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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제목

<유중원 대표 중편소설> 무진기행, 그 후 (1)

닉네임
유중원
등록일
2024-02-29 13:30:05
조회수
32
무진기행, 그 후


시간은 모든 것을 드러낸다.
― 에라스무스
소설가들의 창작력의 빈약함이여!
그녀는 아름다웠고, 그는 사랑에 빠졌다는 게 고작인가?
― R.W. 에머슨
사랑은 악마이며, 불이며, 천국이며, 지옥이다.
쾌락과 고통, 슬픔과 후회가 거기에 함께 살고 있다.
― 반필드
노인이 되어 참을 수 없는 것은 육체나 정신의 쇠약함이 아니고,
기억의 무게를 견뎌내는 일이다.
― W.S. 몸



1. 1980년 초엽 무렵이었으니까 벌써 30여 년이 훌쩍 지나갔다. 그해 이른 봄에 내려왔으니까 80년 5월보다 두 달 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순천시 도사동 남쪽에서 얼마간 세월을 보냈다.
나는 그때처럼 순천역에서 대대동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몇몇 남자애들은 셔츠를 검은 진바지 밖으로 빼입었고 여자애들은 민망할 만큼 짧은 치마를 입었다. 그 시절에는 칙칙한 검정 교복에 교모를 썼었다. 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스마트 폰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 혼자서 멍한 시선으로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 목포—광양 간 고속국도 밑 다리를 지나면서 대대동의 국가정원 입구 쪽으로 들어섰다. 기억이 선명하지 않다. 한 세대가 훌쩍 지났으니. 나는 어리둥절했다. 나는 몰라보게 변해버린 천지개벽을 한 광경에 아연실색했다.
그때, 대대 마을은 순천만의 시작이며 순천만의 갈대밭과 뻘밭을 만날 수 있는 관문이었다. 이사천과 동천은 이곳에서 서로 뒤엉키면서 검고 넓은 갯벌을 형성하였고 흑두루미와 수많은 철새들 갯벌 물고기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되었다.
늦가을이었다. 계절 탓인지 몰라도 순천으로 내려올 때부터 특별한 순서 없이 옛날 기억들이 감질나게 떠올랐다.
포구에 새벽이 오면 어슬어슬 어둠이 걷혀가도 아직 이슬을 털어내지 않은 채 흔들거리며 서 있는 갈대숲에는 멀리 남쪽 바다에서부터 밀려온 새벽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아있다. 사방이 아직 분간이 안 되는데 여기저기 묘하게 안 어울리는 시나위 가락처럼 물새 소리가 들려온다.

겨울 날씨 포근한 것 괴상쩍더니
새벽 안개 이렇게 몹시 끼었네.
머리 드니 갈 길이 통 안 보이고
눈을 드니 이웃집도 어디 있는지

대대 마을은 그때만 하더라도 정월 보름에 줄다리기를 하였다. 마을을 서편과 동편으로 나누어 볏짚을 배배 꼬아 27가락으로 만들어 엮은 굵은 줄을 당겼는데 그 때문에 마을을 동편과 서편으로 구별해 부른다. 서편은 암줄을, 동편은 수줄을 당겼고 줄을 매고 선소리꾼이 선소리를 하면 줄을 맨 사람들은 따라서 후렴을 하였다.

어얼싸 더리덜렁
어얼싸 더리덜렁

그 시절에는 갈대숲과 뻘밭을 이어주는 곧 무너질 것 같은 낡은 징검다리가 여기저기 있었다. 지금은 말쑥한 인도교로 연결되어 갈대숲과 뻘밭 일대를 돌아다닐 수 있는 둘레길이 잘 닦여 있다.
당숲도 생각난다.
그 시절 마을 주민들은 매년 정월 보름날 이 숲에서 당할머니 신에게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었다. 지금은 당제의 맥이 끊긴 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해 가을이 생각난다.
가을엔 바다의 물고기도 살이 통통 쪄서 훨씬 맛있다. 그때는 인공양식 시설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백 퍼센트 자연산이었다. 어종은 계절마다 조금씩 달랐다. 우럭과 놀래미는 연중 언제든지 잡혔지만 말이다. 하지만 특히 가을에 더 맛있었다. 그건 겨울나기에 대비해서 먹이 활동을 활발히 하여 지방을 많이 축적하였기 때문이다. 풍미가 쫀득쫀득하여 그만이었다.
낙지는 더위가 가시고 바람이 서늘해지는 초가을부터 제대로 맛이 들기 시작해서 늦가을에 절정을 맞는다. 그것들은 늦봄이 산란기로 그때쯤 알에서 깨어나 가을쯤에는 먹을 만한 크기로 몸집이 불어나는 것이다.
낙지 고유의 담백한 감칠맛을 만끽하려면 양념이 거의 없거나 적을수록 좋다. 국내 낙지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남 해안 지역 사람들은 살아있는 낙지를 깨끗이 씻기만 한 다음 그대로 초고추장이나 된장에 찍어 먹는다. 젓가락 따위는 쓰지도 않는다. 한 손으로 낙지 몸통을 잡고 입안으로 빨아들이듯 삼킨다.
어부들은 긴 장대를 들고 바닷물 표면을 후려친다. 얕은 바다, 뻘밭에 들어온 물고기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한 군데로 몰아간 뒤 그물로 포획하는 전통적인 어법이다. 숭어는 그렇게 갯치기로 잡는다. 썰물 때 물이 빠진 갯고랑 양쪽에 그물을 쳐 놓고 배를 타고 다니며 바닷물 표면을 긴 장대로 내려친다.
