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연재소설

제목

<유중원 대표 단편선> 야, 그 얘긴 하지 마 (수정)

닉네임
유중원 변호사
등록일
2019-07-23 13:49:57
조회수
724
야, 그 얘긴 하지 마



그는 영원한 해병이고 사나이 중의 사나이이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1. 1979년 12월 4일 오전 10시.
서울 삼각지에 있는 육군본부 군사법원 대법정.
재판부는 재판장 김영선 중장과 유범상, 이호봉, 오철 소장, 법무사 신복현 준장 등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2회 공판부터 법무사는 황종태 대령으로 바뀐다. 한편 검찰관은 전창렬 중령과 이병옥 소령, 차한성 대위였다.
변호인단은 피고인별 연인원이 31명이었으나 중복된 경우가 있어 실제 인원은 29명이었다.
이 당시 육군본부에는 계엄사령부 간판이 붙어있었다. 10·26 박정희 대통령 살해 사건으로 비상계엄령이 선포됐고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에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계원 등 박정희 대통령 살해 사건의 피고인 8명에 대한 군사재판이 처음 열렸다.
10·26 사건이 난 지 39일 만이었다. 국내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의 이목이 전대미문의 이 사건 진실을 밝히는 재판에 쏠려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형식은 공개재판이었으나 일반인에게 자유로운 방청은 허용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법정 질서를 이유로 사전에 170여 장의 방청권만 발부했다.
피고인들은 이날 오전 9시 40분경부터 법정에 입장하기 시작했다. 전 중정 의전과장 박선호, 전 중정 경비원 이기주, 김태원, 유석술, 의전과장 운전기사 유성옥 등이 헌병들의 인도로 먼저 들어와 피고인석 뒷줄에 앉았다.
이어 전 중정부장 김재규의 수행비서인 박흥주 대령과 김계원 청와대 비서실장이 들어와 앞줄에 앉았다.
주범인 김재규 피고인은 맨 마지막으로 입정했다. 그는 양 손에 가죽 수갑을 찼다. 한복 저고리와 바지에서부터 양말 고무신까지 모두 하얀 색에 얼굴만 검은 색인 그는 고개를 곧게 세우고 의연한 모습이었다.
재판장이 개정 선언을 하자 법무사 신복현 준장이 일어섰다.
“재판장을 대리해서 인정신문을 하겠습니다.”
이어 피고인들이 호명에 따라 차례로 일어서 본적, 주소, 생년월일 등을 답변했다. 이어 법무사가 재판 규칙 등을 고지했다.

2. 79년 12월 11일 오후.
보통군법회의 제4회 공판이 속개됐다.
박선호, 박흥주 피고인에 대한 검찰관의 사실심리가 이날 오전 끝났다. 오후부터 변호인의 반대신문이 시작됐다.
박선호 피고인의 변호인은 강신옥 변호사였다. 강 변호사는 처음 김재규 피고인의 사선 변호인단 21명에 포함됐으나 김 피고인이 이날 사선 변호인단의 변론을 거부하는 바람에 박선호 피고인의 변론에 주력하게 된다.
강 변호사는 박선호 피고인이 검찰관의 신문에 답변하면서 얼핏 내비친 궁정동 안가의 대행사 소행사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박정희의 연회 행사와 그 자리에 동원된 외부의 여자들. 부도덕한 대통령이 술과 여자에 탐닉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대통령의 심복인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총으로 쏜 사건의 배경에 대해 품었던 자신의 의혹이 풀려가고 있었다. 대통령의 타락과 판단력 마비 때문에 국가 위기가 닥치고 있었던 것이다.
강 변호사는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으로 대통령의 채홍사 역할을 해온 박선호 피고인을 통해 박 대통령의 부도덕성을 폭로하기로 마음먹었다. 박 대통령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킬수록 그만큼 10·26 거사의 정당성이 커지는 것이다. 그는 박선호와 구치소 접견에서 이 점을 어느 정도 주지시켰다.

재판장 : 본 군법회의를 속개하겠습니다.

법무사 : 박선호 피고인, 앞으로 나오세요. 강 변호사님 중복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좀…….

변호사 : 제가 묻는 대로 재판장을 향해서 대답해주세요. 피고인은 본적지인 경북 청도 원정리에서 태어났나요? 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습니까?

박선호 : 8·15 전입니다.

