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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제목

<유중원 대표 단편선> 그날 밤의 비밀(上)

닉네임
유중원
등록일
2020-08-03 10:34:05
조회수
1336
그날 밤의 비밀




혁명가는 무덤 속에서만 평화를 발견한다.
― L.A. 생쥐스트


궁정동 안가
1979년 10월 26일 오후 5시 45분쯤 김계원 비서실장은 혼자 궁정동으로 갔다. 대통령의 공식행사에는 비서실장이 각하와 동승하지만 비공식 행사에는 경호실장만이 각하 차를 타는 게 관례였다.
김 실장은 오후 4시 30분경 경호실장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 각하를 모시고 저녁을 할 겁니다. 여섯 시까지 정보부장한테 가십시오.” 김 실장은 도착하자마자 본관 김재규 부장의 사무실로 안내되었다. 궁정동 안가는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도 비서를 대동하지 못하며 더구나 사무실이건 연회장이건 안내 없이 혼자서 갈 수 없는 이상한 관례가 있었다. 그래서 중정 요원의 안내를 받아 본관의 부장 사무실로 안내되었다. 그 후 그들은 간단한 인사말을 나눈 후 정원으로 나왔다. 2층 양옥 건물 나동 앞에는 작은 정원이 있고 화강암을 깎아서 만든 경계석이 화단과 마당을 가르고 있다. 펑퍼짐한 넓은 화강암 바위에 걸터앉은 김재규 정보부장과 김계원 비서실장은 주로 차지철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대화를 나눴다.
김재규가 말문을 열었다.
“오늘 무슨 일인가요?”
“나도 모르겠소. 오늘 멀리까지 행사도 다녀오시고 해서 쉬실 줄 알았는데. 그래서 누구와 저녁약속을 했다가 취소했소.”
“저는 오늘 만찬이 없는 줄 알고 정 총장과 저녁약속을 해 두었는데……” 김재규는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회적 공기가 얼마나 험악한지 실장님은 모르실 겁니다. 부산에다 계엄령을 선포했으니까 우선은 조용해졌지만 며칠이나 가겠습니까.”
“김 부장! 우리 정부가 그렇게 약한 줄 아시오. 학생들이 비판한다고 해서 오늘 내일 정부가 쓰러질 것 같소?”
“맑은 물에 미꾸라지 같은 놈 한 마리가 휘젓고 다니면서 자꾸 물을 흐려 놓으니까 일이 되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무슨 일만 있으면 각하에게 쪼르르 쫓아가서 있는 말 없는 말 보태서 고자질을 하니까 큰일이야. 그러니까 각하는 자꾸 그 말만 듣고 강경해지시고……”
“오늘 그 놈을 해치워야만 일이 올바르게 되겠지요. 그 놈이 옆에서 각하의 판단을 흐려 놓는 한 잘 되기는 글렀습니다. 오늘 해치울까요? 어떻게 하지요?”
김 실장은 우선 김재규 부장을 위로했다. “김 부장, 나도 정보부장을 해봐서 알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정치라는 겁니다.” 김 부장이 최근 며칠간 야당 공작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실패한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김 부장이 얼마 전 박 대통령 앞에서 “신민당의 당직자 사퇴와 정운갑 대행 체제 출범 공작을 26일까지 마무리 짓겠습니다”라고 호언장담했고, 이날이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하는 이야기였다.
“사표를 일괄 반환한다는 말이 이틀만 늦게 나왔어도 되는 일인데……”
김계원은 푸념하듯 말했다. “신민당에 대한 여러 가지 공작들은 중정에서 고생만 하고 공화당이 다 망쳐놨어.”
김재규가 대꾸했다. “할 수 없지요. 앞으로 정운갑 대행 체제가 출범하게 되면 하나씩 붙여주는 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겠죠.”
늦가을 황혼의 분홍색 해가 인왕산을 막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새삼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훗날 공판정에서 김재규 피고인에게) 검찰관이 물었다.
“그때 피고인은 뭐라고 했나요?”
“오늘 해치워버릴까 했습니다.”
“평상시 어조로 말했나요?”
“약간 강경하게 말했습니다.”
“그때 김계원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말씀은 없었고, 저의 느낌에는 긍정적인 표정이었습니다.”
“그때 피고인이 ‘형님, 뒷일을 부탁합니다’라고 말한 일 있나요?”
“기억이 안 납니다.”
“그때 김계원이 불응했다면 어떻게 하려고 했나요?”
“그 자리에서는 ‘농담이었소’하고 넘겼을 겁니다.”
이러한 문답 내용은 검찰관의 김계원 심문 때와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치열한 논점으로 다시 등장한다. 김재규는 검찰관 조사 시에 김계원이 반발했다면 일단 ‘농담이오’라고 하고, 나중에 대통령 살해 장소에서 사살했을 거라고 진술했고, 법정에서도 “뚜렷이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면 저의 총에 맞았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궁정동 50번지에 자리 잡은 중앙정보부 안가는 400여 평 대지에 바닥 면적 100평의 지하 1층 지상 2층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로 규모가 큰 일반 가정집과 다름없었다. 마당을 둘로 나누어 동쪽은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었고 서쪽은 주차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었다. 물론 그 볼품없는 건물의 형태는 직사각형 굴뚝이 지붕 위로 높이 솟아 있지만 가정집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기이했고 공용 건물로는 더욱 이상했다. (사건 발생 수개월 전에 신축되었던 흉가 건물은 김영삼 정부 당시 철거되어 지금은 사진만 남아있다.)