요새 숭어는 흔한 물고기라 별 대접을 못 받는 편이다. 철에 따라 맛에 차이가 나기 때문에 괄시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참숭어든 가숭어든 제철에는 다른 어느 생선 못지않게 맛이 뛰어나다.
이 고장에서는 눈자위가 노란 참숭어가 겨울이 제철인 것은 다른 지역과 같지만 눈자위가 까만 가숭어는 보리누름때가 아니라 가을에 제철 맛이 난다.
그때는 갯치기로 잡아온 보리 숭어를 구워 먹었다. 기름이 오를 대로 오른 보리 숭어의 등을 따서 물기를 빼 살짝 말린 뒤 숯불에 올리고 소금을 뿌려가며 굽는다. 그 맛이 일품이었다. 그래서 술을 많이 마시게 된다.
순천시는 박람회가 열렸던 정원 지역과 대대 갈대밭을 통틀어 순천만 국가정원이라 명명하고 갈대밭을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이라고 하였다. 국가정원 안에 있는 순천문학관에는 김승옥문학관이 있다. 생태공원 안 순천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동천 지류에는 무지개다리인 무진교가 걸쳐있다.
현재 대대동 일원은 순천만이 생태 관광지로 급속히 부각되면서 2층이나 3층의 콘크리트 상가 건물에는 음식점과 숙박업소가 빼곡히 들어차고 마을 앞 넓은 도로는 주말이면 자동차로 넘쳐난다. 유명한 관광지가 되면서 옛날 생활 정서는 파괴되고 소음과 교통 문제 등으로 마찰을 빚고 있었다.
지금은 21세기 대명천지다.
세월은 물 같이 흐른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으니 어디인들 안 변할 수 있겠는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난폭한 세월이 해치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2. 내가 남들이 말하는 명문 법대를 진즉 졸업하였지만 나이는 어느새 30을 넘어섰고 사법시험은 계속 떨어지고 취직도 할 수 없어서 너무나 한심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녀는 냉정하게 절교를 선언했다. 일곱 번째인가 여덟 번째 떨어진 후였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난 지금 혼자예요. 혼자라구요. 어머니와 싸우는 것도 지쳤다구요.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요? 어머니에게 뭐라고 대꾸하죠? 말 좀 해보세요. 도대체 합격할 수 있는 거예요? 뒤늦게 합격해서 뭘 할 건데요? 그래서 당신과 나의 인생이 무지개처럼 보장되는 거예요?」
내가 겨우 한마디 했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고…….」
나는 그때 무언가 버림받은 것 같은 분위기에서 비참한 처지로 내몰렸다. 진즉 불붙여 놓았던 담배는 까맣게 잊어버렸고 재떨이에서 타들어가다 재만 남았다. 뭐가 뭔지 모르게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목구멍으로 무슨 말이 치밀어올랐다가 내려갔다. 참을 수 없는 갈증이 밀려왔다.
나는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 남쪽으로 무작정 출발하였다. 도망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랑이 깨지고 나서 모든 것을 잃어버렸으니 도망치듯 도시를 떠난 것이다.
나는 그때 지리멸렬했다. 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면 너무 혼란스러워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이후로 어떻게 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은 살과 뼈가 있는 실체가 아닌 흐릿한 환영처럼 느껴졌다. 마음이 어수선하고 그래서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고 마음을 비워버릴 공간이 필요했던가. 누구로부터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았고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어딘가에서? 낯선 곳에 가서 아무도 모르게 죽고 싶기도 했다.
청춘의 꿈은 사라졌고 삶은 권태와 염증으로 가득했으니.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
나는 원대한 꿈이 아니라 절망과 좌절의 심연을 찾아서 남쪽 바다로 향한 것이다.
나는 순천역에서 기차를 내려서 시골 버스를 타고 방죽길을 따라 삼십 리를 더 들어왔다. 바람에 휘청거리는 누런 갈대밭이 끝없이 펼쳐진 염습지와 검은 갯벌, 회색빛 얕은 바다를 한참 지나자 비로소 수평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날 남쪽에는 차가운 봄비가 내리면서 소금기를 머금은 강한 해풍에 풍경이 흔들렸던 것을, 간조 시간이어서 갯벌은 깊은 속살을 드러냈고 갯벌에서 꼼지락거리며 놀던 수천 마리의 짱뚱어 떼가 놀라서 일제히 구멍 속으로 몸을 숨겼던 것을 기억한다.
마을이 거기에 있었다.
지금 돌이켜 기억할 수 있다. 내가 정을 붙이고 일여 년을 살았던 그곳은 세상이 축약된 작은 세계였다. 초등학교와 동사무소, 우체국, 파출소, 농협 지소 등 관공서와 술집과 (추운 겨울날에는 톱밥난로가 활활 타오르고 어부들이 톱밥난로 주위에 둘러서서 불을 쬐던) 다방, 미장원, 당구장, 약방, 사진관, 교회, 횟집이 모여 있었고, 마을 바깥 부둣가에는 고기잡이 어선이 입항할 때마다 부산스러운 간이 어판장, 아주머니들의 생선 좌판들이 줄지어 있었다.

무슨 미련이 남아있었던가? 하지만 나는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눈물을 뿌리면서 그 길을 되돌아서 올라가야 했다. 달리 뾰족한 탈출구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제자리에서 맴도는 지겨운 생활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 대한 복수심 또는 실낱같은 희망이 내 등을 떠밀었기 때문이었을까. 끔찍할 만큼 지루하고 단조롭고 길고도 고독한 시시포스의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밤이면 악몽을 꾸고 그녀가 칼을 들고 덤벼들었다.