변호사 : 그 당시 아버지의 직업은?

박선호 : 농업입니다.

변호사 : 어린애는 몇이나 두었습니까?

박선호 : 넷입니다. 제일 큰 놈은 대학 2학년이고, 둘째는 고등학교 1학년, 셋째는 국민학교 5학년, 막내는 국교 1학년입니다.

변호사 : 김재규 전 정보부장이 피고인이 대륜중학교 다닐 때 은사라고 알고 있는데 언제부터 언제까지 피고인을 가르쳤고 담당 과목은 무엇인지요?

박선호 : 저희 중학 2학년 때 체육 담당입니다.

변호사 : 그때 김 부장은 피고인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당시 피고인이 살던 집과 가까이에 살고 있어서, 피고인을 특별히 비호해주는 관계였다는데요?

박선호 : 네, 그렇습니다.

변호사 : 대륜학교를 졸업하고 피고인은 해병 간부 후보 16기로 입대했는데, 해병대에 간 특별한 동기라도 있습니까?

박선호 : 해병대를 항상 동경하고 있었습니다.

변호사 : 왜요?

박선호 : 모든 면에서 씩씩하고 용감하기 때문입니다.

변호사 : 해병 간부 후보 16기 동기생 중 성적은?

박선호 : 보통이었습니다.

변호사 : 동기생 중 해병대에서 진급은 피고가 가장 빨랐고, 6개월간 교육받는 해병대학에서는 1등 졸업했다는데 그렇습니까?

박선호 : 네.

변호사 : 이번 사건으로 죽은 청와대 경호관 정인형은 해병 간부후보 16기 동기생이라는데요?

박선호 : 네.

변호사 : 피고인이 해병대 대령으로 예편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박선호 : 해병대 사령부가 해체할 때, 한꺼번에 나왔습니다.

변호사 : 더 있기 싫어서입니까?

박선호 : 그렇습니다.

변호사 : 평소 동경하던 해병대가 없어지니까 그랬습니까?

박선호 : 네.

변호사 : 해병대 근무 중 군대에서 받은 무공훈장이나 표창장을 받은 것이 있으면 언제 어떤 훈장인가요?

박선호 :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울진 대간첩작전에 참전해서 중정부장으로부터 대간첩작전 유공 표창, 국군의 날에 참모총장 표창, 보국훈장 3·1장, 베트남전에서 화랑무공훈장, 베트남 훈장 2개를 받았습니다.

변호사 : 해병대에서 예편 후 피고인이 중정 총무과장이 된 것은 언제입니까?

박선호 : 해병대 제대 이듬해, 74년도입니다.

변호사 : 그것도 김 정보부장이 피고인의 은사로서 대륜고등학교 동창회를 통해서 피고인과 사제지간을 계속 유지해온 때문에, 김 부장이 피고인의 능력과 인간성을 믿고 발탁한 겁니까?

박선호 : 네. 그런 줄로 알고 있습니다.

변호사 : 피고인은 해병대 장교로서 군대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해병대에 대한 긍지가 대단하고, 해병대에서 타군보다 특히 강조하는 해병대 정신을 갖고 계실 텐데 해병대에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박선호 : 모든 훈련이나 정신면에서 항상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변호사 : 정신이 강건한 거 말입니까?

박선호 : 네.

변호사 : 피고인 자신의 성격도 의리를 중시하고 정의감도 강하고 국가가 요구하는 책무에 대한 책임감과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것을 덕으로 삼아왔다는 데 사실입니까?

박선호 : 저희 해병대 생활을 통해서 그렇게 체험해왔고, 아직까지 상관의 명령에 불복하거나 배신해본 일도 없습니다.

변호사 : 피고는 정보부 총무과장에서 부산지부 정보과장을 하다가 정보부를 그만 두었는데, 김 부장이 부장이 된 후에, 다시 부장이 불러 해외에 나가라고 해서 현대건설 사우디 안전 과장으로 1년간 근무하다가, 정보부를 그만 두고 귀국해서 윤활유를 취급하는 장사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박선호 : 그렇습니다.

변호사 : 중앙상사란 상호로 피고인이 대표가 되고 상당한 돈도 투자했고 고용한 직원도 상당히 많았다는데요?

박선호 : 고용원이 10명, 사무원이 그렇습니다.

변호사 : 투자한 액수는?

