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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제목

<유중원 대표 단편선> 매복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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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변호사
등록일
2019-12-16 10:47:43
조회수
726
매복 작전



오 바르바라 / 전쟁은 정말 더러운 것 /
이 피비린내 나는 포화의 / 빗발 아래 / 지금 너는 어떻게 됐니.
― J. 프레베르



중대장이 달랏 지역 외곽 깊은 정글에 항공 정찰 결과 적의 보급기지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의심되고 수 미상의 베트콩인지 월맹 정규군인지 정기적으로 출몰한다는 정보를 대대본부로부터 받고 나서 우리 소대에 정찰 수색을 긴급 지시했다.
그쪽은 미로처럼 엉켜있는 호찌민 루트와 연결된 중부 해안 지대로 내려오는 대량 보급품의 주요 이동 통로였다. 정글처럼 위장된 거점 캠프에는 50명 정도 또는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많은 병력이 활동했고 북베트남에서 내려오는 다량의 식량과 의약품, 탄약과 화기를 보관했다.
처음에는 그 흔해빠진 공격 작전이나 매복 작전으로 생각했다. 그런 작전은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서 너무 익숙했다. 이번 작전이 무사히 끝난다고 해도 전투를 위한 출정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작전은 지금까지 소대 작전 중 가장 먼 곳이었고 더욱이 일주일 남짓 고립되어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만약의 경우 중대본부의 81미리 박격포와 4.2인치 로켓포와 C포대의 105미리 곡사포와 지상 20미터 정도 상공에서 폭발하는 폭탄인 CVT탄의 지원 사격을 기대할 수 없었다.
소대는 최소의 전투 단위였다. 우리 소대는 4개 분대로 나눠져 있었고 소대장을 포함해서 46명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분대 단위가 아니라 소대 단위로 활동했고 훈련도 소대 단위로 했다.
우리는 중대 기지를 떠나 정찰과 수색을 해야 한다. 행군과 정찰, 집중 수색과 매복. 다만 적을 발견하면 즉시 사살하고 포로로 생포할 필요는 없다는 지시를 받았다. 긴박한 상황에서 포로를 잡으면 그것처럼 처치 곤란한 일은 없다. 그들을 믿을 수는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포로들 때문에 작전에 지장을 초래하고 시간이 심각하게 지체된다. 차라리 처치하는 게 낫다. 그것이 소대원들의 한결같은 믿음이었다.
우리는 절대로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고 알고 있지만 전쟁터에서는 그건 도저히 지킬 수 없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헬리콥터는 뜨지 않는다. 그걸로 이동하면 정찰 수색 지점이 완전히 노출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헬기로 투입되는 과정에서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집중공격을 당해서 전멸까지 당할 수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작전을 종료하고 철수할 때만 지원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거운 배낭을 지고 행군을 해서 머나먼 목표 지점인 Z지점까지 가야 한다.
그 지역은 고원 도시인 달랏의 외곽에 병풍처럼 서 있는 랑비앙산 뒤쪽 저 너머에 있는 죽음의 계곡이었다. 가는 길목에 논과 풀숲, 늪과 호수가 누빈 천 조각처럼 모여 있고 밀림 내부는 오밀조밀해서 특별히 위험한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믿을 수도 없고 확인할 수도 없는 이야기지만 프랑스와 베트남 전쟁 중에 베트민군의 매복에 걸려 프랑스 보병 2개 대대가 전멸한 곳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날 밤 뜬금없이 고국에 돌아가서 제대하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놓고 얘기를 나눴다. 말단 소총수들은 밑바닥 인생이었다. 그들 중에는 고졸 이상의 학력 소지자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국졸이었다. 그들은 제대하면 농촌으로 돌아가거나 도시로 나가 공장 노동자 또는 공사판의 건설 노동자로 일할 수밖에 없다. 나는 입 밖으로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도 선임하사에게 잘 보여야 가능한 일인데 몇 달 있으면 병장으로 진급할 것이고 절약하고 절약하면 전투 수당을 모아서 대학 입학금을 마련할 수 있을 터였다.