나는 혼잣말을 했다. 「너무 늦었어, 너무. 정말 너무 늦은 것일까? 막다른 골목이야. 다시 시작하는 거야. 지금 멈추면 안 되지. 조금만 더…… 조금만. 바뀌겠지…… 바뀔 거야.」
부둣가 해변에는 생선 썩은 냄새와 낡은 어선의 타르 냄새가 뒤섞여 있다. 바닷가에는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엔 잔잔했던 바다가 거칠게 출렁이며 파도가 방파제를 거세게 때렸으므로 방파제와는 계류용 밧줄에 의하여 연결되어 있던 낡은 목선들이 격렬하게 서로 부딪치며 몸부림을 쳤다.
바닷가는 아름답고 쓸쓸하였다.
겨울이 끝날 무렵이면 남쪽 바다는 생명의 몸짓으로 꿈틀거렸다.
저 멀리 검은 뻘밭이 끝나는 해안선에서부터 다시 바다가 열리고 수평선은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경계가 희미해지는 아득한 곳까지 물러 앉아있다. 그때쯤이면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한결 누그러졌다. 겨울 철새들은 벌써 귀향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 역시 신림동 고시원으로 귀환을 서둘렀다.
나는 그날 새벽 2시쯤 깨어서 다시 잠들지 못했다. 막상 올라가자니 마음이 뒤숭숭했던 것이다. 날이 밝아 왔다. 벌써 마을 뒤쪽 해장죽 숲에서 그곳 텃새인 동박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밤새 내려앉았던 밤안개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떠나오던 날 맑은 하늘에 샛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바다는 흰 거품을 일으키며 으르렁거렸다.
내가 천신만고 끝에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을 때는 그 기수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고령 합격자였다. 그리고 사법연수원 시절 뒤늦게 결혼하였지만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도 속으로 곪아서 실패한 결혼이었다.
나는 악성 임질의 후유증 때문인지 자식을 가질 수 없었는데 그게 결혼생활이 삐걱대는 중대한 원인이 되었다. 나는 나를 닮은 못난 자식을 낳지 않은 게 차라리 그게 나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내와 싸우고 나면 늘 그곳을 기억했다.
그곳이 나의 유배지였던가. 그곳에서 나의 삶은 남루했지만 그러나 행복했다. 그때 내 얼굴은 햇볕에 그을렸고 내 육체는 바닷바람에 억세졌다. 나는 그 바닷바람을, 바닷가 마을을, 늙은 어부를 잊을 수가 없다. 그때 굳게 결심하고 올라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다시 생각한다.

3. 그 작가는 1960년대 무렵 순천시 (1949년 8월 巿가 되었다)를 제멋대로 무진읍으로 격하시키면서 그럴듯하게 묘사했다.
누군가 지적한 대로, 무진 (霧津, Mujin)은 지도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공간에 불과할까? 무진은 사람들의 일상성의 배후, 안개에 휩싸인 채 도사리고 있는 음험한 상상의 공간일까? 일상에 빠져듦으로써 상처를 잊으려는 사람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강요하는 이 지난한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있는 괴로운 도시일까?
그러나 작가는 그곳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순천과 순천만에 연해 있는 대대포 앞바다와 그 갯벌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다.

“별 게 없지요. 그러면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건 좀 이상스럽거든요.” “바다가 가까이 있으니 항구로 발전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럴 조건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수심이 얕은 데다가 그런 얕은 바다를 몇백 리나 밖으로 나가야만 비로소 수평선이 보이는 진짜 바다다운 바다가 나오는 곳이니까요.” “그럼 역시 농촌이군요.” “그렇지만 이렇다 할 평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그 오륙만이 되는 인구가 어떻게들 살아가나요?” “그러니까 그럭저럭이란 말이 있는 게 아닙니까!”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기와지붕들도 양철지붕들도 초가지붕들도 6월 하순의 강렬한 햇빛을 받고 모두 은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철공소에서 들리는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잠깐 버스로 달려들었다가 물러났다. 어디선지 분뇨 냄새가 새어들어왔고 병원 앞을 지날 때는 크레졸 냄새가 났고 어느 상점의 스피커에서는 느려빠진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사람들은 처마 밑의 그늘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빨가벗고 기우뚱거리며 그늘 속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읍의 포장된 광장도 거의 텅 비어 있었다. 햇빛만이 눈부시게 그 광장 위에서 꿇고 있었고 그 눈부신 햇살 속에서, 정적 속에서 개 두 마리가 혀를 빼물고 교미를 하고 있었다.
바다가 있는 부근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몇 시간 전에 버스에서 내릴 때보다 거리는 많이 번잡해졌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그들은 책가방이 주체스러운 모양인지 그것을 뱅뱅 돌리기도 하며 어깨 너머로 넘겨 들기도 하며 두 손으로 껴안기도 하며 혀 끝에 침으로써 방울을 만들어서 그것을 입바람으로 훅 불어 날리곤 했다. 학교 선생들과 사무소의 직원들도 달그닥거리는 빈 도시락을 들고 축 늘어져서 지나가고 있었다.

순천은 현재 도저히 작은 도시라고 할 수 없다.