박선호 : 잘 판단되지 않습니다.

변호사 : 피고인은 그 장사를 시작해서 장래 수입도 꽤 괜찮을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장사도 잘 되고 있을 때인데, 78년 8월초, 평소 존경하고 있던 은사인 김 부장이 피고인을 불러서 정보부에서 다시 일해달라고 했다는데요?

박선호 : 네.

변호사 : 그때 김 부장은 어떤 말로 같이 일하자고 했습니까?

박선호 : 제 사정을 물으시고 정보부에서 근무하도록 바로 명령하셨습니다.

변호사 : 당시 피고인은 하던 사업을 그만 두기에는 좀 아까운 처지였지요?

박선호 : 그런 감은 좀 있었지만, 부장님께서 지시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정리했습니다.

변호사 : 모든 것을 희생하고 부장님의 부름에 응했다는 거죠?

박선호 : 네.

변호사 : 정보부 비서실 의전과장의 임무는 정보부 궁정동 사무실에 있으면서 궁정동에 있는 다섯 개 연회장을 관리하고 정보부장을 보필하는 비서까지 겸하고 있다는데요?

박선호 : 네.

변호사 : 궁정동 다섯 개 연회장은 피고인이 의전과장이 되기 전부터 있던 구관과 지금은 가동이라 부르는 신관, 세검동 및 피고인이 와서 새로 건축한 나동 다동을 말하는데, 그렇습니까?

박선호 : 네.

변호사 : 이번에 대통령이 살해된 궁정동 식당은 위에 말한 나동입니까?

박선호 : 네.

변호사 : 피고인이 관리하는 다섯 개 연회장은 대통령이 혼자 사용하시거나 이번에 사건이 생겼을 때와 같이, 대통령, 경호실장, 비서실장, 김 정보부장 이 네 사람이 연회를 가질 때 사용하는 장소라는데 사실입니까?

박선호 : 네.

변호사 : 궁정동 연회장에 연회가 있으면, 청와대 경호실 경호처장인 정인형이가 피고인에게 전화로 연락을 주는데, 대통령 혼자 오실 때는 ‘소행사’라고 말하고, 위에 말한 대통령, 차 실장, 비서실장, 김 부장이 오실 때는 ‘대행사’라고 한다는데?

박선호 : 그렇습니다만…… 그 행사 관계는 참고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의 말소리는 무언가 꺼려 하는 투가 역력해 보였다. 그러나 강 변호사는 계획대로 밀고 나갔다.)

변호사 : 아까 검찰관 질문시, 당일 몇시 몇분에 플라자 호텔에 간 일이 있지요?

박선호 : …… 네.
(이 때다. 앞줄에 앉아 있던 김재규 피고가 박선호 피고의 등에 대고 가볍게 소리쳤다.)
“야, 얘기하지 마.”
(법정에는 순간 묘한 긴장이 감돌았다. 무언가 최고권력자의 내밀한 문제가 숨겨진 것인가.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내용이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강 변호사는 다그쳐 물었다.)

변호사 : 거기에 간 것은 그 날 도와줄 여자를 데리러 간 거죠?

박선호 : ……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김재규의 입막음이 금방 효과를 나타내고 있었다. 강 변호사는 그러나 계속해서 물었다.)

변호사 : 플라자 호텔에서 내자 호텔로 간 것도 여자를 데리러 간 거죠?

박선호 :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그는 거듭 말하기를 거절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대통령 박정희의 술자리 여자 얘기는 어느 정도 공개된 셈이었다.)

변호사 : 그래서 도착한 것은 몇시죠?

박선호 : 제가 오니까 이미 행사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약 6시 30분쯤,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변호사 : 피고인은 차지철 경호실장이 여자 문제를 더 힘들게 하고, 피고인 자신이 어린애들을 갖고 있는 아버지로서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데 대해 인간적으로 괴로워서 김 정보부장에게 수차 ‘도저히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고 하소연하면서 그만 두게 해달라고 했으나 김 부장이 ‘궁정동 일은 자네가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서 사의를 만류시켰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박선호 : 제가 근무를 몇 번 꺼렸습니다. 그래서 하기 어렵다는 여러 가지 사유를 김 부장님께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변호사 : 결국 김 부장이 ‘자네가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해서 할 수 없이…….

박선호 : 네, 저를 신임하시고 자꾸 계속 근무를 원하셨습니다.