우리는 언제 벌어질지도 모르는 전투에 대해 걱정하는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모두들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따금 가벼운 대화가 분위기를 녹여주기도 했지만 그날 밤은 아니었다.
보병 중대는 누가 전사하거나 심한 부상을 당하면 달마다 들어오는 전입병에 의해 신속하게 자동 보충된다. 풋내기 신병들은 잔뜩 겁을 집어먹고 두리번거리면서 전투기지에 도착하면 먼저 전입 신고식을 하고 나서 중대본부에 자른 머리카락과 손톱과 발톱을 제출한다. 월남에서 죽으면 그것들은 영현부대의 화장터에서 보낸 회색 잿가루와 함께 고국의 집으로 보내진다. 그리고 개인용 담요, 배낭, 벨트, 정글화, 수통, 철모, 개인 화기 등 관물을 지급받았다. 우리는 한국에서 미군이 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했던 카빈 아니면 M1을 지급받았지만 월남에서는 신형 M16 소총을 지급받았는데 성능도 탁월하고 우선 훨씬 가벼워서 좋았다.
우리는 언제든지 대체 가능하다. 우리들이 어떤 개성을 가진 인물이고 어떤 종류의 삶을 살았든 간에 관계없이 초록색 군복을 입는 그 순간부터 군대라는 거대한 조직의 ‘군인’이라는 하찮은 부품으로 취급될 뿐이다.
내가 월남으로 파병되기 전 소속 부대는 5군단 산하 8사단의 보병 연대였고 중대본부는 포천군 일동면 연곡리에 있었다. 나는 아직 일등병이었다.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중대 인사계 담당 김 상사가 나를 호출했다.
김 상사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유 일병이 월남 파병으로 차출되었다. 내가 차출한 것이 아니라 위에서 내려왔어. 우리 중대에서는 너 혼자야. 돈 많고 빽 좋은 사람은 다 빠졌으니까. 특과병은 모르겠지만 보병 소총수는 서로 안 가려고 뒤로 빠지거든. 그런데 넌 어쩔 셈이야? 아직 늦지는 않았는데…… 군대는 벼라별 수가 다 있으니까.”
“전 별수가 없어요. 그대로 가겠습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일주일 내로 춘천 오음리 7보충단으로 가서 월남 파병 훈련을 받아야 한다.”
나는 더블백을 메고 처음 보는 다른 중대의 전출병 2명과 함께 대대 연병장에서 대기 중이던 사단본부행 쓰리쿼터에 올라탔다. 거기서 모인 다음에 춘천의 오음리로 가게 된다. 그것은 월남전에 참전하기 위한 강제 전출이었다. 그때는 백마부대로 간다는 것만 알고 있었고 구체적으로 어느 연대로 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고향처럼 낯익은 부대의 겨울 풍경을 바라보며 아련한 느낌이 들었다. 군홧발과 조인트, 가슴과 배를 마구 찌르는 번쩍이는 지휘봉이 생각났다. 내가 다시 여기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몸도 마음도 다 떠나는 거지.
새벽 일찍 출동해야 하므로 밤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인 M16 소총을 삼등분으로 분해해서 정성스레 닦고 기름칠을 했다. 젊은 소대장이 우리들의 준비 상황을 점검하면서 왔다 갔다 했다. 그 즉석에서 군장검사를 했다.
소대장이 지시했다. “배낭끈을 잘 조절해야 한다. 장거리 행군을 해야 하니까.”
