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유중원 대표 중편선> 무진기행, 그 후 (上)
 닉네임 : 유중원 변호사  2018-03-30 11:50:17   조회: 279   
무진기행, 그 후





시간은 모든 것을 드러낸다.

― 에라스무스

소설가들의 창작력의 빈약함이여!

그녀는 아름다웠고, 그는 사랑에 빠졌다는 게 고작인가?

― R.W. 에머슨

사랑은 악마이며, 불이며, 천국이며, 지옥이다.

쾌락과 고통, 슬픔과 후회가 거기에 함께 살고 있다.

― 반필드

노인이 되어 참을 수 없는 것은 육체나 정신의 쇠약함이 아니고,

기억의 무게를 견뎌내는 일이다.

― W.S. 몸

참으로 위대한 철학의 문제는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을 괴로워하며 살 값어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을 하는 것,

이것이 철학의 기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 A. 카뮈







1. 1980년 초엽 무렵이었으니까 벌써 30여년이 훌쩍 지나갔다. 이른 봄에 내려갔으니까 80년 5월보다 두 달 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순천시 도사동 남쪽에서 얼마간 세월을 보냈다.

나는 그때처럼 순천역에서 대대동 (大垈洞)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몇몇 남자애들은 셔츠를 검은 진바지 밖으로 빼 입었고 여자애들은 민망할 만큼 짧은 치마를 입었다. 그 시절에는 칙칙한 검정 교복에 교모를 썼었다. 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스마트 폰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 혼자서만 멍한 시선으로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 목포—광양 간 고속국도 밑 다리를 지나면서 대대동의 국가정원 입구 쪽으로 들어섰다. 기억이 선명하지 않다. 한 세대가 훌쩍 지났으니. 나는 어리둥절했다. 나는 몰라보게 변해버린 천지개벽을 한 광경에 아연실색했다.

그때, 대대 마을은 순천만의 시작이며 순천만의 갈대밭과 뻘밭을 만날 수 있는 관문이었다. 이사천 (伊沙川)과 동천 (東川)은 이곳에서 서로 뒤엉키면서 검고 넓은 갯벌을 형성 하였고, 흑두루미와 수많은 철새들, 갯벌 물고기,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되었다.

순천으로 내려올 때부터 특별한 순서 없이 옛날 기억들이 감질나게 떠올랐다.

포구에 새벽이 오면 어슬어슬 어둠이 걷혀가도 아직 이슬을 털어내지 않은 채 흔들거리며 서 있는 갈대숲에는 멀리 남쪽 바다에서부터 밀려 온 새벽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아있다. 사방이 아직 분간이 안 되는데 여기저기 묘하게 안 어울리는 시나위 가락처럼 물새 소리가 들려온다.

대대 마을은 그때만 하더라도 정월 보름에 줄다리기를 하였다. 마을을 서편과 동편으로 나누어 볏짚을 배배 꼬아 27가락으로 만들어 엮은 굵은 줄을 당겼는데 그 때문에 마을을 동편과 서편으로 구별해 부른다. 서편은 암줄을, 동편은 수줄을 당겼고 줄을 메고 선소리꾼이 선소리를 하면 줄을 멘 사람들은 따라서 후렴을 하였다.



어얼싸 더리덜렁

어얼싸 더리덜렁



그 시절에는 갈대숲과 뻘밭을 이어주는 곧 무너질 것 같은 낡은 징검다리가 여기저기 있었다. 지금은 말쑥한 인도교로 연결되어 갈대숲과 뻘밭 일대를 돌아다닐 수 있는 둘레길이 잘 닦여 있다.

당숲도 생각난다.

그 시절 마을 주민들은 매년 정월 보름날 이 숲에서 당할머니 신에게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었다. 지금은 당제의 맥이 끊긴 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해 가을이 생각난다.

가을엔 바다의 물고기도 살이 통통 쪄서 훨씬 맛있다. 그때는 인공양식 시설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백 퍼센트 자연산이었다. 어종은 계절마다 조금씩 달랐다. 우럭과 놀래미는 연중 언제든지 잡혔지만 말이다. 하지만 특히 가을에 더 맛있었다. 그건 겨울나기에 대비해서 먹이 활동을 활발히 하여 지방을 많이 축적하였기 때문이다. 풍미가 쫀득쫀득하여 그만이었다.

낙지는 더위가 가시고 바람이 서늘해지는 초가을부터 제대로 맛이 들기 시작해서 늦가을에 절정을 맞는다. 그것들은 늦봄이 산란기로 그때쯤 알에서 깨어나 가을쯤에는 먹을 만한 크기로 몸집이 불어나는 것이다.

낙지 고유의 담백한 감칠맛을 만끽하려면 양념이 거의 없거나 적을수록 좋다. 국내 낙지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남 해안 지역 사람들은 살아있는 낙지를 깨끗이 씻기만 한 다음 그대로 초고추장이나 된장에 찍어 먹는다. 젓가락 따위는 쓰지도 않는다. 한 손으로 낙지 몸통을 잡고 입안으로 빨아들이듯 삼킨다.

어부들은 긴 장대를 들고 바닷물 표면을 후려친다. 얕은 바다, 뻘밭에 들어온 물고기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한 군데로 몰아간 뒤 그물로 포획하는 전통적인 어법이다. 숭어는 그렇게 갯치기로 잡는다. 썰물 때 물이 빠진 갯고랑 양쪽에 그물을 쳐 놓고 배를 타고 다니며 바닷물 표면을 긴 장대로 내려친다.

요새 숭어는 흔한 물고기라 별 대접을 못 받는 편이다. 철에 따라 맛에 차이가 나기 때문에 괄시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참숭어든 가숭어든 제철에는 다른 어느 생선 못지않게 맛이 뛰어나다.

이 고장에서는 눈자위가 노란 참숭어가 겨울이 제철인 것은 다른 지역과 같지만 눈자위가 까만 가숭어는 보리누름때가 아니라 가을에 제철 맛이 난다.

그때는 갯치기로 잡아온 보리 숭어를 구워 먹었다. 기름이 오를 대로 오른 보리 숭어의 등을 따서 물기를 빼 살짝 말린 뒤 숯불에 올리고 소금을 뿌려가며 굽는다. 그 맛이 일품이었다. 그래서 술을 많이 마시게 된다.

순천시에서는 박람회가 열렸던 정원 지역과 대대 갈대밭을 통틀어 순천만 국가정원이라 명명하고, 갈대밭을 순천만 자연생태 공원이라고 하였다. 국가정원 안에 있는 순천 문학관에는 김승옥 문학관이 있다. 생태공원 안 순천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동천 지류에는 무지개다리인 무진교가 걸쳐있다.

현재 대대동 일원은 순천만이 생태 관광지로 급속히 부각되면서 2층이나 3층의 콘크리트 건물에는 음식점과 숙박업소가 빼곡이 들어차고 마을 앞 넓은 도로는 주말이면 자동차로 넘쳐난다. 유명한 관광지가 되면서 옛날 생활 정서는 파괴되고 소음과 교통문제 등으로 마찰을 빚고 있었다.

지금은 21세기이다.

세월은 물 같이 흐른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으니 어디인들 안 변할 수 있겠는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난폭한 세월이 해치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2. 내가 명문 법대를 진즉 졸업하였지만 나이는 어느새 30을 넘어섰고 사법시험은 계속 떨어지고 취직도 할 수 없어서 너무나 한심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녀는 냉정하게 절교를 선언했다. 일곱 번째인가 여덟 번째 떨어진 후였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난 지금 혼자예요. 혼자라구요. 어머니와 싸우는 것도 지쳤다구요.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요? 어머니에게 뭐라고 대꾸하죠? 말 좀 해보세요. 도대체 합격할 수 있는 거예요? 뒤늦게 합격해서 뭘 할 건데요? 그래서 당신과 나의 인생이 무지개처럼 보장되는 거예요?」

내가 겨우 한마디 했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고.」

나는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 남쪽으로 무작정 출발하였다. 도망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랑이 깨지고 나서 모든 것을 잃어버렸으니 도망치듯 도시를 떠난 것이다.

나는 그때 지리멸렬했다. 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면 너무 혼란스러워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이후로 어떻게 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은 살과 뼈가 있는 실체가 아닌 흐릿한 환영처럼 느껴졌다. 마음이 어수선하고 그래서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고 마음을 비워버릴 공간이 필요했던가. 누구로부터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았고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어딘가에서? 낯선 곳에 가서 아무도 모르게 죽고 싶기도 했다.

청춘의 꿈은 사라졌고 삶은 권태와 염증으로 가득했으니.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나는 원대한 꿈이 아니라 절망과 좌절의 심연을 찾아서 남쪽 바다로 향한 것이다.

나는 순천역에서 기차를 내려서 시골 버스를 타고 방죽길을 따라 삼십리를 더 들어왔다. 바람에 휘청거리는 누런 갈대밭이 끝없이 펼쳐진 염습지와 검은 갯벌, 회색빛 얕은 바다를 한참 지나자 비로소 수평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날 남쪽에는 차가운 봄비가 내리면서 소금기를 머금은 강한 해풍에 풍경이 흔들렸던 것을, 간조 시간이어서 갯벌은 깊은 속살을 드러냈고 갯벌에서 꼼지락거리며 놀던 수천 마리의 짱뚱어 떼가 놀라서 일제히 갯벌 속으로 몸을 숨겼던 것을 기억한다.

마을이 거기에 있었다.

내가 정을 붙이고 1여년을 살았던 그곳은 세상이 축약된 작은 세계였다. 초등학교와 동사무소, 우체국, 파출소, 농협 지소 등 관공서와 술집과 (추운 겨울날에는 톱밥난로가 활활 타오르고 어부들이 톱밥난로 주위에 둘러서서 불을 쬐던) 다방, 미장원, 당구장, 약방, 사진관, 교회, 횟집이 모여 있었고, 마을 바깥 부둣가에는 고기잡이 어선이 입항할 때마다 부산스러운 간이 어판장, 아주머니들의 생선 좌판들이 줄지어 있었다.





3. 그는 1960년대 무렵 순천시를 제멋대로 무진읍으로 격하시키면서 묘사했다.

누군가 지적한 대로, 무진 (霧津)은 지도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공간에 불과할까? 무진은 사람들의 일상성의 배후, 안개에 휩싸인 채 도사리고 있는 음험한 상상의 공간일까? 일상에 빠져듦으로써 상처를 잊으려는 사람들에게 또 다시 상처를 강요하는 이 지난한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있는 괴로운 도시일까?

그러나 작가는 그곳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순천과 순천만에 연해 있는 대대포 앞바다와 그 갯벌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다.