변호사 : 차 실장은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까 좋은 여자를 구해달라’고 하면서, 실제로 경호실장이 돈은 한푼도 도와주지 않으면서 하도 말만 많아서 피고인이 경호처장인 정인형한테 ‘당신이 고르라’고 말했더니, ‘청와대에서 고르는 걸 국민들이 알면 큰일난다’며 안 된다고 하기에, 피고인은 ‘골라놓은 사람들에게 좋든 싫든 말이나 말아야 할 것 아니냐’고 항의까지 했더니, 그 이후에는 차 실장도 잔소리가 적어졌다는데, 그렇습니까?

박선호 :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나직한 목소리)

변호사 : (한참 묵묵히 있다가) 피고인은 78년 8월 11일에 의전과장이 되어서 79년 10월 27일 면직될 때까지 하루도 출근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는데요?

박선호 : 네.

변호사 : 추석이나 정초 휴일까지 포함되지요?

박선호 : 그렇습니다.

변호사 : 휴일을 포함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 출근했다는 말이지요?

박선호 : 네. 부장님이 언제 어떤 지시가 있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매일 나갔습니다.

변호사 : 피고인은 이제 말한 소행사나 대행사의 빈도가 하도 심해서 남효주 사무관과 같이 앉아서, ‘대통령이지만 너무 심하다……’

검찰관 :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지금 본건 변호인은 이 본건 공소사실과는 아무런 관계 없는 사실에 대해서 질문하고 있습니다. 신문을 제한해주십시오.

법무사 : 사건과 관련 있는 건 신문해주십시오. (검찰관의 이의제기에 동의하지 않는 말투였다)

변호사 : 사건과 관련은 있습니다. 만약 관련이 없다면 재판부에서 대답하지 않게 해도 좋습니다만.

법무사 : 피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직무상 비밀 등에 대해서 진술거부권이 있다는 것은 고지한 바와 같습니다.

변호사 : 어떻습니까?

박선호 : 다시 말씀해주십시오.

변호사 : 소행사 대행사 이런 빈도가 하도 심해서 남효주 사무관과 같이 앉아서, ‘대통령이지만 너무 심하다’는 불평을 주고받았다는데?

박선호 : 답변을 거부하겠습니다.

변호사 : 있죠?

박선호 : 답변은 거부하겠습니다.

변호사 : 피고인은 김 부장님이 대통령 앞에서도 아첨하는 법이 없는 것을 우연히 목격하거나 대통령과 전화를 할 때도, 피고인이 전화 연결을 시켜주는 관계로, 들은 일도 있다는데 그런 경우를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까?

박선호 : 그것은 급한 연락 사항이 있을 때, 부장님께서 각하실로 연결하라고 하면 대주고 한 일은 있습니다.

변호사 : 그럴 때, 전화를 듣고 역시 김 부장님은 대통령 앞에서도 솔직하게 무슨 말을 하는구나 하는 걸 느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몇 가지 말할 수 있습니까?

박선호 : 모든 사항을 서슴지 않고 사실대로 말씀하시는 여러 가지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변호사 : 다른 분 같으면 대통령 앞에서 그런 투로 말하지 않을 텐데, 의사를 아주 분명히 솔직하게 말한다는 얘깁니까?

박선호 : 예, 그래서 제가 항상 존경했습니다.

변호사 : 검찰 신문 때도 몇 가지 충고와 훈계를 해줬다는데, 특히 피고인한테는 운동도 테니스나 하라고, 피고인에게는 그게 좋다고 했다면서요?

박선호 : 수시로, 부장님께서는 모든 것을 검소하게 하라, 운동도 골프보다는 정구 같은 것을 하라고 말씀하시고, 사람들을 대할 때 겸손하라는 등 저희에게 지도의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변호사 : 사건 당일에 처음 김 부장님이 ‘오늘 내가 해치울 거야’할 때, 피고인은 처음에 ‘오늘 안 했으면’하는 생각으로, ‘경호원이 7명이나 되는데요?’라는 말을 한 적이 있죠?

박선호 : 네. 그렇습니다.

변호사 : 실제로는 4명밖에 안됐는데……

박선호 : 실제로는 4명입니다. 운전기사 포함해서 5명인데, 운전기사는 경호원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 4명인데 제가 그냥 7명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면 부장님께서 혹시 생각을 달리 하실 줄 알았던 것입니다.

