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국선전담변호사와 국선변호인 보수를 인상하는 예산안을 의결하였다. 전담변호사 보수는 2007년 이후 19년간, 사무실 운영비는 2008년 이후 동결돼 왔다는 점에서 이번 조정은 늦었지만 중요한 출발점이다. 지난해 동일한 증액안이 법사위를 통과했음에도 정부의 미동의로 무산된 전례가 있었던 만큼, 이번 결정은 국선변호 제도 정상화를 위한 실질적 첫걸음으로 평가된다.
대한변호사협회는 그간 국회, 법원, 정부 및 유관기관을 상대로 국선변호 보수 정상화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특히 올해 국정감사 과정에서는 일선 변호사들의 애로를 취합한 의견서를 집중적으로 제출하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전달하였다. 국선전담변호사 보수와 운영비가 물가·업무량·사무실 비용 상승을 반영하지 못해 변호사들이 사비를 투입해야 했던 구조, 반복되는 보수 지급 연체, 특정 변호사에게의 과도한 사건 집중 등은 협회가 꾸준히 지적해 온 핵심 문제였다. 이번 인상안이 이러한 문제 제기를 입법 논의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반영한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선변호 제도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최후의 법적 안전망이다. 그 질적 유지와 발전은 곧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 보장과 직결된다. 그러나 현실과 괴리된 보수 체계는 제도 지속 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해 왔다. 실제로 올해 국선전담변호사 지원 경쟁률이 제도 시행 이후 최저 수준인 3.3대 1에 그친 사실은 현장의 위기가 이미 구조적 단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보수 수준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유능한 인력의 참여가 줄어들고, 국선변호가 형식적 절차에 머무는 위험 또한 커진다. 이는 결국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실질적 법률 조력의 약화를 의미한다.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도 우리 제도 보수 수준은 여전히 낮다. 미국은 시간당 약 25만 원, 일본은 사건당 200만 원 내외를 지급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사건 난이도·소요 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 지급 방식을 유지해 왔다. 이번 인상에도 국제 기준·격차는 여전히 크며, 국선변호의 전문성·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장기 관점에서 근본적 보상체계 재정비가 필요하다.
아울러 올해 시행된 대법원 상고심 국선변호 보수 감액 예규는 제도 안정성 측면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서면 중심 종결을 이유로 보수를 최대 80%까지 감액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은 상고심 기록 검토와 법률 쟁점 분석에 필요한 전문성·노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변협이 감액 기준 시정을 요청한 것 또한 국선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수 조치였다.
이번 인상이 제도 정상화의 진정한 출발점이 되려면, 추가적이고 체계적인 정책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 보수 지급의 안정성 확보, 사건 배당 구조 개선, 사무실 운영비 현실화, 업무량과 난이도에 따른 합리적 보상체계 구축 등 전면적 재정비가 요구된다. 변협은 앞으로도 국선제도 개선과 변호사 처우 향상을 통해 국민 방어권을 두텁게 보장할 수 있도록 국회·법원·정부와 협의를 지속할 것이다.
국선변호는 사법 정의의 마지막 관문이다. 이번 인상이 일회성 조정에 그치지 않고 제도 정상화로 이어지려면 지속적 정책 관심과 충분한 예산 확보가 필수다. 국선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때 비로소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 실질적으로 구현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