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변호사에 화풀이' 대구 법조타운 방화 범죄에 법조계 '충격'

경대병원에 '합동 분향소' 마련… 대한변협 등 법조계 애도 물결

한동훈 장관도 발걸음… "피해자 지원·대책 마련에 최선 다할 것"

"의뢰인 등 인성 고려해 사건 가려 받아야 하나" 법조계도 '근심'

10일 합동분향소를 찾은 이종엽 대한변협회장을 비롯한 대한변협 임원들이 헌화 후 묵례를 하고 있다
10일 합동분향소를 찾은 이종엽 대한변협회장을 비롯한 대한변협 임원들이 헌화 후 묵례를 하고 있다

9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은 천 모씨가 끔찍한 방화 범죄를 저질러 온 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다. 

이 사건으로 사무실에 있던 김 모(사시 39회) 변호사와 용의자를 포함한 남성 5명, 여성 2명 등 총 7명이 숨지고, 40여 명이 상해를 입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 용의자 천 모씨는 한 투자신탁사를 상대로 약 6억 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고, 이에 불만을 품고 투자신탁사 소송대리를 맡은 변호사 사무실에 불을 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소송 상대방 대리인이었던 변호사는 당일 지방 출장을 가 화를 면했다.    

10일 법조신문 취재진이 방문한 대구 수성구 범어동 법조타운에는 화마가 할퀴고 간 상처가 현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퀴퀴한 탄내와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깨진 창문 파편들이 전날의 끔찍한 상황을 짐작케 했다. 이석화 대구지방변호사회장을 비롯한 대구변회 관계자들도 아침 일찍부터 후속 조치를 위해 현장을 찾았다.

△사고가 난 건물 주변에 깨어진 창문 파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사고가 난 건물 주변에 깨어진 창문 파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무고한 6명의 생명을 앗아간 방화 사건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졌다. 변호사 사무실이 있는 2층에서 천 씨가 인화물질을 던지고 불을 붙이자 화마가 순식간에 온 건물을 뒤덮었다. 해당 건물은 대부분의 공간이 변호사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결국 2층에서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었던 김 변호사, 그와 친인척 관계로 알려진 김 모 사무장 및 법률사무소 직원들 등 아까운 생명을 화마가 집어삼키고 말았다. 4층 건물에서 화재 시각 일을 하고 있었던 이석화 회장은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일하고 있는데 바깥에서 고함소리가 났어요. 그런데 사실 가끔 있는 일이라, '오늘은 또 어느 사무실이 이렇게 시끄럽나' 하고 말았는데 한 직원이 들어와서 불 났으니까 피해야 한다고 소리쳤습니다. 복도를 나와보니 연기가 꽉 차 있었어요. 불과 1~2분 만의 일이었습니다. 위험하다 싶어서 3층에서 대피해서 올라오던 다른 변호사 사무실 사람들과 전부 제 방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방문을 닫고 틈새를 막았어요. 마스크를 2개씩 착용하고 물티슈로는 코를 막고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을 하러 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복도는 유독가스 때문에 오히려 더 해로웠고 이곳이 다행히 시내와 가까워서 섣불리 나가지 말고 방 안에서 기다리면 소방관들이 올거라고 판단했지요."

△ 화재가 난 건물 뒷 쪽에 화재 당시 건물 내에 있던 사람들이 탈출을 위해 창문을 깬 흔적이 남아있다.
△ 화재가 난 건물 뒷 쪽에 화재 당시 건물 내에 있던 사람들이 탈출을 위해 창문을 깬 흔적이 남아있다.

화재가 났던 건물의 창문은 오피스텔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닫이 문으로 아무리 많이 열어도 반 쯤 밖에 채 열리지 않는 문이었다. 성인이 미닫이 문으로는 도저히 밖으로 탈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래서일까, 건물 앞 쪽과 뒷 쪽 모두 일부 창문이 깨져 있었다. 화재 당시 건물 내에 있던 사람들이 유독가스를 피해 밖으로 나가기 위해 필사의 탈출의 감행했음을 알 수 있었다.