“별 게 없지요. 그러면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건 좀 이상스럽거든요.” “바다가 가까이 있으니 항구로 발전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럴 조건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수심이 얕은데다가 그런 얕은 바다를 몇 백리나 밖으로 나가야만 비로소 수평선이 보이는 진짜 바다다운 바다가 나오는 곳이니까요.” “그럼 역시 농촌이군요.” “그렇지만 이렇다 할 평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그 오륙만이 되는 인구가 어떻게들 살아가나요?” “그러니까 그럭저럭이란 말이 있는 게 아닙니까!”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기와지붕들도 양철지붕들도 초가지붕들도 6월 하순의 강렬한 햇빛을 받고 모두 은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철공소에서 들리는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잠깐 버스로 달려들었다가 물러났다. 어디선지 분뇨 냄새가 새어들어왔고 병원 앞을 지날 때는 크레졸 냄새가 났고 어느 상점의 스피커에서는 느려빠진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사람들은 처마 밑의 그늘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빨가벗고 기우뚱거리며 그늘 속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읍의 포장된 광장도 거의 텅 비어 있었다. 햇빛만이 눈부시게 그 광장 위에서 꿇고 있었고 그 눈부신 햇살 속에서, 정적 속에서 개 두 마리가 혀를 빼물고 교미를 하고 있었다.

바다가 있는 부근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몇 시간 전에 버스에서 내릴 때보다 거리는 많이 번잡해졌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그들은 책가방이 주체스러운 모양인지 그것을 뱅뱅 돌리기도 하며 어깨 너머로 넘겨 들기도 하며 두 손으로 껴안기도 하며 혀 끝에 침으로써 방울을 만들어서 그것을 입바람으로 훅 불어 날리곤 했다. 학교 선생들과 사무소의 직원들도 달그닥 거리는 빈 도시락을 들고 축 늘어져서 지나가고 있었다.



순천은 현재 인구 오륙 만이 그럭저럭 살아가는 소읍이 아니다. 배후지에 광양만권 경제자유 구역과 거대한 광양제철 단지와 여천화학 단지를 거느린 인구 28만의 대도시로 변모하였다. 그러나 도시의 모습과 생활 환경은 완연하게 분리되어 있다. 도심 한 가운데 조곡동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과거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는 구시가이고 오른쪽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와 새로운 상가와 음식점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 있는 신시가지로 구분된다. 두 곳은 같은 도시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전혀 다른 광경을 보여주고 있다.

구시가지에서는 밤이 되면 교회의 첨탑에 매달린 빨간 네온으로 장식된 수많은 십자가들이 빛을 발한다. 그러나 신시가지에서는 그것을 조롱이라도 하듯이 화려한 빨간색으로 번쩍거리는 모텔과 유흥업소의 네온 불빛이 밤늦게까지 빛을 내뿜는다.

그래도 그때처럼 60년대 분위기가 아직도 남아있는 곳은 시장이다. 아랫시장, 윗시장, 중앙시장, 역전시장이 그곳인데 아랫시장과 윗시장은 5일장이고 중앙시장과 역전시장은 상설시장이어서 매일 장이 열린다. 옛 모습이 좀 더 드러나는 장은 아무래도 아랫시장과 윗시장이다. 장터에선 그 소설에서 묘사했듯이 지금도 철공소에서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장터 후미진 뒷골목에 가면 김이 설설 피어오르는 솥단지 옆에 돼지머리 국밥집이 있고 그 옆으론 팥죽과 국수를 파는 노점들도 있다.

무진의 모습은 물론 구시가지 쪽이다.





4. 무슨 미련이 남아있었던가. 그러나 나는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눈물을 뿌리면서 그 길을 되돌아서 올라가야했다. 달리 뾰족한 탈출구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제자리에서 맴도는 지겨운 생활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 대한 복수심 또는 실낱같은 희망이 내 등을 떠밀었기 때문이었을까. 끔찍할 만큼 지루하고 단조롭고 길고도 고독한 시시포스의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밤이면 악몽을 꾸고, 그녀가 칼을 들고 덤벼들었다.

나는 혼잣말을 했다. 「너무 늦었어, 너무. 정말 너무 늦은 것일까? 그러나 막다른 골목이야. 다시 시작하는 거야. 지금 멈추면 안 돼지. 조금만 더, 조금만. 바뀌겠지, 바뀔 거야.」

부둣가 해변에는 생선 썩은 냄새와 낡은 어선의 타르 냄새가 뒤섞여 있다. 바닷가에는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엔 잔잔했던 바다가 거칠게 출렁이며 파도가 방파제를 거세게 때렸으므로 방파제와는 계류용 밧줄에 의하여 연결되어 있던 낡은 목선들이 격렬하게 서로 부딪치며 몸부림을 쳤다.

바닷가는 아름답고 쓸쓸하였다.

겨울이 끝날 무렵이면, 남쪽 바다는 생명의 몸짓으로 꿈틀거렸다.

저 멀리 검은 뻘 밭이 끝나는 해안선에서부터 다시 바다가 열리고, 수평선은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경계가 희미해지는 아득한 곳까지 물러 앉아있다. 그때쯤이면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한결 누그러졌다. 겨울 철새들은 벌써 귀향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 역시 신림동 고시원으로 귀향을 서둘렀다.

나는 그날 새벽 2시쯤 깨어서 다시 잠들지 못했다. 막상 올라가자니 마음이 뒤숭숭했던 것이다. 날이 밝아 왔다. 벌써 마을 뒤쪽 해장죽 숲에서 그곳 텃새인 동박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밤새 내려앉았던 밤안개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떠나오던 날 맑은 하늘에 샛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바다는 흰 거품을 일으키며 으르렁 거렸다.

내가 천신만고 끝에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을 때는 그 기수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고령 합격자였다. 그리고 사법연수원 시절 뒤늦게 결혼하였지만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도 속으로 곪아서 실패한 결혼이었다.

나는 악성 임질의 후유증 때문인지 자식을 가질 수 없었는데 그게 결혼 생활이 삐걱대는 중대한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나를 닮은 못난 자식을 낳지 않은 게 차라리 그게 나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내와 싸우고 나면 늘 그곳을 기억했다.

집집마다 얕은 담벼락에 철 이른 붉은 줄장미가 피어있는 골목길, 아카시아의 짙은 향기, 마을 뒤 쪽 해장죽 숲에서 동박새들의 지저귐, 내가 살았던 넝쿨과 이끼가 낀 돌담 속 폐허 같은 슬레이트 집, 방죽길을 따라 길섶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야생화들, 금창초, 현호색, 개별꽃, 쑥부쟁이, 자운영꽃, 복사꽃, 할미꽃, 개구리 발톱, 잎이 달려있을 때는 꽃이 피지 않고 꽃이 필 때는 잎이 피지 않아서 꽃말이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인 상사화, 그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 어스름한 여름 밤 유령처럼 날아다니던 반딧불이, 바다에서 불어오는 소금기가 밴 찝찔한 바다 바람, 정오가 되면 어김없이 울려 퍼지는 교회의 종소리, 검은 석탄 연기를 내뿜으며 길게 기적소리를 울리고 내달리는 경전선 완행열차, 학교가 파할 무렵이면 재잘거리며 교문으로 우르르 몰려나오는 어린 아이들, 크고 검은 눈동자에 우수가 깃들여있어 수줍음을 잘 탈 거 같았던 여선생님, 지나가는 사람들 귀에 다 들리는 동네 여자들이 아웅다웅 싸우면서 내는 말다툼 소리,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는 비쩍 마른 고양이, 언제나 밤안개가 짙은 곳, 염습지의 갈대숲, 시베리아의 툰드라에서 날아온 겨울 철새들, 사리 물때가 되면 갯벌에서 웅덩이를 만들어 개불을 잡는 일, 또는 말뚝망둥어와 흰발농게를 잡는 일, 갯바위에서 굴을 따는 일, 흰발농게를 잡아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봄의 철새인 도요새, 밤의 어두움이 찾아오기 직전 짧은 순간 황혼녘의 바다가 푸른빛으로 빛날 때 어둠을 뚫고 먼 바다에서 돌아오는 지친 어선들. 생선 횟집에서의 술판, 도수 높은 알코올 기운을 풍기는 술 취한 어부들. 갯바위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젊은 여자의 부풀어 오른 시체. 그녀는 얇은 코트 주머니에 돌멩이를 넣은 채바다로 뛰어내렸다.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몰랐다. 하지만 며칠 동안 갯바위를 찾아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보려고 애썼다. 나는 그녀가 뛰어내린 장면을 수없이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나는 그녀의 혼을 만나기 위해 그 바닷가를 배회하였는지 모르겠다.

그곳이 나의 유배지였던가. 그곳에서 나의 삶은 남루했지만 그러나 행복했다. 그때 내 얼굴은 햇볕에 그을렸고 내 육체는 바닷바람에 억세졌다. 나는 그 바다 바람을, 바닷가 마을을, 늙은 어부를 잊을 수가 없다. 그때 굳게 결심하고 올라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다시 생각한다.





5. 2015년, 늦가을이었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지만 벌써 추운 날들이 찾아왔다. 회색빛이 감도는 짙은 안개가 땅 위를 낮게 기어다니며 관목 숲 나무들과 누런 풀잎들을 어루만졌다. 나무 둥치들 사이로 안개가 만들어내는 형상들은 무한정 변화하면서 지칠 줄 모르고 춤을 췄다.

그가 죽은 지 1년이 지났는데 그즈음 하여 그가 꿈속에 가끔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꿈속은 안개처럼 몽롱해서 그의 얼굴과 모습이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어떤 날 밤에는 밤새 끔찍한 악몽 때문에 잠을 설쳤다.

처음 바닷가에서 그를 마주친 순간 어떤 섬뜩한, 정체모를 미지의 분위기를 느꼈지만 그걸 내색하지 않고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외면을 하고 지나쳤다.

엄숙함, 고독감, 공포, 경이로움.

(그와 나 사이에서 우리라는 단어는 복잡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우리가 두 번째 스쳐지나갈 때에도 우리 사이에 침묵이 무겁게 짓누르며 목을 조였다. 하지만 한 겨울에서 짧은 봄을 거쳐 긴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면서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둘 다 몹시 외로웠고 말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가 말했었다.

「자네와는 갈수록 말이 통하고 호감을 느끼지. 우리가 좀 더 일찍 만났다면 좋았을걸.」

「전 퀴어는 질색이에요.」

「오해하지 말게나.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글쎄요? 브라더와 로맨스를 합친 브로맨스가 가능했을까요. 전 신경질적이고 까칠하니까 그것도 아니에요.」

「그렇단 말이지……」

나는 그와 대화를 하면서 낙서를 하는 것처럼 끄적였던 메모와 내 일기장을 뒤적이고 지난 1년간의 사건과 풍경들을 여전히 생생한 기억의 창고로부터 불러낸다.

