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수원지방법원, 검찰청과 그 주변 변호사 사무실은 원천동에서 광교로 옮겨가느라 한바탕 난리다. 수원지방법원이 지원에서 본원으로 승격한 것은 1979년이지만, 원천동 청사로 옮겨온 것은 1984년이다. 원천동에서의 그 소명도 다하고, 2019년 3월부터 광교에서 새 역사가 시작된다.

수원에서 2000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며 사무실 이전을 몇 차례 하였지만, 이번 사무실 이전은 그 느낌이 다르다. 예전에는 있던 짐들을 대체로 옮겨왔지만, 이번에는 오랫동안 묵혀왔던 각종 기록, 신문, 협회지, 책 등을 정리하며 이전하게 되었다. 정리하다 보니 책장 밑 넓은 칸에는 대한변협에서 2000년부터 발행해온 변협신문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모두를 보관하고 있는 것은 아니나, 창간호부터 대략 150호까지의 변협신문이 보관돼 있다. 그 외 2011년 계간지로 발행하다 5호까지 발행하고 폐간된 ‘The Way’ 변협 문학지와 연수원 시절 소식지인 미네르바도 상당량 보관돼 있다.

이삿짐을 정리하다 그 당시 발간된 변협신문들을 몇호 넘겨보았다. 지금과는 다른 변호사의 위상이 느껴진다. 매호 발간될 때 몇명의 변호사가 활동하고 있는지를 표시하는 곳에는 현재의 2만5000여명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4600여명의 변호사가 활동하고 있다고 표시돼 있고, 매호 발간될 때마다 증가하는 변호사의 숫자도 몇 명에 불과하다. 광고에도 현재의 변협신문과 크게 다른 점은 파마머리를 한 결혼정보회사의 대표로 보이는 어느 여자분 얼굴 광고가 계속해서 실려 있다. 연수생들의 출신학교, 나이, 전화번호가 기재된 연수생 수첩은 결혼정보회사의 최고의 족보가 아니었나 싶다.

당시는 그러한 것이 아무런 문제 없이 받아들여졌다. 연수생들은 시험합격만으로 다른 직업군에 비해 중매시장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는 호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변호사업계의 어려움에 대한 기사가 실리면 댓글들 대부분 비난 글이다. “왜 우리가 변호사업계 어려움에 신경 써야 하느냐, 당신들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다. 결혼정보회사 최고 대우를 받는 자리에서 이제는 변호사업계의 어려움을 사회에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해도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시대다.

이런 반응을 보며 과연 우리 변호사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변호사단체들은 각종 기관에서 무료상담, 이웃돕기성금 등을 하고 있으나, 연례행사로 치부될 뿐 거의 관심이 없다. 변호사들도 경제 사정이 여의치 못한 사람이 있겠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변호사들이 나누는 재물이나 법률 지식보다 변호사에게 소중한, 그러면서 변호사에게 부족한, 그리고 그들에게도 소중한 것을 나눠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변호사에게 소중하고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형편에 따라 다르겠으나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 그들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의 ‘육체적인 수고’ 등이 아닐까. 변호사들의 이웃을 향한 사랑이 더 성숙되고 진심이 전달되길 기대해본다. 사무실 이전하면서 철드나 보다. 그러다 보니 가지고 있는 과거 대한변협신문이 더욱 소중해진다.

 

 

/임대진 변호사·경기중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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