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아들과 TV를 보다가 나눈 대화의 일부이다.

“아빠, 저 사람 아는데 아빠 친한 대학 선배야….” 아빠, 저 사람 아는데 아빠 연수원 동기야….” “아빠, 저 사람 아는데 최고위과정 같이 다녔어….” “아빠, 저 사람 아는데 사법시험 공부 같이 했어….”

듣다못해 아들이 나를 쳐다보며 한마디 한다. “근데 우리 아빠는 왜 여기 있어. 우리 아빠는 마을변호사야 뭐야.” 아들이 건네는 ‘우리 아빠 마을변호사야 뭐야’라는 이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아들이 말하는 마을변호사라는 단어에는 아빠도 다른 사람처럼 유명해졌으면 좋겠다는 희망, 요즘 연일 변호사업계가 어렵다는 보도에 아빠에 대한 걱정이 함축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염려를 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과 한편으론 아들이 아빠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약간의 서운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서울·경기에 전국의 변호사 80% 이상이 집중되어 있어, 법무부와 대한변협에서는 몇해 전부터 변호사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하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법적인 문제해결에 어려움이 없도록 고향이나 근무지와 가까운 지자체와 연결하여 법률서비스를 제공받게 하자는 취지로 마을변호사제도를 도입하였다. 최근에도 마을변호사 지원을 하라는 메일을 받은 것을 보면 아직도 변호사가 없는 곳이 있는 것 같다.

아들과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마을변호사에 대한 명칭의 선입견은 도입 취지와는 뭔가 자연스럽지 못한 것 같다. 아들이 “우리 아빠 마을변호사야 뭐야”라고 했을 때 드는 생각은, 변호사 앞에 마을이라는 적은 단위의 장소적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나를 돕는 변호사가 유명하지 않은 그저 그런 변호사는 아닌가 하는 편견을 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사용이 금지된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은 뭔가 실력이 뛰어나고, 전 세계를 누비며 수입도 많은 유능하고 유명한 변호사라는 오해를 준다는 것이다.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이에 대비되는 마을변호사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이러한 인상을 주도록 하는 것은 마을변호사 도입 취지와 어긋나는 것은 아닌지.

이러한 생각은 아들과의 대화에서 느낀 필자의 소견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많은 변호사들이 시간을 쪼개어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는 마을변호사제도가 혹시나 법률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법률수요자에게 적절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닌지.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준다면 이는 명칭에 있어서 적절하지 못한 것을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소장을 받은 피고 측과 법률상담을 하다가 피고가 하는 얘기들 중에 가끔은 이런 얘기를 듣곤 한다. 원고가 ‘서초동 변호사’를 선임하여 소송을 걸었는데, 나도 서초동 변호사를 선임하려다가 먼저 여기를 들렀다는 식의 표현 말이다. 이는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활동하는 변호사의 비애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서울이라는 단어가 주는 인상은 한해 두해 만에 쌓인 것도 아니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야한다는 오래된 우리의 속담에도 이런 편견은 남아 있다.

그러나 장소적 개념인 마을변호사라는 명칭보다는 도입 취지에 맞게 ‘이웃변호사’라는 명칭은 어떨지 생각해본다. 이 명칭이 나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나를 찾아온 나를 돕는 변호사라는 도입취지에 더 부합하는 것은 아닐지. 명칭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명칭에 좀 더 세세한 주의를 기울인다면 제도의 활성화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닐까 아들과의 대화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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