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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대표 단편소설> 소총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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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등록일
2024-02-03 12:40:31
조회수
38
소총수들



보병 사병들의 눈을 보아라. 그들이 얼마나 많은 전투를 겪었는지 알 수 있다.― B. 몰딘


1970년대 육군의 의무 복무 기간은 36개월이었다. 우리는 월남에서 귀국하면 남은 복무 기간을 채우기 위해 전방 부대나 예비사단에 재배치 되었다. 그런 후 제대하면 나의 경우 (온갖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8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겨우 대학에 들어갔지만 다른 전우들은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직장을 잡고 자리가 잡히면 결혼을 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어느 날 갑자기 간헐적으로 불쑥불쑥 악몽이 되살아났다. 월남에서 살아서 무사히 귀국하였다는 안도감이 사라졌다. 그 대신 전쟁에 대한 기억들이, 악몽들이 무섭도록 생생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이건 나만의 기억이 아니다. 그 전쟁에 참전했던 우리들 참전 군인 모두의 집단기억이기도 하다. 집단기억에도 오류가 많다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말이다.
그 옛날 백마부대라는 별칭이 붙은 9보병사단의 독수리부대 30연대 1대대는 중대본부와 3개의 보병 소총 중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우리는 3중대 3소대 1분대 소속이었다. 그 비극적 밤에 달랏시 랑비앙산 매복작전에 출동했었다.
분대 유탄수였던 김창수 상병은 지금은 안산에서 화공 약품을 제조해서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경비반장으로 있고, 소총수였던 박충근 상병은 대림동에서 조그마한 중국집을 하고 있고, 역시 소총수였던 음장선 상병은 홍대 앞에서 한동안 문신사를 하였다.
월남 고참이었고 부분대장이었던 송창영 병장은 워낙 술을 좋아했고 그래서 술을 많이 마셨는데 간암 말기로 중앙보훈병원에 입원했다가 작년에 죽었다.
송 병장은 술을 마실 때마다 변명처럼 말했다.
“나한테 술을 그만 마시라고 말하지 마. 적게 마시라고…… 술을 줄이라고도…… 말하지 마. 나는 마셔야 된다니까. 내 몸이 허용하는 정해진 양이 있지. 적당한 음주는 없어. 그 대신 너에게 술을 많이 마시라고 강요하지는 않을 테니까.
술은 만병통치약이 아니야. 술을 마시면 허공에 붕 떠 있으니까 마음이 진정되지. 너는…… 내가 언제 술 마시고 흥청망청 떠드는 거 본 적 있어? 더 많은 걸 누리면서 살고 싶지는 않아. 이 정도면…… 그럭저럭 살아가는 거지.”
분대장이었던 김진흥 하사는 우리 중에서 최연장자였다. 그 당시 장기 복무 하사였고 나중에 상사까지 올라갔다. 그는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제대하고 나서 충주에서 개인택시를 하고 있다.
분대장은 부하 아홉 명이나 열 명 남짓을 데리고 최일선에서 적과 맞닥뜨려 직접 전투하는 말단 지휘관이다. 그는 월남에 도착해서 분대장 훈련을 받을 때 ‘분대장은 진군할 때 반드시 선두에 선다. 분대장은 솔선수범 해야 한다. 그러나 살아서 돌아가기를 바란다면 먼저 적을 발견하고 사살하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그리고 염주선 일병은 딱 한 번 얼굴을 비췄지만 그 후 완전히 연락이 두절되었다. 아마 꼭꼭 숨어버렸는지 아니면 이미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와 친했던 김창수가 언젠가 고향인 태안 안면도까지 찾아갔지만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고향 사람들은 그가 제대한 후 한동안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가 제대하자 시체를 너무 많이 봐서 틀림없이 못된 귀신에 씌었을 것이라고 하면서 망자들의 원혼을 풀어주기 위해 한바탕 씻김굿을 하였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때부터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 만나기를 극도로 꺼려했다. 몇 달 동안이나 몸을 씻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아서 역겨운 냄새가 풍겼다. 맨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어느 날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는 전투가 벌어지면 끝날 때까지 배가 아프다면서 아예 호 속에 양쪽 귀를 뭉친 솜으로 틀어막고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위장병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위생병한테서 받아온 약을 늘 복용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중퇴했는데 난독증 때문에 한글조차 거의 읽지 못했다.