우선 수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 전투 식량과 소금을 챙겼다. 내 배낭에 들어간 것은 고이 접은 판초, 양말 두 켤레, C레이션, 소금, 물 소독약, 모기약, 말라리아약, 아메바성 이질약, 무좀약, 칫솔, 치약 튜브 작은 것, 수류탄, 그리고 정글에 갈 때면 절대적인 필수품인 독사에 물리면 3분 내로 먹어야 하는 주사위처럼 생긴 정육면체 모양의 해독제, 배낭 밖에는 캔버스로 싼 야전삽을 매달았다. 또한 벨트에는 응급처치 때 사용할 압박붕대를 넣은 파우치, 양쪽으로 수통 두 개, 칼집, 수류탄도 두 발이나 걸었다. 20발이 들어있는 탄창 여섯 개를 넣은 탄입대를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얼굴에는 군데군데 검정색 위장 초콜리트를 발랐다.
야전 식량은 C레이션 일부와 일주일 동안 먹을 수 있는 미군이 개발한 특수 비상 식량이 처음으로 배급되었다. 은박지로 단단하게 포장한 냉동 건조 식량이기 때문에 부피가 작고 매우 가벼웠다. 은박지 봉투를 뜯으면 여러 가지 색깔의 가루가 들어있고 여기에 물을 붓기만 하면 음식으로 변했다.
우리는 행군을 하거나 매복을 하거나 간에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총알이나 부비트랩과 지뢰를 밟아 하늘로 튕겨 날아오르면서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어느 순간 죽을지도 모른다는 전장의 군인들이 느껴야 하는 무형의 감정들, 죽음의 공포, 슬픔, 작은 희망, 본능적인 갈망의 감정을 배낭에 넣어 가지고 다녔다.
내일 아침 기상 시간은 4시이고 출발 시간은 5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의 고된 행군을 생각하면 일찍 취침해야 한다. 잠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잠을 이루기가 무척 힘들었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러다가 식은땀까지 흘렸다. 나는 고향을 생각했다. 부모님을 생각하고 동생들을 생각했다. 혹시 다치거나 불구가 되지 않을까, 혹은 목숨을 잃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
밤하늘에 총총히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면서 살아 돌아와서 저 별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끔찍한 정적이 흐른다. 왠지 초라하고 버림받은 기분이 들었다.
새벽 여명이 막 비치기 시작했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소대원들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거나 담배를 피웠다. 다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초조해하고 긴장하고 겁을 먹고 있었다.
이른 아침에 부대가 부산을 떠는 것은 틀림없이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벌써 소대 전체에 우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는 거머리가 들러붙지 못하도록 바지 끝을 강철 스프링을 이용하여 군화 위에 접어 처리했고 방탄 조끼를 입었다. 초록색 위장 철모 둘레에 폭이 넓은 고무 띠를 감아, 그 속에 반창고와 지혈면을 꽂아 넣었다.
우리는 아침 5시에 정확히 출발했다. 소대장이 재촉을 하면서 불호령을 내렸다. 출발한다! 출발!! 출발!!! 그도 그럴 것이 먼 거리를 행군하여 목표 지점에 일찍 도착해서 수색을 해야 하고 그다음에는 방어하기에 적당한 지형을 골라서 임시 진지와 엄폐물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대별로 나눠서 개인 거리를 확보하며 일렬 종대로 출발했다. 각 분대는 분대장이 제일 앞장을 섰고 부분대장이 후미를 담당하면서 순서대로 출발했지만 가는 도중 순서를 교대했다.
그때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그날 밤 맞이하게 될 그 비극적 운명을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숲속에서 회색 안개가 소리없이 피어 올라왔지만 태양은 이미 빨간 진홍색이 되어서 떠올랐다. 태양의 열기는 점점 더욱 기승을 부렸다. 찍어 누르듯 내리쪼이는 태양은 오늘 하루가 얼마나 길고 지루할 것인지를 예고하고 있었다.