배후지에 광양만권 경제자유 구역과 거대한 광양제철 단지와 여천화학 단지를 거느린 인구 28만의 대도시로 변모하였다. 하지만 도시의 모습과 생활 환경은 완연하게 분리되어 있다. 도심 한가운데 조곡동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과거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는 구시가지이고 오른쪽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와 새로운 상가와 술집, 음식점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 있는 신시가지로 구분된다. 두 곳은 같은 도시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구시가지에서는 밤이 되면 교회의 첨탑에 매달린 빨간 네온으로 장식된 수많은 십자가들이 빛을 발한다. 그러나 신시가지에서는 그것을 조롱이라도 하듯이 화려한 빨간색으로 번쩍거리는 모텔과 유흥업소의 네온 불빛이 밤늦게까지 빛을 내뿜는다.
그래도 그때처럼 60년대 분위기가 아직도 남아있는 곳은 시장이다. 아랫시장, 윗시장, 중앙시장, 역전시장이 그곳인데 아랫시장과 윗시장은 5일장이고 중앙시장과 역전시장은 상설시장이어서 매일 장이 열린다. 옛 모습이 좀 더 드러나는 장은 아무래도 아랫시장과 윗시장이다. 장터에선 그 소설에서 묘사했듯이 지금도 철공소에서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장터 후미진 뒷골목에 가면 김이 설설 피어오르는 솥단지 옆에 돼지머리 국밥집이 있고 그 옆으론 팥죽과 국수를 파는 노점들도 있다.
무진의 모습은 물론 구시가지 쪽이다.


4. 2015년, 늦가을이었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지만 벌써 추운 날들이 찾아왔다. 회색빛이 감도는 짙은 안개가 땅 위를 낮게 기어다니며 관목 숲 나무들과 누런 풀잎들을 어루만졌다.
나무 둥치들 사이로 안개가 만들어내는 형상들은 무한정 변화하면서 지칠 줄 모르고 춤을 췄다.
그가 죽은 지 일 년여가 다 돼가는데 그즈음 꿈속에 가끔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꿈속은 안개처럼 몽롱해서 얼굴과 모습이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어떤 날 밤에는 밤새 끔찍한 악몽 때문에 잠을 설쳤다.
처음 바닷가에서 그를 마주친 순간 어떤 섬뜩한, 정체모를 미지의 분위기를 느꼈지만 그걸 내색하지 않고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외면을 하고 지나쳤다.
엄숙함, 고독감, 공포, 경이로움.
(그와 나 사이에서 우리라는 단어는 복잡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우리가 두 번째 스쳐지나갈 때에도 우리 사이에 침묵이 무겁게 짓누르며 목을 조였다. 하지만 한 겨울에서 짧은 봄을 거쳐 긴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면서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다시 돌이켜보면, 우리 둘 다 몹시 외로웠고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말상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가 언젠가 말했었다.
「자네와는 갈수록 말이 통하고 호감을 느끼지. 우리가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걸.」
「전 퀴어는 질색이에요.」
「오해하지 말게나.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글쎄요? 이성애자 남성들이 한다는 브라더와 로맨스를 합친 브로맨스가 가능할까요? 전 너무 신경질적이고 까칠하니까 그것도 아니에요.」
「그렇단 말이지……?」
나는 그와 나눴던 대화들을 회상하면서 낙서를 하는 것처럼 끄적였던 메모와 비망록을 뒤적이고 지나간 사건들과 풍경들을 여전히 생생한 기억의 창고로부터 불러낸다.
밤이 깊어가고 있다.
나는 자신도 모르는 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곳은 무인도처럼 외부와 절연된 고독한 공간이었다. 현실 세계의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서 격리된 장소였던 것이다.
집 근처 공터에는 생강나무가 자랐는데 꽃은 물론이고 잎과 줄기에서도 좋은 향기가 묻어났다. 칡넝쿨은 나무를 칭칭 감고 올라가면서 향기로운 꽃을 피웠다. 칡넝쿨 속에서 구불구불 꿈틀거리며 초록색 뱀이 기어나와 풀섶에 몸을 숨기더니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초가을이면 코스모스들이 한들한들거리며 푸른 하늘과 어울렸고 구절초는 옅은 구름이 하늘 높이 떠 있는 맑은 하늘에 안겨 한껏 느긋한 미소를 짓는다.
그는 채마밭에서 계절마다 남새를 심었다.
그 집은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는 완만하게 경사진 언덕 아래쪽에 바다를 향해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동네로부터 한참이나 외따로 떨어져 있는 허물어져가는 농가 집을 헐값에 매입해서 세심하게 공들여 스스로 집을 수리했다.
마을로부터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숲으로부터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 집에는 주방을 겸한 식당, 거실과 침실이 있다. 헛간을 개조해서 작업실을 만들었다. 그 작업실 뒤쪽 처마 밑에는 벌들이 벌집을 짓고 더듬이질을 하며 안팎을 들락날락 날아다녔다.
전기가 들어왔고 난방 기기나 배관 시설 등은 제대로 작동했지만 상수도는 들어오지 않아 집 앞마당에 있는 우물물을 사용했다.
거실에는 스탠드가 놓여 있는 철제 책상과 의자 외에 가구가 없다. 거실 벽에는 그림이 든 가족 사진이 든 액자는 걸려있지 않다. 텔레비전도 없고 인터넷을 하기 위한 컴퓨터도 없었고 스마트폰도 없다. 그러나 매우 낡았지만 5대의 스피커와 명품 고급 음향 장비가 설치되어 있고 벽에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많은 책들이 가득 쌓여있다. 그는 언젠가 고통을 잊기 위해서 가끔 음악을 진정제로 사용한다고 털어놓은 적 있었다.