그가 말했었다.
“난 총을 쏠 수 없었어. 사람을 향해서 말이야. 그래서 허공에 대고 쐈어.”
우리는 지금 매월 쥐꼬리만 한 참전 수당을 받고 있고 보훈병원에 가면 반값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게 혜택의 전부다.
군대에서는 한가하기만 하면 어디에서건 끼리끼리 모여 노가리를 푸는 것이 가장 큰 낙이었다. 국방부 시간은 더디게 흘러가니까 앞뒤가 꽉 막혀 막막한 현실을 잠시 잊고 도피하기 위해서였다.
거기다 술을 마시게 되면 술잔이 왕복하면서 잡다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니까 금상첨화였다.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그때처럼 지치지 않고 재탕 삼탕 노가리를 풀었다. 기껏해야 1년에 한두 번 만났지만 이제는 2년이나 3년마다 만나게 되었다. 군대 생활 3년 하고 나면 그 후 30년 동안 군대 얘기를 반복한다는 말이 있듯이. 술을 진탕 마시고 나서 많이 취한 것 같지만 정신이 멀쩡한 상태에서 끝내 아련한 추억인 것처럼 아직도 잊지 못하는 옛날 일을 기억해야 했다. (우리의 레퍼토리에는 달랏의 랑비앙산 죽음의 계곡에서 그날 밤 일어났던 비극적인 매복작전의 전투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절대로 빠지지 않았다.)
우리들은 그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허탈하게 웃거나 그날 밤을 기억하며 가끔 주책없이 눈물을 훔쳤다.
우리들은 부질없이 원망 아닌 원망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저녁 무렵 모이면 뒷골목 음식점에서 생삼겹살을 노릇노릇하게 구워서 우적우적 씹으며 각자 소주 한 병 정도를 마시고 얼큰해지면 그때부터 혀가 풀리면서 한없이 월남 이야기를 반복해서 늘어놓았다. 그리고 어쩐지 그냥 헤어지기 싫고 뭔가 미진해서 서로 끌고 당기면서 반드시 2차를 갔고 다시 월남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전혀 질리지 않았다.
우리는 항상 소대장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군대에는 엄연히 장교와 사병이라는 두 계급이 있다. 그 중간에 부사관이 끼어 있다. (부사관은 계급이 낮은 사병들과 허물없이 지낼 수도 없고 장교들과는 엄연히 계급 차이가 있으니까 친하게 지낼 수도 없다.)
군대의 구조상 장교와 사병은 어떤 경우에도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일 수 없다. 장교는 명령을 내리고 사병은 거기에 복종해야 한다. 철저한 상명하복 구조이다. 소대장은 직업군인이었고 장교였다. 그 작전에서 성공했더라면 큰 전공을 세웠으니까 무공훈장을 타게 되고 진급에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장교는 진급에 목을 매고 있으니까.

우리들은 같은 시기에 육군에서 사병으로 복무했으니까 나이가 엇비슷했지만 어느덧 60대에 접어들었다. 나는 학교에서 정년퇴직했다. 그날, 초겨울의 온화한 날씨였는데 우리는 교통이 편리한 지하철 교대역에서 만나 단골집인 뒷골목으로 쑥 들어가서 있는 작은 음식점으로 갔다. 박충근 상병이 어디서 났는지 그 귀한 술인 발렌타인 17년 짜리를 들고 왔다. 하지만 우리는 어김없이 폭탄주를 만들어 돌렸다. 오랜만에 마시는 독주인 양폭이었다.
우리는 두서없이 중구난방으로 말했다. 그래서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도무지 기억할 수 없다. 우리들 중에는 술만 취하면 혼자 떠드는 강박적인 수다쟁이는 없었지만 말이다.

