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25. 9. 4. 선고 2025므10730 판결 -
1. 서설
본 평석은 대법원이 배우자의 일방적인 공동재산 처분 행위를 「민법」 제840조 제6호의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로 인정한 2025. 9. 4. 대법원 2025므10730 판결(주심 오경미 대법관)을 중심으로, 그 법리적 근거와 실무적 의미를 분석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부부가 함께 이룩한 재산을 일방적으로 처분하는 행위가 혼인관계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해치는 것으로 이혼사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밝힌 의미 있는 판결로 평가된다.
2. 사안의 개요
가. 대상 판결의 당사자 부부는 60년 넘게 혼인생활을 유지하며 농업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그러나 남편이 부부 공동재산인 ①주거지 주택 및 부속 건물과 대지(이하 ‘제1 부동산’)에 대한 수용보상금, ②함께 농사를 지어온 농지 5필지(이하 ‘제2 부동산’), ③그 외 남편이 종중 또는 종중원으로부터 명의신탁 받은 재산이라고 주장하는 부동산(이하 ‘제3 부동산’)의 대부분을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남에게 증여하면서 갈등이 심화 되었다. 처분된 재산은 약 18억 원 이상으로, 전체 재산의 약 77%에 달했다(제3 부동산을 제외할 때는 전체 재산의 90%를 상회한다).
나. 원고인 아내는 피고인 남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공동재산을 임의로 장남에게 증여한 남편의 일방적 재산 처분이 혼인공동체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린 것이라며 이혼을 청구했으나, 원심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3. 이 사건의 쟁점
이 사건의 쟁점은 배우자 일방의 공동재산 처분이 재판상 이혼사유로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다.
4. 대상판결의 주요 요지
가. 대법원은 본 사안에서 남편의 행위를 혼인의 신뢰를 파괴한 행위로 판단하였다. 대상판결은 “혼인생활 중 부양·협조 의무 등을 통하여 공동으로 이룩한 재산의 주요 부분을 부부의 일방이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배우자와의 협의나 그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처분하는 등으로 가정공동체의 경제적 기반을 형해화하거나 위태롭게 하는 행위는, 상대방 배우자의 기초적인 생존과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생활을 매우 곤란하게 하는 것으로서 그로 인하여 부부간의 애정과 신뢰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고 혼인 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한쪽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경우라면 민법 제840조 제6호의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라고 설시하며 원심을 파기하였다.
나. 즉, 부부간의 신뢰와 협력이라는 혼인의 핵심적 요소가 붕괴된 경우, 그 원인이 일방적 재산 처분과 같은 경제적 행위라 하더라도 이혼사유로 충분히 인정될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다. 본 사안에서 제1, 2부동산은 원고와 피고가 오랜 기간 부부 공동생활을 통하여 부양·협조하는 등 노력하여 취득 또는 유지한 것으로서 피고의 단독 명의로 되어 있지만 민법 제839조의2의 “당사자 쌍방의 협력으로 이룩한 재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며, 특히 제1 부동산은 원고와 피고가 오랜 기간 동거하며 부부 공동생활을 이어온 주택과 그 부속 부동산으로서 가정공동체의 공간적 핵심을 이루는 곳이고, 수용 절차의 진행에 따라 원고와 피고는 새로운 거주지의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므로, 그 수용보상금 등의 자산은 부부 공동생활을 이어갈 새로운 주거의 형태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에도 피고는 위 수용보상금 관련 권리가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음을 내세워 그 처분에 반대하는 원고의 뜻을 무시하고 그 전부를 장남에게 증여하였고, 이에 반발하여 원고가 집을 나갔는데도 새로운 주거의 형태나 원고의 생활비 등에 관한 계획의 제시 등을 통해 원고를 설득하거나 이해를 구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원고의 부재중 상의 없이 제2 부동산 전부를 장남에게 증여하였는 바, 피고가 일방적으로 장남에게 증여한 행위는 혼인생활 중 부양·협조 의무 등을 통하여 공동으로 이룩한 재산의 주요 부분을 정당한 이유 없이 배우자인 원고와의 협의나 그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처분하여 부부 공동생활의 경제적 기반을 형해화하거나 위태롭게 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며 피고의 일방적인 공동재산 처분과 함께 그 이후에도 원고의 생활비 등 남은 생애의 도모를 위한 계획을 세우는 등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원고의 경제적 자립과 안정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심각하게 해한 행위를 혼인 파탄 사유라고 보았다.