건물 입구에는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고 경찰 너댓명이 돌아가면서 입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언뜻 보이는 입구 바로 안 쪽은 이미 새까맣게 타버린 듯 했다. 곧 이어 현장 감식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차량이 도착했다. 새하얀 방호복으로 갈아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씩 건물 안으로 조심스럽게 진입했다. 현장감식은 1시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됐다.

"아이고야, 우짜노. 용의자가 사무실 드가가 불 지르고 마 30초도 안돼가 불이 화르륵 붙어 커졌다카대."

"돌아가신 김 변호사님이랑은 8년 전부터 알던 사이라 밥도 몇 번 같이 먹고 켔는데…억수로 착한 분이셨는데 우짜다 이래됐노."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길을 가던 주민들과 인근 건물 직원 및 변호사들이 현장감식 중이던 건물 앞에서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누구라할 것 없이 짧게 한숨을 한 번 쉬고, 무거운 표정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피해자를 알고 지냈던 동료 변호사들도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 10일 국과수에서 방화 사건 피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 10일 국과수에서 방화 사건 피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피해 현장에서 가까스로 불을 피해 탈출했던 한 변호사는 "의뢰인이 항의하는 경우가 가끔씩 있기는 한데, 이런 식의 극단적인 경우는 처음"이라며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던 변호사님이 돌아가셔서 가슴이 아프다"고 심경을 전했다.

"이번 사건이 있고 나서 무섭기도 하고 저희 사무실도 경비를 강화해야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자동문에 잠금 장치를 설치하거나 디지털 도어락 등을 생각하고 있어요. 근데 사실 이 사건이 구조적 문제보다는 개인일탈 행위에 가까워서, 여기저기서 '구조적 해결 방안이 필요하다. 변호사 보호 방안을 입법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하는데 구조적으로 접근 할 수 있는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대구 경대병원서 '합동 분향소' 마련… 법조계 동료·지인 애도의 물결 이어져

이날 오후 6시께 경북대병원 장례식장 1층에 화재 사건 피해자들을 위한 합동분향소가 마련됐다. 장례는 대구지방변호사회장(葬)으로 진행됐다.

△ 대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 1층에 마련된 대구 법률사무소 방화 참사 합동 분향소의 모습
△ 대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 1층에 마련된 대구 법률사무소 방화 참사 합동 분향소의 모습

이석화 대구변회장이 장례위원장을, 이태현 총무이사가 간사를 맡았다. 그 밖에 강윤구 제1부회장과 김기수 제2부회장, 권재칠 홍보이사, 김각연 회원이사 등 대구회 집행부 임원들이 운영위원을, 대구회 전임 회장 14명이 장례위원을 맡아 합동분향소를 마련하기 위해 두 팔 걷고 나섰다. 이들은 2층에 마련된 개별 피해자 분향소를 지키고 있는 유가족들도 틈틈이 들여다보며 위로했다. 

분향소 옆에는 재난심리센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유가족과 대구변회 요청으로 장례식장까지 나왔다는 센터 직원 두 분은 유가족들이 필요로 할 때 언제든 바로 심리상담을 할 수 있도록 밤새 자리를 지켰다. 

합동분향소에는 가장 먼저 이석화 회장과 대구회 임원들이 애도를 표했다. 이 회장은 추도사에서 "법률사무소 종사자가 안전하게 업무에 매진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을 반드시 성취해 다시는 안타까운 희생이 없도록 하겠다"며 "그간 동거동락했던 저희들은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다시 한번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이종엽 대한변호사협회장도 황망한 소식에 서울에서 대구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 협회장과 김대광 사무총장, 김관기·권성희 부협회장 등 변협 임원들도 헌화하고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협회장은 "하루 아침에 집안의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아빠를 잃은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깊은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같은 테러 행위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으며, 저희가 이미 이 사고 대책위원회를 구성했기 때문에 대책위 차원에서 지원 대책도 바로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뒤이어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도 분향소를 찾아 피해자의 넋을 기렸다. 홍 당선인은 고개를 떨구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워낙 이게 황망한 사건이라 들릴 말씀이 없다"며 "가해자가 죽어버려서 피해자 구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10일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이종엽 대한변협회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10일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이종엽 대한변협회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도 오후 7시 30분께 합동분향소를 방문했다. 그는 이 협회장 등 법조계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합동분향소에 헌화를 하며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개별 분향소도 일일이 찾아 유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했다. 하루 아침에 6명의 식구들을 잃었다는 피해자의 동료와도 두 손을 마주잡고 슬픔을 나눴다.