“살아서 돌아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처음으로 외국을 구경했어. 양담배 피우고 미제 캔맥주 마시고 달러로 월급을 받았다니까. 우리가 양담배를 처음 피운 건 미군 수송선에서였어.”
“우리는 미군 용병에 불과했어.”
“한국에서 보낸 캔 김치 말이야. 정말 시큼시큼했지. 그래도 미군 전투식량에 진저리를 치고 있었는데 진짜 김치맛을 보니까 모두들 환장했지.”
“거기도 군화건 군복이건 사이즈가 잘 맞는 게 없었어. 군대는 사이즈가 두 개밖에 없지. 하나는 너무 작고 다른 하나는 너무 큰 거야. 우리 몸으로 거기다 맞추는 거지.”
“나는 월남에 가기 전에 1사단 11연대 7중대 소속이었고 계급은 일등병이었어. 그때 두 번이나 유격훈련을 받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지독한 기합이었어. 군 생활에 환멸을 느꼈지. 그런데 월남 차출이 내려오자 아무도 안 가는 거야. 돈 쓰고 빽 쓰고.
나는 이판사판으로 지원했어.”
“나는 중대장 당번병이 제일 부럽더라고. 거저 먹기지.”
“그 소리는 지금쯤 그만하라고. 그건 사내자식들이 할 일이 아니라니까.”
“그 당번병 말이야…… 여자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게 혹시 중대장의 애인 아니었을까? 그래서 중대장이 눈여겨보고 골랐을 거야.”
“그 좁은 바닥에서 진즉 소문이 났을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 감쪽같이…… 밤에 일어나는 일인데……”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누가 월남 갔다 왔다고 하면 대뜸 ‘얼마나 벌었느냐’고 묻거든.”
“분대장이 그렇게 다들 콘돔 챙기라고 강조했지만 그러다가 된통 당한 애가 있었지.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요도가 따끔거리고 누런 액체가 사타구니에 여기저기 엉겨있었다니까.
냄새도 고약하고 그걸 치료하느라고 한 달 동안 매일 항생제를 몇 알씩 삼키면서 고생깨나 했지.”
“또 그 소리…… 야! 임마!! 우리 분대에서 그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냐? 성병 걸린 게 발각나면 조기 귀국 당하니까 쉬쉬하면서 혼자서 계속 항생제를 먹은 거지. 그래서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거야. 걔가 귀국해서도 서울대 병원 등 다 다녀도 완치가 안되는 거야. 아주 악성이었던 모양이지. 걔 집이 목포인지 무안인지…… 결국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했어.”
“분대장이 호박씨 까는 거야. 자기는 낙타 눈깔을 두 개씩이나 지갑에 넣고 다녔거든. 아주 신주단지처럼 모셨어.”
“그래도 수진 여자들이 최고였어. 나트랑이나 판랑 쪽은 아니었어. 내가 알기로는 우리 분대는 호모가 없었어.”
“우리가 분대장은 잘 만난 거야. 분대는 분대장이 병력을 장악하고 있거든. 분대장 자리가 만만치 않지.”
“우리 분대장은 인간성이 좋았어.”
“충주에서 개인택시 하면서 잘살고 있지. 자식들도 다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에 자리를 잡았지.”
“잘 살건 못 살건 할 것 없이…… 집집마다 다 두통거리가 한 두 개는 있는 거라고. 그 형님 역시 이만저만이 아니야. 아들놈은 결혼했다가 일 년 만에 이혼했어. 설상가상으로 딸은 노골적으로 결혼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더군. 그게 이상하다고. 사귀는 남자가 있기는 한데 결혼만은 안 한다는 거야.”
“그 딸이 약사라고 하던데. 외국계 제약회사 한국 지사에 근무한다고 했어.”
“분대장님도 별수 없네. 손주 보긴 글렀네.”
“요즘 젊은 사람들…… 이해할 수 없다니까. 그 좋은 회사에 다니면서.”