궁정동의 중정 부장 공관을 겸한 대통령 개인 연회장인 안가는 원래 삼성그룹 소유였다. 김계원이 중정 부장으로 있던 1970년 대통령이 부르면 언제든지 가까이서 달려가겠다는 일편단심에서 당시 청와대 소유이던 성균관대 뒷산의 땅과 교환하여 중정 부장 비공식 사무실을 마련했다. 이어 이후락 정보부장 시절엔 주요 회의 장소 겸 안가 역할을 겸했으며 신직수 중정 부장 때 인근 땅을 사들여 대통령 연회장인 나동, 일명 한국관을 세웠다. (우리는 여기서 안가란 말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특수 정보기관이 비밀리에 사용하는 극도로 보안이 유지되는 안전한 가옥. 그러나 여기 궁정동 안가는 대통령이 시도 때도 없이 수많은 젊은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희롱할 때 이용하는 안전한 가옥을 의미했다.)
이곳에선 사흘 걸러 하루꼴인 한 달에 10번 정도 만찬과 주연이 열렸다. 대통령과 경호실장, 비서실장 셋이서만 식사하는 것을 ‘소연회’라고 했고 중정 부장과 함께 대통령의 ‘술시중’을 드는 젊은 여자 2명이 대통령의 좌우에 참석하는 것을 대연회라고 불렀다. (그 두 명의 여자 중에서 그날 밤 대통령의 마음에 드는 여자가 안가의 이태리제 호화 가구로 장식된 비밀의 방에서 성적 노리개가 되는 것이다)

“무슨 일이오?” 김재규 부장의 첫마디는 퉁명스러웠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오후 4시쯤 직접 중정의 남산 사무실로 전화를 해서 말했다. “오늘 저녁 6시부터 궁정동에서 대행사가 열리오. 각하께서 김 부장도 참석하라는 명령이오.”
차 실장으로부터 대연회를 통보받은 김 부장은 잠시 후 수행비서관 박흥주 대령과 함께 남산 집무실을 나섰다. 궁정동에 도착한 것이 오후 4시 30분. 김 부장은 곧바로 서쪽에 위치한 본관 2층 자신의 집무실로 올라갔다.
김 부장은 본관 2층 자신의 집무실 금고에 보관 중이던 독일제 32구경 발터 PPK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작고 검은 얼굴에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냉소적인 웃음을 짓는 사악한 얼굴의 관자놀이를 향해 겨눴다. 이 권총은 손잡이를 잡은 손의 엄지손가락을 위로 펴서 안전장치를 올리고 사격을 하도록 되어 있다. 손잡이가 짧고 얇아서 손에 쥐었을 때 안정감이 있었다. 그는 노리쇠를 뒤로 후퇴시키고 격발 시험을 한 뒤 탄창에다가 일곱 발을 우겨 넣은 다음 탄창을 끼웠다. 그리고 총신을 뒤로 잡아당겼다가 앞으로 탁 밀자 약실에 실탄이 채워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언제든지 방아쇠만 당기면 발사될 수 있도록 발사 준비를 마친 것이다. 총구에 입김을 한번 훅 불어 넣고 조준을 해보고는 너무 감격한 나머지 숨이 막힐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전 김재규가 청와대에 도착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은 김계원, 차지철과 함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새벽에 부산에 내려갔다고? 수고가 많군. 앉으시오.”
“예, 각하.”
박정희가 식사를 거의 다 끝내고 숭늉을 마시고 있을 때 김재규는 가방을 열고 준비해온 문서와 서류들을 박정희에게 건넸다. 박정희는 김재규의 보고서를 천천히 넘겨보았다. 박정희는 방금 먹은 저녁밥이 얹히기라도 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김재규 부장이 말했다.
“각하! 이번 시위는 일종의 시민 봉기로 판단됩니다. 장기 집권에 대한 불만입니다.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과 정책에 대한 불신, 물가고와 조세 저항까지 겹쳐서 민란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박정희는 화를 내며 김재규를 질책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신민당이 들쑤셔서 불순한 학생 놈들이나 식당 뽀이 같은 놈들이 데모하는 것을 초동 단계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이렇게 키운 거 아냐?
부마 사태의 원인은 첫째가 정보 활동이 미흡한 거야. 둘째는 시위를 초동 단계에서 진압해야 하는데 그걸 실패한 거지. 셋째 일선 공무원들의 부패와 부조리로 인해서 민심이 이반했단 말이야. 야당이 현재처럼 저렇게 기고만장한 데는 여당의 책임이 큰 거야. 김영삼이가 뒤에서 다 조종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데모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 계속될 거야.”
“아닙니다. 각하. 어제 160명을 연행했는데 학생은 16명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다 일반 시민입니다.”
“그게 다 식당 뽀이나 똘마니 같은 놈들 아니냐 이 말이야. 신민당이 조종한게 아니면 그놈들이 선별 수리니 뭐니 어떻게 알아?”
“각하, 제가 시위대 속에 직접 들어가서 시위대의 성분을 체크하고 왔습니다. 노동자도 있지만 사무직 종사자들도 있고 상인들도 있습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시위대가 밀리면 시민들이 음식을 날라다 주면서 격려하고, 쫓기면 숨겨줍니다. 시위대와 시민이 완전히 한 몸입니다.”
