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축제에 대한 첫 인상은 10년 전에 있다. 최근에는 서울광장과 같은 넓은 공간을 확보하게 됐지만 당시만 해도 퀴어축제에 할당된 것은 청계천 옆 베를린광장이라는 좁은 공간이었다. 하필 그해엔 월드컵이 있었고 퀴어축제 당일에도 한국 축구팀 경기가 진행됐다. 하늘이 어두웠고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붉은색 옷을 입은 시민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응원전을 펼치는 광화문 저쪽과, 축제라기엔 다소 한적하고 쓸쓸해 보이기까지 한 퀴어축제는 대조적이었다. 주목받는 국가와 주목받지 못하는 소수자의 현실이 드러난 장면이었다.

악플이 많이 달리는 기사는 단연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것이다. 성소수자, 난민, 양심적 병역거부, 중국동포와 같은 주제가 대표적이다. 성폭력 등 여성·젠더 이슈도 그렇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가 받는 혐오와 차별의 구체적인 상황과 이를 금지해야 하는 이유, 편견과 고정관념을 해소하기 위한 통계, 깊이 연구한 사람들의 말을 기사에 넣어 맥락과 취지를 풀어써도 악플이 달린다.

분노에 찬 항의 이메일을 받을 때도 많다. “그들을 옹호하는 당신 기사 때문에 한국이 망해 간다”는 식이다. 혐오와 차별로 조직화 된 단체가 기사를 계기로 소수자를 탄압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한다. 이들은 굉장히 적극적이다. 정상이라는 범주를 규정하고 거기에 포섭되지 않으면 배척한다. 색출하고, 추방하고, 가둬놓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더 나아갈 것도 없다. 최근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가 의정부고 학생들의 흑인 분장에 불쾌감을 드러냈다가 논란이 일자 사과한 사태 말이다. 와중에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언론 보도도 있다.

헌법은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이 권리 실현을 위한 법과 제도는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시도된 지 14년째 공방만 계속되고 정치권이든 정부든 눈치만 볼 뿐 나서는 쪽이 없다. 정치권이 되레 혐오와 차별을 재생산하고 소수자 이슈를 정치공방에 활용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토론회에서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은 살면서 ‘소수자성’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누구에게나 소수자성은 이미 존재하고, 앞으로 소수자성을 갖게 될 수도 있지만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사이 한국에서 혐오와 차별은 익숙해져 버렸다. 혐오와 차별의 표현을 내뱉고,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게 실질적인 불이익을 주는 게 너무 쉽게 이뤄지고 있다. 여기는 혐오와 차별, 방치하는 나라다.

 

/이혜리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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