“그러면 음장선이가 상팔자네. 자식이 없으니까…….”
“그렇게 말한 건 아냐.”
“4분대장은 우리 분대장과는 하사관 학교 동기생이었어. 그리고 함께 월남에 온 거야. 둘이 엄청 친하게 지냈는데 그날 밤 죽은 거지. 분대장이 그의 시체를 안고 엄청 눈물을 흘리더라고.”
“음장선이는 그때부터 그림 솜씨가 있었어. 틈만 나면 종이에다가 뭘 끄적거렸으니까. 네가 분대장 팔목에다가 그려준 용 문신은 아주 그럴듯했거든. 날아갈 것 같았다니까. 그런데 분대장은 귀국하고 나서 그 문신을 지워버렸더라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학교는 중학교밖에 못 나왔는데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그래서 홍대 앞에서 문신사를 했던 거야. 멋있는 말로는 타투이스트라고 하지. 그런데 말이야 그게 불법 의료 행위란 거야. 의사들은 심보가 고약해. 자기들은 안 하면서 난리를 치고…… 양아치들이 가끔 와서 고발한다고 겁을 주면서 돈을 뜯어간다니까.”
박충근 상병이 말했다.
“유 상병이 야전병원으로 후송되었을 때 우리는 이미 죽은 줄로만 알았지. 중대 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돈 거야. 멀쩡했던 사람이 완전히 돌아버렸다고 했으니까 우린 모두 깜짝 놀랐지.
아무리 전쟁터라고 하지만 갑자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겠어?”
“무서운 정신병으로 단단히 미쳤는데 치료약이 없어서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거였어.”
“내가 퇴원해서 귀대했을 때는 모두가 깜짝 놀랐다니까. 그런데 얼마 안 있다가 대대본부로 전출됐고 바로 병장으로 진급했어.
그리고 연장 근무까지 하고. 갑자기 무슨 빽이 생긴 거지?
군대는 빽이야. 빽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지. 안 그래?”
내가 말했다.
“열이 오르면서 정신 착란이 되니까 무조건 미친 것으로 본 거야. 거의 죽을 뻔했었지만 그렇다고 미친 것은 아니었어.
정말 미쳤다면 그렇게 빨리 퇴원해서 귀대까지 할 수 있었겠어.
나도 말단 소총수였는데 빽은 무슨…… 빽이 있었다면 당초에 말단 소대까지 내려갔겠어. 그냥 운이 좋았던 거지.”
“그러지 마…… 군대는 그게 아냐. 누굴 속이려고?”
“중대본부 서무계에 있던 신병식 병장님 알고 있어?”
“나는 중대본부 행정반에 갔다가 딱 한 번 마주친 적이 있어.
인상이 아주 좋았지.”
“그렇겠지. 그 형님이 귀국하면서 대대본부 장교에게 말해준 거야. 그게 별거 아닌 거 같지만…… 크게 신세를 진 거지.”
“그 양반 지금 뭘 하고 있지?”
“젊은 시절에는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작은 회사의 공장장이었어. 그 공장이 아이엠에프 때 자금난으로 도산하자 울며 겨자 먹기로 인수했다고 해. 은행 대출금을 안고 집을 팔아서 마련한 자금으로. 그때부터 온갖 고생을 다 한 거야. 한때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서 자살까지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난 거지. 지금은 완전히 성공해서 엄청난 부자이지.
그게 독실한 신앙인으로 하나님을 열심히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것인지 건실한 품성을 가진 인물이기에 스스로 일어선 것인지 알 수 없다네.
그 양반 하여간에 엄청난 할렐루야야.”
김창수가 말했다.
“그건 하나님이 도운거야. 틀림없다니까. 그걸 의심하면 안 되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면서도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훤히 내려다보고 있단 말이야. 그 양반의 신심을 알고 축복을 내린 거지.”
“네가 교회다닌다고…… 집사인지 권사인지? 독실한 예수쟁이는 역시 다르네. 모든 걸 다짜고짜 하나님의 공적으로 돌리니까.