변호사 : 그런데도 부장님의 결의가 확고하고, 만약 피고인이 응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 같은 예감이었어요?

박선호 : 그때 부장님은 이미 모든 각오를 다하셨고, 제가 모시러 가니까, 벌써 총까지 차고 나오시고, 제가 없더라도 단독으로라도 행동에 옮기실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변호사 : 단독으로 결행하고, 본인은 자결할 것 같은 결연한 태도였습니까?

박선호 : 그것까지는 제가 모르겠습니다.

변호사 : 그래서 거기에 가담하게 된 정신적 결의는 어떻게 해서 일어났습니까?

박선호 : 그 날 상황에서 어디 심부름을 갔다와 보니까, 벌써 연회는 벌어졌고, 저는 경호원들하고 같이 있었는데, 남효주 사무관이 와서 ‘부장님이 연회장에서 5분 전에 나가셨는데 모르느냐’고 해서, 제가 부장님을 찾으러 평소에 다니는 구관을 통해서 본관으로 갔습니다. 갔더니 부장님께서 나오시면서, 구관에서 아까 말씀드린 그 말씀을 하시기에, 이미 모든 각오는 다하시고 나오는 입장이고, 그 시간에 오실 리도 없는 육군총장님께서 오시고, 정보부 2차장보께서 오셨고, 그래서 벌써 모든 게 확고부동하게 됐구나 하는 것을 느꼈고, 제가 거기에서 솔직하게 판단한 것은, 그 때는 이미 ‘각하도 포함됩니까’라고 물었을 때, 부장님께서 ‘응’하고 말씀하셨지만, 제가 알기로는 매일 하루 한 번 정도씩 청와대에 들어가시고, 모든 것을 수시로 보고하시고, 지금까지 부장님과의 관계는 좋은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설마 하는 생각이 제 머리의 50%를 차지하면서, 차 경호실장을 처치하려는가 보다는 생각과 동시에, 각하는 납치를 하시려나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습니다. 그러나 그때 막상 그 당시는 제가 판단도 할 수 없고, 그런 걸 감히 물어볼 수도 없고, 어차피 모든 것은 부장님께서 하신 행동이고, 저희에게 지시를 하셨으니까, 저희는 이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10·26 당일 밤 궁정동 연회장의 다른 식당에는 정승화 육참총장과 중정의 국내 정치 담당 차장보인 김정섭이 와 있었다. 김재규 부장이 그날 청와대 차지철 경호실장으로부터 박 대통령의 대행사 연락을 받은 직후 그 두 사람을 초대한 것이다. 한 사람은 실병력을 장악하고 있는 육군 총수이고, 다른 사람은 국내 정치상황에 관한 모든 정보를 쥐고 있는 중정의 실무 총책이다.
이 두 사람이 김재규 부장의 계획을 사전에 알았는지 여부는 차치하고 김 부장의 부하들이 결심을 하는 데 크게 영향력으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었다.

3. 항소심인 고등군법회의에서는 재판부가 모두 바뀐다.
10·26 사건에 대한 군사재판은 79년 12월 20일, 제10회 공판으로 1심을 끝냈다.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김재규 등 피고인 7명은 고등군법회의에 항소했다.
재판장은 전투교육사령관인 윤흥정 중장, 심판관은 육군행정학교장 소준열 소장 그리고 법무사로 김진오, 신학근, 양신기 중령이 임명됐다. 검찰관은 김익하 중령과 이병옥 소령으로 이 중 이 소령만 1심 때부터 계속 간여했다. 변호인단은 1심 때와 변동이 없었다.
80년 1월 22일 오전 10시, 계엄 고등군법회의가 처음 개정됐다. 이날은 김계원, 김태원 피고인만 출정시켜 검찰부가 1심 공판 때의 사실심리 내용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검찰부는 1심에서 김계원 피고인에게 적용됐던 ‘내란목적살인죄’를 ‘단순살인’으로 바꾸었다.

