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연히 부서 명칭이 있는데도 선배들은 법조팀을 자주 ‘서초동’이라고 불렀다. 서울에서 태어나지 않은 나는 서초동에 관해 거의 아는 게 없었다. ‘서초동 출입기자’들은 평소엔 회사에 들어오지 않다가 가끔 한 번씩 나타났는데, 말끔한 정장 차림에 표정도 왠지 굳은 느낌이라 기세가 남달라보였다. 서초동발 뉴스가 하나 터지면 1면부터 안쪽 지면까지 도배되기 십상이었다. 서초동은 엄청난 곳인가 싶었다.

그 서초동에 나는 2016년 11월에 왔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면서다. 이젠 내 입에도 ‘서초동’이 붙었다. 교대역 11번 출구에서 서울고등법원 동문까지의 오르막이 힘겨워 숨을 가쁘게 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법조인의 말을 어렵지 않게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중요한 판결 선고가 나오면 빠르게 내용을 파악한 뒤 스트레이트 기사에 상보까지 쓸 정도가 됐다. ‘이건 죄가 되고, 저건 죄가 안 되고….’ 허세에 찬 논평을 하며 으스댈 때도 있다. 공론장에서 해결할 사안이 전부 서초동으로 집결하니 서초동 출입기자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 불현듯 생각이 든다. 서초동 밖 세상은 까맣게 잊은 게 아닐까 하고. 몇 년 전까지 나는 법정보단 거리를 누비는 게 더 익숙했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밤 수천 명 시민이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며 광화문광장에 모인 현장, 여성 살인 사건에 분노한 사람들이 강남역 10번 출구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속에 꼭 담아뒀던 성폭력 피해사실을 털어놓은 현장. 하루는 철거 위기에 놓인 판자촌에 갔다가 하루는 성매매 여성의 단칸방 업소에 갔다. 합법이냐 불법이냐의 논쟁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존재하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이고, 말하는 것이었다. 서초동 검사·판사·변호사가 사회적 영향이 큰 사건들을 처리한다지만 전국 각지엔 더 많은 사람들이, 사건들이 있다. 언론은 고위공직자 부패 같은 형사사건에 집착하지만 민사·행정사건, 헌법사건도 있다. 무엇이 우리 일상에 영향을 더 많이 미치는지는 모를 일이다.

법이 사회의 기본 토대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부패 척결도, 범죄 처벌도 중요하다. 하지만 세상은 법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오히려 법 바깥에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합의해야 할 것들이 더 많다. 서초동의 나 같은 기자들은 법이라는 틀 속에 갇혀 더 큰 세상을 외면하고 있는지 모른다. 법조인 코스프레를 하면서 말이다. 서초동 기자실 좁은 책상에서 형법의 직권남용죄와 뇌물죄를 탐구하는 오늘도 마음 한 편엔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하는 고민이 남아있다. 정의는 서초동에만 있지 않다.

 
 

/이혜리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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