그때 박정희의 눈치를 보고 있던 차지철이 끼어들었다.
“제가 보기에는 김 부장이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게 신민당 놈들이 사주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 아닙니까? 문제는 미적지근하게 대응해서 불순분자들 기만 살려주었다 이겁니다.”
박정희는 다시 김재규에게 물었다.
“그래서 지금 이 사태를 풀기 위해서 긴급조치를 완화하고 김영삼이를 구속하지 말고 그냥 놔둬라 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 시점에서 김영삼 구속, 신민당 의원들의 사퇴서 선별 수리, 이 두 가지는 국민 반감이 너무 큽니다.”
차지철이 다시 끼어들었다.
“데모한다고 자꾸 밀리면 앞으로 신민당 놈들하고 학생 놈들, 불순 세력이 손잡고 무슨 요구를 할지 모릅니다.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됩니다.”
박정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김 부장, 유신에 반대하는 불순세력은 단호하게 처리해야 돼.”
“강경 대응은 절대 안 됩니다. 중앙정보부의 판단으로는 며칠 안에 이 데모가 전국 5대 도시로 확산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서울에서 대규모 시위가 나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게 됩니다.”
대통령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엄청난 말들을 쏟아낸다.
“만약 4·19 때처럼 서울에서 데모가 크게 나면 내가 직접 발포 명령을 내리겠어. 그때는 최인규나 곽영주가 발포 명령을 내렸으니까 총살됐지. 대통령인 내가 발포 명령을 내리는데 누가 나를 총살시키겠어, 안 그래?”
그때 차지철이 한술 더 떠서 말했다.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을 쏴 죽이고도 까딱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폭동이 일어나면 한 100만 명이나 200만 명 처치하는 게 무슨 문제겠습니까? 각하께 불충하고 빨갱이들하고 똑같은 소리나 하는 놈들은 이 차지철이가 탱크로 다 밀어버리겠습니다.”
박정희가 다시 말했다.
“정보부가 좀 무서워야지. 그렇게 물러서야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나?”

김 부장은 잠시 집무실 의자에 앉았다가 정승화 육군참모 총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정 총장의 수석 부관인 황원탁 대령이 전화를 받았다. 5시가 조금 안되었을 시각이었다. 수석 부관인 황 대령이 전화가 왔다고 정 총장에게 전해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정 총장. 오늘 저녁에 뭐 바쁜 일 있습니까?” 김 부장의 목소리는 다소 밝게 느껴졌다. 특별한 일이 없다고 대답하자 “저도 별일이 없습니다. 우리 저녁이나 같이 하면서 조용히 시국 이야기나 나눕시다.” 고 말했다. 정 총장이 대답했다. “그렇게 합시다.” 김 부장이 말했다. “궁정동에 전에 한 번 와보셨지요.”라고 말하면서 김 부장은 거듭 다짐을 했다.
김 부장은 곧이어 중앙정보부 제2차장보인 김정섭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김 부장이 말했다. “6시 반까지 이리로 오시오.” 그가 궁정동으로 가서 현관에 막 도착했는데 정 총장이 앞서 들어가고 있었다. 박흥주가 나오면서 “부장님이 대통령 만찬장에 가면서 두 분이 먼저 식사를 하고 있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오후 6시 5분. 대통령을 태운 크라운 슈퍼살롱이 궁정동 나동에 도착했다. 차 실장은 대통령 왼쪽 옆자리에 앉아 있고 정인형 경호처장은 자신의 지정석이나 다름없는 운전사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 슈퍼살롱은 대통령이 사적인 행차를 할 때 쓰는 차였고 운전사도 공용차 운전사 이타관이 아닌 김용태였다. 남효주 사무관이 기다리고 있다가 오른쪽 뒷문을 열었다. 대통령이 내리자 왼쪽 문으로 차 실장이 내렸다. “각하, 어서 오십시오.” 정원 쪽에서 기다리던 김 실장과 김 부장은 함께 허리를 굽혔다.
그들이 나란히 섰다. 대통령을 측근에서 모시고 있던 김계원 비서실장, 김재규 부장, 차지철 경호실장 등 세 군인 출신 인물들은 키가 164cm 내외로 박 대통령과 거의 같았다. 이 세 사람은 유신정권을 지탱하는 핵심이었다.
남 사무관이 대통령 일행을 만찬장인 안방으로 안내했다. 그가 주방으로 돌아오니 정인형, 안재송, 김용태 세 사람이 주방 한가운데에 있는 식탁에 둘러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신재순과 심수봉이 궁정동 안가 안방 옆 대기실에 도착한 것은 6시 30분쯤이었다. 의전과장 박선호가 서약서를 내놓았다. ‘오늘 듣고 본 것을 바깥에 나가서 발설을 하면 처벌을 받는다’는 상투적인 내용으로 인쇄된 문서에 사인만 하는 것이다. 이어서 정인형과 안재송 두 사람이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차 실장이 오더니 또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그 다음 박선호가 신 양에게 ‘단독으로 각하를 모시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때, 그들은 불과 1시간 30여 분 후에 일어날 자신들의 기막힌 운명을 예감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사나흘 간격으로 진행되는 그런 연회가 오늘도 다시 시작될 순간이었을 뿐이다. 붉은 벽돌집을 감싸고 도는 그 불길한 기운.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얼굴이 잔뜩 굳어 있다. 그 미세한 작은 몸짓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육감으로나마 감지할 수 없었다.