5. 대상판결의 의의
가. 혼인공동체로서 경제적 신뢰와 협력, 부양·협조 의무 개념 강화
본 판결은 배우자 일방의 공동재산 처분을 단순한 재산 문제로 보지 않고, “상대방 배우자의 생활 기반을 일방적으로 무너뜨린 행위”로 평가하였다. 혼인의 본질이 정서적 유대뿐 아니라 경제적 신뢰와 협력에 기초하고 있고, 부양·협조 의무가 혼인 생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나. 경제적으로 소외된 배우자에 대한 실질적 보호
이 판결은 오랜 세월 가정의 경제를 함께 일구었으나 명의 문제로 재산권 행사에서 소외된 배우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고령 부부나 장기혼 부부의 현실을 반영하여, “혼인에서의 신뢰는 정서적 유대와 더불어 경제적 협력 위에 성립한다”는 원칙을 확인하였다. 또한 앞으로의 이혼사유 해석에서 경제적 신뢰가 중요한 판단 요소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대상판결은 재산처분과 같은 행위가 단순한 금전 문제가 아닌, 혼인의 지속 가능성 자체를 좌우할 수 있는 문제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6. 실무적 시사점
본 대상판결은 이혼소송 실무에서 다음과 같은 전환점을 제시하고 있다.
가. 이혼 청구의 독립적 사유로 구성 가능
기존에는 배우자의 재산 처분에 대해 이혼사유로 주장하긴 하였으나 독립적인 이혼사유로 고려되기보다는 주로 재산분할 기여도 판단에 고려되거나 사해행위 취소소송 등으로 대응하는 데에 그쳤지만, 이제는 일방적 재산처분 행위 자체를 이혼 청구의 직접적 사유로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특히 상대방이 이혼을 거부하는 사건에서 유책성을 입증하는 유효한 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나. 입증의 구체성 필요
- 재산의 공동형성 입증: 배우자의 일방적인 재산 처분행위를 이혼사유로 주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명의와 관계없이 부부가 협력하여 형성한 재산임을 입증해야 한다. 대상판결은 위 협력에는 재산을 취득함에서의 협력뿐만 아니라 재산을 유지 또는 증식함에 대한 협력도 포함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 처분의 비중: 본 사안과 같이 전체 재산 중 처분된 재산의 비율이 매우 크다는 점을 객관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일방적 재산처분: 동의나 상호협의 없이 한쪽 배우자가 일방적으로 재산을 처분하였고, 상대방이 반대 의사를 명확히 표시했다는 점을 증명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 혼인파탄과의 인과관계: 배우자의 일방적 재산처분 행위로 인해 혼인관계의 신뢰가 파괴되고 더 이상 혼인을 지속할 수 없게 된 경위를 구체적으로 주장해야할 필요가 있다.
7. 결론
대법원은 본 판결을 통해 혼인관계로 형성하는 부부 공동생활은 그 구성원인 배우자 상호 간의 육체적·정신적 결합이면서 부양·협조 의무 등을 통하여 공동으로 이룩한 재산을 바탕으로 한 경제적 공동체로 보았다. 배우자 일방이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을 정당한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처분해 상대방의 생활 기반과 신뢰를 무너뜨린 경우, 이는 ‘민법’ 제840조 제6호의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본 대상판결은 부부간 경제적 신뢰와 협력, 부양·협조 의무의 중요성을 재확인한 것으로, 실무적으로도 이혼소송에서 재산처분 행위를 핵심적인 혼인 파탄 사유로 구성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혼인은 신뢰 위에 세워진 생활공동체이며, 그 신뢰가 무너졌을 때 혼인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해당 문장은 본 대상판결이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한선 법무법인 와이앤비 대표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