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전담팀 구성해 조사 착수… "인명구조, 수색 철저히"

"법보다 가까운 주먹" 잇따른 '법조인 테러'에 공포 확산

변협 "이번 참사같은 사적 보복, 더이상 발생해선 안 돼"

△ 9일 화재가 있었던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부근 변호사 사무실 빌딩 (사진: 남가언 기자/대구)
△ 9일 화재가 있었던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부근 변호사 사무실 빌딩 (사진: 남가언 기자/대구)

대구 수성구 범어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나 김 모(사시 39회) 변호사와 용의자를 포함한 남성 5명, 여성 2명 등 총 7명이 숨지고, 40여 명이 다쳤다. 사망자는 모두 경북대 병원으로 옮겨져 안치됐다.

경찰은 용의자 A씨가 마스크를 쓴 채 한 손에 인화물질로 추정되는 것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CCTV 화면을 확보하고 수사를 벌였다. 경찰은 A씨가 본인 사건이 패소하자 불만을 품고 사무실을 찾아가 인화 물질을 뿌리고 방화를 한 사실을 확인했다. 사건 당시 A씨가 앙심을 품은 상대 측 변호사는 재판으로 인해 자리를 비웠고, 함께 근무하던 김 변호사와 사무실 직원들이 화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용의자는 현장에서 분신자살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 당국이 불이 난지 20여 분 만에 화재를 진압했다. 하지만 발화 지점이 비상계단과 거리가 먼 곳에 위치한 데다, 연기가 주변으로 빠르게 확산돼 피해가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 화재 건물에는 지하층에만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어 화재 즉시 불을 끌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경찰은 대구경찰청 형사과장을 팀장으로 수사전담팀을 편성해 조사에 착수했다.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정밀 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긴급 대응지시를 통해 "인명 구조와 수색을 철저히 하고 부상자 구조와 치료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언급했다.


●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신변 위협… "법조인으로 살기 두렵다"

법조인이 소송 상대방과 의뢰인으로부터 신변을 위협받는 일은 계속 진행돼 왔다.

2007년에는 박홍우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석궁 테러를 당했고, 2015년에는 고검장 출신 박영수(사시 24회) 변호사가 대리했던 사건의 상대 측이 휘두른 공업용 커터칼에 목 부위를 다친 사건이 있었다. 이 외에도 △2012년 사건 처리에 불만을 가진 의뢰인이 서 모 변호사와 사무장을 흉기로 찌른 사건 △2013년 소송 결과에 불만을 품은 의뢰인이 변호사를 사무실에 감금한 사건 △2014년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화염병을 던진 사건 △2021년 실형을 선고받고 분노한 의뢰인이 출소 후 위협과 행패를 부린 사건 등이 간헐적으로 일어났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2006년 '변호사 신변 위협 사례'에 대해 조사한 결과, △법정에서 상대방 부자가 계속해서 욕설을 하고 심야에 계속 전화로 협박한 사건 △법정 복도에서 상대 측 당사자들이 몸을 밀치고 욕설을 한 사건 △민사조정실 밖에서 소화기를 들고 변호사에게 폭력을 행사하려고 한 사건 등이 취합되기도 했다.

이러한 일은 법정에서도 수차례 일어났다. 법정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하거나 시너를 뿌리고 난동을 부리는 일도 물론이고, 사건에서 패소한 당사자가 직접 판사실에 들어가 위협을 가하는 일도 있었다.

한 변호사는 "의뢰인을 성심성의껏 대리하려고 늘 노력해왔는데 이러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두렵고 허탈하다"며 "사무실에 오는 사람마다 소지품 검사를 하거나 다 의심할 수도 없는 일인데 억울한 사람을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이 위협이 될 줄 몰랐다"고 토로했다.

32년간 개업 변호사로 활동해 온 신현호(사시 26회)는 "조직폭력배들이 며칠씩 사무실을 점거하는 등 여러 차례 협박과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의료소송에서 패소한 의뢰인이 2010년 11월부터 거의 1년간 사무실 앞에서 시위를 하고 법정을 가느라 밖에 나가면 멱살을 잡는 등 일이 있었다"며 "처음에는 접근금지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오히려 건물 벽에 붙인 가처분 결정문을 떼어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계속 형사고소를 해보기도 했지만 벌금 10~30만 원에 그쳤다"며 "그래도 반복 고소를 하니 한 검사가 미제고소사건을 자신에게 재배당시켜 가해자가 구속, 징역 1년 실형을 살게 됐고, 그 이후 시위는 없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처럼 불을 지르거나 칼로 찌르겠다고 달려드는 경우는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처럼 달리 막을 방법이 없어보이지만 그래도 분쟁 시 변호사들이 그냥 피하려고만 하진 않았으면 좋겠다"며 "변협에서 공제제도, 보험제도를 도입해서 의뢰인 불만을 해소하고 피해가 있다면 보상해주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변협 조사위원을 맡고 있는 한 변호사는 "최근 소송 상대방을 대리한 변호인에 대한 진정이 증가하고 있다"며 "신변 위협을 받아도 적극 대응하면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킬까봐 대응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런 우려로 인해 변호사들이 무고 고소를 하는 경우도 드문 것으로 보인다"며 "무고성 진정이 명백하면 당사자인 변호사의 요청에 따라 변협 명의로 고발조치를 해주는 등 권리보호 시스템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변협 "사법질서와 법치주의 위협하는 극악무도한 행위"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종엽)는 이날 곧바로 성명을 내고 대구 법률사무소 화재 참사에 애도를 표했다.

변협은 성명을 통해 "대구 법률사무소 방화사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의뢰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변호사를 향한 부당한 감정적 적대 행위와 물리적 공격이 재발하지 않도록, 성숙한 시민의식이 자리잡기를 강력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이어 "법치주의는 사적 보복이 횡행할 수 있는 야만을 극복하고, 누구나 자신의 기본권과 법익을 보호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제도적 대안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변호사들은 법치주의에 터잡은 사법제도를 확립하고 운영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한 축으로서, 사회 각 분야에서 묵묵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소송 결과에 앙심과 원한을 품은 나머지, 자신의 역할과 직무에 충실하여 최선을 다한 상대방 변호사를 겨냥한 무자비한 테러가 21세기 선진 대한민국에서 자행되었다는 사실에 개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러한 범죄는 단순히 변호사 개인을 향한 범죄를 넘어 사법체계와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중대한 도전이자 야만행위"라고 비판했다. 

변협은 또 "모든 국민은 헌법이 보장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고, 변호사는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최선의 변론을 다 할 책임과 충실의무를 부담하고 있다"며 "변호사들이 법조삼륜의 한 축으로서 국민을 위해 헌신하며 맡은 바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이번 사건과 같은 사태가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사건으로 희생된 김 모 변호사와 사무직원, 그리고 중경상 피해자 모두에게 다시 한 번 깊은 애도와 위로를 전하며,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모든 물리력으로부터 변호사들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즉각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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