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법원장 후보 추천제' 내년 전국 지방법원 확대 실시 계획 발표

2019년 추천된 후보 대신 다른 이 보임시켜 논란… "추천 따로 임명 따로" 비판도

법원 내 '인기투표 전락' 지적도… "재판보다 동료, 선·후배 간의 친분을 중요시해"

일선 판사들이 추천하는 후보 중에서 법원장을 임명하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내년부터 전국 법원으로 확대 실시될 예정이다. 하지만 민주적 사법행정을 실현하겠다는 의도와 달리 '법관 인기투표', '사법의 포퓰리즘화'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와중에 법원 내부에서도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논란이 더 확산될 전망이다. 


● 법원장 후보 추천제, 2019년 법관 정기인사서 첫 반영… "사법행정 민주성 강화"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분산하고 각급 법원 사법행정의 전문성 및 민주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2018년 처음 도입됐다. 당시 의정부지법과 대구지법이 시범실시 대상으로 선정돼 일선 판사들로부터 법원장 후보를 추천받았다. 

대구지법에서는 추천을 받은 손봉기(사시 32회) 부장판사가 법원장으로 보임됐지만 의정부지법은 단독 후보로 추천된 신진화(사시 39회) 당시 의정부지법 부장판사 대신, 서울동부지법 수석부장판사를 맡고 있었던 장준현(사시 32회) 부장판사를 보임했다. 

당시 의정부지법에서는 다른 법원장들보다 기수로 15년 가량 차이 나는 신 부장판사가 단독 후보로 추천되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파격 인사'를 단행할지 법조계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결국 추천과 무관한 인사가 보임되면서 뒷말이 나오자, 김 대법원장은 법원 내부 전산망 코트넷에 글을 올려 "법원장으로서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경험이 필요한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김 대법원장은 "의정부지법은 130여 명의 법관과 7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고 산하에 고양지원, 6개 시군법원, 8개 등기소를 두고 있다"며 "의정부지법의 사법행정사무에 비춰 법원장으로서의 막중한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재직기관과 재판 및 사법행정 경험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법원장 추천제가 법조경력 및 기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되자, 대법원은 법원장 후보 기준을 기존 법조 경력 15년에서 '법조 경력 22년 이상 및 법관 재직경력 10년 이상'으로 크게 강화했다. 또 전문성과 공정성, 성품을 두루 갖춘 적임자를 보임하기 위해 해당 지법에서 반드시 3인 내외의 후보를 복수로 추천하도록 했다.

2020년에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 대상 법원이 서울동부지법과 대전지법까지 총 4곳으로 확대됐다. 지난해에는 서울회생법원, 서울남부지법, 서울북부지법, 부산지법, 광주지법 등 7곳으로 확대됐다. 올해는 서울행정법원, 서울서부지법, 수원지법, 전주지법 등 4개 법원에서도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실시했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통해 선출된 법원장은 △손봉기 대구지법원장 △윤태식 서울동부지법원장 △최병준 대전지법원장 △김용철 서울남부지법원장 △김한성 서울북부지법원장 △서경환 회생법원장 △전상훈 부산지법원장 △고영구 광주지법원장 △김형훈 의정부지법원장 △황영수 대구지법원장 △장낙원 서울행정법원장 △심태규 서울동부지법원장 △최성배 서울서부지법원장 △이건배 수원지법원장 △오재성 수원지법원장 등이다. 


● 내년 전국 지방법원 확대 실시 앞두고 법조계 "철회하라"… 법원 내부서도 첫 공식 문제제기 

△ 김명수 대법원장(사진=대법원)
△ 김명수 대법원장(사진=대법원)

지난 4일 김 대법원장은 지난달 31일 코트넷에 "법원장 후보 추천제 실시 경험과 성과를 바탕으로 법관인사 이원화를 더욱 건실히 하고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사법행정을 구현하기 위해 2023년에는 추천제를 전국의 지방법원으로 확대 실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 대법원장의 계획에 따라 내년에는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가정법원을 비롯해 춘천지법, 청주지법, 울산지법, 창원지법, 제주지법 등 7개 법원에서 추가로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실시한다. 지방권 가정법원들과 현재 법원장 임기가 남아있는 인천지법을 빼면 전국 지방법원 20곳 모두 추천제를 시행하는 셈이다.