우리 소대는 도시를 멀리 우회해서 하늘에서 내려온 고엽제 때문에 누렇게 말라버린 황폐한 개활지를 지나왔다. 나무들이 모두 타죽어 헐벗은 땅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생명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황무지였다. 개활지에서는 모든 게 다 보였다. 침묵뿐인 풍경들이. 건너편 수면이 청록색 얼룩들로 덮인 호수가 보이고,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강의 지류가 보이고, 우리가 건너야 할 늪지대, 울창한 숲이 우거진 산등성이, 아주 먼 곳에 있는 안개에 거의 가려진 달랏 지역의 회청색 산봉우리들까지.
우리는 이제 방향을 서북쪽으로 바꿔 탱크의 캐터필러 자국이 상체기처럼 선명한 도로를 건너서 개활지와 숲 사이에서 경계선 역할을 하는 정강이까지 빠지는 음침한 늪지대 수렁을 헤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겨우겨우 전진했다. 습지에서는 도마뱀들의 음험한 울음소리가 들렸고 지독한 모기 떼들이 악착같이 얼굴로 날아들었다. 물고기들이 갑자기 움직이면서 첨벙거리는 소리에 깜짝 놀란다.
소대장이 계속 외쳤다. 전진한다! 전진!! 전진!!!
우리는 이름도 모르는 지류인 강을 따라 전진했다. 가슴 중간까지 차오른 흙탕물은 미적지근하면서도 따뜻했다. 아주 작은 수생곤충들이 수면을 춤을 추듯 날아다니고 물매미가 떼를 지어 새까맣게 모여들었다. 나는 풀섶 사이에 지어진 거미줄이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을 무심코 쳐다보다가 약간 깊은 구덩이에 빠질 뻔했지만 곧 균형을 잡았다. 그 순간 깊은 수렁에 발을 디뎌 꼼짝할 수 없이 빠져버린다면, 그래서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올 수 없고 물이 입과 코를 막아버린다면, 그걸로 끝장이 날 거라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작은 새 한 마리가 공기를 가르며 우리들 머리 위로 낮게 날고 있었다. 검은 꼬리를 섬세하게 흔들 때마다 하얀색 가슴에 줄지어 있는 검은 반점이 보였다.
우리는 정오쯤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고무나무 밭을 지나서 폐허가 된 마을이 연이어 늘어선 지역을 이미 통과했다. 멀리서 개들이 짖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우리는 C레이션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기관총과 M134 미니건으로 무장한 미군 헬리콥터들이 요란한 굉음을 내며 마을 위로 날아서 사라졌다.
며칠 전 작전지역에 미군 팬텀 폭격기의 네이팜탄 폭격이 있었고 네 대씩 편대를 지어 날아가는 헬리콥터들의 무자비한 기관총 공격도 있었지만 아무리 엄청나게 쏟아부어도 그건 말짱 헛일이다.
그놈들은 그때 깊은 갱도에 편안하게 쉬고 있었을 테니까. 덥고 습한 울창한 숲의 터줏대감인 반달가슴곰과 노란뺨 긴팔원숭이들만 혼비백산하여 울부짖다 사라졌을 뿐이다.
우리는 항상 지나가기 편한 지름길인 오솔길을 우회하였다. 베트콩은 틀림없이 부패한 월남군으로부터 입수한 진짜 미제 지뢰 또는 불발탄 곡사포탄으로 직접 조립한 지뢰를 설치한다.
우리는 총격전에서는 언제든지 반격할 기회가 있었다. 더욱이 우리의 화기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니까. 그러므로 매복 공격을 받았을 때 첫 번째 집중사격에 당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반격할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러나 지뢰에 걸리면 쾅 터지는 폭발과 함께 끝난다.
파월 장병은 원칙적으로 복무기간이 1년이었다. 그러나 전사자는 대부분 풋내기 시절인 월남에 온 지 석 달 안에 전투 중 사망한다. 나는 이 기간을 무사히 넘겼다. 그렇다고 월남전의 특성상 적군과 아군 간에 전면적인 충돌이 일어나서 몇백 명씩 죽는 일은 없었다. 우리는 그때그때 한 번에 한 명씩 죽어나갔다. 우리는 죽으면 집으로 돌아간다.
