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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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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대표 에세이> 단어와 문장, 문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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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변호사
등록일
2019-12-06 11:24:56
조회수
502
단어와 문장, 문체




단어란 그 자체로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할 수 없다. 자기 자리를 찾아서 안착해야만 한다. 이제 문장 속으로 들어가 서로 얽혀서 묶인 단어들은 주체, 행위, 대상을 표현하거나 또는 진술한다. 그러면 독자는 그 표현의 의미를 이해하고 되새기거나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18세기 작가, 조셉 에디슨 (Joseph Addison)은「상상력의 즐거움 (The Pleasures of the Imagination)」에서, ‘적절히 선택된 단어는 매우 큰 힘을 지니기 때문에, 묘사는 종종 눈앞에 실재하는 사물보다 더 생생한 인상을 심어준다.’라고 말했다.
버지니아 터프트 (Virginia Tufte)는 「문장 기교 (Artful Sentences)」에서 ‘단어를 강력하게 만드는 것은 문법이다. 단어는 문법을 통해 제자리에서 따로 빛날 뿐 아니라, 질서 체제 내에서 연계를 맺음으로써 특정한 의미를 전달한다.’라고 했고, 19세기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딱 맞는 단어 (mot juste)’를 모색했다. 그가 찾는 ‘딱 맞는 단어’란 홀로 빛나는 단어가 아니라 정확하게 자리를 잡아 다른 단어들과 결합하여, 잘 깎은 다이아몬드처럼 시공간 속에서 빛나는 단어를 말한다. 스탠리 피시 (Stanley Fish)는 ‘우리가 매일 쓰는 언어로는 도무지 해내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뛰어난 문장은 척척 해낸다. 우리는 이러한 문장을 보며 감탄을 내뱉는다. 문장은 교묘하게 창조된 작은 세계다. 짧은 단어로만 이루어진 간단한 문장도 전설 같은 순간을 생생히 느끼도록 해준다.’고 했다.

문장이 모여서 질서 있게 배치되어야만 문단이 되고 이 문단에서 비로소 진정한 문체를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종류의 글이건 그 글에 맞는 문체를 갖추지 않으면 훌륭한 글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유미주의자들처럼 문체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체만 있고 본질은 없다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훌륭한 작곡가는 탁월한 피아니스트였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피아노 연주에 숙달되어야만 세계적인 명작을 작곡할 수 있는 것이다. 작곡가는 피아노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한 가지 악기는 마스터해야 한다. 그게 바이올린, 비올라, 플루트, 트럼본, 트라이앵글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이건 구 소련의 유명한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가 한 말이다.)
그렇다면 소설가는 문장과 문체를 능수능란하게 또는 아름답게 부릴 줄 알아야만 훌륭한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나바코프는 문체에 대해서, ‘문체는 도구도 아니고 방법론도 아니다. 단순히 단어의 선택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이 모든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존재인 문체는 작가의 개성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 또는 특징이다. 따라서 우리가 문체를 말할 때는 예술가 개개인의 독특한 본질 그리고 그것이 예술적인 작품 속에 표현되는 방식을 뜻한다.
우리가 논할 가치가 있는 것은 천재적인 작가들 각각의 독특한 문체일 뿐이다. 그 천재성은 작가의 영혼 속에 깃들어 있을 때만 문체를 통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 경력이 쌓일수록 작가의 문체가 더 정밀하고 인상적으로 변해가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재능이 없는 작가는 가치 있는 문체를 발전시키지 못한다. 기껏해야 신성한 불꽃 같은 것은 전혀 없이 인위적으로 조립된 기계장치 같은 것만 나온다.
나는 문학적인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도 소설 쓰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문학적인 재능이 있는 젊은 작가만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발견하고, 클리셰에서 자신의 언어를 해방하고, 서투름을 없애고, 언제나 꿋꿋하고 참을성 있게 그 자리에 딱 맞는 단어를 찾아다닐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작성일:2019-12-06 11:24:56 121.135.238.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