하지만 법원 안팎에서 "인기투표로 전락한 법원장 후보 추천제 전국 확대 계획을 철회하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은 지난 8일 성명을 내고 "'추천제'라는 명칭과 달리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사실상 인기투표제로 전락해 법원을 선거판으로 만들었다"며 "법관들 사이에선 분열과 갈등이 초래되고 있고 추천제가 전국으로 확대된다면 법원의 권위와 신뢰의 추락 등 돌이킬 수 없는 폐해들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원 내부에서도 공식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산하 법관인사제도 분과위원장인 이영훈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23일 코트넷에 '법관인사제도 분과위원회에서 행정처에 설명 요청한 사항 공유'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부장판사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인기 투표 식이고 사법 포퓰리즘을 확대하는 원인이라는 지적,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대법원장의 무리한 '치적 알 박기'라는 비판이 있다"며 "서울중앙지법의 경우 대법원장이 특정 법관을 법원장 후보로 염두에 두고 추천제를 밀어붙이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있다. 법원 구성원 총의를 반영한다는 취지가 몰각되고 전보다 더 대법원장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년 확대 실시 전에 법원행정처와 대법원이 현 제도의 성과와 장단점,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 등을 했는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 '사법의 정치화' '재판지연 원인' 등 추천제 문제점은 해결 못해

'인사 원칙'을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는다.   

대법원은 2018년 판사 추천을 받은 신진화 부장판사 대신 장준현 부장판사를 의정부지법원장에 보임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광주지법원장 후보로 올라온 3명의 판사들을 모두 배제하고 다른 인물을 임명해 "인사원칙을 어겼다"는 논란을 일으켰다.

김 대법원장은 "후보 추천 이후 일부 후보자의 동의 철회 등 사정 변경이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지 못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이를 두고 "민주적 사법행정을 실현하겠다고 추천을 받아 놓고 정작 임명은 다른 사람을 할거면 법원장 후보 추천제 도입을 왜 했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며 "추천한 판사들의 뜻을 무시한 결정이 반복되니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로 인한 '사법의 정치화'와 '재판 지연'을 문제로 꼽는 시선들도 있었다. 인사 평정권자인 법원장들이나 수석부장판사들이 후배 판사들의 눈치를 보느라 재판 독려 등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선배 법관들이 좋은 재판을 위해 때로는 후배들을 질책도 하고 쓴소리도 해야 하는데, 법원장 후보 추천을 받지 못할까봐 해야 할 말도 못 하는 환경이 됐다"며 "오죽하면 법원장 되려고 재판 하나 더 잘하려고 하기 보다는 동료, 선·후배 법관들에게 밥 한 번 더 사고 친분을 유지하려고 한다는 소리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 오석준 신임 대법관 취임식(사진=대법원)
△ 오석준 신임 대법관 취임식(사진=대법원)

오석준 신임 대법관도 지난 8월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이 "때로는 선배 법관이나 부장판사가 후배들을 질책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이러한 기능을 없애는 역할"이라며 "법원장 후보가 되려면 후배들로부터 선거로 얘기하면 표를 많이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질책을 할 수 없게 되고, 법원장 후보를 추천한다고 하면 근무 평정도 일정 부분 같이 반영해서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냥 후보로 올라온 사람 중에 낙점하는 방식이라 법원의 분위기를 흐리게 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고 지적하자 "동의한다"고 답변했다.

오 대법관은 그러면서 "일반 법관들처럼 2~3년 근무하고 옮기는 시스템 하에서 해당 법원의 법원장을 투표로 뽑는 것은 그 자체로 곤란한 측면이 있는 것 같고,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계속 유지된다면 재판 지연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남가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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