그런데 말이야 그게 언제적 이야기야? 지금쯤 하나님도 너무 늙어서 눈이 침침할 텐데.”
“지금이야 다 털어놓을 수 있지만…… 아이엠에프 당시는 참으로 어려웠어. 우리 회사는 일본 회사였는데 그게 터지자 제 살길 찾아서 인정사정 없이 바로 철수했어. 우리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됐지. 임직원이 200명이나 됐는데. 그때부터 2년여간 공사판에서 잡일을 하면서 겨우 버틴 거야.
그런데 죽으란 법은 없는 거야. 원청 회사가 가까스로 일어나니까 회사를 통째로 인수해서 살아났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바로 엊그제 같다니까.”
“그래서……”
“나는 말일세…… 사장님이 잘 봐주셔서 경비 반장으로 승진하고 70세까지 정년이 연장되었지.”
“사장님 눈에 들려고 얼마나 잘 비볐을까?”
“그런 무식한 소리 좀 하지마. 밤낮으로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지. 기도를 하면 응답을 하신다고. 하나님은 반드시 들으신다니까.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하나님이 그 알량한 소리를 들으신다고……?”
“하나님을 의심하면 불신자야. 불신자는 지옥불에 떨어진다니까.”
“군대는 개판이야. 너무나 불공평하단 말이야. 특과병과 보병 간에 너무 차이가 난다고. 특과병들은 보병을 우습게 보고 무시했지. 걔들은 진급도 빨라. 걔들 학력 빵빵하고 빽이 든든하지. 온갖 빽을 동원하는 거야. 다시 말하면 특과병은 너무 편하고 보병은 너무 고되면서 전투에 나가 제일 먼저 죽어야 한다고. 군대는 보직이라니까. 대대본부에 가니까 암암리에 50불만 주면 인사계 선임하사가 그냥 1년 연장해 주는 거야. 다 그렇게 했어.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얼마나 편했으면 연장까지 했을까?”
“헌병대나 보안대, MIG 놈들 참 까불었지.”
“오죽했으면 미군들은 보병을 땅개라고 했을까.”
“어느 군대건 말이야…… 월맹 정규군이건 미군이건 한국군이건 월남군이건 할 것 없이 보병이 제일 밑바닥 중노동자야.
보병은 최전선에서 총알받이가 되는 소총수란 말이지. 제일 먼저 죽고 제일 많이 죽어나가는 거야.”
“그렇지…… 그렇다고. 월남에서 죽은 병사들은 거의 전부가 보병들이야.”
“미군 애들 보니까 모진 고통을 잊으려고 대마초를 지독히 피우더라고. 담배처럼 말이야.”
우리들은 그때부터 또다시 울분을 토해냈다. 어쨌거나 평생 동안 풀 수 없었던 울분이었다. 이제 울분을 토할 만큼 얼추 취했다.
“보병은 전선에서 완전히 인간 백정들이야. 어쩔 수 없지. 자기가 먼저 죽는데. 어린 애들이 뭘 안다고 입만 살아가지고. 즈그들만 인간이냐?”
“뭐라 그러더라…… 페미니즘인지 페미니스트인지…… 걔들인가? 그것들이 뭘 안다고…… 철딱서니 없이…… 우리도 그때는 20대 초반이었으니까 팔팔한 청춘이었다고. 그래…… 우리는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면서 피를 흘렸지.”
“뭐? 학살이라고? 전쟁터에 가면 미치게 되어있어. 그게 전쟁이야. 미치지 않으면 자신이 먼저 죽어야 한다고…… 너희들이 전쟁을 알아? 눈 딱 감고 갈겨야 한다니까.”
“너희들이 무거운 배낭을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가시덤불 정글에 들어가 봤어? 아! 혼바산!! 지긋지긋하지.”
“밤의 정적 속에서 천근만근 가슴을 짓누르는 공포와 두려움을 느껴봤냐고? 그 무서운 정적이 뭔지 알아? 어둠이 뭔지 알기나 해?”
