많은 학자, 비평가, 문학 이론가들의 분석, 해석과 재해석, 평가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과연 내가 거기에다 새롭게 덧붙일 것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리고 영광스럽게도 고등학교 18종 문학 교과서 중에서 14종에 소단원 형식으로 수록되었다. 그만큼 권위를 인정받고 정전으로까지 인정된다. 대학 수학능력시험에서 무려 세 차례 (2003년 / 2010년 / 2018년)나 출제되었다. 지금까지 중복 출제된 경우는 두 번 있었지만 (염상섭의 ‘삼대’와 이문구의 ‘관촌수필’) 세 번이나 출제된 것은 유일하다. 고등학생들은 이 소설을 역사 서술이나 기록과 동일시 하여 그 소설의 내용을 진실한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한다.
내가 심층 면접했던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현재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고등학교 시절 이 소설을 읽고 그 내용을 죽어라 암기하여 수능 시험에 대비했다고 한다. 그는 소설에 나오는 모든 (가짜) 사실을 역사적인 사실로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한 사정은 대부분의 학생이 똑같다고 한다.
그렇지만 감수성이 극도로 예민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과연 이 소설을 읽고 이해하고 공감하여 우리 국어의 아름다움을, 단어와 문체의 적절성을, 문학작품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일반적으로 문학 장르에서 논의되는 소설의 심층 구조에 있어서 스토리의 전개와 文學性과 深度의 핵심 요소인 인과관계의 연쇄, 시간적 연쇄 혹은 플롯의 연쇄와 거기에 깔려있는 主題, 이념, 사상, 영감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그럴만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욱이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나 교양소설의 범주에 들어갈 수도 없다. (국어 교과서의 편찬자들은 대체 어떤 무슨 관점에서 이 소설을 선정했단 말인가? 묻고 싶다. 막연히 다른 교과서에도 실려 있으니까 아니면 그저 명작이라고 소문났으니까.)

1976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최인훈 전집 초판이 나오면서 그 무렵 소위 문지파들은 서평이나 칼럼, 대담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광장」을 띄우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광장」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어 초장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리고 1996년 드디어 이 소설에 대한 기념비적 비평서인 김욱동 교수의「‘광장’을 읽는 일곱 가지 방법」이 발표되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1996년 7월에 출간되었고 2001년 5월에는 5쇄가 발행되었다.)
이 저서는「광장」이 발표된 지 한 세대가 지나서 나왔기 때문에 그동안의 모든 논의를 집대성한 것이다. 참고문헌을 보면「광장」에 관한 국내 논문 및 저서가 44개이고, 대담 자료가 5개이며, 문학 연구 방법론에 관한 외국 논문 및 저서가 57개이다. 그러므로 고전 그리스 시대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해서 현대의 모든 문학 관련 이론은 물론이고 중요 작가, 문학 비평가, 문학 이론가들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 당시 김 교수는 서강대 영문과 교수로 이미 중진 문학 평론가였는데 짐작건대 그 소설가의 사주를 받았는지 아니면 문지사의 사주를 받았는지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으나 그 소설을 마치 성경책으로 看做했다.)1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는데 論者들은 너무 과잉 해석을 했다. 마치 극단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성경을 해석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에게 성경은 신성하기 때문에 자구 하나라도 허투루 다루거나 비판해서는 안 되었다. 김욱동 역시「광장」은 너무 신성해서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태도였다. 그 저서에는 단 한 줄의 비판도 없다. 이 저서는 후학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 후에 나온 많은 논문들이 그가 해석하고 주장한 담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말할 수 없는 악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모두들 김욱동을 본받아서인지 단 한 줄이라도 비판을 가하지 못한 것이다. 온갖 문학 이론을 원용하면서 상찬 일색이었다.
나는 아무런 저항감 없이「광장」을 끝까지 읽어내려갈 수 없었다. 이 소설은 유머러스한 점도 없고 독특한 분위기도 없다.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듯한 그 무엇도 없다. 이단과 반역을 찬양하는 면도 없다. 이야기 밑바닥에는 뭔지 불가해한 것도 없다. 그러므로 새로운 관점 또는 문학이론에 따른 재해석과 재재해석을 통한 접근법에 열려있는 것도 아니다.