다음 날인 1월 23일 항소심 2회 공판이 열렸다.
김재규, 박선호, 이기주, 유성옥, 유석술 피고인 등 5명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의 사실심리가 진행됐다.
유일한 현역 군인인 박흥주 대령은 단심으로 이미 사형이 확정된 상태다. 항소심에서 1심 때에 비해 크게 변화된 진술을 한 피고인은 박 대통령의 채홍사 박선호 피고인이었다. 그는 1심 때 완전히 함구했던 박 대통령의 술과 여자에 관해 상당한 증언을 남겼다.
박정희 대통령의 채홍사 역할을 했던 박선호는 1심 때만 해도 대통령의 술과 여자 등 사생활 부분에 대해서 일체 함구하는 태도를 보였다. 변호사가 폭로 전술로 나갔으나 그는 답변을 거부했다. 그의 등 뒤에서 김재규 피고인이 여자 문제 얘기를 하지 말라며 제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형 선고를 받고난 뒤 약간의 심경변화를 일으켰다. 어차피 죽게 될 바에야 할 얘기나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는 대통령의 연회 행사가 한 달에 열 번, 그러니까 사흘에 한 번꼴로 열렸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의 술자리에 참석했던 연예계 여자들의 이름은 대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수십 명이 일류 연예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명단을 밝히면 세상이 깜짝 놀랄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변호인들은 박선호와 김재규를 교도소에서 접견하면서 누구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법무사 : 박선호 피고인이 원심 법정에서 진술한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요지는 부장님 지시로 총을 쏘기는 쏘았지만, 차 경호실장은 처치하고 각하는 납치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관해서 신문해주십시오.

변호사 : 여기에 관해서라니 무슨 말인가요?

법무사 : 그 진술 외에 신문사항 있으면 하십시오.

변호사 : 당시, 피고인은 각하까지 포함되냐고 물었죠?

박선호 : 부장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변호사 : 각하까지 포함되는데, 그런 명령을 내렸다면 그 명령에 따른 이유는요?

박선호 : 부장님을 20~30년을 모시면서, 아직 한 번도 부당한 지시나 제가 존경하지 않을 만한 점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떤 명령이든 듣는 것이 정의다, 무조건 따른다는 신념을 가졌습니다.
특히 군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상관이 전투명령을 하는데 그것이 옳고 그른 판단의 필요가 없습니다. 상급 지시관이 지시하면 무조건 들어야 합니다. 정보부의 경우 명령에 따르지 못할 때 오히려 국가에 역효과라고 생각하며, 부장님 지시는 무조건 듣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하며, 무슨 명령이든 듣게 되어 있었습니다.

변호사 : 부장 명령만 따른 것이 아니라 피고인 생각도 우리나라 사태가 심각하구나, 그러니 어떤 일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인가요?

박선호 : 네, 모든 것을 알고 실감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더 많은 피를 흘리겠다는 것을 부장님이 염려하시는 것을 항상 들었습니다. 큰일을 막기 위해서 작은 희생은 해야겠다고 항상 부장님께서 염두에 두셨기 때문에 저는 모든 것을 대략 알고 있었습니다.

변호사 : 기록에 보면, 정승화 참모총장이 와 있다는 것을 언제 알았나요?

박선호 : 부장님이 말씀하실 때 알았습니다.

변호사 : 기록을 보면, 윤병서 비서관이 4시에 다른 손님이 온다고 보고한 것같이 되어 있는데, 그때 정 총장이 포함되어 있다는 얘기 들었나요?

박선호 : 7시 30분에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는데, 그런 전화를 받고 오히려 반문했습니다. 아직 손님이 오지 않아서 누군지 모른다는 것, 거기까지만 알았습니다.

변호사 : 부장님이 명령을 내리면서 총장도 여기에 와 있다고 할 때 처음으로 알았나요?

박선호 :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저는 이번 모든 과정에서 살기 위해서 비굴하게 거짓말한 적 없습니다. 전부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변호사 : 피고인이 안재송, 정인형 담당했는데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그랬다는 거죠?