그곳은 저장강박증을 가진 사람의 극도로 지저분한 거실이 아니라 깨끗하게 정돈된 창고 같은 곳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을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처럼 편안하게 느끼고 있었다.
작업실에 붙어있는 작은 창고에는 역시 책들, 그림들, 목공예 작품들, 상자들, 무슨 물건들인지조차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질서정연하게 차곡차곡 쌓여 있다. 바다를 그리다가 중단한 풍경화 캔버스가 세워져 있다.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커다란 연장통에는 전동과 수동 드라이버, 전동 드릴, 대패, 톱, 망치, 렌치, 자, 가위, 커터, 펜치, 실리콘과 실리콘건, 접착제 등이 가지런히 들어있다.
그는 허리는 꼿꼿했지만 얼굴은 온통 주름투성이이고 강한 바닷바람에 그을려 까맣게 탔다. 회색 턱수염을 기르고 다녔다. 눈 아래로 축 늘어져있는 두꺼운 눈두덩이 때문에 눈은 반쯤 잠긴 것처럼 보인다. 렌즈가 두툼한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있다. 울퉁불퉁한 손마디와 길고 더러운 손톱에 잔뜩 낀 때가 눈에 들어온다. 그즈음 먼지가 많이 나는 목공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추상화가 아니라 구상화 그림을 그렸다.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습작 유화를. 예비 스케치와 밑그림은 거의 희미한 백지나 다름없었고 처음에는 색을 너무 엷게 칠했다. 마지막 그림은 완성된 이미지를 향해 매우 두꺼운 붓으로 진하고 빨리 마르는 유화 물감을 썼다. 그것은 거듭해서 재빠르게 덧칠을 하기 위해서였다.
왜 그렇게 많이 덧칠을 하였을까? 그것은 그림의 표면에 드러나 있는 빛깔에 현혹된 나머지 그 깊은 속에 감춰져 있는 속살을 볼 수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그랬다.
그는 무엇을 그렸는가? 바다와 하늘을 그렸다. 흰색, 검은색, 파란색, 회색, 때로는 붉은색이었다. 악마와 같은 바다의 에너지가 물결친다. 그림 속에서 폭풍이 울부짖고 파도가 넘실거렸다. 바다가 유혹을 하였다. 그림은 힘이 넘쳐났다.
구상화 그림들에는 대부분 아직까지 제목이 없었다. 그렇다고 ‘무제’라고 제목이 붙은 것도 아니었다. 그림이란 항상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인데 그 이야기는 제목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차피 태워버릴 그림이니까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여러 차례 자화상을 그렸는데 그것은 매번 자신의 눈이었다. 그림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재현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자아의 본질을 스스로 포착하기 위해서는 얼굴 전체보다는 마음의 창인 눈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눈의 묘사가 정확하고 정밀했다. 종이 위에 그려져 있는 것은 단지 눈 하나뿐이었지만 그의 나머지 얼굴은 그림 밖에 그려져 있었다. 눈 하나만 가지고도 그의 얼굴 전체가 보였다. 그는 거울을 보고 스케치한 그림에 스프레이를 해서 건조시켜 놓았다. 그래야만 그림이 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물건을 사랑했다. 고장난 물건을 버리지 않고 고쳐서 썼다. 책상과 의자, 책장, 모니터의 받침대, 주방의 찬장 등을 자신의 신체 사이즈와 공간에 꼭 맞게 만들어 사용했다.
연장을 손에 쥐면 무엇이든지 아주 능숙하게 작업을 했다.
그는 나름대로 집안을 정리하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그만의 생활 리듬에 맞춰 살아가고 있었다. 그동안 누구도 만나지 않았고 어떤 방문객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제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동네 사람들은 그가 원래 대대 마을 출신인 것을 알기 때문에 외지인 취급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외지인에 대한 적대감이 없었고 전혀 이런 일 저런 일 간섭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네 늙은이들은 그를 만나면 경계심 때문인지 길을 비키고 피하면서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는 힘없이 늙어가는 노인일 뿐인데 말이다.

그가 말했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변호사를 했단 말이지? 어떻게? 그렇게 귀하신 몸이 여기까지…… 변호사 생활이 지겨웠던 걸까?
흰 것을 검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화가와 변호사뿐이라고 했고…… 변호사는 전부 지옥에 가 있다고 했으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전 별 볼일 없는 무능한 변호사였어요.」
「스스로 그런 겸손의 말을 할 필요는 없겠지.」
「틀림없어요. 변호사도 사업가에요. 전관예우도 받아야 하고 거물 브로커도 몇 명씩 거느려야 돈을 벌 수 있죠. 그 알량한 변호사 사무실마저 더 이상 유지할 자신이 없으니까 접고 내려온 거죠.
절 우습게 봐도 상관없어요.」
「정의의 사도가 아니고……?」
「그게 아니란 말입니다. 전 무능해요. 오죽했으면 돈 벌기 위해서…… 베스트셀러 쓴다고 했겠어요?」
「뭐…… 변호사가 소설을 쓴다고……?」
「벌써 여름이에요. 그 이야긴 나중에 하죠.」
「이곳 여름은 의외로 후덥지근하다네. 뜨거운 태양이 바닷물까지 데워놓은 것 같다니까. 이게 여기서 내가 밀가루와 소금과 물로 만든 과자라네. 전매 특허품이지. 내놓을 수 있는 거라곤 이것뿐이여.
