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책장에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작성한 일기장과 6학년 때 작성한 일기장이 꽂혀 있다. 40년 이상 된 일기장을 어떻게 보관하게 된 것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부모님이 나중에 부모님 나이가 되었을 때 읽어보라고 보관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 일기장에는 숙제로 인한 에피소드, 반별 축구대항전, 민방위 훈련 모습, 혼분식 도시락 검사, 한 달에 한 번씩 시행한 조기 청소 등이 적혀 있다. 지금 필자는 몇 년 전부터 감사 일기를 적고 있다. 그것을 감사 일기라고 호칭한 것은 매일 필자가 겪는 일상 중 감사에 중점을 두고 매일 다섯 가지를 적고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로서의 일상은 대부분 비슷한 모습일 것이다. 출근하여 의뢰인과 상담하고 진행 중인 사건은 서면 작성하여 의뢰인에게 확인 받아 제출하며, 형사사건은 구치소 접견 다니고, 정해진 재판 기일에 출석하여 변론하고, 최종적으로는 선고 결과를 듣는 것이 변호사의 일상이 아닐까 싶다. 이런 일상에 대해 언제 은퇴하여 이런 업무적 부담에서 빨리 벗어나나 하는 생각도 때론 하지만 생각을 달리하여 이런 일상을 감사로 바꿔 매 순간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려 노력해본다.

출근할 사무실이 있다는 것, 검토하여 의견을 보내줘야 할 업무가 있다는 것, 필자를 믿고 수천 수억 원의 민사사건을 맡기고, 형사사건에서는 신병이 구속될 수도 있고 구속된 사건에서는 몇 년을 교도소에서 보낼 수도 있는데 이를 생면부지의 필자에게 맡기는 것이 때론 너무도 감사하다. 업무적인 측면이 아닌 일상에서 돌아보더라도 비바람을 피할 집이 있고, 출·퇴근 시 이용할 차가 있고, 때마다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고, 사랑으로 돌보아야 할 가족이 있고, 병원에서 아직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될 건강이 있다는 것 등이 감사할 일이다.

상담료도 받지 못하면서 나의 시간을 차지한 것에 불평하기보다는 상담한 것만으로 감사하고, 선고 결과에 대해서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무조건 감사하려 노력해본다. 아들을 병으로 잃은 후 조문객을 상대로 아들 잃은 사람의 아픈 마음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필자는 형제들 사이의 상속재산분쟁을 상담하러 온 이에게 폭력이나 총으로 해결하지 아니하고(경찰서에 보관 중인 총을 돌려받아 형제를 쏜 사건이 있었다) 법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감사한 일이라고 부지불식간에 말한 적이 있다.

감사는 감사할 일이 있어서 감사하는 것이 논리적이겠으나 감사를 하면 감사한 일이 오히려 생기게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아들의 사망에도, 자신을 상대로 소송을 건 상대방에게도 감사의 제목을 찾으니 감사할 거리가 있다. 헛수고로 끝난 것 같은 상담에도 나중에 그와 유사한 사건 상담 시 선임할 수 있는 준비를 한 것은 아닌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은 사건은 놓친 법리와 패소자의 마음, 예전에 승소한 사건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알게 된 것 같아 감사하다. 감사는 습관이고 생각으로 먹는 보약이 아닌가 싶다. 오늘도 생명이 있고 건강이 있다는 것에, 출근할 사무실이 있다는 것에 일단 마음을 다스려 감사해보자.

 

 

/임대진 변호사·경기중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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