최후의 만찬이 있었던 안방은 6평 가량의 온돌방으로 밝은 회색 벽지로 도배되어 있었다. 방 입구 오른쪽에는 텔레비전 세트가 놓인 높이 40센티미터가량의 문갑이 있고, 그 위에 대형 휴대용 녹음기와 녹음테이프가 있었다. 식탁 주변의 대통령 자리에는 등받이 의자가 있었고, 나머지 5명의 자리엔 자수방석이 있었다. 대통령 자리 뒷벽에는 십장생도가 그려진 8폭 병풍이 서 있었다. 그리고 문 앞에는 높이 1미터 80센티미터가량의 사방탁자가 놓여 있었다.
방 한가운데는 직사각형 식탁이 놓여 있었는데 방바닥에서 발을 아래로 내려 뻗을 수 있도록 식탁 밑은 60센티미터 정도 패어있었다. 발바닥이 닿는 바닥에 용수철 장치가 되어 있어 촉감이 좋았다. 박정희는 언젠가 그 속으로 상체의 반쯤을 넣어 보더니 ‘여기 숨어도 되겠군’이라고 말했다.
흰 종이가 씌워져 있는 식탁에는 이미 오곡부침, 송이구이, 생채, 편육, 도라지나물, 마른안주, 꿀에 재운 인삼 등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고 12년산 시바스 리갈 2병과 SUN 담배 2갑이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방안은 술집 분위기를 풍기면서 조명이 어두웠다.
대통령이 등받이 의자에 자리를 잡자 맞은편 오른쪽에 김계원 실장이 앉고 그의 왼쪽에 김재규가 앉았다. 차지철은 왼쪽 모서리에 다소 비켜 자리를 잡았다.
모두들 상의를 벗고 나서 자리가 정돈되자 대통령이 김 실장을 보고 말했다. “삽교천이 좋은데 왜 텔레비전에 방송하지 않느냐.” 김 실장이 말했다. “곧 방송할 것입니다.”
김재규는 처음에는 권총을 안 가지고 있었다. 만찬석에서 첫 번째는 화장실에 가느라고 자리를 떴고, 두 번째는 육군 참모총장과 중정 제2차장보가 와 있는 곳을 잠시 다녀오느라고 자리를 비웠다.
김재규는 곧바로 50여 미터 떨어진 본관 자신의 집무실 쪽으로 갔다. 그리고 먼저 2층 식당으로 가서 식사 중인 정승화 참모총장과 김정섭 중정 제2차장보에게 들렀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각하께서 갑자기 만찬에 참석하라고 해서 조금 늦어지겠습니다. 곧 올테니 먼저 식사하고 있으세요.”라고 말한 뒤 옆방인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발터 권총을 집어들었다.

검찰관이 심문했다.
“세 번째로 자리를 뜬 것이 19시경인가요?”
“예.”
“그때 2층 집무실에 가서 권총을 바지 라이터 주머니에 넣고 왔나요?”
“예.”
“그 주머니에 권총이 들어가나요?”
“저는 담배를 안 피우기 때문에 평소 그 주머니를 크게 만들어서 언제든지 권총이 들어가도록 권총 주머니로 이용해왔습니다.”
“박선호와 박홍주는 어떻게 범행에 가담시켰나요?”
“총장과 제2차장보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중간에 있는 건물에 박선호와 박흥주를 세워놓고 오늘 저녁 결행한다고 말하고, 나를 따라 행동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김 부장이 돌아와서 자리에 앉자마자 박 대통령이 김 부장에게 다그치듯이 물었다. “임자, 신민당 공작은 어찌 됐어?”
김 부장이 말했다. “공화당이 신민당 의원들의 일괄 사퇴서를 선별 수리하니 어쩌니 하는 바람에 조금 차질이 생기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당분간……”
차지철이 벌컥 화를 내며 말했다. “새끼들 까불면 신민당이고 학생이고 탱크로 싹 깔아뭉개 버려야 해.”
박 대통령이 다시 힐책하듯 불만을 표시했다. “삽교천은 참 좋던데 신민당은 맨날 왜 그 모양이야.”
김 부장이 말했다. “지금 김영삼 중심의 주류가 강경론을 펴고 있는데 정 대행은 비주류와 친해서 수습이 잘 안됩니다.”라고 변명 했다.
(그 당시 주류는 당권을 잡고 있었던 김영삼 계열이고, 비주류는 5월 30일 전당대회에서 총재 경선에 패한 이철승과 신도환 등 반 김영삼 계열이었다. 중정의 정치공작으로 야당 지도부를 인위적으로 바꾸어놓았다 하더라도 새 지도부를 국민들이 사이비나 가짜로 보기 때문에 진짜 야당 정치인이라고 보는 주류의 협력이 아니고는 신민당을 이끌기 어렵다는게 김재규의 진단이었다.)
차 실장이 또다시 말을 잘랐다. 그는 대통령의 말에 요령껏 맞장구를 치면서 은근 즐기고 있었다. “신민당 놈들 국회의원 하기 싫은 놈 한 놈도 없어요. 언론과 반체제를 의식하느라고 그렇지.”
박 대통령이 말했다. “차 실장 말이 옳아. 김영삼이도 구속 기소했어야 하는데 유혁인(당시 정무수석비서관)이가 말려서 그만뒀더니……”
김 부장이 말했다. “김영삼은 이미 국회에서 제명됐기 때문에 또 구속하면 국민들은 두 번 처벌하는 걸로 생각합니다.”