평자에 따라 문학작품을 평가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정통 역사학에서 주장하는 역사 (실증)주의적 관점과 작품 해석에는 철저한 텍스트 분석이 먼저라는 신비평적 관점, 역사의식을 강조한 역사주의적 또는 신역사주의적 관점, 비판적 리얼리즘에 따른 리얼리스트의 관점에서 이 소설을 분석, 해석과 재해석을 시도하였다. 나는 움베르토 에코의 ‘역사적 속박’과 ‘소설적 속박’ 이론을 충실하게 따른다. (2005년 3월 ㈜열린책들에서 발간한 「움베르트 에코의 문학강의」참조했다.)2
김욱동 교수는, 최인훈은 무엇보다도 작품의 플롯을 역사적 사실에 맞도록 고치는 데에 힘을 쏟았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이 위대한 작가 (?)는 이 소설에 나오는 역사적 배경 (특히 6·25 전쟁과 1950년 8월의 낙동강 전선 상황,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상황과 포로들의 북으로의 귀환, 중립국 행 등등), 실재, 맥락, 시대적 상황, 시대 정신 등을 온통 외면, 무관심, 오해, 왜곡, 부정, 조작하였다 (졸저, ‘최인훈의 「광장」 다시 읽기’ 참조 ). 역사소설로서는 사이비 역사소설이다. 이게 소설인지도 의심스럽다.
그는 이 소설을 쓰면서 아주 불성실했다. 역사적 실재를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오직 신문에 난 몇 줄 기사에 의존해서 자의적으로 쓴 것이다 (이는 작가 스스로 밝힌 것이다). 그는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작가의 본분을 망각하고 갖은 억측, 오해,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 독단에 의해 소설을 쓴 것이다. 독자들을 우습게 보고 무시하고 모독한 것이다. [최인훈이 쓴 사이비 소설의 위대한 전통은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서사창작 교수인 김경욱의 장편소설 「나라가 당신 것이니」가 이어받고 있다. 이 소설은 2021년 6월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고 경향신문 2021년 6월 26일 토요일판에 백승찬 기자가 서평을 썼는데 나는 이 소설을 비평하는 글 (독자의 공개 편지, 김경욱 작가의 소설 「나라가 당신 것이니」를 읽고 나서)을 백 기자와 출판사 편집자, 작가에게 이메일로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그 비평문은 문학 계간지 「문학저널」 2021년 겨울호에 실렸고 내 블로그 등에도 올라가 있다.]
「광장」은 그 당시 24세인 초보 작가가 쓴 습작품에 불과하다. 김욱동이 지적한 것처럼 ‘작가 초년생티를 아직 벗지 못했고’, 작가 자신이 자랑스럽게 고백한 것처럼 ‘문학청년의 문학 취미’로 쓴 것이다. 그것도 두 달 만에 썼다. (하진 Hajin의 장편소설 「전쟁 쓰레기 War Trash」는 최인훈의 「광장」처럼 6·25 전쟁의 이데올로기와 전쟁 포로 문제를 다루면서 23권의 참고문헌을 토대로 하여 몇 년에 걸쳐서 썼는데 말이다. 하진은 이들 참고문헌의 서지 사항을 전부 소설의 말미에 적시하였다. 왜 그렇게 서지 사항이 필요했을까.
역사소설은 역사적 실재에 관해서 정확성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움베르토 에코가 강조한 바와 같이 작가에게도 (당해 소설이 리얼리즘 소설이건 장르소설이건 불문하고 소설은 내적 논리에 따른 진실, 인과관계, 실재, 상식, 타당성이 있어야 하므로) 엄밀한 fact check는 필수적이다. 소설은 어쨌거나 眞實하고 진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도처에 작가적 역량이 미숙한 초보 작가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들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과도하게 과대 평가 되었다. 그게 작가에게 약이 되었는지 독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김원우 작가는 「편견 예찬」에서 ‘…… 일본어를 한글보다 능숙하게 읽을 수 있는 연배인 최인훈 작가가 일본 소설 「광장의 고독」에서 그 모티브를 얻은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 착상의 매개물에서 풍기는 냄새를 지우기 위해 ‘광장’의 대응물인 ‘밀실’ 같은 사색의 흔적을, 집필 도중에 저절로 달겨드는 영감과 그에 적극적으로 조응하게 마련인 잡다한 영상적, 어휘적, 반사실적 분별을 용의주도하게 깔아놓았음은 실물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 바대로다. …… 한국 문단사에는 드문 현상으로서의 최모라는 이단자의 대두는 김윤식, 김현의 공저 ‘한국문학사’에서 그를 ‘전후 최대의 작가’라고 지칭한데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 시인의 즉흥적 감수성으로 혼자만 알아보는 이 말 저 말을 어지럽게 늘어놓고 있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적어도 이 난삽한 문장 때문에라도「광장」은 허무맹랑한 6·25 전쟁의 엉성한 부분도거나 작가가 먼저 자화자찬한 난해한 추상화에 그치고 있다.’ 라고 했다.