한 장관은 "(법무부장관으로서) 피해자 지원이나 진상규명에 있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이같은 테러가 절대 있어서는 안되고 국가가 이를 막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 더 자성하고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겠다"고 강조했다.

늦은 시간까지 장례식장에는 피해자들의 동료, 지인 등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김정욱 서울지방변호사회장과 박병철 이사, 김기원 한국법조인협회장도 분향소를 찾아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켰다.  

고인이 된 김 변호사와 동창이라는 한 지인은 "내가 법적 분쟁에 휘말렸을 때 하나부터 열까지 어떻게 소송을 해야하는 지 알려준 고마운 친구"라며 오열했다. 다른 지인은 차마 빈소 안 영정을 마주하지 못하고 입구 앞에 주저 않아 "어떡해, 어떡해"라는 말만 반복하며 오열하기도 했다. 장례식장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먼저 도착해있던 동료 변호사를 껴앉고 흐느끼는 변호사도 있었다. 개별 빈소에서는 밤늦도록 통곡 소리와 흐느낌이 끊이지 않았다. 


● "사건 가려 받아야 하나" "무서워서 변호사 어떻게 하나"… 법조계 '충격'

대구 법률사무소 화재 참사는 대구 뿐만 아니라 전 지역 법조계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10일 대한변협이 마련한 '법률사무소 방화 참사 온라인 분향소'에는 3일 만에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애도를 표했다. 변호사들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SNS 프로필 및 피드 사진 등에 피해자들의 명복을 비는 사진과 글을 업로드하기도 했다.

변호사들은 "앞으로 사건 수임할 때 의뢰인 인성도 고려해야 하나", "무섭다", "창문이 크고 잘 열리는 건물로 이사해야 하나"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서울의 한 로펌 소속 변호사는 "화재 사건이 발생하자 마자 로펌 차원에서 소화기를 비치하고 방범하는 등 분위기가 뒤숭숭하다"며 "나도 형사사건 위주로 하면서 삿대질은 기본이고 사건 상대 당사자에게 해코지를 몇 번 당한 적이 있는데 조심해야겠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송무 변호사가 자신의 의뢰인은 물론이고 상대 당사자의 심리상태까지 함께 고민하면서 재판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지적했다.

△ 피해자 합동 분향소 앞에 법조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보낸 화한이 놓여져 있다.
△ 피해자 합동 분향소 앞에 법조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보낸 화한이 놓여져 있다.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도 있었다.

대구의 형사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천주현 변호사는 "법원과 검찰청은 들어가려면 보안을 거쳐야 하고, 경찰 등 수사기관은 총처럼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지만 변호사는 방호 능력이 없어서 이 같은 범죄가 일어나면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대안책으로 보안업체 얘기도 나오던데, 나도 사무실에 보안시스템을 설치해놓았고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 버튼을 누르면 5분 이내로 보안업체에서 출동한다고 하더라. 그런데 이번 사건처럼 1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 벌어지는 사건에는 이것도 의미가 없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형사전문 변호사는 "검색만 해도 변호사 개인 사무실 위치를 다 알 수 있는데 제도적 마련을 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이 앙심을 품으면 얼마든지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결국 변호사 개개인이 알아서 조심하고 위험할 수 있겠다는 사건을 가려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남가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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