밤이 깊어가고 있다.

나는 자신도 모르는 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 * *



그곳은 무인도처럼 외부와 절연된 고독한 공간이었다. 현실 세계의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서 격리된 장소였던 것이다.

집 근처 공터에는 생강나무가 자랐는데 꽃은 물론이고 잎과 줄기에서도 좋은 향기가 묻어났다. 칡넝쿨은 나무를 칭칭 감고 올라가면서 향기로운 꽃을 피웠다. 칡넝쿨 속에서 구불구불 꿈틀거리며 초록색 뱀이 기어나와 풀섶에 몸을 숨기더니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초가을이면 코스모스들이 한들한들거리며 푸른 하늘과 어울렸고 구절초는 옅은 구름이 하늘 높이 떠 있는 맑은 하늘에 안겨 미소를 짓는다.

그는 채마밭에서 계절마다 남새를 심었다.

그 집은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는 완만하게 경사진 언덕 아래쪽에 바다를 향해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동네로부터 한참이나 외따로 떨어져있는 허물어져가는 농가 집을 헐값에 매입해서 세심하게 공들여 스스로 집을 수리했다. 마을로부터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숲으로부터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 집에는 주방을 겸한 식당, 거실과 침실이 있다. 헛간을 개조해서 작업실을 만들었다. 그 작업실 뒤쪽 처마 밑에는 벌들이 벌집을 짓고 더듬이질을 하며 안팎을 들락날락 날아다녔다.

전기가 들어왔고 난방 기기나 배관 시설 등은 제대로 작동했지만 상수도는 들어오지 않아 집 앞마당에 있는 우물 물을 사용했다.

거실에는 스탠드가 놓여 있는 철제 책상과 의자 외에 가구가 없다. 거실 벽에는 그림이 든 가족 사진이 든 액자는 걸려있지 않다. 텔레비전도 없고 인터넷을 하기 위한 컴퓨터도 없었고 스마트폰도 없다. 그러나 매우 낡았지만 5대의 스피커와 명품 고급 음향 장비가 설치되어 있고 벽에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많은 책들이 가득 쌓여있다. 그는 언젠가 고통을 잊기 위해서 가끔 음악을 진정제로 사용한다고 털어놓은 적 있었다.

그곳은 저장강박증을 가진 사람의 극도로 지저분한 거실이 아니라 깨끗하게 정돈된 창고 같은 곳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을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처럼 편안하게 느끼고 있었다.

작업실에 붙어있는 작은 창고에는 역시 책들, 그림들, 목공예 작품들, 상자들, 무슨 물건들인지조차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질서정연하게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리고 바다를 그리다가 중단한 풍경화 캔버스가 세워져 있다.

그는 허리는 꼿꼿했지만 얼굴은 온통 주름투성이이고 강한 바닷바람에 그을려 까맣게 탔다. 회색 턱수염을 기르고 다녔다. 눈 아래로 축 늘어져있는 두꺼운 눈두덩이 때문에 눈은 반쯤 잠긴 것처럼 보인다. 렌즈가 두툼한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있다. 울퉁불퉁한 손마디와 길고 더러운 손톱에 잔뜩 낀 때가 눈에 들어온다. 그즈음 먼지가 많이 나는 목공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름대로 집안을 정리하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그만의 생활 리듬에 맞춰 살아가고 있었다. 그 동안 누구도 만나지 않았고 어떤 방문객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제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동네 사람들은 그가 원래 대대 마을 출신인 것을 알기 때문에 외지인 취급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외지인에 대한 적대감이 없었고 전혀 이런 일 저런 일 간섭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네 늙은이들은 그를 만나면 경계심 때문인지 길을 비키고 피하면서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지금 힘없이 늙어가는 사람일 뿐이다.



그가 말했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변호사를 했단 말이지? 어떻게? 그렇게 귀하신 몸이 여기까지…… 변호사 생활이 지겨웠던 걸까?

흰 것을 검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화가와 변호사뿐이라고 했고…… 변호사는 전부 지옥에 가 있다고 했으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그렇지만 전 별 볼일 없는 무능한 변호사였어요.」

「스스로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겠지.」

「벌써 여름이에요.」

「이곳 여름은 의외로 후덥지근하다네. 뜨거운 태양이 바닷물까지 데워놓은 것 같다니까.

이게 여기서 내가 밀가루와 소금과 물로 만든 과자라네. 전매 특허품이지. 내놓을 수 있는 거라곤 이것뿐이네. 그리고 커피도 있고…… 독한 술도…… 만약 피우고 싶다면 그게 있지.」

「전 담배도 안 피워요. 마리화나 말고 더 독한 것은 안 해봤어요?」

「부산 시절에 몇 번인가 해봤지. 그러나 스스로 끊었다네. 부작용이 너무 심했거든. 이건 별거 아니니까 계속 하는 거지.

마약 중독자들은 처음 할 때는 마약을 하더라도 끊을 때는 끊을 수 있다고 자신하거든. 그러고 나서 약물 중독자들은 죽어도 다시는 안 하기로 그런 다짐을 한다네. 하지만 결국 마음이 약해지고 예전 습관으로 돌아가고 말지. 자기 최면을 걸어도 소용없어. 유혹이 워낙 강하거든.

고백하건데…… 지독한 중독자들은 어찌나 교활한지 그걸 오랫동안 숨길 수 있다네.」

과자 하나를 집어 맛을 보았더니 약간 짜면서도 너무 부드러워서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침묵이 흘렀다. 나는 창밖으로 바다와 섬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검은 커피 가루에 끓는 물을 붓자 블랙 커피의 진한 향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방 안에 가득 퍼졌다. 우리는 맥주 컵처럼 큰 잔에 든 뜨거운 커피를 식혀가며 조금씩 핥듯이 마셨다.

「자네에게 내가 살아온 험한 이야기를 내 입을 통해 그대로 전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들만큼 들었으니까…… 80이 넘었다네. 내 얼굴에 새겨진 작은 주름들이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네만. 그러나 늙은이의 기억은 믿을 게 못 되지.

게다가 오랫동안 혼자 살면서 고립된 생활을 한 것이 내 기억력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을 거야. 그래서 더 이상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확실하게 구분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네.

자네는 늙는 것이 끔찍하거나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하나? 인생이 길다고 믿지 말게나. 지금 이 나이가 되면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로 여기고 살아야 한다네.

그러니까 너무 혼란스러워서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전혀 분간할 수 없게 되는 거지. 그러나 중증 치매에 걸린 것은 아니니까 안심하라고. 때로는 옛날 기억들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기도 하지. 어느 순간 수십 년 된 일이 고스란히 살아나서 몸서리를 칠 수도 있는 거야.

인간의 기억은 누구나 점점 희미해지지. 그래서 절대로 못 잊을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내기도 한다네. 시간이 갈수록 더 잊어버린다네. 하나둘씩 기억을 잊어버리게 되는데 그건 알츠하이머 때문이 아니라 노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인 거지. 그러니까 우리가 잊어버리는 것은 늙고 죽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야.

그러나 잊혀지지 않는 것도 있다네. 내가 무얼 잊어버렸다면 그건 기억할 만한 가치가 전혀 없기 때문일 수도 있어.

내가 여기에 내려온 지가 벌써 15년이 지났지. 귀소본능이라고 할까. 고향이라고 찾아와서 그대로 주저앉은 거지. 그러니 여기를 떠나고자 하는 욕망도 완전히 사그러져 버렸다네. 나에겐 도대체 욕망이란 것이 없다네. 여길 떠나고자 하는 욕망이건 새로운 삶에 대한 욕망이건 아무것도 없어. 나는 종마를 거세해 성욕을 없애버리듯이 나의 가슴 속에서 욕망을 제거해버렸네.

아무런 욕망이 없는데 무슨 이야기가 가능할까.

죽는 날까지 여기 남아있을 거야. 나는 이 세상이건 저 세상이건 간에 반드시 떠나야만 하는 그런 상황이 닥치기 전에는 떠나지 않을 걸세.

나는 여기서 무슨 비망록이나 일기 같은 걸 끄적이지는 않는다네. 모든 걸 망각하기를 바라거든. 나는 지금 자신을 잊는 연습을 하고 있지.

나는 문학 이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개인의 삶이란 게 얼마나 하찮고 비루한데 그런 걸 굳이 글로 쓸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 흔해빠진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가 일단 책으로 인쇄되어 나오면 그건 굉장한 것으로 둔갑을 하더군.

나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 거네. 오직 불에 타고 남은 재만 남길 거라네.」

「불은……? 불이란 훌륭한 정화제이긴 하죠.

하지만 기억에 대해서는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망각은 무의식의 세계이면서 기억의 저장 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문을 열고 뛰쳐나올 겁니다.」

그는 대마초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는 머리를 꼿꼿하게 세우더니 인생 경험이 많은 연장자로서 조금 경멸에 찬 표정으로 연하인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때 그렇게 느꼈다.

「우린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 거야. 첫째는 이쪽이 고향이고 남쪽 포구와 많은 연고가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둘 다 서울에서 인생에 실패하여 이혼하였고 귀소본능에 따라 여기로 내려온 것이야,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우리가 인생에서 실패했다고 단정을 할 수 없겠지, 누군들 별다른 인생을 살았겠는가, 셋째는 여기로 내려올 때 내 나이와 자네 나이가 60대 후반으로 비슷했어, 그리고 자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뒤늦게 무명작가로 소설을 썼던 것, 나 역시 뒤늦게 소설이니 시를 쓰려고 아등바등했다가 결국 포기한 점 등이 말일세.

나는 일찍부터 작가가 되려고 생각했었지만 먹고 살아야하니까 그게 여의치 않았다네.

또 하나가 있군. 이제 보니 자네도 술 꽤나 마시더군. 그러니 젊은 시절에는 두주불사하였겠지. 그래서인지 자넬 만나면 낯설지 않고 편안함을 느낀다네.

누구든지 내 집에 찾아오면 방해 받았다는 느낌 또는 침입 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네. 그 누구도 반갑지 않았어. 그런데 어쩐 일인지 자네만큼은 예외가 되었네. 자네와는 벌써 여러 번 만난 사이니까 어쩔 수가 없었지.

그런데 말일세…… 독한 술도 좋은 점이 있다네. 내가 말하는 독주란 40도를 넘는 빼갈이나 보드카를 말하는 걸세. 독주는 혀에서는 날카롭지만 목에서는 부드럽고 뱃속에 들어가서는 따뜻하게 덥혀주지.