그리고 쓴 커피도 있고…… 독한 술도…… 만약 피우고 싶다면 그게 얼마든지 있지.」
「전 담배도 안 피워요. 대마초 말고 더 독한 것은 안 해봤어요?」
「부산 시절에 몇 번인가 해봤지. 스스로 끊었다네. 부작용이 있었거든. 이건 별거 아니니까 계속하는 거지.」
「별거 아니란……?」
「마약 중독자들은 처음 할 때는 마약을 하더라도 끊을 때는 끊을 수 있다고 자신한단 말이야. 그러고 나서 약물 중독자들은 죽어도 다시는 안 하기로 그런 다짐을 한다네. 하지만 결국 마음이 약해지고 예전 습관으로 돌아가고 말지. 자기 최면을 걸어도 소용없어.
유혹이 워낙 강하거든. 고백하건대…… 지독한 중독자들은 어찌나 교활한지 그걸 오랫동안 숨길 수 있다네.」
과자 하나를 집어 맛을 보았더니 약간 짜면서도 너무 부드러워서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침묵이 흘렀다. 나는 창밖으로 바다와 섬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검은 커피 가루에 끓는 물을 붓자 블랙 커피의 진한 향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방 안에 가득 퍼졌다. 우리는 맥주 컵처럼 큰 잔에 든 뜨거운 커피를 식혀가며 조금씩 핥듯이 마셨다.
「자네에게 내가 살아온 험한 이야기를 내 입을 통해 그대로 전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들 만큼 들었으니까…… 팔십이 되었다니까.
내 얼굴에 새겨진 작은 주름들이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네만…… 늙은이의 기억은 믿을 게 못 되지…….
게다가 오랫동안 혼자 살면서 고립된 생활을 한 것이 내 기억력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을 거야. 그래서 더 이상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확실하게 구분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네.
자네는 늙는 것이 끔찍하거나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하나? 인생이 길다고 믿지 말게나. 지금 이 나이가 되면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로 여기고 살아야 한다네.
그러니까 너무 혼란스러워서 더욱더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전혀 분간할 수 없게 되는 거지. 그러나 중증 치매에 걸린 것은 아니니까 안심하라고. 때로는 옛날 기억들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기도 하지. 어느 순간 수십 년 된 일이 고스란히 살아나서 몸서리를 칠 수도 있는 거야.
다시 말하지만…… 그렇다네.
인간의 기억은 누구나 점점 희미해지지. 그래서 절대로 못 잊을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내기도 한다네. 시간이 갈수록 더 잊어버린다네. 하나둘씩 기억을 잊어버리게 되는데 그건 알츠하이머 때문이 아니라 노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인 거지.
우리가 잊어버리는 것은 늙고 죽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야. 잊혀지지 않는 것도 있다네. 내가 무얼 잊어버렸다면 그건 기억할 만한 가치가 전혀 없기 때문일 수도 있어.
내가 여기에 내려온 지가 벌써 십오 년이 지났지. 귀소 본능이라고 할까. 고향이라고 찾아와서 그대로 주저앉은 거지.
내가 여길 내려올 때는 아주, 아주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하고 싶어서였네. 바로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는 것 말일세.
그러나…… 어쩔 수 없었네. 여기를 떠나고자 하는 욕망도 완전히 사그라져 버렸다네. 나에겐 도대체 욕망이란 것이 없지.
여길 떠나고자 하는 욕망이건 새로운 삶에 대한 욕망이건 아무것도 없어. 나는 종마를 거세해 성욕을 없애버리듯이 나의 가슴 속에서 욕망을 제거해버렸지.
아무런 욕망이 없는데 무슨 이야기가 가능할까?
죽는 날까지 여기 남아있을 거야. 나는 이 세상이건 저 세상이건 간에 반드시 떠나야만 하는 그런 상황이 닥치기 전에는 떠나지 않을 걸세. 나는 여기서 무슨 비망록이나 일기 같은 걸 끄적이지는 않는다네. 모든 걸 망각하기를 바라거든.
나는 지금 자신을 잊는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지.
나는 문학 이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개인의 삶이란 게 얼마나 하찮고 비루한데 그런 걸 굳이 글로 쓸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 흔해 빠진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가 일단 책으로 인쇄되어 나오면 그건 굉장한 것으로 둔갑을 하더군.
나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 거네. 오직 불에 타고 남은 재만 남길 거라네.」
「불은……? 불이란 훌륭한 정화제이긴 하죠.
하지만 기억에 대해서는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망각은 무의식의 세계이면서 기억의 저장 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문을 열고 뛰쳐나올 겁니다.」
그가 대마초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가 머리를 꼿꼿하게 세우더니 인생 경험이 많은 연장자로서 조금은 경멸에 찬 표정으로 훨씬 연하인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때 그렇게 느꼈다.
「우린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 거야. 안 그런가? 첫째는 이쪽이 고향이고 남쪽 포구와 많은 연고가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둘 다 서울에서 인생에 실패하여 이혼하였고 귀소 본능에 따라 여기로 내려온 거야. 한편 돌이켜 생각하면 우리가 인생에서 실패했다고 단정을 할 수도 없겠지…… 누구인들 별다른 인생을 살았겠는가, 셋째는 우리 둘 다 거추장스러운 자식이 없지 않은가? 그 문제에 대해선 구구한 사연이 있겠지만…… 넷째는 여기로 내려올 때 내 나이와 자네 나이가 육십 대 중반으로 비슷했어, 그리고 자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뒤늦게 무명작가로 소설을 썼던 것, 나 역시 뒤늦게나마 무슨 소설이니 시를 쓰려고 아등바등했다가 도저히 못할 짓이라고 생각해서 결국 포기한 점 등이 말일세.