편견 예찬 (김원우 산문집)은 2020년 5월 시선사에서 출판되었는데 그 해 우수출판콘텐츠로 선정되었다. 내가 알기로는 그는 최인훈 작가와는 깊은 인연이 있어서 수십 차례 만나 대화한 사실이 있고 그 작가가 마지막으로 입원해있던 명지병원에 문병까지 갔었다고 하는데, 오직 (작가적 양심이 살아있는 진정한 소설가이고 비평가인) 그가 최인훈의 소설을 제대로 비평 평가한 것이다.

나는 뒤늦게 왜 ‘최인훈의 「광장」 다시 읽기’를 쓰게 되었는가. 그것도 작가의 사후에 말이다. 1967년 3월 22일 오후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 이수근은 판문점을 통하여 극적으로 탈출해서 남한으로 귀순했다. 그러나 그는 남한 사회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환멸을 느낀 나머지 1969년 1월 27일 콧수염으로 변장하고 위조여권을 만들어 남한을 탈출해서 홍콩으로 갔다. 그는 1월 31일 월남 사이공의 탄손누트 공항에 착륙한 여객기 안에서 그 당시 베트남 주재 이대용 공사 팀에게 붙들려 서울로 송환되었다.
그해 3월 22일 서울형사지방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했고 그가 항소를 포기하자 그해 7월 2일 오전 11시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이수근은 위장 간첩으로 몰려 사형된 지 49년이 지나서 서울지방법원 재심 판결에서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이 아니라는 무죄 판결이 나왔다. 그 재판은 유일한 증거인 자백이 그 당시 중앙정보부의 모진 고문과 폭행 과정에서 나온 것임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조작 사실은 이미 2007년 과거사위가 밝혀냈다.
나는 이수근에 관한 역사소설을 구상하고 집필을 준비하면서 진실 ·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자료, 재심 재판의 판결문 등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있던 중 최인훈의「광장」이 갑자기 떠올랐던 것이다. (「광장」의 이명준과 실제 이수근의 인생행로가 닮았지 않은가. 이수근이야말로 실존한 역사적 인물이고 진짜 고뇌하는 지식인으로 남과 북의 현실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제3국행을 택한 것 아닌가. 하지만 내가 위 책을 집필하면서 이수근에 관한 소설은 한없이 뒤로 미루어졌고 지금까지 손도 못 대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광장」을 처음 읽은 것은 2019년 가을경이고 바로 그 전 해 작가는 이미 작고한 후였다. 하지만 나는 최인훈 작가나 김현 비평가를 살아생전에 만나본 적도 없고 물론 김욱동 교수도 여태 만나본 적이 없으며 그들의 책이나 에세이 등을 이전에는 단 한 편이라도 읽은 사실이 없다.
나는 이 소설이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지 않았고, 수능시험에도 출제되지 않았고, 최고의 명작소설로 추켜세우면서 청소년들의 필독서로 지목되지 않았다면, 이 소설을 과대평가하면서 상찬 일색의 200여 편 에세이, 서평, 비평서, 학술 논문이 발표되지 않았다면, 작가가 대단한 명작소설을 쓴 대가처럼 거만을 떨지 않았다면 구태여 이 비평서를 쓸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그 소설이 1960년대 초반에 출간된 지 60여 년이 지났는데) 우리 문학계, 문지사 편집자들, 국어 교과서 편찬자들, 국문과 교수들, 문학 비평가들, 김욱동 교수, 수많은 국어 교사들, 그 소설을 주제로 하여 학위 논문을 쓴 수많은 대학원생들은 무슨 짓을 자행하였는가? 그들은 60년 동안이나 줄곧 온갖 詭辯을 동원하여 명작소설이라고 추켜세우지 않았는가.

[독자들은 나의 책을 사서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 블로그 (https://blog.naver.com/jungwon4760) 에 400여 쪽 전문을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최인훈 작가가 얼마나 역사적 실재를 온통 오해, 왜곡, 부정, 조작하였는지, 특히 제4장에는 그 소설이 얼마나 어리석은 nonsense인지가 자세히 나와 있다. 오죽했으면 김원우는 최인훈의 소설은 反小說도 아니고 非小說이라고 했다.
작가는 초판이 나온 이래 일곱 번인가 개정판을 출간했는데 도대체 뭘 개정 수정했단 말인가. (누구는 작가가 과감하게 수정을 거듭한 것을 찬양하지 않았던가) 그 무렵에는 6·25 전쟁과 낙동강 전선 전투, 거제도포로수용소와 포로들의 북송, 중립국 행에 관한 증언들과 글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는데 말이다. 그가 쓴 개정판의 서문 역시 무슨 의미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괴발개발이다. 왜, (진정한 작가라면) 작가적 양심에 의해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할 수 없었단 말인가?]