“우리가 원해서 갔나? 국방부 명령으로 간 거지. 전쟁은 정치인들이…… 노인네들이…… 일으키고 전쟁터에서 죽어나는 것은 젊은 청춘들이라고. 전쟁은 남자들 몫이야.
너희들이 그걸 알기나 해? 우리가 일으킨 게 아니란 말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그만 징징거리라고.”
김창수가 그만 눈물을 흘렸다.
음장선이 말했다. “왜들 그래? 지나간 일이야. 새삼스럽게. 우리도 늙었어. 나잇값을 하자고.”
“박승춘 일병은 월남에 와서 첫 번째 전투에서 재수 없이 당한 거야. 그날 밤 제일 재수가 없었던 분대는 4분대였어. 다섯 명인가 여섯 명이 죽었으니까 그러면 반 이상이 죽은 거라고.”
“4분대 추 병장 말이야. 그때 내게 말했었거든. 한 달만 무사히 버티면 귀국한다는 거지. 그런데 그날 밤 죽고 말았지. 시체를 보니까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얌전하게 죽었더라고.”
“그때 박 일병에게 물을 주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되지.
어차피 죽는데 물 한 모금 마시면…… 어쩐다구.”
내가 말했다.
“죽은 박 일병은 내 옆 매트리스였어. 밤에 잘 때는 약간 가볍게 코를 좀 골았지.”
“걔가 하모니카를 참 기가 막히게 잘 불었어. 지금도 눈에 선하지. 우리가 몇 번이고 박수를 치면 그제서야 마지못해 일어난 거처럼 일어났어. 반드시 일어나서 서서 불었거든. 그래야만 뱃속에서부터 힘이 솟아오른다는 거야.”
“18번이 ‘베사메무쵸’였어.”
“월남에 올 때 그 트레몰로 하모니카를 따블백 속에 넣어가지고 온 거야.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니는 보물이니까.”
박중근 상병이 말했다.
“우리 식당에 가끔 와서…… 꼭 탕수육과 빼갈 작은 거 한 병을 먹고 가는 단골 손님이 있지. 우연한 기회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대림시장 안에서 세무사를 한다고 그랬어. 우리 또래인데 상주 출신이더라고. 상주고 동창생이라고 하면서 박 일병을 잘 아는 거야. 걔는 학교 다닐 때부터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었어.
어딘가 낭만적이면서 고집이 세고 정의감이 있었다는 거지.
얼마든지 군대를 빠질 수 있었는데 본인이 간다고 고집을 피웠다고 해. 물론 월남도 자원했다는 거지.”
“뜬금없네……”
“죽음의 계곡에 가려고 자원했단 말이야?”
“더 들어보라고…… 상주고 전체에서 일 등을 할 정도로 아주 공부를 잘했는데 재수인지 삼수인지 하다가 입대했다는 거야.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경북고나 경북대 사대부고를 보내지 못한 것을 늘 한탄했다고 해. 그랬으면 운명이 달라졌을 거라고 하면서.
애지중지했던 늦둥이 아들이 월남에 가자마자 죽었으니…… 그때부터 절에 다니면서 열심히 불공을 드렸다고 해. 극락왕생하기를 빌고 빌었겠지.”
“어머니들은 평생 동안 자식을 가슴에 품고 사는 거야. 자신이 죽어서야 내려놓는 거지. 그랬으니 오죽했겠어…….”
“우리는 여태 어머니 생각을 못했어…… 그저 그렇게 세월이 흘러버렸네.”
내가 말했다. “귀국하고 나서…… 어쨌거나 어머니를 찾아봬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게 도리라고…… 하지만 영 발이 떨어지지 않는 거야. 무슨 염치로…… 도저히…… 그래도 나는 무사히 살아서 돌아왔으니까. 항상 마음의 빚을 안고 있는 거지.”
“늪지대를 지날 때 말이야 정말 겁이 나더라고. 아나콘다 같은 큰 뱀이 물속에서 기어 나오면 어쩌나 하고. 내 목을 칭칭 감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지금도 가끔 꿈을 꾼다니까.”