태양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소총을 걸머진 채로 벌써 8시간을 걸었다. 소총을 오른쪽 어깨와 왼쪽 어깨에 교대로 메고 걸었지만 소총은 계속 철모와 배낭의 버클에 부딪혔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은 야생화로 덮여서 울긋불긋했고 너무나 조용하고 평화로워서 전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평탄한 길은 끝났다. 대나무 숲과 가시가 돋친 덤불과 칡넝쿨과 갖가지 식물들의 줄기와 잎과 덩굴들이 마구 뒤엉켜있는 밀림 속 길은 점점 더 험해지고 있었다. 밀림은 어두침침했고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았다. 오직 열기와 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들은 긴장할 대로 긴장했다. 숲속을 이동하면서 나뭇가지나 잎사귀 하나라도 몸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베트콩이 덤불에 설치해 놓은 ‘말레이시아 문짝’을 잘못 건드리면 올가미에 걸려서 나무에 쌀자루처럼 매달리게 되고 그때 밧줄을 건드리기 때문에 죽창이 화살처럼 무더기로 날아올라 온몸에 박히게 된다. 그리고 함정이나 까치발이 없는지 땅바닥도 자세히 살펴야 한다.
베트콩 저격병은 자신의 위치를 숨기려고 총을 딱 한 번만 쏘고 사라지므로 우리들은 그 총성이 어느 방향에서 났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베트콩 저격병은 숲속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우리는 한 줄로 늘어선 채로 폭격으로 생긴 깊은 분화구를 우회하고 턱 높이까지 차오르는 거칠고 뻣뻣한 갈대는 감촉이 칼날처럼 날카로웠으므로 그런 갈대를 피해서 비교적 덜 빽빽한 곳을 찾아서 움직였다. 정찰병의 신호에 따라 가다 서다 반복했으니까 전진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정찰병은 날이 넓고 묵직한 정글용 칼인 마체태로 풀섶을 헤치며 앞서갔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흘렀고 허벅지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며 욕지기가 일었다. 너무 지쳐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잠깐 휴식을 취하면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워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행군을 포기하면 안 될까. 병사들은 너무 지친 나머지 땅바닥에 누워서 파리 떼들이 얼굴에 달라붙었지만 그것들을 쫓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연거푸 담배를 피웠다. 우리들은 거의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그때마다 소대장이 외쳤다. “누우면 안 된다. 그러면 일어날 수 없어. 똑바로 앉으라고……”
누군가 가래를 한두 번 뱉은 다음 불평을 늘어놓았다. “빌어먹을 군대야. 서둘러서 뭘 하겠다는 거야. 서두르라고 했다가 기다리라 하고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거지.”
“졸병은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거야.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는 거지. 그리고 쏘라면 쏘고 죽이라면 죽이고 죽으라면 죽어야 한다 이거 아닌가. 뭘 그렇게 불평이 많은 거야?”
소대장이 허용하는 휴식시간은 단 15분이었다. 그 이상은 안 되었다. 그러면 결국 몸이 늘어져 쳐지게 된다는 것이다. 행군을 다시 시작할 때마다 소대장은 작전지도를 펼쳐서 좌표 지점을 점검했고 쌍안경으로 주위를 세밀하게 살폈으며, 그때마다 PRC-10 무전기로 교신을 해서 중대 CP에 현 위치를 보고했다.
작전 지도의 좌표에선 고작 눈금 하나에 불과한데 실제는 10 내지 40킬로미터 거리였다. 그러므로 지도상에 나타나는 마을이나 공동묘지, 고무 밭 등은 실제 지형과는 완전히 다른 경우가 있었다. 어떤 곳은 촌락이 아니라 검은 숲으로 이루어진 언덕이거나 개활지이거나 늪이거나 그런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래서 목표 지점을 향해 행진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최종 목표 지점은 Z 지점이었고 좌표는 BS 553,778이었다.
