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거리 옆 인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이리저리 엉켜 있는 차들 사이로 승용차 한 대가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 70대 택시기사를 밀어내고 있었다. 속도를 내어 움직인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도 모자랐는지 40세 전후의 승용차 운전자는 차에서 거칠게 내리더니 심한 욕설을 하기 시작했다. 교통정리 과정에서 무언가 실랑이가 있었나 보다. 여기까지는 예상 가능했다. 그런데 다음 장면. 단단하고 날렵한 체형의 승용차 운전자는 공중으로 뛰어오르더니 이단옆차기로 노인을 세게 날려버렸다. 차도에 서 있던 노인은 인도로 나동그라졌다. 그 운전자는 다시 차에 올라타더니 이번엔 뒤에 서 있던 마을버스를 후진하여 들이받았다.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다들 놀랐는지 엉망이 된 도로 위에서 아무도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다행히 함께 교통정리를 하던 동료분이 있었고, 마을버스 기사도 내려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고 신고를 했다. 말도 안 되는 장면에 나도 흥분하고 분노했다.

그날 오후 ‘임계장 이야기’라는 책의 작가가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다. 임계장이란 임시계약직 노인장이라고 한다. 슬픈 신조어다. 작가는 퇴직 후 생계를 위하여 경비 업무를 하고 있는데 틈틈이 작성한 메모를 책으로 출간했다고 한다. 작가가 경비업무를 하며 만난 사람들은 극소수의 나쁜 사람, 소수의 좋은 사람, 다수의 무관심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어디에 속할까? 별다른 고민 없이 답이 나왔다. 나는 다수에 속한다. 출근길에 그 승용차 운전자를 보고 분노했고 나동그라진 기사님에게 동료와 마을버스 기사가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만일 아무도 없었다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었을까?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후에 닥칠 번거로움도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상종 못 할’ 승용차 운전자와 잘못 엮이기라도 한다면…. 다른 다수의 무관심한 사람들도 정말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나처럼 용기가 없기 때문일 거다.

약한 자에게 행해지는 수많은 ‘이단옆차기’를 방조하고 소리 없이 일조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깊은 씁쓸함을 떨쳐낼 수가 없다.

 

/이수연 변호사

서울회·법률사무소 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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