박 대통령이 말했다. “정보부가 좀 무서워야지, 비행조서만 쥐고 있으면 뭘 해. 부장이 저러니 정보부가 약하다는 소리를 듣지.”
차 실장이 다시 나섰다. “맞습니다. (정보부가) 좀 잘해야겠습니다. (데모가) 지나치면 탱크라도 동원해서 눌러야 합니다.”
김 실장은 화제를 돌려보려고 “충청도 경치가 아름답지”라고 말했다. 그때 여자아이 둘이 들어왔다. 그러면서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졌다. 심수봉은 대통령의 왼쪽, 신재순은 그 오른쪽에 앉았다. 신 양은 김재규와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이날 가장 정확한 목격자가 될 수 있었다.
박 대통령은 오른쪽에 앉은 신재순 양(당시 한양대 연극영화과 3년)을 바라보며 “예쁘게 생겼군. 이름이 뭐지? 나이는?”라고 물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신 양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어서 왼쪽에 앉은 가수 심수봉에게는 “본이 어디지?”라고 물었다. (‘그때 그 사람’이라는 히트곡으로 인기 절정에 있었던 심수봉은 그 전에도 대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고 이날도 박 대통령이 대령시키라고 특별히 지시할 정도였다.)
차 실장이 양주병을 따서 주전자에 옮겨 부었다. 박 대통령이 평소 병에서 곧바로 술을 따라 마시는 것은 ‘정취가 없다’고 싫어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김 부장이 먼저 얼음을 채운 잔에 술을 따라 박 대통령에게 권했다. “이래 봬도 제가 칵테일은 좀 합니다.” 집주인으로서 분위기를 이끌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기분이 다소 좋아진 대통령은 계속 술잔을 비웠고 빈 술잔을 주로 김 실장에게 주었다.
김 부장이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듯했다. 다시 앉기가 무섭게 차 실장이 한 마디 쏘아붙였다. “요즘 중앙정보부는 도대체 뭘하는지 모르겠어. 부산사태만 해도 그렇지요. 정보수집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대통령은 그 말을 못 들은체했다.
김재규는 다짜고짜 쏟아지는 막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온몸이 굳고 맥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었다. 긴장 때문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느 순간 절망적인 기분에 휩싸인다. 그는 입술을 가만히 깨물었다. 권총의 차가운 금속 촉감이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그때부터 온갖 상념과 긴장, 불안, 강박의 감정을, 몹시 불편한 기분을 억누르고 냉정하게 자신을 유지했다. 초조한 기색을 내비치면 안 되었다.
김 실장이 얼른 말꼬리를 돌렸다. “뉴스 시간이 됐을 텐데…….”
차 실장이 시계를 보더니 TV를 켰고 곧바로 7시 뉴스가 시작됐다. 최후의 만찬장에 모였던 6사람은 TV 화면에 아스라이 펼쳐진 삽교천 방조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최후의 만찬장은 주연이 무르익고 있었다. 벌써 시바스 리갈 2병 중 한 병은 약 5분의 4가 남았고 하나는 8분의 1이 깔려 있었다. 주전자는 하나는 완전히 비고 한 주전자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술잔 7개가 나왔는데 대통령과 김 실장이 5분의 4 정도를 마셨다. 대통령의 평소 주량은 시바스 리갈 반병 이상이었다.
심수봉은 처음엔 ‘그때 그 사람’을 불렀고, 대통령은 기분이 썩 좋아진 듯 “도승지, 한잔하게”하며 김 실장에게 술을 권했고, “포도대장, 한잔 받아” 하며 김 부장에게도 술을 주었다. 대통령은 기분이 좋을 때면 김 실장과 김 부장을 ‘도승지’ 또는 ‘포도 대장’이라고 불렀다. 대통령은 거나하게 술기운이 돌자 옆에 있던 신 양에게 ‘김 부장은 술을 아주 잘하니 많이 권하게’라고 농담을 했다.
김재규는 그즈음 간이 나빠서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그는 소주 한 잔 정도를 물로 희석해서 마시는 정도였다. 더욱이 그 당시는 주치의로부터 중증 간경화라는 진단을 받은 지가 3년이 넘었다. (그 당시 주치의는 치료 방법으로 도저히 실행이 불가능한 방법을 내놓았다. 주치의는 항상 마음을 편하게 먹고 푹 쉬어야 상태가 호전된다고 말했다.) 그날 술은 대통령과 김계원 두 사람이 거의 다 마셨다.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서로 잔을 빨리 돌렸다. 한 시간 반 동안에 시바스 리갈 한 병 반이 비워졌던 것이다. 차지철은 원래 술이 약했지만 김계원이 돌린 몇 잔의 술을 마신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조사해 보니 차지철 자리 앞에 놓여 있던 술잔에서 김계원의 지문이 검출되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풀리면서 대통령이 ‘이제 노래나 듣지’라고 말했고 대통령 왼쪽에 앉아 있던 심수봉이 밖에 나가서 기타를 들고 들어왔다. 심수봉의 처음 노래가 끝나자 대통령이 하나 더 하라고 하면서 흘러간 노래를 듣자고 해서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불렀고, 다음 노래 부를 사람을 지명하라고 했으나 당시 김 부장과 김 실장은 표정이 굳어 있어서 차 실장을 지명했다.