1 그 책의 ‘책머리에’는, ‘……나는 「광장」의 작가 최인훈 선생님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다. 선생님께서는 시중에서는 좀처럼 구하기 어려운 귀중한 자료들을 접할 수 있게 해주셨다. 또한 집필 단계에서 출간 단계에 이르기까지 바쁜 시간을 쪼개어 여러 가지로 귀중한 조언을 주시기도 하였다. 이 자리를 빌려 최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려운 출판 사정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출간을 흔쾌히 허락해주신 문학과지성사 김병익 사장님께 감사드린다. 더욱이 선생님은 ‘최인훈 전집’을 간행한 장본인으로서 「광장」 출판과 관련한 귀중한 정보를 주셨다.’ 라고 썼다. 過恭非禮

2 나는 어떻게 쓰는가. ……무엇보다도 소설을 쓰는데 있어 글을 쓰는 작업은 나중에 한다. 먼저 책들을 읽고, 카드들을 작성하고, 등장인물들의 초상화와 장소의 지도들, 시간적 연쇄의 도식들을 그린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펜이나 컴퓨터로 하는데, 그것은 내가 있는 장소와 시간, 소설적 아이디어의 유형이나 기록하고 싶은 자료의 유형에 따라 달라진다. …… 소설의 구조는 본질적으로 소설적 속박들과 시간적 연쇄(역사적 속박)로 구성된다. 속박은 모든 예술 작업에서 기본적이다. 화가가 템페라보다 유화를, 벽화보다는 화폭을 사용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속박을 선택하는 것과 같다. …… 그렇다고 그런 속박들을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아방가르드 시인이나 음악가, 화가는 다른 속박을 세우지 않는다고 믿지 말기 바란다. 그들도 그렇게 한다. 다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 「전날의 섬」은 일련의 역사적 속박들과 확고한 소설적 속박들을 토대로 하였다. 소설적 속박들을 보자면, 로베르토는 배에 있어야 하고, 거기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섬에 도달하기 위해 수영을 배우려고 헛되이 노력해야 한다. 그동안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하면서 그 시대의 모든 철학을 한 구절 한 구절 고안해 냈다가 나중에 어리석게도 내버려야 했다. …… 「전날의 섬」을 위해서는 물론 남태평양에 내가 이야기하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지리적 장소에 가보았다. 하루의 다양한 시간에 바다와 하늘, 물고기들, 산호들의 색깔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또한 나는 그 당시 배들의 모형과 그림들에 대해 2~3년 동안 작업하였는데, 선실이나 다락방이 얼마나 컸는지, 어떻게 한 선실에서 다른 서닐로 갈 수 있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 「푸코의 진자」에서 속박들 중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등장인물들은 1968년을 체험했어야 하지만 나중에 벨보는 자신의 파일들을 컴퓨터에 쓰기 때문에 ― 컴퓨터는 사건전체에서 형식적인 역할도 한다. 부분적으로는 모험적이고 조합적인 성격이 컴퓨터에서 영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 최종적인 사건들은 필연적으로 1983년에서 1984년 사이에 전개되어야만 하며, 그 이전은 절대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을 갖춘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는 1983년에(아니면 아마도 1982년에) 판매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푸코의 진자」를 위해서는 이야기의 일부 주요 사건이 벌어지는 <기술 공예 박물관>에서 폐관 시간까지 며칠 저녁을 보냈다. 또한 성전 기사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그들 고위직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프랑스의 포레 도리앙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주인공 카소봉이 한밤중에 <박물관>에서 플라스 드 보스제까지, 그리고 에펠탑까지 파리를 가로질러 가는 장면을 묘사하기 위하여 나는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에 휴대용 녹음기를 들고 거리 이름들과 교차로들을 틀리지 않도록 내가 무엇을 보았는가 나 자신에게 이야기하면서 며칠 밤을 보내기도 하였다. ……「장미의 이름」을 위해 나는 내가 방문했던 장소들이나 다른 그림들을 토대로 수백 번이나 미로와 수도원의 설계도들을 그렸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 마지막 장면이 팔레르모의 카푸치노 수도사들의 미라가 된 시체들 사이에서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곳에 여러 번 가보았고, 그 장소와 개별 미라들의 사진들을 많이 수집하였다. …… 만약 내가 어느 소설에서 ‘기차가 모데나 역에 멈추는 동안 그는 재빨리 내려 신문을 샀다’고 써야 한다면, 내가 직접 모데나에 가보지 않았거나, 또는 그곳에서 기차가 충분한 시간 동안 멈추는지, 신문 가판대는 철로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직접 확인해보지 않는다면 그렇게 쓸 수 없을 것이다.
작성일:2024-01-27 12:05:39 175.209.21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