그런데 독주 속에 들어있는 특이한 화학 성분이 있는데 그게 머리털이 빠지지 않도록 작용을 한다고 하더구먼. 그래서 자네나 나나 머리는 하얘도 대머리는 아닐세. 그러니까 알코올 중독자들 중에는 대머리가 없는 거야. 이왕지사 말이 나왔으니…… 나는 독주가 장점이 많다고 생각하지. 그걸 마시면 기분이 하늘 높이 올라가면서 생각을 더욱 맑게 해주거든. 슬픔이나 고통을 줄여 주기도 하고. 또 하나 장점은 그걸 마시면 빨리 취하게 되지. 더 많이 마시면 만취할 수 있다는 거지. 만취 말일세…… 만취…… 그러면 마침내 울게 되지.」

「그렇군요. 불쌍한 침입자인 저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술에 대한 찬사는 저도 동감입니다. 이의가 있을 수 없지요. 우린 아슬아슬하게 알코올중독 신세는 면했지만 알코올 의존증인 게 틀림없지요. 그래도 우린 어떤 경우에도 고래고래 악을 쓰면서 술주정은 안 하지요.

그런데 우린 똑같이 인생에서 실패했던 거 아닌가요? 얼마나 더 많은 좌절과 방황을 겪어야만 될까요? 실패가 아닐 수도 있다고요? 그건 치사한 자기기만이 아닐까요?

또 있어요. 우린 독실한 무신론자이거나 불가지론자 아닌가요? 저의 경우에는 틀림없어요.

좋습니다. 넘어갑시다. 논쟁을 할 만큼 자신이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인생 선배이고 고향 선배이고 형님인 거죠. 한 가지는 아니겠네요. 저는 바닷가 절벽으로 갔을 때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는 거죠.」

「자살 충동이라…… 난들. 카뮈는 자살이야말로 단 하나의 진실한 문제라고 단언했어. 인간 조건에서 아주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 자살을 철학적인 문제로 본 거지.

이곳 생활이 항상 지루하고 기다리기만한 것은 아니었어. 자유가 지천으로 널려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는 자유롭게 살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 있겠지요. 하지만 진정한 자유란 것이 무엇인지 누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법정에서 벗어나고…… 소송에서 벗어나고…… 아내한테서 벗어나고…… 서울에서 벗어나면…… 그러면 제가 진정한 자유란 것을 찾을 수 있을까요?」

「왜? 자유는 스스로 찾는 거야. 자유야말로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지. 누가 공짜로 던져주는 게 아니란 말일세. 거기에 나오는 모든 것들을 반신반의하며 생각했다네. 그런 하찮은 일들이 이야기의 소재가 될 만큼 기이한 것들일까.

나에게 지금 가장 위험한 것은 깜박 잠드는 일이라네.

내가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며칠째 잠을 자지 못하다가도 수면제를 한 움큼 먹고 한 번 잠이 들면 죽음처럼 깊은 잠에 빠져든다네.

잠이 든 상태로 계속 시간이 흘러 끝내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면 결국 죽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이 든다네. 아프리카에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풍토병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내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하든가 그건 자네 마음이라네.」

「모든 이야기에는 보이지 않는 장면과 입 밖에 내지 않는 침묵이 있다고 하더군요. 말이건 글이건 표현을 하는 만큼 억압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표현을 하는 부분이 있다면 의도적으로 숨기고 침묵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죠. 언어의 억압적 측면은 도대체 극복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제가 철없는 어린애가 아닌데 말씀을 뺄 건 빼고 더할 건 더하면서 알아듣겠습니다.」



「그러니까…… 1964년 여름이었을 거야. 내가 그때 순천에 내려갔다 와서 만났으니까. 을지로 쪽에서 그들을 만났던 것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겠구만.

공구상이며 조명가게가 들어서있는 허름한 단층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서있는 거리였지. 거기에 값싸고 푸짐한 식당들이 엄청 많이 있었지. 그때도 을지로3가 큰 길에는 해방 이후 서울에서 처음 문을 연 중국집이 있었어. 2층 건물의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다방 커피와 달걀을 띄운 쌍화차를 파는 옛날 다방들이 있었고……

우리는 토요일 오후 그런 다방에서 처음 만나 서로 인사를 교환했었지. 잠깐 동안 옛날 고향 이야기를 했고 그러고 나서 자리를 옮겼지.

을지로3가 안쪽으로 가면 노가리 골목이 나오는데 그 곳엔 80년대부터 많은 호프집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나도 회사 사람들하고 가끔 갔었지. 그 시절에도 노가리 골목의 단골들은 대낮부터 연신 생맥주를 들이켰어. 그래서 노가리 골목 가게들은 대부분 낮 12시면 문을 열었지. 그러나 60년대에는 아직 생맥주를 마시는 시절이 아니었으니까 그때 그 골목은 아직 생기지 않았었지.

그런데 말이야…… 을지로3가 뒷골목에는 양대창을 전문으로 하는 술집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길이 나오는데 대부분 60년대 이전에 문을 열었지. 그 시절 고기 맛이 그만이었지. 굶주린 시절이었으니까. 그때는 그 골목에 들어서면 여기저기서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네.

그러니까 길가 탁자에 앉아서 암소 등심 등 고기를 구웠지. 그 골목에는 생태탕 맛집, 돼지갈비집, 곱창전문점, 소갈비집도 모여 있었지. 아마 거기 돼지갈비집에서…… 그때는 25도짜리 진로 소주가 있었으니까 그걸 엄청 마신 것 같네.

그 골목 끝에는 골뱅이 골목이 있었다네. 골뱅이무침은 새콤달콤한 맛이 흔한 맛이 아니지. 내가 참 좋아했다네. 통조림 골뱅이 하나를 통째로 따서 마늘과 고춧가루, 대구포, 파채를 함께 넣어서 버무리니까.

그날 골뱅이 집에서 입가심한다고 하면서 OB맥주를 또 엄청 마셨지. 그때 맥주는 아무나 못 마시는 고급 술이었네.

그날 그 작가는 고등학교 동창생 두 명과 함께 왔었지. 그렇게 기억한다네. 그는 나와는 나이 터울이 나지만 한때 도사동 이웃집에서 함께 자랐으니까 너무나 잘 아는 사이였다네.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그때는 법정동으로는 도사동만 있었는데 대대, 교량, 안풍, 인월 등 바닷가 쪽 시골 동네들이 도사동에 포함되어 있었던 거야. 아마 순천만 일대가 공원으로 개발되면서부터일 거야…… 언제부터인가 이런 동네들이 행정동으로 승격을 했더군.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전에는 도사동 전체가 변두리 촌구석이었지.」

「버스를 타면서 대대 마을이 대대동으로 변한 것을 처음 알았지요. 이렇게 많이 변한 줄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어요.」

「이야기를 계속하겠네. 두 사람은 초면이었지.

기억나는 게 얼굴이 희멀건하고 단정하게 생긴 친구는 그때 법대 4학년 학생이었는데 벌써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입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군. 역시나 호감이 가더라고. 나중에는 부장판사까지 하고나서 대형 로펌의 대표 변호사까지 지냈으니까 인품이 아주 훌륭하다고 순천에서는 그 명성이 자자했지.

다른 친구 역시 대학생이었던 것 같았는데…… 그들의 관심사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군 입대 문제였어.

학교를 졸업했고…… 그 무렵에는 자신의 인생 목표와 목적이 혼란스럽고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해도 어쨌거나 사회로 막 진출해서 꿈을 펼쳐야 할 시기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군대가 무슨 장벽처럼 가로막고 있었지.

내가 한 수 가르쳐주었지. 그 당시는 어수룩했으니까 돈과 빽만 있으면 얼마든지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특히 말단이긴 했지만 병사계의 빽은 막강했어. 그 자가 빠져 나오는 모든 수단을 다 알고 있었거든. 돈만 주면 안 되는 게 없었어. 부정이 만연했지. 그 알량한 자리를 이용해서 허겁지겁 사리사욕을 잔뜩 취한 거야. 뇌물에 한 번 맛을 들이면 그럴수록 돈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거라네.

나도 꽤 큰 목돈을 쥐어주고 빠져나왔거든.

그들이 내가 알려준 대로 군대를 갔다 오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네만. 자네의 경우는 어땠나? 이곳 출신이니까 역시 병사계에 손을 썼겠지? 얼마쯤 주었겠지.」

「글쎄요. 기억이 잘 안 나는데요.」

「그날…… 우리는 이런저런 말들이 길어지면서 꽤나 마셨다네. 많이들 마셨지. 물론 나는 그때 회사에 다녔으니까 술값은 내가 부담했다네. 그렇지 않은가? 젊은 사람들이 술에 취하면 당연히 여자 이야기로 넘어가지 않겠는가? 그때 그 여자의 이야기가 나온 거야. 내가 이야기를 꺼낸 취지는…… 얌전한 여자가 어떻게 해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느냐는 것하고…… 여자의 성불감증에 관한 거였어.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도 그건 아니더란 이야기였지.

우리들은 그때 술이 엄청 취할 때까지 즐겁고 화기애애하게 수다를 떨었다네. 그리고 헤어질 때…… 그러니까 2차인가 3차인가 끝나고 헤어지면서 서로 말했네. 조만간 또 뵙죠, 조만간에요. 하지만 그 이후 다시는 보지 못했다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걸 처음 발표한 후 영화를 만들면서 몇 번씩이나 고쳐 썼더구만. 그것도 제멋대로 말이야. 진실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지. 나를 유부남이면서 아내 몰래 밀회나 즐기는 탕아로 만들어버린 거지.」





6. 여름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에 염습지의 풀들이 누렇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냇물은 바싹 말랐고 모기떼와 하루살이들만 들끓었다. 한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서 몹시 가물었던 것이다. 그때는 미풍마저 불지 않았고 바다로부터 진하게 풍겨오는 짠 염분 성분이 후덥지근한 날씨만큼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였다.

우리는 얼마쯤 지나 다시 만났고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대대동의 다방으로 갔다.

내가 말했다.

「제가 약간 유치한 이야기를 해도…… 또는 약간 아는 채 거들먹거려도 현명하신 선생님께서는 그러려니 해야 합니다.

대화가 빗나가면 바로 잡아주시고……

저도 문학청년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 소설이라면 그 시절 분명히 읽었었죠. 하지만 영화를 본 기억은 없네요. 그걸 읽고 나서 감명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약간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왜 아니겠어요? 그때는 그랬어요. 반세기 전 일이니까요.

현실세계에서도 어떤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할 때는 이거다 저거다, 어느 하나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요. 흔히들 어떤 하나의 정체성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건 제대로 관찰하지 못한 거예요. 다들 조금씩 복잡하고 복합적이에요.

그러므로 그가 지닌 전체…… 다시 말하면 모든 면모가 하나의 정체성이라고 봐야겠지요.