♬ 두만강 푸른 물에 / 노 젓는 뱃사공 / 흘러간 그 옛날에 / 내 님을 싣고 / 떠나간 그 배는 / 어데로 갔소 / 그리운 내 님이여 / 그리운 내 님이여 / 언제나 오려나

평소 술자리서나 어디에서나 차 실장이 노래하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그날따라 기분이 좋았는지 순순히 노래를 불렀다. 그는 처음에는 ‘도라지’를 부른 뒤 박수와 함께 ‘앙코르’ 소리가 나오자 아무 스스럼 없이 ‘나그네 설움’을 잇달아 불렀다. 분위기가 아주 익어갔다. 김 실장이 “차 실장이 그런 노래도 다 합니까”하고 분위기를 맞춰주자 “뭐…… 국민학교 다니는 제 딸이 노래 선생입니다.”라고 멋쩍어했다.
한참 노래도 부르고 주흥이 더욱 무르익었을 때 식당 담당 남효주 사무관으로부터 박선호가 뵙자고 한다는 전갈이 왔다. 박선호를 만나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때가 7시 40분쯤이었다. 김 부장이 세 번째로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는 신재순이 노래를 부를 차례였다. 차 실장이 신재순을 지명해서 ‘사랑해 당신을’을 불렀는데, 그때 대통령이 따라 부르자 차지철이 “각하도 그 노래 아십니까?”라고 말했고 대통령이 그 노래를 같이 부르면서 심수봉의 기타 반주가 안 맞아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 사랑해 당신을 / 사랑해 당신을 / 사랑해 당신을 / 사랑해 당신을 / 사랑해 우리는 서로 사랑해 / 온세상이 어두워져도 행복한 마음 / 밝아오는 아침해 같이 사랑은 아름다워라 / 사랑해 당신을 / 사랑해 당신을 / 사랑해 당신을 / 사랑해 당신을 사랑해 우리는 서로 사랑해

신재순의 노래가 초반쯤 지났을 때 김 실장의 왼쪽에 앉아 있던 김 부장이 권총을 꺼내 들고 외쳤다.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김계원 실장을 손으로 치면서 “각하를 똑똑히 모십시오.” 하였고, “이 버러지 같은 놈”이라고 외치면서 차 경호실장을 쏜 뒤 바로 대통령을 쏘았다. 차 경호실장과 대통령을 쏜 시간적 간격은 몇 초 정도였다.
김재규가 권총을 뽑아 들었을 때 순간 만찬장은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차지철은 권총을 방어하려는 듯 무력하게 오른팔을 휘둘렀으나 그와 동시에 김재규는 차지철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총탄은 차지철의 오른손 팔목을 꿰뚫었다.
차지철이 놀라서 외쳤다.
“김 부장, 왜 이래……? 왜 이래……?”
그 순간 박정희는 술기운에 풀어진 게슴츠레한 눈길로 김재규를 쳐다보았다. 저놈이 내 앞에서 권총을 꺼내다니. 장난치고는 너무 심하지. 날 쏘려는 건 아닐거야. 감히. 차지철일거야.
대통령이 말했다. “이거 무슨 짓들이야!”
탕!! 차지철과 대통령의 고함 소리는 곧이어 터진 또 한 번의 총성에 묻혀버렸다. 김재규가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서면서 쏜 총탄은 박 대통령의 오른쪽 가슴 윗부분을 뚫고 들어가 허파를 지나 등 아래쪽 부위를 관통했다.
“경호원…… 경호원 어디 있어!”
차지철은 피가 흐르는 오른 팔목을 붙잡고 일어나서 방안 뒤쪽 실내 화장실 쪽으로 달아나며 소리쳤다. 김재규는 차지철의 등을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 그러나 방아쇠가 꿈쩍도 않았다. 거듭 집게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노리쇠가 움직이지 않았다. 실탄 장전조차 안되고 있었다.

차지철이 황망히 화장실로 몸을 피하는 것과 때를 같이해 김재규는 방문을 박차고 밖으로 몸을 날렸다. 이때 안가의 불이 꺼졌다.
“불 켜, 불 켜라!” 김계원 비서실장은 문밖으로 나오며 복도 벽을 더듬었다. 스위치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순간 옆 대기실과 식당 쪽에서 10여 발의 총성이 콩 볶듯이 울려왔다. (지하실에 있던 보일러공이 총소리가 나자 합선 스파크 소리인 줄로 잘못 알고 전원을 껐다가 20여 초 후 다시 전원을 켰음이 뒤에 확인됐다.)
김재규는 그 순간 차지철이 권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여간 급한 게 아니었다. 나동 정원까지 뛰어나간 김재규는 식당에서 경호원 3명에게 총을 쏘고 나오던 수행비서 박흥주와 부딪쳤다. 김재규는 자신의 권총을 내던졌다.
“그 총 이리 내.”
“실탄을 다 쏘아 버렸는데요.”
그는 다시 만찬장 쪽으로 향하다가 입구 복도에서 박선호와 마주친 것이다. 박 과장은 대기실에서 두 경호관을 사살하고 마루로 나와 있었는데 그의 오른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그는 박선호의 38구경 리볼버 권총을 낚아채서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한편 김재규와 김계원 실장이 밖으로 나간 뒤 화장실에 피해 있던 차지철은 몇 발의 총성이 멎자 문을 빼꼼히 밀었다.
“각하, 괜찮습니까?”
“나는 괜…… 찮…… 아…….”