소대장이 외쳤다.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라! 개인 거리는 5보! 5보!! 5보!!!”
밀림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전진하기 힘들었다. 우리는 분대별로 산개하여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하루 종일 정밀 수색을 하였지만 적이나 적의 흔적, 보급기지, 동굴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은 낮 동안에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폭격을 피하기 위해 우리가 아직 찾지 못한 동굴 속에 깊숙이 숨어있을 것이다.
소대장의 말에 의하면 적의 보급기지가 소규모이고 병력도 몇십 명 정도라면 소대가 직접 공격하여 박살을 낼 것이고 대규모이면 적을 유인한 후 무선으로 공격 좌표를 정확히 알려주고 미군 헬기들이 날아와 먼저 기관총을 갈기고 나서 수직으로 정밀 폭격을 할 것이다.
그런 후 우리는 철수하게 된다.
무사히 철수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헬리콥터를 타고 콧노래를 부르며 열대의 창공을 날게 될 것이다.
우리는 숲속의 안전한 장소에서 바위 틈이나 나무 밑동에 개인 호를 파서 몸을 숨기고 야영을 하면서 이틀 동안 작전지점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 중간에 가끔 휴식을 취하고 작은 개울이 나타나면 수통에 물을 채우고 알소금과 정수제를 넣었다.
그날 늦은 오후 짙은 회색과 선명한 황금빛이 색칠한 것처럼 뒤섞인 저녁 노을이 아득하게 펼쳐진 밀림 위로 줄줄이 흘러내렸다. 밤의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그 어둠은 삽시간에 사방을 무겁게 뒤덮었다. 우리는 소대장의 지시에 따라 매복 작전을 위해서 임시 진지를 구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소대장이 지시했다. “너무 흩어지면 안 되지. 그러면 화력 집중이 안 된단 말이야. 알겠나!”
그때부터 베트콩의 예상 침투를 공격 방어하기 위해 관목과 덤불이 우거진 숲속에 진흙과 나뭇가지로 참호를 만들어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밤의 어두움은 겹겹의 음영으로 더욱 짙어진 암흑으로 변했다. 암흑 속에서는 모든 색깔이 똑같다. 나는 M16 소총의 조종간을 연발에 맞춰놓고 수류탄을 일렬로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등줄기에서는 벌써 식은땀이 빗줄기처럼 줄줄 흐른다.
우리는 잔뜩 긴장한 채로 하염없이 기다린다. 아무런 교전 없이 그저 무사히 스쳐 지나가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밤새 긴 기다림의 시간. 우리는 지금 매복한 사냥꾼이다. 제물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는 순간을 기다린다. 나는 갑자기 코가 근질거려서 콧구멍을 후벼팠다.
송 병장이 수통에 챙겨온 술을 돌려가며 나눠 마셨다. 한 모금의 독한 술이 찌르르하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그 병장이 어둠 속에서 신경질적으로 손가락 관절을 꺾어서 소리를 냈다. 그리고 나서 속삭이는 어조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높게 쏘지 말란 말이야. 초짜들은 하늘을 향해 쏜다니까. 마구 쏘지 말고. 소총 가늠자를 많이 내려야 된다고. 몸도 낮추고.
소대장은 어린애야. 원래 촌놈이었어. 그가 시키는 대로 하면 안 돼. 쉿! 오늘 밤은 어쩐지 불길해. 진지 위치가 영 아니거든. 위쪽에서 공격하기 좋게 너무 낮은 곳에 있다니까. 그냥 무사히 지나갈 수도 있겠지만……
교회 다녀? 하느님께 미리 기도하라고.”
그때 소위는 저 멀리서 권총 혁대 위에 양손을 걸친 채 무전병과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어젯밤 나는 소대장의 지시로 미제 M1911A1 권총을 분해해서 몸통과 탄창, 방아쇠, 안전장치, 나사 등을 기름칠한 헝겊으로 정성스레 닦은 다음 다시 조립했고 탄창에 8발의 탄환을 장전했었다.