박선호 : 제가 말 한 마디만 했으면 20, 30명의 경비원이 심지어는 수류탄도 있고 기관단총도 있고, 제 명령 한 마디면 1분 내로 다 배치되어서 2, 3분이면 다 처치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이 갖춰져 있었지만, 부장님이 하시는 의도가 그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정당하게, 각하까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이유는 2, 3명이라는 적은 숫자로 할 때는 제가 죽을 각오로 명령을 수행했기 때문에 죽인다는 관념은 없고, 착각을 했습니다만, 총을 먼저 뽑아서 위협하면 이 사람들이 응할 줄 알았습니다.
경호처장이나 부처장 방에 제가 안 들어가고 다른 사람을 시켰으면, 총성 신호와 함께 그 사람들 등뒤로 쏠 수 있고, 그 방에 두 사람도 세 사람도 보낼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보다는 나하고 친하니까 내 말은 듣겠지 하고 내가 들어갔습니다. 나머지는 사살하라는 명령은 한 적이 없습니다. 전부 한곳으로 몰아라, 몰면 들을거다라고 했는데, 만약 총을 쏘면 어쩌냐고 묻기에 그러면 응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법무사 : 변호인께 한 가지 묻겠습니다. 강신옥 변호사죠? 대통령이나 경호원을 살해한 것은 단순살인이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내란에 관한 법률 오해를 주장하는 거죠? 그것은 원심에서 다 현출된 사실 관계에 있는 법률 판단 문제가 아닌가요?

변호사 : 만약 그것이 인정되지 않을 때는 내란이라고 하는 것이고, 내란이라 하더라도 내란의 범위를 오해했다는 식의 얘기지요.

법무사 : 법률 오해를 주장해놓고 그 부분에 관한 것은 원심에서 나온 것과 비슷한 것을 질문하기 때문에 새로운 얘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똑같은 얘기라는 겁니다.

변호사 : 새로운 것을 묻겠습니다. 공판조서에 분명하게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법무사 : 중복되면 새로운 것도 못 물으니까, 잘 할당해서 해 주십시오.

변호사 : 피고인은 1심에서 변호인이 당일 여자 두 사람을 인솔해온데 대해 물었을 때 대답을 않겠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런가요?

박선호 : 그 문제는 제가 답변하게 되면, 지금 시내에서 일류 배우들로 활동하고 있고 역효과가 나고, 사회적으로도 혼란을 일으키고 고인을 욕되게 하므로 피했습니다.

변호사 :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박선호 : 지금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변호사 : 이번에 한 행동의 숨은 동기 중 혹시 그런 사정 때문에 내 자신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박선호 : 제게 무슨 동기가 있었다기보다, 1년 내내 하루도 근무를 쉬지 못했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불시에 오시기 때문에 그랬는데, 저는 그 때 동기라든가 이런 것보다는 무조건 존경하는 부장님의 지시면 무조건 한다는 것 외에는 없고, 만약 그 때 다른 지시를 했어도 응했을 것입니다.

변호사 : 만찬에 참석한 여자 둘을 몇 시에 보냈나요?
박선호 : 11시경에……

변호사 : 거사가 있고 난 뒤였나요? 돈도 주고 보냈죠?

박선호 : 돈도 다 계산해서 보냈습니다.

변호사 : 그때는 이 거사가 실패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입니까?

박선호 : 저는 거사가 성공했냐 어쩌냐 하는 데에는 관심도 없었고, 이번에 수사과정에서도 그런 말이 있었지만, 거사의 장차 목적을 위해서라는 말을 하는데, 총 쏘는 문제가 나와서 죽고 사는 것이 문제지 장차 어떤 기대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저한테 심지어는 똑똑한 줄 알았더니 참 바보라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그때 김재규 부장님을 쏘고 밀고하면 영전하지 않겠냐는 얘기도 듣고 웃었습니다. 상관이 믿고 거기 갖다 놓은 제가 배신을 했다면 그분은 정말 죽을 맛일겁니다.
저는 신의를 지켰고, 국가가 국민으로부터 신임을 못 받았을 때 그 정부는 망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관이 직속 부하에게 신임을 못 받으면 그 상관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저희는 목숨을 바쳐서 저의 직속 상관을 받든다는 신념 하에서 앞뒤 그런 것 생각할 여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변호사 : 작년 4월 부장님 계실 때 만찬이 있었죠, 대행사가? 그때 육해공군 참모총장 세 분을 만찬에, 이번에 정승화 총장을 부른 식으로 불러온 사실을 알고 있나요?

박선호 : 네.

변호사:만찬에 김 부장이 참석하고 다시 그분들을 모시고 연희동에 가서 술을 대접했다는데 알고 있나요?

박선호 : 제가 대접했습니다.

변호사 : 따라갔나요?

박선호 : 네.

변호사 : 연희동 무슨 술집이었나요?

박선호 : 잘 모릅니다.

변호사 : 4월 며칠경인가요?

