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어쩌지?”

차를 세우고 동네 구경을 다녀오니 비어 있던 주차장이 꽉 차 있었다. 밀어도 보았으나 단 한 대의 차도 움직이지 않았다. 난감했다. 관리인도 없었다.

벼르고 별렀던 울릉도 여행이었다. 5시간을 찻길로, 3시간을 뱃길로 달려 도착한 그곳은 가는 동안의 고생을 충분히 보상해 주었다. 아름다운 빛깔의 바다, 괭이갈매기, 아직 간직하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 담백한 원주민들. ‘작은 섬 여행’의 매력에 푹 빠진 둘째 날, 이곳 공용주차장에서 처음으로 불쾌해지려는 참이었다.

잠시 후 지나가던 60대 부부가 난감하게 서 있는 우리를 보았다. 아저씨는 “그냥 빼면 돼요”라고 했다. 다시 한 번 차를 밀어보았으나 역시 꿈쩍도 안 했다. “열쇠가 다 있어요.”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아저씨가 다가와 우리 앞에 서 있던 차의 운전석을 열어 보였다. “여기 열쇠가 다 꽂혀 있다니까.” ‘아….’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알지도 못하는 남의 차 안에 들어가 어떻게 운전을 한단 말인가. 아저씨는 주저하며 서 있는 우리를 향해 씨익 웃고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난생처음 보는 우리를 위해, 영원히 서로 누구인지 모를 우리를 위해 한 대씩 차를 빼내시고는 떠나셨다. 아저씨께 감사한 것은 물론이고, 이 낯선 경험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생각해보니 이곳에서 남의 차를 운전해서 가져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었다. 섬 안에서 굴러다니는 것만 봐도 누구네 집 차인지 다 알겠다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분쟁이란 언제 어디서도, 어떠한 이유로도 발생할 수 있다. 별거 아닌 일에도 결연한 태도로 다투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를 믿어야만 가능한 광경은 그곳의 바다 빛깔보다 더 아름다웠다.

10년쯤 후 다시 한 번 울릉도에 가려 한다. 그때도 괭이갈매기가 섬의 주인일까? 그때도 공용주차장 자동차 안에 열쇠가 꽂혀 있을까? 그때도 무심하게 차를 빼주시고는 유유히 사라지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이수연 변호사

서울회·법률사무소 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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