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변호사 업무를 시작하면 각종 법률문서를 구입했지만, 이제는 서식을 정리한 책이라든지 민법주해, 대법원 판례집 등 법률문서를 구입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설령 법률문서는 구입하지 않더라도 각 직역의 법조인들을 망라하여 정리한 법조인대관은 구입했으나, 이제는 그마저도 구입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필자는 우연히 동료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했다가 2006년에 발간한 법조인대관이 비치된 것을 보고 필자의 이름을 찾아보았다. 당시 존경하는 인물로 ‘장기려’ 박사를 기재한 것을 보았다. ‘앗 내가 언제 이런 정보를 제공한 적이 있었던가.’

장기려 박사(1911~1995)는 6.25 전쟁 전 북에서 김일성을 치료하기도 했고, 전쟁 중인 1.4 후퇴 때 이북에 아내와 가족들을 두고 아들 1명만 데리고 월남한 후 부산에 의료보험이 없던 시절에 1968년 민간주도 지역의료보험을 최초로 시도한 의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행려병자를 치료하고 평생을 사회봉사와 의료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79년에는 막사이사이상, 1995년에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가 주는 상, 호암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국가로부터는 각종 훈장을 수여받는 등 대한민국 최고의 의사이자 사회봉사가이기도 했다.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 그가 주도한 의료보험에 가입한 아버지를 따라 부산진역 부근의 청십자병원에서 진료를 보는 그로부터 치료를 받은 적이 있고, 각종 강연회에서 그의 강연을 여러번 들은 적이 있다.

필자가 그를 존경하는 인물로 기재하게 된 것과 관련해 몇 가지 기억하는 일화가 있다. 장기려 박사가 평생 집도 없이 병원 옥상 옥탑방에서 거주했고, 월남한 이후로는 북에 두고 온 아내를 기억하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이산가족 재회 기회마저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고, 영양실조에 걸린 환자에게는 진료비를 받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주며 “당신의 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잘 먹는 것”이라며 돈을 쥐어 보내고, 치료비가 없는 환자를 병원 몰래 밤에 도망가게 했던 일화들이다.

혜민스님이 어느 일간지에 기고하길 “사람들이 누군가를 존경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그분의 말과 행동이 도덕적으로 훌륭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분의 재능으로 어떤 분야에 큰 성과를 낸 경우”라고 했다. 누군가를 존경하면 그의 훌륭한 점, 본받고 싶은 점을 가슴으로 기억하며 살아가게 되어 존경받는 사람보다 존경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효과를 준다고 한다.

스승의 날을 포함한 각종 기념일이 많은 5월을 보내면서 필자가 존경하는 인물로 기재한 장기려 박사와 같은 삶을 변호사의 영역에서 살고 있는지, 그분의 삶의 방식을 따르려 노력하며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소외된 자의 이웃으로 살아간 장기려 박사를 존경하는 인물로 기재한 필자가 법조인대관에서 그를 우연히 다시 보게 된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최근의 한 사건이 왠지 나를 마음 아프게 한다.

 

 

/임대진 변호사·경기중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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