나는 일찍부터 작가가 되려고 생각했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게 여의치 않았다네.
또 하나가 있군. 이제 보니 자네도 술 꽤나 마시더군. 그러니 젊은 시절에는 두주불사하였겠지. 그래서인지 자넬 만나면 낯설지 않고 편안함을 느낀다네.
누구든지 내 집에 찾아오면 방해받았다는 느낌 또는 침입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네. 그 누구도 반갑지 않았어. 그런데 어쩐 일인지 자네만큼은 예외가 되었네. 자네와는 벌써 여러 번 만난 사이가 되었으니까 어쩔 수가 없었지.」
「엄청나게 인심 쓰셨네요. 그런데 왜? 우리 둘 다 그 지긋지긋한 사랑에 실패해서 고배를 들었다는 공통점은 빼놓았나요?
사랑의 상처가 아물었을까요? 어쨌거나 흉터는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고맙단 말씀은 드릴 수가…… 우리가 술을 잘 마신다는 게 공통점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런데 말일세…… 독한 술도 좋은 점이 있다네. 내가 말하는 독주란 사십 도를 넘는 빼갈이나 보드카를 말하는 걸세.
독주는 혀에서는 날카롭지만 목에서는 부드럽고 뱃속에 들어가서는 따뜻하게 덥혀주지. 그런데 독주 속에 들어있는 특이한 화학 성분이 있는데 그게 머리털이 빠지지 않도록 작용을 한다고 하더구먼.
그래서인지 자네나 나나 머리는 하얘도 대머리는 아닐세. 그러니까 알코올 중독자들 중에는 대머리가 없는 거야.
이왕지사 말이 나왔으니…… 나는 독주가 장점이 많다고 생각하지. 그걸 마시면 기분이 하늘 높이 올라가면서 생각을 더욱 맑게 해주거든. 슬픔이나 고통을 줄여 주기도 하고. 또 하나 장점은 그걸 마시면 빨리 취하게 되지. 더 많이 마시면 만취할 수 있다는 거지.
만취 말일세…… 만취…… 취하는 거야. 그러면 마침내 울게 되지. 혼자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나의 경우는 그렇다네.」
「그렇군요…… 불쌍한 무단 침입자인 저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술에 대한 찬사는 저도 동감입니다. 이의가 있을 수 없지요. 우린 아슬아슬하게 알코올중독 신세는 면했지만 알코올 의존증인 게 틀림없지요. 그래도 어떤 경우에도 고래고래 악을 쓰면서 술주정은 안 하지요. 길바닥에 마구 오줌을 갈기지도 않고.
그런데 우린 똑같이 인생에서 실패했던 거 아닌가요? 얼마나 더 많은 좌절과 방황을 겪어야만 될까요? 실패가 아닐 수도 있다고요? 왜 그러세요? 그건 치사한 자기 기만이 아닐까요?
또 있어요. 우린 독실한 무신론자이거나 불가지론자 아닌가요? 저의 경우에는 틀림없어요. 좋습니다. 넘어갑시다.
논쟁을 할 만큼 자신이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인생 선배이고 고향 선배이고 형님인 거죠. 한 가지는 아니겠네요. 저는 바닷가 절벽으로 갔을 때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는 거죠.」
「자살 충동이라…… 난들? 카뮈는 자살이야말로 단 하나의 진실한 문제라고 단언했어. 인간 조건에서 아주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 자살을 철학적인 문제로 본 거지…….
이곳 생활이 항상 지루하고 기다리기만한 것은 아니었어. 자유가 지천으로 널려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는 자유롭게 살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 있겠지요. 하지만 진정한 자유란 것이 무엇인지 누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법정에서 벗어나고…… 소송에서 벗어나고…… 아내한테서 벗어나고…… 서울에서 벗어나면…… 그러면 제가 진정한 자유란 것을 찾을 수 있을까요?」
「왜? 자유는 스스로 찾는 거야. 자유야말로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지. 누가 공짜로 던져주는 게 아니란 말일세. 거기에서 불거져 나오는 모든 문제점들을 반신반의하며 생각해보게나. 그런 하찮은 일들이 심각한 이야기의 소재가 될 만큼 기이한 것들일까?
나에게 지금 가장 위험한 것은 깜박 잠드는 일이라네.
내가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며칠째 잠을 자지 못하다가도 수면제를 한 움큼 먹고 한 번 잠이 들면 죽음처럼 깊은 잠에 빠져든다네.
그 수면제는 진짜 수면제이니까 햇빛과 저온의 공기, 해풍에 섞여 있는 소금기를 합성한 말도 안 되는 수면제와는 다르지.
그런데 잠이 든 상태로 계속 시간이 흘러 끝내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면 결국 죽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지. 아프리카에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풍토병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내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하든가 그건 자네 마음이라네.」
「모든 이야기에는 보이지 않는 장면과 입 밖에 내지 않는 침묵이 있다고 하더군요. 말이건 글이건 표현을 하는 만큼 억압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표현을 하는 부분이 있다면 의도적으로 숨기고 침묵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죠.
언어의 억압적 측면은 도대체 극복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제가 철없는 어린애가 아닌데 말씀을 뺄 건 빼고 더할 건 더하면서 알아듣겠습니다.」
「그러니까…… 아마 1963년 여름이었을 거야. 내가 그때 순천에 내려갔다 와서 만났으니까. 을지로 쪽에서 그들을 만났던 것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겠구만.
그 당시에는 공구상이며 조명가게가 들어서 있는 허름한 단층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거리였지. 거기에 값싸고 푸짐한 식당들이 엄청 많이 있었지. 그때도 을지로3가 큰길에는 해방 이후 서울에서 처음 문을 연 중국집이 있었어.