당시 박 대통령의 왼쪽에 앉았다가 박 대통령의 ‘나는 괜찮아’라는 마지막 말을 생생히 전했던 심민경 (가수 심수봉의 본명)의 법정에서의 증언.
함께 왔던 신재순이 노래를 부를 차례가 되어서 기타 반주를 시작했다. 신재순은 ‘사랑해 당신을’을 부르고 있었다. 노래가 채 끝나기도 전이었는데 무슨 고함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곧이어 총소리가 났다. 얼떨결에 기타를 팽개치고 일어섰다. 그때 박 대통령은 정좌를 한 채 눈을 감고 있었던 것 같았다. 잠시 후 대통령이 내가 앉았던 자리 쪽으로 스르르 넘어졌다. 내가 옆에 다시 앉아 각하를 부축해 일으키자 신재순이 다가와서 각하의 등 위로 흐르는 피를 손으로 막았다.
그때 차 실장이 화장실에서 괜찮으냐고 물으니까 “나는 괜찮아”라고 조그맣게 대답했다. 걱정이 돼서 내가 다시 물었다. “각하, 진짜 괜찮습니까?”라고. 그런데 아무 대답이 없이 신음소리만 내고 있었다. 그 순간 문 쪽으로 머리를 돌리다 총을 들고 다시 들어오는 김 부장과 눈이 마주쳤다.
김재규가 방문에 들어설 때 차지철은 화장실에서 나와 방 밖으로 나가려는 참이었다. 첫 번째 총격으로 오른손 팔목 관통상을 입은 차지철은 계속 “경호원, 경호원”이라고 소리쳤다. (이때 식당과 대기실에 있던 청와대 경호원들은 박흥주, 박선호가 이끄는 중정 경비병들의 기습 사격으로 죽었기 때문에 잠잠해진 뒤였다.) 김재규와 마주친 차지철은 순간 방안 오른쪽 구석에 세워진 장식장 옆으로 뒷걸음을 쳤다. 그가 외쳤다. “김 부장! 김 부장!”
김재규는 지체 없이 차지철의 복부를 향해 권총을 쏘았다. 차지철은 자신이 움켜쥐었던 장식장과 함께 쓰러졌다.
김재규는 쓰려져 있는 차지철을 넘어 식탁을 돌아 성큼성큼 박정희 쪽으로 다가갔다.
심민경이 공판정에서 증언했다.
김 부장이 내가 부축하고 있는 각하의 머리 뒤쪽에 바짝 권총을 갖다 댔다. 총소리는 들은 것 같지 않고 총에서 불이 번쩍 나는 것만 기억에 남아 있다. 너무도 놀라서 방을 뛰쳐나가는데 나동 관리인인 남효주 사무관이 “저 방에 들어가 있어”라며 부속실로 안내해 주었다. 조금 있으니 남 사무관의 안내로 신재순도 들어왔다. “꼼짝 말고 있으라”는 남 사무관의 지시에 문을 잠그고 있었다. 총소리(차 실장 및 경호원들에 대한 중정 경비원들의 확인 사살)가 나고 한참 후 “다 죽었어?”라고 자기들끼리 묻는 소리도 들렸다.
당시 차 실장은 탄환이 손에 맞았지만 치명상이 아니었다. 김 부장은 다시 발사하려는데 권총의 작동이 잘 안 되고 탄피가 나오지 않았다. 방 밖으로 나와 처음엔 박홍주에게 총을 달라고 하였으나 탄환이 다 소모된 상태라 박선호 과장의 리볼버 권총을 받아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문갑을 잡고 방어하던 차 실장의 가슴을 향해 쏘았다. 차 실장이 쓰러지자 테이블 왼쪽으로 돌아가서 약 50센티미터 거리를 두고 박 대통령의 뒤통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확인 사살을 한 것이다.
탕!! 탕!!

12월 17일 오후 4시 15분경, 두 여인은 감색 제미니 승용차를 타고 보통군법회의 8회 공판이 열린 군사법정에 도착했다. 이들은 이날 재판부와 검찰관, 변호인 그리고 보도진 4명과 기관원 등으로 방청이 제한된 별관의 소법정에서 수 시간에 걸쳐 각각 따로 증인신문에 답변했다.
10·26 사건 당일 밤 박 대통령의 양옆에 앉았던 두 여인이 증인으로 출두하는 날 합수부는 이들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데 크게 신경을 썼다. 하지만 시중에는 이미 ‘손금자’라는 가명으로 발표된 가수가 누구인지 알리는 정확한 ‘유비통신’이 전국적으로 나돌았고, 모 대학 연극영화과 재학생이며 모델 노릇도 한다는 ‘정혜선’ 양의 신원도 언론 보도만 막는다고 해서 감춰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신재순 : 처음 총소리가 난 후 화장실로 피신했는데 조금 있다가 또 총소리가 났습니다.
검찰관 : 그때 대통령 각하는 어떻게 하고 계셨습니까?
신재순 : 쓰러져 있었는데 식탁 옆으로 몸이 기울어 있었습니다.
검찰관 : 총소리가 난 후 불이 나갔나요?
신재순 : 불이 꺼진 뒤 심민경과 둘이서 각하를 부축했습니다. 그때 차지철 경호실장은 “경호원, 경호원”하고 소리치며 화장실에서 나와 문갑을 잡고 있었습니다.