잠시 몬순의 지독한 비가 한동안 쏟아지며 숲속에서 소란이 일어났지만 비가 그치자 곧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새들과 벌들, 나비들은 날갯짓을 멈췄고, 붉은 개미, 곤충들도 몸짓을 멈췄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 소리만 들린다. 하늘에서 별들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그러나 황량한 그날 밤은 섬뜩하리만치 적막했다.
숨막히는 정적이 흐른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유령들이 배회하는 소리가, 수류탄이 참호로 굴러들어와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허벅지가 뜨겁고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오줌을 지렸다.
나는 그때 짧은 턱수염을 기르고 눈이 충혈된 그가 검은 파자마를 입고 이마에는 검은 띠를 동여맨 채 나를 정조준하며 달려드는 환상에 시달렸다. 제발 오지 마. 왜, 나를 향해 달려드는 거야? 나를 죽이려고? 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나를. 나는 무사히 돌아가야만 해.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거든. 그러니 오늘 밤은 그냥 넘어가자고. 나는 무사히 귀국할 거야.
별들이 이울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교대로 경계를 서고 선잠을 자다 깨어나곤 했다. 그러나 한시름 놓았다. 모두들 긴장이 풀어지면서 몸을 비틀고 하품을 했다. 목덜미가 뻐근했다. 우리들은 저린 팔다리를 펴면서 앉은 자리의 위치를 바꿨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새벽 네 시였고 공기는 시원해졌다.
어느 순간 팽팽한 긴장감이 공기 중에 감돌고 우리의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등골이 서늘해지며 몸속의 모든 신경이 곤두선다. 손과 발은 땅에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무슨 불가사의한 전조가 있었던 것일까. 곧바로 진지 위로 베트콩의 61미리 박격포탄이 먼저 터지고 AK47 소총의 근접 사격이 쏟아졌고, 불발이 된 방망이 수류탄이 날아왔다. 파편 몇 조각이 머리 위로 튀어 올랐다.
우리는 함정에 빠져 속수무책으로 기습을 당했다.
뒤늦게 예광탄이 날아오르고 분대장이 숲속으로 조명탄을 발사했다. 그칠 줄 모르고 줄지어 날아오르는 예광탄과 조명탄 때문에 주위가 환하게 밝았다. LMG의 속사음과 기관총의 폭음 소리가 귀청을 찢었다. 유탄수가 M79 유탄발사기를 발사했다.
젊은 소위가 외쳤다. 사격하라! 사격! 집중 사격!
총구에서 나오는 불꽃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나는 심장이 마구 뛰었고 그 순간 아무것도 분명하게 볼 수가 없었지만 엉겁결에 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내가 발사한 총성의 메아리가 숲속에서 되돌아 나오는 거 같았다. 나는 계속 탄창을 갈아 끼우며 주저하지 않고 쏘고 또 쏘았다. 잠시 사격을 멈췄을 때 철모가 덜그덕거렸고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준 사격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숲을 향해 무조건 총을 갈긴 것이다.
뜨거운 피가 튀었다. 비명. 아우성. 씨발, 씹새끼들. 시체들.
죽음의 냄새가 가득히 퍼졌다.
누구인지 계속 절박하게 외쳤다. “위생병! 위생병!! 위생병!!!”
그때, 무전기가 울렸다. 부산! 부산! 빨리 나와라! 여기는 대구! 작전 종료! 종료! 철수하라. 반복한다. 철수……! 반복……!
누군가 뭐라고 마구 악을 쓰지만 그게 무슨 소린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박격포탄이 연속해서 터지고 최초의 요란한 일제 사격이 끝나자 검은 파자마를 입은 베트콩들은 ‘따이한 라이 라이’, ‘따이한 라이 라이’라고 외치며 재빨리 어두운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숲은 다시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망연자실하였다. 정지된 화면 같고 시간이 얼어붙어 버린 것 같기도 하였다.
