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절도범이 훔쳐온 일본 약탈문화재, 정부 몰수

부석사 "불상 돌려달라" 소송… 1심 승소, 2심 패소

대법원 "일본 관음사, 일본 민법상 취득시효 완성"

"대법원 판단, 존중해야… 조약·협약 통한 반환을"

△ 금동관음보살좌상(사진: 원우스님 페이스북 갈무리)
△ 금동관음보살좌상(사진: 원우스님 페이스북 갈무리)

일본에 약탈당했다가, 국내 절도단이 다시 훔쳐 밀반입한 고려 불상 소유권은 일본 관음사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준거법인 일본 민법상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돼 일본에 소유권이 있다는 취지다.

하지만 문화재의 출처와 기원이 명백하게 드러난 상황에서, 이를 다시 약탈국에 넘겨줘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국민들의 심리적 저항도 만만치 않다. 

법조계에서는 확정 판결에 따라 일단 불상을 일본에 돌려주되, 이후 국제협약 등을 근거로 약탈 문화재를 되찾아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약탈 가능성 높지만… 일본 민법에 따라 취득시효 완성"

대법원 민사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대한불교조계종 서산 부석사가 정부를 상대로 낸 유체동산인도소송 상고심에서 "금동관음보살좌상을 일본에 반환하라"고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지난달 26일 확정했다(2023다215590).

2012년 10월 일본 대마도(쓰시마섬)에서 금동관음보살좌상(이하 '불상')을 국내에 밀반입한 국내 절도단이 수사기관에 검거됐다. 절도범들은 유죄판결을 받았고, 불상은 몰수돼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보관하고 있다.

문화재청이 2014년 대전지검에 제출한 재감정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불상은 고려 충숙왕 17년(1330년) 서주 부석사에서 제작됐다. 1951년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불상 결연문에는 불상의 제작 시기와 봉안 사찰 위치가 상세하게 기재돼 있다. 불상이 일본에 넘어간 경위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학계에서는 고려사 기록 등을 토대로 고려말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왜구가 약탈해간 것으로 추정한다. 

이에 서산 부석사는 금동관음보살좌상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을 맡은 대전지법 민사 12부는 "부석사에 불상을 인도하라"고 판시했다. 1심 재판부는 고려의 서주 부석사가 현재의 서산 부석사와 동일한 사찰이며, 불상은 도난 내지 약탈 등의 비정상적 방법으로 일본에 넘어갔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법규범적 관점에서 고려시대 서주 부석사가 물적 설비나 인적 구성 등의 연속성을 가지고 서산 부석사라는 점을 증명하기 부족하다"며 "만약 서산 부석사가 불상의 원시취득자임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관음사가 취득시효를 완성해 소유권을 가진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부석사의 겨울(사진: 부석사 홈페이지 갈무리)
부석사의 겨울(사진: 부석사 홈페이지 갈무리)

대법원도 원심이 맞다고 봤다. 서산 부석사가 고려시대 서주 부석사와 동일한 사찰이라는 점은 인정했지만, 소유권은 취득시효를 완성한 일본 관음사에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26일 "서산 부석사가 (서주 부석사와)같은 지역에서 독립한 권리주체성을 가진 전통사찰로 오래 존재해왔고 '부석사' 명칭을 가진 다른 사찰이 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1973년 당시 일본 민법에 따라 관음사가 불상 소유권을 취득하였으므로, 서산 부석사가 원시취득자로 인정되더라도 불상 소유권은 상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유니드르와(UNIDROIT)' 협약 등 통한 약탈문화재 반환을" 

불상 소유권 취득 여부를 놓고 대법원은 물건의 소재지와 행위지, 사실 발생지 등이 외국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사실에 입각해 '국제사법(구 섭외사법)'에 따라 준거법을 결정했다. 이에 취득시효 기간 만료 시점에 불상이 있던 일본국 민법이 취득시효 완성 여부를 판단하는 준거법이 됐다.

