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다닐 때 가장 좋아한 과목은 형사정책이었다. 법학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교양과목을 통틀어도 4년 동안 가장 흥미로운 수업이었다.

교과서 앞부분에 범죄인론-어떤 사람이 범죄인이 되는가에 대한 논의-이 나온다. 롬브로소는 “범죄인은 태어날 때부터 범죄인으로서의 소질을 가지고 있으며 신체적 특성도 가지고 있다”는 생래적 범죄인설을 주장했다.

처음 이 이론을 들었을 때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왜 이런 학설을 아직도 교과서에 실어 놓는 거지?”하고 생각했는데, 사건을 접하면 접할수록 자꾸만 생래적 범죄인설이 떠오른다.

예전에는 선천적인 것이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며 후천적인 것이 절대적이라고 믿었는데, 신체적 특성까진 아니더라도 범죄 DNA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이를 먹어가며, 타고난 성향을 무시할 수가 없다는 경험칙이 쌓인 탓이기도 하다. 생래적 범죄인설에 따르면 양극단의 결론이 가능하다. 태어날 때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이니 범죄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도 할 수 있고, 어차피 갱생이 될 수 없으니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고도 할 수 있다. 롬브로소는 후자를 택했다.

사형제도에 대해서도 비슷한 고민이 있다. 나는 단호한 사형폐지론자였다. 이유는 명쾌했다.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지를 때는 그 개인보다는 사회의 책임이 더 크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사회가 기여한 부분만큼은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사형은 범죄를 저지른 개인에게 책임을 전부 전가하는 것이므로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사형폐지론자이지만 예전처럼 확고하지는 못하며 때때로 의문을 갖는다.

형사정책 뒷부분으로 가면 피해자학이 나온다. 피해자학은 형사정책에서 가장 근래에 나온 분야다. 피고인, 피의자의 인권이 어느 정도 자리 잡았을 때 비로소 피해자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와 법이 피해자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이제야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고 그들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연일 나오는 뉴스 내용에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이수연 변호사

서울회·법률사무소 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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