2층 건물의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다방 커피와 달걀을 띄운 쌍화차를 파는 옛날 다방들이 있었고…… 우리는 토요일 오후 그런 다방에서 처음 만나 서로 인사를 교환했었지. 잠깐 동안 옛날 고향 이야기를 했었고 그러고 나서 자리를 옮겼지.
그런데 말이야…… 을지로3가 뒷골목에는 양대창을 전문으로 하는 술집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길이 나오는데 대부분 60년대 이전에 문을 열었지. 그 시절 고기 맛이 그만이었지.
굶주린 시절이었으니까. 그때는 그 골목에 들어서면 여기저기서 고기 굽는 냄새가 콧구멍을 자극하면서 진동을 하였다네.
그러니까 길가 탁자에 앉아서 암소 등심 등 고기를 구웠지. 그 골목에는 생태탕 맛집, 돼지갈비집, 곱창전문점, 소갈비집도 모여 있었지. 아마 거기 돼지갈비집에서…… 그때는 25도짜리 진로 소주가 있었으니까 그걸 엄청 마신 것 같네.
그 골목 끝에는 골뱅이 골목이 있었다네.
골뱅이무침은 새콤달콤한 맛이 흔한 맛이 아니지. 내가 참 좋아했다네. 통조림 골뱅이 하나를 통째로 따서 마늘과 고춧가루, 대구포, 파채를 함께 넣어서 버무리니까……. 그날 골뱅이 집에서 입가심한다고 하면서 OB맥주를 또 엄청 마셨지.
그때 맥주는 아무나 못 마시는 고급 술이었네.
그날 그 작가는 고등학교 동창생 두 명과 함께 왔었지. 그렇게 기억한다네. 그는 나와는 나이 터울이 나지만 한때 도사동 이웃집에서 함께 자랐으니까 너무나 잘 아는 사이였다네.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그때는 법정동으로는 도사동만 있었는데 대대, 교량, 대룡, 안풍, 인월 등 바닷가 쪽 시골 동네들이 도사동에 포함되어 있었던 거야.
아마 순천만 일대가 공원으로 개발되면서부터일 거야…… 언제부터인가 도사동이 해체되면서 이런 동네들이 행정동으로 승격을 했더군.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전에는 도사동 전체가 농촌이나 다름없는 변두리 촌구석이었지.」
「버스를 타면서 대대 마을이 대대동으로 변한 것을 처음 알았지요. 이렇게 많이 변한 줄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어요.」
「이야기를 계속하겠네. 두 사람은 초면이었지.
기억나는 게 얼굴이 희멀건하고 단정하게 생긴 친구는 그때 법대를 졸업했는데 벌써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입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군. 다른 친구 역시 대학을 이미 졸업한 것 같았는데…… 그들의 관심사는 코앞에 닥친 군입대 문제였어.
학교를 졸업했고…… 그 무렵에는 자신의 인생 목표와 목적이 혼란스럽고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해도 어쨌거나 사회로 막 진출해서 꿈을 펼쳐야 할 시기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군대가 무슨 장벽처럼 가로막고 있었지.
내가 한 수 가르쳐주었지. 그 당시는 어수룩했으니까 돈과 빽만 있으면 얼마든지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특히 말단이긴 했지만 병사계의 빽은 막강했어. 그자가 빠져나오는 모든 수단을 다 알고 있었거든. 돈만 주면 안 되는 게 없었어. 부정이 만연했지.
그 알량한 자리를 이용해서 허겁지겁 사리사욕을 잔뜩 취한 거야. 뇌물에 한 번 맛을 들이면 그럴수록 돈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거라네.
나도 꽤 큰 목돈을 쥐여주고 빠져나왔거든.
그들이 내가 알려준 대로 군대를 갔다 오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네만. 자네의 경우는 어땠나? 이곳 출신이니까 역시 병사계에 손을 썼겠지? 얼마쯤 주었겠지.」
「글쎄요. 기억이 잘 안 나는데요.」
「그날…… 우리는 이런저런 말들이 길어지면서 꽤나 마셨다네. 많이들 마셨지. 물론 나는 그때 회사에 다녔으니까 술값은 내가 부담했다네. 그렇지 않은가? 젊은 사람들이 술에 취하면 당연히 여자 이야기로 넘어가지 않겠는가? 걔들 젊은 청춘이니까 성욕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고. 그때 그 여자 이야기가 나온 거야.
내가 이야기를 꺼낸 취지는…… 얌전한 여자가 어떻게 해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느냐는 것하고…… 여자의 성불감증에 관한 거였어.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도 그건 아니더란 이야기였지.
우리들은 그때 술이 엄청 취할 때까지 즐겁고 화기애애하게 수다를 떨었다네. 그리고 헤어질 때…… 그러니까 2차인가 3차인가 끝나고 헤어지면서 서로 말했네. 조만간 또 뵙죠…… 조만간에요.
하지만 그 이후 다시는 보지 못했다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단편 소설을 처음 발표한 후 뜨니까 영화를 만들면서 몇 번씩이나 고쳐 썼더구만. 그것도 제멋대로 말이야. 진실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지.
나를 유부남이면서 아내 몰래 밀회나 즐기는 바람둥이로 만들어버린 거지. 그 소설은 오로지 유부남과 노처녀 음악 선생의 정사에 초점을 맞추면서 멜로드라마를 만든 거라네.」
작성일:2024-02-29 13:30:05 175.209.21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