누가 작가의 모델이 되었든 간에 그 작중 인물에는 약간씩 여러 사람의 모습이 들어있게 되지요. 누군가…… 이름이 생각나지 않지요…… 작가는 그의 모델을 그대로 복사하진 않는다. 그는 그들에게서 그가 원하는 것만을 취하며 그의 주의를 끄는 몇몇 특징과 그의 상상력을 점화시킨 성격을 취하여 인물을 구상한다고 했습니다.

작가는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왜곡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야기가 오히려 현실을 만들어가게 되지요. 소설이란 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나는 같은 이야기를 너무 많이 곱씹은 탓인지 헷갈려서 이제 뚜렷하게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네. 50년이 흘렀으니. 그 작가는 그때부터 유명인사가 되었고 그 이야기는 너무 잘 썼기 때문에 문단에서 전설이 되었네. 자네도 그 작자가 써놓은 이야기를 읽었다는 거 아닌가. 글재주가 약간 있었다고 해야겠지.

자네는 물론이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소설을 읽은 것처럼 나도 그가 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놓는지 보고 싶어서 몇 번이고 읽어봤지. 그때마다 내가 그 유명한 소설의 진짜 주인공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네. 하지만 그런다고 누가 내 말을 믿어주겠어. 자네는 믿겠는가?

몇 년 전부터 난 자네 같은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나는 지금까지 살아남았네. 마침내 내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되었지.

내가 직접 책을 쓰지는 못 한다고 해도 적어도 이야기를 들려줄 수는 있지 않겠나.」

「아무리 인생에서 교훈이 되는 좋은 이야기이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그것은 기억에서 곧 사라져버리죠. 이야기는 글로 쓰여져야만 살아남아요. 어쨌거나 하나의 텍스트를 거쳐야 하는 거죠.

형님의 이야기는 충분히 근거가 있으니까 글로 남겨야 될 거예요. 회고록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자기 변명만 늘어 놓으니까 최악이에요. 문제는 예술성 혹은 예술 그 자체입니다. 형님의 굴곡진 인생은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의미가 담겨있다니까요.

그 소설의 내용을 잘 알고 있는 독자들은 형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몹시 당황스러워 하겠지만 말입니다.

먼저……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를 해 보세요. 상당히 궁금했거든요. 거기에서는 너무 간단히 처리되었지요.」



「내가 아버지를 본 건 딱 한 번뿐이었다네. 그것도 엄마와 함께 방죽길을 걷다가 우연히 보았지. 거동이 몹시 둔한 영감탱이가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지 질질 끌고 다가왔어. 계속 기침을 하면서도 연신 담배를 피워대더군. 눈길에는 뭔가 악의에 차 있었지.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작자가 내 아버지였어. 우린 얼굴에 닮은 구석이 많이 있었다네.

아버지는 나를 외면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때는 긴가민가했어. 아버지란 작자는 엄마와는 한참을 속닥이다가 거친 말싸움으로 끝이 났어. 아마 돈 문제였을 거야.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생전 들어보지 못한 상스러운 전라도 욕설을 마구 내뱉었다네. 그래서 내가 당황해서 울어버렸지.

어머니는 평소 내가 뭘 물어보면 그럴수록 더욱 애매모호한 태도로 우물쭈물 했거든.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 그 집에 하인으로 들어가게 되었는지, 아버지란 작자와 어떻게 해서 처음 성교를 했는지 아니면 겁탈을 당했는지, 몇 번 만에 임신하게 되었는지, 왜 임신중절을 하지 않고 끝내 나를 낳게 되었는지, 아버지의 그 못된 성격이나 특징에 관해 얘기해준 게 하나도 없다네. 아주 작은 추억이라도 단 한 번도 이야기 해준 적이 없었어.

쓸데없이 동네에서 흘러 다니는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만 주절주절 말했었지. 그런데 이야기라는 게 시간이 흐르면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쯤은 자네도 알고 있겠지. 어머닌 고향이 경상도 하동이라는 거 외에 어머니의 어머니, 아버지, 형제, 어린 시절 등 외갓집 쪽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었다네. 혹시 고아원 출신이 아니었을까 의심도 많이 했지.

어쨌거나 나는 아버지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어. 아버지가 내게 물려준 거라곤 ‘윤’이라는 성밖에 없거든. 그래도 어머닌 뼈대 있는 가문이라는 것을 자주 강조했어.

아버지가 죽었을 때 재산이 남아 있었다면 내가 소송을 제기했을 거야. 그거 있지 않은가? 사생아들이 흔히 하는 친부확인 소송 말이야. 그 집은 원래 양조장을 한 소문난 부잣집이었는데 이미 거덜이 나서 실속이 없었다네. 자네가 변호사이니까 잘 알겠지만 소송 자체는 어려울 게 없었지. DNA 검사만 하면 되니까. 그 소송이야말로 진정한 마지막 심판의 날이 되었을 텐데……」



그가 시니컬하게 웃으며 새로운 대마초를 꺼냈다. 말린 대마초를 종이에 접어서 만 다음 불을 붙였다.

「자네 한 번 피워보겠나? 어떤 것하고도 비교할 수 없다네. 대마초 꽃을 말린 거니까 효과가 강력하거든. 천국에 갔다 오는 기분을 잠깐 동안이나마 느끼게 되지. 이걸 피우면 뭐든 하고 싶어지고 뭐든 할 수 있다는 기분이 든다네.

그러니까 대마초를 피우는 것은 죄가 아니라네. 그게 범죄라면 범죄의 피해자가 누구란 말인가. 나쁜 악법 중의 악법 아니겠는가. 그리고 또 있지. 간통죄도 하루빨리 없어져야지. 국가가 오죽 할 일이 없으면 그 따위 법들을 만들었을까.」

그는 대마에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깊숙이 빨았다가 길게 내뿜었다. 나는 허공에 떠오르는 푸르스름한 연기를 지켜보았다.

「이것도 혹시 내가 꾸며낸 거짓말이 아닌가 모르겠네.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완벽하게 이야기가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나?

자네는 법조인이니까 냉철하게 판단하게. 그러니까 날 비난하거나 원망하지는 말게나.

나도 작가가 되고 싶었다니까. 워낙 오랫동안 이야기의 뼈대를 만들기 위해 이것저것 궁리하면서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해왔기 때문이지.

나는 모든 상황을 이야기에 맞춰서 몇 번씩이나 재구성해보았다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작가의 관점은 도대체 공정하지 않더군. 너무 심하게 왜곡을 하고 과장을 하고 미화를 하지.」



「소설가는 창조주라고 할 수 있어요. 그가 성실하고 치열한 작가라면 소설 공간에서 사유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물을 만들거나 작품의 형식이나 소재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자유재량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이야기를 꾸미는데 실제 증거는 필요 없다는 거죠.

그래서 서사적 충동을 느끼면 자신이 선택하고 창조한 범위 안에서는 인간의 감정이나 인생의 단면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거죠. 그러면 글 속에서 뭔가가…… 절실한 감정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거예요.

소설의 캐릭터에 뼈와 살을 붙이고 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하지요.

작가란 항상 사물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분석해야 하니까 틀림없이 호기심이 많을 거예요.」

「자넨…… 무명작가이면서 역시나 그럴듯한 이론을…… 설파하고 있구만. 그런데 작가에게 무한정한 자유재량권이 있다고? 그래도 한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엄연한 사실을 마음대로 왜곡할 수 있어? 작가에게도 창작의 윤리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직업윤리라고 해야 하나…… 그게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냥 넘어가죠. 어머니 이야기를 더 해주세요.」

「나는 요즈음 밤이면 위산 역류 때문에 자주 토한다네.」

「병원에 가서 처방 받으시지 그래요.」

「약은 무슨…… 어머니는 그 집에서 무슨 일이건 닥치는 대로 하는 하녀였어. 난 어머니 나이를 몰라. 그때 어머니 역시 자신의 나이를 까먹었을 거라고.

어머니가 제일 좋아했던 것은 틈만 나면 멀리 걸어서 공중 목욕탕에 가는 일이었네. 그때는 도사동 부근에 딱 한 곳밖에 없었지. 항상 완전히 녹초가 되어 돌아와서는 끙끙 앓기도 했지.

그리고 교회를 열심히 다녔어. 어머니는 낡은 성경책을 끼고 다녔지만 글을 읽지는 못했다네. 어머니는 일자무식이면서도 밤마다 밤늦도록 성경을 목청껏 낭송하였으니 그걸 하느님의 기적이라고 해야겠나? 아니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네도 잘 알겠지만…… 순천은 기독교가 한반도에 전파되던 시기에 선교 기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예전부터 교회가 많았다네. 어머니는 나를 동네 교회에 보내기로 마음 먹었어. 내가 교회에 안 간다고 하면 사정없이 막 때렸어. 믿을 사람은 하느님밖에 없다고 하면서 말이야.

나는 맨날 하느님 운운하면서 거들먹거리는 그 목사가 뱀보다 더 싫었기 때문에 교회에 안 가려고 일부러 눈물을 쏟아내며 막 울었지. 실제 그 목사만 보면 울고 싶었다네. 그러니까 배가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그럴 듯한 연기를 한 거지. 그 순간 이후로 나는 더 음흉해졌고 어른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네.

어머니는 방죽길을 걸으면서 내내 중얼중얼 욕설을 내뱉었지. 그게 쉴 새 없이 저주를 퍼부은 거였어. 그 대상은 틀림없이 하늘에 있는 하느님이었을 거야. 내가 어머니를 사랑했을까? 확신할 수가 없어. 그럴지도 모르지. 아닐지도 모르고. 나는 지금까지도 나를 낳아준 어머니를 결코 용서한 적이 없었다네.

어머니와 내가 살았던 그 집은 지금은 흔적도 남아있지 않아. 자연생태 공원인가 만든다고 하면서 다 파헤쳐버렸으니까. 그 놈의 공원 때문에 어머니 산소마저 찾을 길이 없다네. 내가 여기에 내려오자마자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보았지만 끝내 발견할 수 없었어.

얘기를 하자면 너무 길어. 옆길로 그만 새야겠네.

그리고 우리가 겪은 가난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하소연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네. 그 시절은 60년대였으니까 지금하고는 다르지. 달라도 너무 다르지. 그 시절에는 모두 가난했으니까 누구인들 잘 살았겠는가. 거기서 거기였지.

그 집에는 방이 두 칸 있었고 벽에는 곰팡이가 피었지만 누런 벽지도 발라져 있었어. 마당에는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지.