아침이 오고 날이 밝았다.
여전히 매캐한 화약 냄새가 매복지 여기저기를 날아다녔다.
나는 사수에게 무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말이 되지 못하고 나오다가 사라져버렸다. 그는 여전히 반쯤 정신이 나가서 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 울고 있는지도 몰랐다.
소대원 중에서 많은 병사들이 부상당하고 죽었다.
신참 박 일병은 파편에 배가 찢어져서 창자가 반쯤 빠져나오면서 뜨거운 김을 뿜고 있다. 오른쪽 으깨진 정강이가 무릎에 덜렁거린 채 검붉은 피가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 “난…… 죽겠지……” 그는 몸을 일으켜 자세를 바로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나는 그를 껴안으며 안심시키려고 했다. “절대 안 죽어. 염려 말라니까.” 위생병이 달려왔다. “그대로 놔두라니까. 움직이면 절대 안 돼. 그대로 누워있어. 가만있으라니까.” 위생병은 임시방편으로 배에다가 붕대를 몇 겹으로 동여매고 나서 정강이를 무릎에 고정시키고 붕대를 몇 겹 감았다. 그래도 계속 피가 흘렀다. 모르핀을 투여하고 혈장을 수혈했다.
하지만 배에 총상을 입었으므로 물을 마셔서는 안 되었다. 그가 계속 물을 달라고 애원했지만.
철모 하나가 버려진 조개껍질처럼 바닥에 떨어져 있다. 그 곁에 귀국을 보름 남겨둔 소위가 한 손으로 피와 내장이 쏟아져 내리는 자기 배를 틀어쥐고 있었다. 그는 지금 손쓸 틈도 없이 죽어가고 있다. 위생병이 몸을 뒤집어 놓았다. 그의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땀으로 뒤범벅이 된 얼굴이 비로소 보였다. 누구인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수통을 열어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의 물을 소대장의 입술에 부어준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망연자실했고 울었다.
밀림 속에서 새벽은 아주 더디게 찾아왔다. 동쪽에서 태양이 힘겹게 솟아오르면서 아침 안개가 슬며시 물러나고 어스름 속에서 산맥의 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숲속으로 스며드는 햇빛은 아직 희미했다. 비로소 늦잠에서 깬 원숭이들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대고 이름 모를 새들이 서로 부르며 소란스럽게 울기 시작했다.
분대장은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 넋이 나간 채 우두커니 서 있다.
나는 계속 중얼거렸다. 제발, 죽지만 마라…… 죽지 말라고.
그가 입을 열고 무슨 소리라도 외친다면? 그는 마지막으로 무언가 할 말이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박승춘 일병은 죽었다. 이제 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비명, 신음, 탄식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나는 비로소 가슴 속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지금 돌이켜보지만 그게 누구인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박 일병의 철모와 배낭, M16 소총 등을 챙겼다.
나는 그의 죽음을 도저히 실감할 수 없었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좌절감과 허탈감 때문에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몇 사람이나 죽었는지.
누군가는 전사했고 누군가는 중상을 입었다. 나트랑의 102야전병원으로 후송할 헬리콥터들이 날아왔다. 시체는 녹색 합성수지 판초에 눕힌 다음 덮었다. 그게 마지막 이별이었다. 헬리콥터들이 계속 날아왔다. 우리들은 여러 대의 헬리콥터에 분승해서 중대본부 전투기지로 돌아왔다.
언제든지 다음번 작전에서는 나 또한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그때마다 처음 교육 훈련을 받을 때 교관인 중사가 “절대로 죽지 마라. 그건 개죽음이다. 무사히 귀국해야 한다.”고 외치던 목소리가 기억났지만. 이제는 자신이 성숙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그날 헬리콥터를 타고 부대로 귀환한 후 우리들의 안방인 벙커에 들어가 혼수상태에 빠진 것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작성일:2019-12-16 10:47:43 175.209.21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