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의 만남이 제약되고 마스크가 강제되고 있다. 상황이 엄혹한 곳에서는 강한 이동제한을 실시하기도 한다. 과거에도 911테러처럼 자유가 축소된 사례는 적지 않았다. 때론 자유에 대한 억압도 있었고 이에 대한 저항도 치열했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사람을 가둬 그의 권능을 박탈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의 자유까지 제한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저 유명한 존 스튜어트 밀도 ‘자유론’에서 사고와 토론의 자유를 강조했다. 장차 미래세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보면 이유를 알만하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권리도 헌법상 기본권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 자유는 이렇듯 정말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모두에 언급한 그리고 모두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이동제한의 예와 같이 자유는 당장 주어진 여건 하에서 다른 더 갈급한 가치를 위해 제한될 수 있다. 계약의 자유는 신의칙에 의해 제한될 수 있으며, 언론과 표현의 자유도 명예훼손의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인간은 또한 사회적 동물이라 늘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인간의 자유는 내재적 한계, 즉 사회 내에서의 자유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은 타인도 가지고 싶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합리적 욕구를 상호 존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평화로운 공존의 질서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아직은 역병으로 활력을 잃은 거리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곧 다시 인파로 가득차고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간은 앞서 말한 제한이 있지만 분명 자유로운 존재이다. 지금은 텅 빈 거리가 꽉 찬 것보다 더 채워져 보이는 이유도 바로 그러한 희망과 확신 때문이다.

코로나는 소위 언택트 세상을 한발짝 앞당겼다고 한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늘 그래왔듯 자유는 이번에도 그러한 세상에 걸맞은 내용을 가지게 될 것이다. 자유는 마치 줄기세포와 같다. 삶에 필요한 것을 모두 제공할 뿐만 아니라 슬기롭게 구사하면 사회의 병도 고치고 면역력도 강화한다.

반면 자유의 제한에 대한 갈등도 적지 않다. 각자가 추구하는 이익과 가치들의 차이, 개인이익과 집단이익의 충돌, 시대적·공간적 여건의 변화 등에 비추어 볼 때 자유에 대한 하나의 유일한 정답을 찾기는 요원해 보인다. 어쩌면 우리는 그 지혜를 자연에서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동물과 식물은 생존에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서로 내어주며 공존한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가 아니던가. 그리고 무한한 자연에 비해 인간은 불완전하고 유한한 존재에 불과하다. 내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맹신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짓은 없다. 자유의 핵심은 네가 옳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있다. 설사 네가 실수하고 있더라도.

 

 

/최봉경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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