관음사는 법인격을 취득한 1953년부터 2012년 도난당하기 전까지 불상을 점유했다. 취득시효 법리에 따라 불상이 불법적으로 일본에 넘어갔더라도, 불상의 소유권은 1973년 취득시효를 완성한 관음사에게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국제협약 등이 약탈문화재를 출처국에 반환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향후에도 반환을 둘러싼 논란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2심은 판결문에서 1995년 만들어진 '유니드르와(UNIDROIT) 협약'을 언급했다. 이 협약은 약탈을 당하거나 불법으로 반출된 문화재를 원래 소유자나 출처국에 돌려주는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만약 반환하지 않으면 체약국 법원이나 기타 권한이 있는 당국에 도난 문화재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

2심 재판부는 "국제법 동향에 부응하여 여러 나라가 불법 반출된 문화재를 기원국에 반환한 예가 있다"며 "불상이 일본으로 불법 반출된 것이라면 기원국인 우리나라에 반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다만 유니드르와 협약 내용은 서산 부석사가 불상 소유자라고 주장하면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불상 반환을 구하는 민사소송인 이 사건과는 적용되는 국면이나 쟁점이 다르다"며 "이 사건에서 불상 소유권자를 판단할 때 유니드르와 협약 취지가 결론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산 부석사는 유니드르와 협약 취지 내지 그 기반이 된 문화재 보호에 관한 국제법 이념 등을 고려해 불상의 반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네스코에서 1970년 채택된 '문화재의 불법적인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도 있다. 이 협약은 체약국에게 협약이 발효된 이후 반입된 문화재에 대해서만 회수와 반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2심은 "우리나라는 1983년에 유네스코 협약에 가입했다"며 적용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1982년 멕시코에서도 고려 불상 도난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한 멕시코 변호사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아즈텍 달력을 몰래 반출했다. 그는 체포됐지만 이 고문서를 멕시코 국립인류학역사연구소에 기중했다. 프랑스는 "절도행위를 통한 문화재 회복은 인정할 수 없다"며 고문서를 돌려달라고 주장했지만, 2009년 '멕시코 영구대여' 협정을 맺음으로써 사실상 아즈텍 달력을 기원국인 멕시코에 돌려줬다. 


● "대법원 판결 존중… 추후 국제협약 등으로 환수 문제 다퉈야"

법조계에서는 우선 대법원 판결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확정 판결에 따라 훔친 불상을 일본에 돌려준 뒤, 다시 국제협약 등을 통해 환수를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대구 수성구갑)은 16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국회 제2간담회실에서 '일본의 약탈 문화재, 어떻게 환수할 것인가'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박중섭(군법무관임용시험 9회) 법무법인 한덕 변호사는 "불상이 국보급 문화재이고 고려 말 왜구가 약탈한 것으로 볼 개연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며 "문화재 보호에 관한 국가 간 조약, 국제협약 등을 통해 국가 차원에서 반환 문제를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봉태(사시 31회) 법무법인 삼일 변호사도 "판결의 당위를 떠나 법치주의 국가에서 확정판결은 권위를 가져야 한다"며 "대마도 불상 반환을 계기로 한일 양국의 법치주의가 더 성숙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불상을 왜구들이 약탈해갔다면 (우선 불상을 일본에 주고)당당하게 약탈문화재를 법과 정의의 원칙에 따라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용수 할머니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제2간담회실에서 열린 '일본의 약탈 문화재, 어떻게 환수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의견을 말하고 있다 
△ 이용수 할머니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제2간담회실에서 열린 '일본의 약탈 문화재, 어떻게 환수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의견을 말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역시 일단 불상을 일본에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일본 땅에 있던 부처님을 한국 사람이 훔쳐왔다면 부처님을 (일본에)돌려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일본도 (전쟁피해자 등)죄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 마땅히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판결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자 서산 부석사 지주인 원우 스님은 페이스북을 통해 "범죄가 시간이 지났다고 합법이 될 수는 없다"며 "대법원이 그 약탈을 합법이라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부석사를 대리했던 김병구(사법시험 44회) 법무법인 우정 변호사도 "약탈 문화재에 대해서는 취득시효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이 나와야 했다"고 비판했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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