그 시절에는 오랫동안 아무 것도 바뀐 게 없었어. 마을은 여전했고 더욱더 지저분해졌다네. 길을 따라 늘어선 단층 건물들과 가게들. 사람들이 걸어가는 소리, 나이 먹은 사람들의 기침 소리, 자전거 소리,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소리, 가끔 자동차 경적 소리, 통금 해제 사이렌 소리, 온갖 소리들, 길거리에 서 있는 아주 사소한 가로수까지. 나는 그 주변을 샅샅이 알고 있었다네. 그러나 어딜 가나 갑갑한 무기력증만 느껴졌다네.

가끔 중년의 여자들이 무슨 일 때문인지 표독스럽게 욕을 하고 소리 지르고 팔을 휘두르며 싸웠지. 사람들이 모여들어 싸움을 말리다가 도로 물러났어. 좁은 거리에 사람들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면서 싸움이 계속 되었지.

적어도 내 어린 시절의 기억에 따르면 그렇다네.

고향에 다시 내려와서 세월이 많이 흘러갔음을 새삼스럽게 확인하였네. 공원 만든다고 온통 파헤치며 공사가 진행 중이더군. 지금 낡은 집들, 좁은 골목길, 가로수 길, 콘크리트 전봇대들은 모두 사라져버렸고 시멘트로 매끄럽게 포장한 긴 방죽길만 해안선 끝까지 뻗어있지.」



「그렇군요. 저쪽 산에 올라가면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 산소가 있어요. 거기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묘가 있지요. 그러나 전 그 묘에 가본 적이 별로 없네요. 까마득해요.」

「내가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 거짓말을 한 걸까? 그럴지도 모르지. 그가 하인숙과의 그날 밤 관계를 그토록 세세하게 묘사한 걸 보면 단순히 기록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지어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해야겠지. 그는 심혈을 기울여 재구성을 한 거야. 그러니까 내 이야기가 아니라 소설이란 이야기지.

지금 생각나는데…… 그가 그 무렵 내게 편지를 보냈다네. 필적은 그만의 뚜렷한 특징이 있었지만 글씨를 알아보기는 힘들었지. 깨끗하게 정서해서 보낸 것이 아니었거든. 편지의 내용은 그날 밤의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달라는 거였지. 그는 어떤 형식이든 이야기를 만들어 글을 쓰고 싶어 했네.

나는 그때 약간 당황했었네. 술자리에서 한 이야기를 갖고…… 괜히 술기운 때문에 나 혼자서만 간직해야 할 이야기를 어설프게 한 거지.

그날 밤 상황은 그렇게 글을 쓸 만큼 흥미진진한 건 아니었으니까 알려줄 만한 게 없다고, 냉정하게 답장을 보냈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그가 작가로서 마음대로 지어낸 거지.」

「형님이 술자리에서 한 두서없는 이야기가 젊은 작가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자극한 것이죠. 사실이 허구와 상상력을 유발한 것입니다. 실재가 재료가 되고 상상력이 발휘되어 가공하지 않으면 소설이 탄생할 수 없다는 거 아닙니까. 그것들이 공모하고 작당을 해서 한 편의 소설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자네를 보고 있자니 내가 정말 자네를 믿어도 될지 모르겠어. 작가라고 주장하니까 말이야. 내가 지금까지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자네는 믿어 줄 텐가?

이건 말일세…… 자신의 가장 은밀한 비밀을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는 털어놓지 않으면서 그저 지나치면서 우연히 알게 된 사람에게 털어놓는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네.

내가 지금 횡설수설을 하고 있는 거야. 자네도 무명작가이긴 하지만 무슨 소설인가를 썼다고 했으니 궁금하긴 할 거야. 변호사가 돼가지고 오죽 돈을 못 벌었으면 소설을 쓴다고 했겠나. 너무 아픈 데를 찔렀나?」

「맞는 말씀이긴 합니다. 돈 때문은 아니지요. 배고픈 변호사는 굶주린 사자보다 무섭다고 했습니다만…… 저도 무언가 쓰고 싶었답니다. 무슨 일인지 한이 맺혀 있었거든요. 인생에 곡절이 많거나 심한 심리적 외상을 입게 되면 그걸 치유하기 위해서 글을 쓰기도 하지요.」

「그런 건…… 나에게 해당되는 일이지. 그러니까 당신은 변호사를 하며 돈을 많이 벌어서 잘 먹고 잘 살고 남은 시간에는 소설을 썼다는 거 아닌가? 아주 이상적이었을 것 같네만……

그런데 말일세…… 당신은 20년을 훨씬 넘게 많은 소설을 썼다면서…… 왜 여지껏 무명작가이고 그 흔해빠진 문학상 하나 못 받았지……? 그게 의문이라네.」

「그렇게 남의 약점을 가지고 물고 늘어지면……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했습니다……. 인간에게 완벽한 것은 없어요. 그러니까 완벽한 삶도, 완벽한 예술도 없는 거예요. 더욱이 둘 다…… 예술과 삶은 간극이 있고 서로 충돌하니까 둘 다 동시에 가질 수가 없어요.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예술과 삶 중에서 선택했어야 하는데 차일피일 한 거예요. 속물근성 때문이기도 하고…… 제가 어리석어서 우유부단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중을 싫어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들을 위해서…… 그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글을 써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해요.

저는 예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신봉하지요. 하지만 도덕주의자는 아니에요. 교훈적이거나 설교를 늘어놓는 것은 질색이죠.

그러니까 오직 자아를 위해서, 자신을 입증하고,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맞는 만족할 만한 작품을 쓰는 거예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면 죄다 퇴짜를 맞아요. 팔릴 수 없는 책이라는 거죠.

그렇게 되면 저는 소외되고 결국 소멸되거나 파멸을 맞을 것입니다. 그게 제 운명이라면 일찌감치 체념해야겠지요.」





7. 바다야말로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였다. 푸른 하늘 아래 멀리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바다는 유혹이고 함정이고 마약이었다. 짭짤한 소금기. 짙은 회색 안개. 바다는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짙은 회색 안개가 자욱한 방파제에서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려는 인간에게 그 바다는 과거에 대한 상실과 그 상실의 자각을 일깨워주었을 뿐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바다의 고요……

밀려와라 그대 깊고 검푸른 바다여

바다는 그 거대한 배를 달을 향해 기울였고

우리 사랑의 굴절에 미소를 보냈다.



물수제비뜨기를 한다. 수면을 차며 날아오르면서 날개를 치는 갈매기. 돌이 하늘 높이 날 수만 있다면. 한 마리 호랑나비로 변할 수 있다면. 돌을 허공으로 날게 하는 꿈은 나를 너무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가 말했다.

「가끔씩 나는 더 깊은 망상에 빠져들어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한 다네. 어쩌면 나야말로 그 작가일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다시 말하면 나야말로 그 작가란 말이지.

그리고 말이야. 가령 내가 그걸 썼다면 내 자신의 이야기니까 얼마나 구구절절 잘 썼겠어. 왜 내가 그 소설 때문에 쓸데없는 죄책감을 느껴야 하냐고. 내가 그걸 쓰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그는 그걸 쓰고 나서 후일담으로라도 어떤 실존 인물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에 관해 여지껏 함구하고 있다네. 그는 윤희중이라는 작중 인물을 만들기 위해 그 모델인 나라는 인물을 아주 어설프게 축소시키기도 하고 확장하기도 했네.

그를 어렸을 적부터 너무 잘 아는데 똑똑하고 공부도 잘했지. 그런데 그가 작가라면 나라고 못 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오기 문제는 아니었네. 그런 문제는 아니었다고.

글을 쓴다는 게 필기구와 종이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나도 내 굴곡진 인생에 대해서 스스로 구구절절 쓰고 싶었다네. 나는 나 자신의 천일야화를 쓰고 싶었지. 그러니까…… 그 소설이 끝나는 시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지.

나는 분명히 잘 쓸 수 있었네. 그럴 마음의 자세를 갖추고 있었고 쓰고 싶은 의욕과 갈망이 있었으니까. 내가 글을 쓴다면 그의 스타일을 벗어나 완전히 내 나름의 시각에서 창조적인 것을 쓸 작정이었지. 다시 말하자면 새로운 것을, 완전하게 변용한 것을 쓰고 싶었다네.

그게 소설이 될지, 자서전이 될지, 에세이집이 될지는 알 수가 없었네만…… 사람들이 1964년 이후 내 모습을 몹시 궁금해 할 것 같았거든. 내 이야기는 독자들의 중추신경을 건드리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진실을 밝히게 될 터이니까.

그런데 말이지……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까 많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어. 그래서 이런 저런 책들을 무작정 닥치는 대로 읽었던 거야. 그때는 밤새도록 많이 읽었다네. 눈이 짓무르도록 하루에도 100쪽이나 200쪽을 읽었다니까.

그래도 결국 글이 써지지 않더구먼. 원고지를 단 한 장도 채울 수가 없었지. 울고 싶도록 막막하더군. 세련된 솜씨로 깊은 내용과 재치과 기지가 넘치는 것을 쓰고 싶었는데…… 아무나 쓰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지. 도저히 쓸 수 없더군. 절망적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네. 나는 그때 자신에게 몹시 실망했어. 자네 지금 날 비웃고 있나!」

「ㅎㅎㅎㅎㅎ…… 웃음이 나오죠. 그것도 헛웃음이…… 내가 만나 본 몇몇 사람들 역시 자신도 글을 써서 책을 낼 수 있다고 큰 소리쳤지요. 그러나 한 줄도 못 써요. 얼치기들이니까요. 형님도 그랬겠네요.」


* * *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습작 유화를. 예비 스케치와 밑그림은 거의 희미한 백지나 다름없었고 처음에는 색을 너무 엷게 칠했다. 그러나 마지막 그림은 완성된 이미지를 향해 매우 두꺼운 붓으로 진하고 빨리 마르는 유화 물감을 썼다. 그것은 거듭해서 재빠르게 덧칠을 하기 위해서였다.

왜 그렇게 많이 덧칠을 하였을까? 그것은 그림의 표면에 드러나 있는 빛깔에 현혹된 나머지 그 깊은 속에 감춰져있는 속살을 볼 수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그랬다.

그는 무엇을 그렸는가? 바다와 하늘을 그렸다. 흰색, 검은색, 파란색, 회색, 때로는 붉은색이었다. 악마와 같은 바다의 에너지가 물결친다. 그림 속에서 폭풍이 울부짖고 파도가 넘실거렸다. 바다가 유혹을 하였다. 그림은 힘이 넘쳐났다.