(이때 변호인단이 유도신문을 하지 말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증인의 답변이 합수부의 수사기록대로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관 : 당시 상황을 기억나는 대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신재순 : 식탁에 엎드린 각하를 일으켜 부축했는데 그때 김재규 부장이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각하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대…… 나도 이제 죽었구나 하고 겁이 나서 실내 화장실로 뛰어들어 갔습니다. 잠시 후 조금 조용해지는 것 같아 나와보니 까만 옷을 입은 사람이 각하를 업고 나갔습니다.
검찰관 : 차 실장을 본 일이 있습니까?
신재순 : 방에서 빠져나가려는데 차 실장이 문가에 쓰러진 채 살아있어서 누군지 모르는 사람과 함께 부축하면서 일어나라고 했더니 “나는 못 일어날 것 같애” 하기에 그냥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때 옆 사람이 안내해줘 어느 방으로 들어가 기다리고 있는데 신음소리도 났고 조금 후 총소리가 계속해서 일곱 발 정도 났습니다. 그 방에 전화가 몇 번 왔는데 무조건 모른다고 했어요.
(이어 변호인 신문이 시작됐다. 김재규의 국선 변호인으로 선임된 안동일, 신호양, 이병용 변호사 등이 물었다.)
변호인 : 검찰관이 신문할 때처럼 그냥 “네, 네” 하지 말고 아는 대로 대답해 주세요. 궁정동에 도착해서 바로 방에 들어갔습니까?
신재순 : 6시 30분에서 40분 사이에 도착해서 잠깐 대기했습니다.
변호인 : 방에 들어갔을 때 대화가 계속되고 있었나요?
신재순 : 대화가 계속되고 있는 상태에서 들어가 인사하고 앉았습니다.
변호인 : 대화 중 언성이 높아진 적이 있습니까?
신재순 : 없습니다.
변호인 : 대화 중 차 실장과 김재규 부장 사이에 언성이 높았습니까?
신재순 : 그런 느낌은 못 받았습니다.
변호인 : 합동수사본부에 몇 번이나 갔지요?
신재순 : 한 번 갔습니다.
(이때 검찰관이 “본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질문은 삼가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자 변호인은 “검찰신문의 신빙력에 관한 질문”이라고 응수했다.)
변호인 : 그날 김계원 실장이 머리를 떨어뜨리고 있었다는 것은 높은 어른 앞이라 그런 것인가요, 아니면 무슨 꾸지람이나 죄책감이 있어서였나요?
신재순 : 뭔가 초조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변호인 : 증인은 관상학을 공부한 일이 없지요? 그 날 김 실장을 처음 보았고 조명도 흐렸지요?
신재순 : 조명은 말하기 곤란합니다.
변호인 : 조명이 어두웠나요, 밝았나요?
신재순 : 조명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조명에 대한 질문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은 실내가 밝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시중의 룸살롱처럼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권력자 그리고 술과 여자가 함께 있었다. 이어 심민경이 증인석에 앉았다.)
검찰관 : 그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대통령의 이야기 소리가 들리던가요?
심민경 : 조금 높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검찰관 : 만찬장에 들어간 뒤 대통령 각하께서 총에 맞을 때까지 생각나는 대로 얘기해보세요.
심민경 : 처음 들어가니 각하께서 차 실장에게 “TV에서 삽교천 행사를 방영하지 않느냐”고 물었고 차 실장은 “시간이 되면 제가 켜드리겠습니다” 하면서 시계를 봤습니다. 이때 저도 시계를 보았는데 7시 10분 전쯤이었어요. 삽교천에 대한 말씀이 계속됐고 심부름하는 사람이 들어와 김 부장의 귀에 대고 “과장님이 뵙자는데요” 하자 바로 나갔습니다. 그 후에 나갔던 김 부장이 언제 들어왔는지 곧 총소리가 났어요.
검찰관 : 그때 상호 간에 주고받은 얘기가 없었습니까?
심민경 : ‘이 버러지 같은 놈’이라는 고함 소리만 들었습니다.
검찰관 : 김재규 피고인이 두 번째 들어올 때 눈이 마주쳤다고 했는데…….
심민경 : 총을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굉장히 당황했어요. 설마 했으나 각하 머리에 총을 갖다 대는 걸 보고 밖으로 뛰쳐나갔는데 남효주 사무관이 부속실로 들어가 있으라고 했습니다.

처음 두 발의 권총 소리는 초저녁 궁정동의 적막을 깼다. 간발의 차이를 두고 십수 발의 총성이 콩 볶듯 뒤를 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5분, 박 대통령은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의 두 번째 총탄에 완전히 쓰러졌다. 박 대통령 절대 통치 18년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그때 나는 외환은행 서소문 지점에서 은행 대리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이면 고단한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만원 버스에 피로한 몸을 싣고 퇴근하고 있었거나, 술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틀림없이 몇몇 동료들과 함께 뒷골목 허름한 술집에서 돼지고기가 익는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막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순간 소주잔을 들고 부딪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김재규는 재판장에서 확인 사살을 한 이유에 대해서 ‘인간적으로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김재규가 박정희에게 쏜 총알은 딱 두 발이었다. 첫 발은 가슴을 관통했으나 치명타는 아니었다. 이 확인 사살에 의해 유신독재체제는 마침내 종막을 고했고 김재규는 혁명을 완수한 것이다. 김재규는 법정 진술에서 ‘저는 10월 26일 저녁 7시 45분 민주회복을 위한 국민 혁명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작성일:2020-08-03 10:34:05 14.32.9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