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문자벨이 울렸다. 비스듬히 누운 채 팔을 뻗어 기계적으로 내용을 확인했다.

“부고 : 94학번 최○○ 본인상”

본인상? 몸이 튀어올랐다. 핸드폰에 얼굴을 바짝 대었다. 다시 봐도 분명 본인상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최○○은 같은 과 동기다.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4년간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으며 지냈다. 그녀는 졸업하자마자 고향으로 갔고 드문드문 건너오는 소식을 들었는데, 마지막은 십여 년 전으로 법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갔다고 했다. 멀리 있고 개인적으로 연락을 안 해도 소식이 들려오는 게 신기했고 “잘 살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십여 년이 흘러 누가 보냈는지도 알지 못하는 단체공지를 통해 그녀의 이름을 마주했다.

76년생인 최○○은 만 42세로 삶을 마쳤다. 부고 소식을 들은 그날, 티비 화면에서는 온종일 헝가리 유람선 침몰 소식이 속보로 나왔다.

가까운 친구에게서 조심스레 전화가 왔다. 나 역시 같은 문자를 받았고 다른 내용은 모른다고 답했다. 우리는 그녀가 세상을 뜬 연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으며 남겨진 가족들을 안타까워하지도 않았다. 그러기에는 그녀의 죽음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부고 알림에 그녀를 떠올렸으며, 내 과거와 미래를 생각했다. 그리고 별일 없는 현재를 다행이라 여겼다. 동기의 죽음과 그 가족의 아픔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는 내 자신이 죄스러웠다.

이렇게 황망한 소식을 들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땐 나의 죽음을 미리 알기를 원하지 않았다. 죽음의 두려움이나 고통을 모르는 채 잠드는 것처럼 죽음을 맞이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를 원한다. 그런데 막상 그런 때가 온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일주일 뒤 그녀의 번호로 글이 올라왔다. 프로필 사진 속의 친구는 환하고 익살스럽게 웃고 있었다. “큰 딸 ○○○입니다. 엄마를 위해 슬퍼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제가 엄마를 본받아 잘 살아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지켜봐 주세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제야 비로소 그녀의 죽음이 실감 났다.

 

/이수연 변호사

서울회·법률사무소 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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