그러나 그의 그림들에는 대부분 아직까지 제목이 없었다. 그렇다고 ‘무제’라고 제목이 붙은 것도 아니었다. 그림이란 항상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인데 그 이야기는 제목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차피 태워버릴 그림이니까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여러 차례 자화상을 그렸는데 그것은 매번 자신의 눈이었다. 그림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재현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자아의 본질을 스스로 포착하기 위해서는 얼굴 전체보다는 마음의 창인 눈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므로 눈의 묘사가 정확하고 정밀했다. 종이 위에 그려져 있는 것은 단지 눈 하나뿐이었지만 그의 나머지 얼굴은 그림 밖에 그려져 있었다. 눈 하나만 가지고도 그의 얼굴 전체가 보였다. 그는 거울을 보고 스케치한 그림에 스프레이를 해서 건조시켜 놓았다. 그래야만 그림이 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 * *



「어때? 어제 마셨던 그 시큼한 막걸리 말이야. 떫으면서도 상큼한 맛이 괜찮지 않던가. 모처럼 그런 걸 마셨지. 진한 것하고 연한 것을 비교 할 줄 알아야 한다네. 한 가지 맛이 다른 맛을 더 강하게 느끼게 해주거든.

그래서 가끔 대대동의 해묵은 다방으로 간다네. 몇 달씩 걸려서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들리기도 하고. 나는 옛날에 자주 여행을 떠났지. 목적지도 없이 부유하는 노마드를 꿈꾸지도 않았고 발길이 닿는 대로 정처 없이 흘러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어딘가에 멈춰 정착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네. 그 여행은 다시 이곳 바닷가로 회귀하는 것을 전제로 한 그런 여행이었어. 이곳으로 돌아와야 할 필연적인 이유도 없고 이곳을 사랑하지도 않고 애착도 없지만 말일세.

거기에 설탕을 듬뿍 친 연한 다방커피를 마시려고 갔단 말일세. 그러면 독한 커피 향이 더욱 생각나거든. 거기 오래 앉아서 오고가는 사람들과 풍경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잡념에 빠져들지……

특히 젊고 예쁜 여자를 보면 그녀를 눈으로 쫓고 마음속으로 그녀의 옷을 전부 벗겨버렸지.」

「그건 심각한 관음증이죠.」

「단지 상상한 걸 가지고…… 그런데 그 작가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어. 왜? 세무서장 조와 국어 선생 박 선생이라고만 하였을까? 자네가 설명해보게.」

「그들은 단역에 불과해요.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단역으로서의 임무를 마치고 곧장 사라지지요. 그러니까 초점은 윤희중과 하인숙에 맞춰 있어요. 그래서 모두 두 사람 이야기만 하지요.

만약 이름을 붙여졌다가는 소설 속에서 인물의 정체성이 확립돼버려요. 작가인들 이름을 가진 자는 쉽게 처리할 수 없는 거거든요.

그런데 박 선생이 중학교 후배인 것은 사실인가요?」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네. 우리 모두는 같은 중학교를 졸업했지. 그런데 조와 내가 그 작가보다는 훨씬 선배이고 박 선생은 2년인가 후배가 된다네. 나는 그때 가정형편 상 상고로 갔네만 그들 모두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어.

그나마 우리 중에서 번듯하게 대학을 나온 것은 그 작가뿐이지. 내가 야간 대학 영문과를 나온 것은 훨씬 후 일이야.

우리들은 그 학교의 선후배로 연결되어 있지. 하지만 그 시절 학창 생활에 대해선 기억하고 싶지 않다네. 그러니까 그립다거나 하는 일은 없지. 결손가정 출신이고 버스를 탈 차비가 없어서 매일 20리길을 걸어서 통학했으니까.

지금…… 뭐 그들의 이름을 밝힐 수 있다네. 지금 다들 늙었는데 뭐가 문제되겠나. 조는 조성식이고. 박은 박치순이었네.」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나요?」

「궁금할 만도 하구만. 조성식은 광주로 올라가서 국장까지 승진했다지. 그런데 업체를 세무조사 하면서 돈을 받고 약간의 편의를 봐준 게 정기 감사에서 발각되었다네. 그걸 무마하려고 지역 국회의원을 통해서 여기저기 손을 썼지만 결국 파면을 당했다고 하더군. 지금 무얼 하고 지내는지는 알 수 없지. 뭐? 세무사나 세무법인의 대표쯤 하고 있지 않겠나?

그리고 박치순은 후배이긴 하지만 그때부터 늘 존경하였다네. 인간이 되먹었거든. 그래서 훌륭한 선생님이 된 거야. 그는 정식으로 사범대학을 나온 여 선생님과 결혼했는데 그 여선생님은 교장선생님으로 정년 퇴직했고 박치순은 평교사로 끝났다고 하더군. 자식들도 너무 잘 키웠다고 하더라고. 그들 부부야말로 모범부부라고 할 수 있겠지.」

「그것이 전부인가요?」

「내가 오랫동안 이곳을 떠나있었으니까 더 자세한 걸 알 턱이 없지 않겠나.」


「소설에 창녀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그건 내가 전혀 모르는 일일세. 창녀가 있었나? 난 그녀에 관해선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았어. 그녀 얘기는 그가 꾸며낸 거야. 하지만 이게 진짜 진실인 걸 어떡하겠나. 나머지는 다 작가가 제멋대로 덧붙인 장식이라니까.」

「그게 그렇지요. 소설에 나오는 그 해변은 지금 남아있지도 않지요. 간척지가 되었으니까요. 어떤 흔적도 없다니까요. 삼전벽해가 우스울 지경입니다. 예전에는 해변이 끝나는 지점에 섬과 연결하는 길이 있었지만 말입니다.」

「은폐된 장면이 있을 거야. 내가 작가인 것처럼 머릿속에 이런저런 장면들이 떠올라서 몹시 혼란스럽군. 우리가 보드카를 너무 급하게 마셨는가보네. 늙으면 술도 점점 약해지지.」

그의 얼굴에서 땀방울이 떨어졌고 눈에선 불이 났다. 그가 담배를 길게 빨아들인 후 입안에 연기를 가두었다가 아주 천천히 뱉어내자 가늘게 피어오르는 담배연기가 소용돌이로 꼬이며 허공으로 올라갔다.

「옛날 제가 여기 있었을 때 말입니다. 그때 절벽 바위에 뛰어내린 여자가 있었어요. 제가 여기에 내려오자마자 그날 밤 늦게 거길 갔었거든요. 왠지 가고 싶었어요.」

나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몸을 아래로 굽혀서 절벽 아래 허공을 바라보았다. 가랑비가 내렸고 우산을 뒤집어 놓을 만큼 약간 강한 바람이 불었다. 높은 절벽은 음산한 매력을 발산하면서 나를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이곳에서라면 아주 쉽게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바다를 뚫어져라 내려다보니까 내가 수영을 못 한다는 것과 바닷물이 너무 차갑겠구나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뛰어내릴 생각이 사라졌다.

그날 방파제에는 갈매기들이 줄지어 앉아 구구거리고 똥을 갈기고 부리로 깃털을 다듬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리는 이야기가 중단된 곳에서 다시 시작했다.

그가 말했다.

「……그걸 다시 생각하면 창녀를 등장시켜서 의도적으로 모호한 역할들을 담당하게 한 작가의 뒤틀린 정신을 엿보게 되지. 하필 하고 많은 여자를 놔두고 창녀를 생각하며 성욕을 느껴야 했을까? 그리고 말이야…… 도대체 왜 그는 그날 그 해변에 갔던 걸까.」

「해변의 어느 집 방에서 대낮에 그 짓을 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 집 주인 부부가 밖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우리의 정서상 아주 부자연스러워요.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섹스 이야기는 언제나 진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모든 동물은 성교 후에 우울하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게…… 밤이 아니고 대낮이었다고? 밤이어야 되는데. 그러면 말이야…… 초여름이었고…… 그쪽 방죽은 밤이면 사람이 안 다니는 으슥한 곳인데…… 차라리 방죽의 자운영 풀밭에서…… 그 무렵 시골에서 젊은 청춘 남녀들은 그렇게들 했거든. 그게 자연스러운데……」

「형님도 그런 경험이……?」

「옛날 옛날, 아주 옛날 일이라네. 그건 그렇고 말일세.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건 내 죄를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음으로써 용서를 받는다거나 양심의 가책 같은 거에서 벗어나고 싶어서가 아니야. 그렇고말고. 난 지금도 나를 낳은 어머니를 원망해.

나는 언제나 여자들에 대해 강렬한 의심을 키워왔다네. 근본적으로 여자들을 의심했는데 그게 어머니 탓이 아닐까?」


「어머니에 대한 증오가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그래서는 안 되는데…… 아버지가 없었으니까 원망의 대상이 어머니가 될 수밖에 없는 거지.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육체적인 면에서 매우 건강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별로 내세울 만한 게 없지 않은가. 내 몸 자체를 말하는 게 아닐세. 여자가 이성으로서 남자에게 기대하거나 욕망하는 걸 말하는 거야. 현명한 여자들은 육감에 의해서 직관적으로 미완성품인 풋내기를 알아본다네. 그래서 그런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들을 기피하는 법이거든.

하인숙도 그랬지 않겠나. 그때 그쪽에서 먼저 만나자고 했거든. 내가 잠시 내려왔지만 곧 올라갈 거고 기혼남이었으니까. 아무런 미련 없이 금방 떨쳐낼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그녀는 그때 여러 가지로 계산을 하였을 거야.

그러나 그날 밤 나는 그녀의 눈빛에서 빛나고 순수하고 섬세한 것을 발견하였다네. 그때부터 가슴 속에서 나의 뮤즈가 되어버린 거지.

그녀와 나는 그 해 가을 무렵까지 몇 번 만났어.

안 만나는 동안엔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몇 달 동안 그러고 난 뒤엔 편지가 끊기면서 모든 게 사라졌지.

나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분노를 느꼈다네. 온다 간다 말없이 도망친 여인. 나는 그녀의 뒤를 쫓았지만 계속해서 빠져나갔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다시 찾고 싶어 했다네. 불행하게도 그녀가 동성애자일지도 모른다고 의심은 했지만 말일세.

내가 하인숙을 갈망했던 것은 사람 자체 때문이 아니었네. 그녀가 사라지고 나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이롭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존재로 상상하였기 때문이었을 거야. 그러니까 나로 하여금 그녀를 탐나게 만든 것은 나의 상상력이었을 거야.

그러면 나는 실제로 그녀에게서 무엇을 상상했겠는가? 지금 그녀는 어디에 있을까?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누구와 함께 있을까? 어떻게 하고 있을까? 이렇듯 질투하는 사람은 그 모든 것을 상상한다네. 그러므로 모든 사랑의 시작에는 일종의 환상과 착각 혹은 상상과 오해가 존재하지 않겠나.

그리고 늘 울고 싶기도 했고. 늙은이가 되면 기억의 무게를 견뎌내야 하니까. 인간의 감정도 역시 서서히 늙어간다네. 끝까지 살다 죽는다 해도 죽는 순간에 느껴지는 건 아마도 분노일 거야.