“그날 밤 나는 영락없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 놈들이 감쪽같이 나타났으니까.”
음장선이 말했다.
“그날 밤 나는 총상을 입었어. 오른쪽 허벅지에 맞은 거야. 왜 거기가 맞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인데 거의 기절할 뻔 했지. 위생병이 지혈 압박붕대로 감아주고 나서 102병원으로 후송되었어.
헬리콥터에는 죽은 장병들의 시체와 부상병들이 함께 타고 갔지.
나는 큰 수술을 받아야 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총알이 박히지도 않고 뚫고 지나가면서 상처가 난 거였으니까 그냥 치료가 끝난 거야. 병원은 천국이었지. 병원에 오래 눌러앉을 방법을 궁리했지만 그게 그렇더라고.
그날 밤 다른 분대에서는 중상자도 많이 나왔어. 병원에서 만나니까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내리더라고.”
“그까짓 훈장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날 행군할 때 배낭이 얼마나 무겁던지. 등짝이 휘는거야.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소대장 몰래 배낭의 짐을 줄이려고 버릴 것은 버려야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버릴 게 없었지.”
“개새끼들이 얼마나 빠르게 기습을 했던지…… 지금 돌이켜보면 말이야 수류탄을 들었는데 엄청나게 무겁게 느껴지는 거야.
그때 안전핀을 뺐으면 멀리 던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폭발하면서 난리가 났을 거야.”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우리는 백병전을 한 적은 없었지.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사람을 찔러 죽인다는 거…… 그거 차마 못할 짓이야.”
“그건 정말 살인이야. 사람을 진짜 죽이는 거라니까.”
“차원이 다른거지.”
“그 통에도 방귀가 나오는 거야.”
“전투에서 마구 토하고 오줌 지리고 똥 싸는 사람도 있어.”
“네가 그런 거야?”
“우리 소대는 정말이지 운이 없었어. 왜 하필이면 우리 소대가 뽑힌 거야?”
“그건 소대장이 랑비앙산 매복작전을 자원했을 수도 있었어. 원래 매복작전은 소대가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했거든. 귀국을 앞두고 있으면서 목에 걸 번듯한 훈장이 없어서 초조해했으니까.”
“그 소대장 육사 출신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했지만……”
“그때 진지 위치가 영 아니었어. 그때 더 넓게 분산 배치해야 되는데 밀집 대형이었으니까 피해가 크게 발생한 거야.”
“그놈들은 내내 우리가 이동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는데 기습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그러니까 안개가 짙게 낀 밤중이거나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어슴푸레한 새벽 중에서 새벽을 선택한 거지. 그랬을 거야?”
“왜? 소대장한테 말하지 않았었지? 문제점을 지적했어야지.”
“소대장 성질을 몰라서 그래. 틀림없이 불같이 화를 냈을 거라고. 맨날 하는 소리가 명령 불복종 아니었어.”
“소대장은 나이가 나보다 어렸어. 나는 그때 월남 고참병이었어. 전투 경험이 많았다니까. 월남에서는 군번보다는 월남에 먼저 온 월남 고참이 먼저야.”
내가 말했다.
“소대장은 두 가지 타입이 있어. 가급적 소대원들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 있고 두 번째 타입은 처음부터 군기 잡으려고 마구 덤비는 경우이지. 그러면 소대원과 소대장은 물과 기름처럼 되고 말지.”
“우리 중대장은 중대원들 이름과 계급을 모두 외워서 이름표를 보지 않고서도 중대원을 이름으로 불렀지.”
“장교들은 모두 특권층이야. 우리들에게 상관으로 군림하지.”
“그래서 장교는 싫은 거야.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우리도 인간인데 인격을 무시하고 얼마나 거들먹거리는지.”
언젠가 나의 사수였던 송창영 형이 말했었다.
“나는 지금 많이 좋아졌지만 귀국하고 나서 오랫동안 전쟁의 후유증 때문에 죽을 고생을 했지. 너는 괜찮았어?”
먹고 살기 바쁠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때 일이 엊그제 일처럼 생각나는 거 있지. 항상 마음이 편치 못하고…… 뒤늦게 우울증에 걸려 있지. 나이 탓인지도 모르겠어.
그날 밤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긴 한 거야? 진짜 꿈같은 일이 아니었을까? 과연 실제로 벌어진 일인지 확신이 서지를 않는다니까. 우리가 그날 밤 상황에 맞춰서 이리저리 말하다 보니까 상상을 하거나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니까.”
“소대장은 그때 갈가리 찢겨서 죽었어. 지금 국립묘지에 한 줌의 재가 되어 누워있겠지. 그러니까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자고. 불쌍하지, 뭐.”
“글세? 이런 말을 해서 될지 모르겠지만 결혼은 안 했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누구도 예상을 못 했으니까, 그저 늘 있는 매복작전으로 생각했으니까, 그 엄청난 비극적 작전이 끝나고 난 다음 한참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런 일이 어떻게 우리에게 일어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내내 숨어서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었고 우리가 새벽녘이 되어 방심할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렸다. 우리는 순식간에 대혼란에 빠졌고 지리멸렬했다. 그들은 재빠르게 치고 빠졌으니까 돌격과 백병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그 지독한 양폭과 연이어 마신 맥주에 취해서 혀가 꼬부라지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면서 아마 2차는 생략해야 될 것 같다. 우리는 마지막 푸념을 했다.
우린 중년을 통과하고 있지만 중년은 모호하다. 청년의 싱그러움도 없고 노인의 노회함도 없다. 그래서 중년은 위기의 시절이다.
아주 옛날 옛날에 공자님은 마흔 살을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 불혹, 쉰 살을 하늘의 뜻을 아는 지천명, 예순살을 남의 말을 사려깊게 받아들이는 이순, 칠십세를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종심이라고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쩔수 없이 늙어가고 있다. 늙으면 감정, 성격, 심리, 사고능력 등에 이상이 생긴다. 본능과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쉽게 화내고 분노한다. 매사에 융통성이 없어지고 변화를 거부한다.
나는 아마 우리들의 마지막 모임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우린 꼰대 중 꼰대인거 알고 있어? 그렇다니까…… 그래.”
“나는 밤마다 자주 오줌을 싸지. 소변을 봐도 시원치가 않아.”
“불면증이지. 그것도 아주 심한…… 도대체 잠이 오지 않는다니까. 당뇨병이야…….”
“늙으면 별 수 없어. 마누라하고는 진즉부터 각방쓰고. 온몸 안 아픈데 없으니까 맨날 보훈병원에 가서 처방받는 거지.”
“부부싸움 안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티격태격은 부부생활의 양념이야.”
“황혼 이혼인가 뭔가…… 그건 안돼. 둘이 함께 망하는 거니까.”
“그놈의 참전용사 연금 조금 더 올려주면 안되나? 그게 큰 도움이 되는데……”
“야! 우리 정신 차리자고!! 속지 말자고!!!
이놈의 세상 노인을 공경하기는커녕 노인들을 표적으로 하는 사기꾼 천지야. 보이스피싱, 주식 투자 사기꾼, 로또 1등 당첨 사기꾼, 보험 사기꾼, 다단계 사기꾼 등등 셀 수도 없어.”
“그놈들…… 다 총으로 쏴 죽여야 한다니까.”
“참으라니까…….”
“말 조심해…….”
“이제…… 우리는 늙었어. 인정해야 된다니까. 그때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산 게…… 그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불행한 일이라고 해야 할까? 그만 잊어버리자고. 우리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이가 됐다네. 죽음이라는 고지를 향해서 진군하고 있지.”
“그놈의 전쟁 이야기 지겹지. 지겹다고.”

그때 이후, 모호한 시간에
죽음의 고통은 되돌아온다.
그리고 나의 섬뜩한 이야기가 말해질 때까지
내 가슴은 불타리라.
작성일:2024-02-03 12:40:31 175.209.21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