하지만 나는 지금 솔직해지고 싶네. 그 시절에……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분명히 남성 우월주의자였다네. 남성이 자식과 여성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거지. 내가 하인숙을 온전히 소유하겠다는 욕망이 있었고, 지극한 이성애적 사랑으로 그녀의 동성애적 성향을 상쇄시킬 수 있다고 허황된 계산을 한 거지.」

「그러나 그녀는 훨씬 강했지요. 자신의 독립성을 지키려는 자기 보존 본능이 강했기 때문에 소유의 욕망을 무력화시켜버렸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생각해도…… 내가 한심하더라고……」



「다시 소설로…… 넘어가죠.」

「훨씬 후의 일이지만…… 어느 날 저녁, 나는 그 망할 놈의 소설을 또 다시 펴 들었네. 천천히 읽어갔지만 다시 읽으니 역시 짧고 얄팍하더군. 너무 자주 읽으니까 마침내 친숙한 글이 되었지만. 그러니까 작가의 생각의 흐름이나 문장의 구성에 있어서 독특한 습성이 눈에 들어오니까 글의 흐름을 알게 되더군.

어쨌거나 내 이야기가 나오니까. 그러나 모욕당하는 느낌과 동시에 그 안에 내 모습이 왜곡돼서 드러나 있다는 느낌도 받았지.

내 이름은 딱 한 번 나오는 거야.

무언가 불편한 심정이었고 억울하기도 했지.

그 작가는 내게서 너무 많은 걸 훔쳐갔어.

나는 밤을 거의 꼬박 새며 한 단어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장씩 몇 번이나 꼼꼼하게 읽어나갔지. 그건 완벽한 헛소리였어. 특히 하인숙과의 관계는…… 내가 그 소설에서 찾으려 한 건 내 청춘 시절 내 삶의 흔적이었는데 정작 발견한 건 그 작가의 자기 반영적인 헛소리였어. 그때 그는 고작 23살밖에 안 되었는데……

나는 그 작가가 쓴 또 다른 소설들을 모두 읽었는데 나는 그것들을 통해 점점 그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네. 그 작가의 의도와 그 많은 독특한 부끄러움의 이미지를 이해할 수 있었지.

물론 그 이야기에서 흡입력은 많이 부족했어. 턱없이 부족했다고 해야겠지. 섬세한 감수성이 절제되어 있지도 않고…… 아주 속물적이었어.

그러나 그가 그 소설로 성공하려고 어떤 책략이나 전략을 세우려고 한 것으로는 볼 수 없네. 20대 초반에 썼으니까 말이야. 그때만큼은 순수했겠지.」

「그것은 옳으신 지적입니다. 흠이 없는 텍스트가 어디 있겠습니까만. 작가 자신도 처음부터 그걸 알고 있었지요. 지금 다시 읽어보면…… 이제서야 알게 되었는데요…… 쓸데없이 우울한 감정이 전체를 지배하고 있어요. 간결하지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불가해성을 지닌 것도 아닌…… 아주 지겨운 멜로드라마이지요.

그러니까 50년이 지났지 않습니까? 그 작가도 이제 말년이 되어 죽음을 향해 천천히 걷고 있지요. 그러니 그 작품은 작가 자신의 마음 속에서 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마음 속에서도 그 생명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들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군.」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인숙을 사랑하긴 했던가요?」

「나는 그녀를 깊이 사랑했거든. 사랑이란 얼마나 이상한 감정인가. 그녀가 영영 떠나갔다는 걸 마침내 깨닫게 되었네. 그녀가 내 삶 속에 머물러있으란 희망은 도저히 가질 수 없었어. 혼란스러웠지. 그때 분노의 기억 속에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네. 산다는 게 얼마나 역겨운 일인가.」

「알고 보니까 말입니다…… 하인숙은 페미니즘의 선구자였네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녀의 성적 정체성이……?」

「당신이 잘 지적했네. 하인숙은 확실히 여자이긴 하지만 양성애자이고 동성애자였다네. 내가 나중에서야 그녀의 비밀을 간파하게 되었지.

그러면 그녀가 왜 날 몇 번씩이나 만나주었다고 생각하는가? 그건 성 정체성에 관한 탐색의 과정이었네. 남자를 사랑할 수 있는지? 남자와 섹스를 해도 괜찮은지? 어머니의 성화처럼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지? 자기는 호모로서 여자만 사랑할 수 있는지? 남성을 너무 싫어하는지? 그런 걸 확인하고 싶었던 거지.

그때 그녀는 길 잃은 영혼이었어.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지 남몰래 자기만의 삶을 유지하려고 발버둥 치는 여자였네.

그러나 마지막까지 그녀는 알 수 없는 인물이었네. 그녀에 대한 진실을 결코 알 수 없어서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되었지.

나는 우리가 전적으로 남성적이거나 전적으로 여성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네.」

「그녀는 외면적으로는 극도의 여성성을 지닌 여성이지만 내면적으로는 확실하게 남성이었군요. 원래 인간 본질의 탐구에 사로잡혀 있는 소설가에게 이러한 이중성을 묘사하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지요.

그러나 그는 그걸 몰랐던 거죠. 진지한 작가가 아니었으니까요.

그 후…… 그러니까 이혼하고 나서겠지요. 다시 여자를 만난 일이 있었던가요?」

「…… 내가 그 회사를 그만둔 후 10여 년 동안 몇 군데 회사에서 재무 담당이나 감사 같은 직책을 맡았었지만. 완전히 직장 일에서 손을 뗐고 그런 후 여기로 내려 온 거지.

그 동안 여자를 사귀어볼까 생각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피곤하기만 했어. 그렇다고 내가 숙맥은 아니었으니까 몇몇 여자들을 만나긴 했었지. 그러나 절대로 진지한 관계는 아니었네. 부담스러울 정도로 진지해지면 안 되니까. 철저하게 자기 방어적인 거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 * *



나는 여기에서 프랑스 누보로망 작가 로브그리예의 견해를 소개하고자 한다.

친한 자매처럼 늘 같이 붙어 다니는 레즈비언들로부터 안절부절 못 하는 범죄자들을 거쳐 탐정들, 강도들에 이르기까지, 창녀들로부터 순결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양심에 얽매인 정의의 사람들로부터 불의의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사랑에 가학적인 사람들, 논리적으로 미친 사람들, 소설의 그 훌륭한 작중 인물은 무엇보다 먼저 이중적이어야 한다. 줄거리가 인간적이면 인간적일수록 그 줄거리는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될 것이다. 결국 책 전체가 보다 많은 진실을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더 많은 모순을 내포할 것이다.





8. 우리는 그 해 여름 내내 그 이야기에 골몰했다. 우리들은 어느 덧 친밀한 사이가 되었고 결코 피상적인 대화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가 없었더라면 바닷가에 대한 오랜 향수가 차갑게 식으면서 무료한 시골 생활 때문에 금방 싫증이 나버렸을 것이다.

그가 말했다.

「이야기가 뒤죽박죽이 되었네. 순서대로 나가지 못하고. 나는 상고를 겨우 나와서 그 당시 내 처지에 대학은 언감생심…… 아버지라는 작자가 죽고 나니까 그나마 우리를 먹여 살려주던 쥐꼬리만한 생활비가 뚝 끊겨버렸어. 사내아이에게 아버지가 없다면 그건 고아나 다름없는 거야. 아버지가 없으면 더욱 분명하게 아버지를 의식하게 되지. 나는 어쩔 수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순천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네. 어떻게 해서든 취직해서 입에 풀칠이나 하려고 말이야.

어쨌거나 내가 그 회사에 입사해서 7년 쯤 지나니까 경리부장이 되었다네. 그때 마누라의 남편이 죽었는데……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 내막은 모른다네. 그들이 입을 닫아걸고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으니까.

나는 그때 완전히 회사 인간이었어. 귀를 찢는 자명종 소리가 나를 새벽 잠에서 깨웠지. 나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베개에서 머리를 들고 눈곱이 달라붙은 눈을 억지로 떠서 곁눈질로 시간을 확인하였네. 그때는 10분만이라도 더 자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지.

내가 아침에 출근할 때는 마누라는 깨어나지도 않았다네. 단 한 번도 아침이면 ‘잘 다녀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네.

그리하여 오전 8시에 회사에 출근해서는 매일 야근을 하였지. 내가 매일같이 하는 일이란 전표, 분개장, 원장, 영수증 등 회계장부, 월말 결산서류, 분기 보고서, 연말 결산서류, 재무제표를 처리하는 것이었고, 더 중요한 일은 가끔 비밀장부, 비자금, 분식회계를 처리하는 일이었고 그리고 매일처럼 거래 은행에 들락거렸다네.

내가 그렇게 해서 시골 상고 출신인데도 그나마 장인의 빽 때문이었는지 경리부장에서 상무로 승진하였고, 10년 동안이나 만년 상무를 했고 그 후에는 또 10년 동안이나 만년 전무를 하였다네.

이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처가 쪽에서는 내가 반드시 필요했던 거야. 나는 상고 출신에 시골 촌놈인데 재혼이든 아니든 어떻든 부잣집 오너가의 딸과 결혼하는 게 싫지 않았네. 세속적인 속물근성에 따른 생존 본능이거나 자기보존 본능이 작용된 것이지. 내 앞길이 훤히 뚫리는 기분이었거든.」



「그 결혼으로 횡재를 한 셈이네요. 그런데 정략 결혼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그 회사의 진짜 대주주는 형님이었다네. 그러나 지병이 있어서 회사의 경영을 잠시 동생에게 맡겨놨는데…… 그 동생이 바로 내 장인이었지.

내 장인은 대표이사가 되었지만 회사 지분은 형님의 반의 반에 불과했어. 그런데 형님의 병이 깊어지면서 욕심이 생긴 거야. 황금에 대한 욕망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거고 그걸 탓할 수는 없다네. 그러니까 돈 앞에서는 형님도 없고 동생도 없는 거야.

그래서 장인은 회계 장부를 조작해서 비자금을 조성하기 시작한 거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주로 매입 단가를 높이고 매출 단가를 낮추어서 그 차액을 챙기는 거지. 그리고 회사가 커 가니까 자본금을 늘려야 한다면서 증자를 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 지분을 늘리는 거지. 내가 만년 전무로 퇴직할 때쯤에는 자본금도 많이 늘었고 회사 매출도 500억대를 넘어서게 되었지.

그런 은밀한 과정에서 경리를 담당하고 있는 나의 재무회계에 대한 지식과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어. 그랬으니까 그쪽에서 먼저 나에게 은근슬쩍 접근해서 결혼을 부추긴 거지. 나는 멍청
2018-03-30 11:5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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