박선호 : 잘 모릅니다. 4~5월경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변호사 : 1심에서는 묻지 않은 일인데 번스틸 8군사령관이 부장님한테 엽총을 하나 선사했다면서요?

박선호 : 부장님이 군단장으로 계실 때 일입니다.

법무사 : 만약 군사기밀이라든지 말하면……

박선호 : 군단장으로 계실 때 엽총으로 사냥을 하면 좋지 않겠냐고 했더니, 불교신자이기 때문에 살생을 금한다는 말씀을 몇 번 해주시고, 정구나 스케이트 같은 검소한 운동을 하라고 하고 죽이는 것은 안된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법무사 : 변호인, 사건과 관련 있는 내용입니까?

변호사 : 물론 있습니다. 김재규 피고의 항소이유 보충서에 필요한 내용을 묻고 있습니다. 그 엽총을 선사받아서 자기는 살생을 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줬다고 하는 것을 피고가 말한 적이 있는데 사실인가요?

박선호 : 네, 사실입니다.

변호사 : 부장이 책을 보라고 할 때는 무슨 책을 보라고 했습니까?

박선호 : 교양적인 것, 세상을 밝게 볼 수 있는 것을 보라고 하시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가 오시면 현관까지 마중을 나오시고, 각별히 하셔서 제 생각으로 정보부장이 저 정도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변호사 : 이상입니다.

법무사 : 검찰 신문할 거 있습니까?

검찰관 : 몇 가지 묻겠습니다. 궁정동 식당이라는 데가 사람 죽이는뎁니까?

박선호 : 네?

검찰관 : 목적이 뭡니까?

박선호 : 각하의 연회장소입니다.

검찰관 : 그러니까 보호하는 집이죠? 피고인은 직책이 무엇입니까?

박선호 : 의전과장입니다.

검찰관 : 피고인 직책이 중정이란 것이, 부장 개인 것인가요, 아니면 국가를 위해 있는 것인가요?

박선호 : 그야 당연히 국가를 위해서죠.

검찰관 : 피고인 어디 아픈 데 있나요? 하나 묻겠습니다. 피고인이 범행 후에 중정 남산분청에 간 일 있죠? 김정섭을 만난 사실 있죠? 그때 의아한 표정으로 “차장님 왜 여기 와 계십니까”라고 했죠?

박선호 : 네.

검찰관 : 마치겠습니다.

법무사 : 원심 외에 더 하고 싶은 얘기 있나요. 들어가 앉으십시오. 변호인께서 다른 피고나 증인신청을 서면으로 제출해주십시오. 김재규 피고인, 항소이유서 보충서를 제출해주시겠어요? 언제까지?

김재규 : 4, 5일 주십시오. ……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에.

법무사 : 범행 동기에 대한 것이 대부분입니까?

김재규 : 조사 과정과 재판에서 모든 것이 제대로 다뤄져 있지 않습니다. 이 나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뚜렷이 남겨놓고 가야……

법무사 : 범행의 동기나 과정이라든지 피고인의 인간 철학이 1심에서 충분히 진술되지 않았고 공판조서 열람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는 데 시간적 여유를 달라는 것이지요?

김재규 : 네.

4. 박선호 피고인은 1980년 1월 23일, 이날 항소심 최후진술을 통해 박 대통령의 사생활을 일부 폭로했다.
그의 폭로는 외설스럽거나 원색적인 표현이 아니라 짧고 명료했다. 박 대통령은 한 달에 열 번 꼴로 그러니까, 이틀 걸러 한 번씩 외부의 여자가 시중드는 술자리 행사를 가졌다. 그 자리에는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깜짝 놀랄 일류 연예인 수십 명이 다녀갔다. 그것이 박 대통령의 채홍사 역할을 했던 박선호 피고인이 공판기록에 남긴 증언이었다.

법무사 : 감사합니다. 들어가십시오. 박선호 피고인 앞으로.

박선호 : 제가 지금 여기에서 최후진술을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정보부에서 근무하면서 존경하는 김 부장님을 모셨다는 것을 첫째 영광으로 생각하고, 제가 아직까지 원망이나 비관해본적 없습니다. 이것은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지금 저희가 거기서 근무하면서 부장님께서 구국을 위해 민주를 위해 수시로 청와대에 들락날락하시면서 간혹 저희에게 주시는 그 정보를 들어보면, 숨통이 막히는 절박한 상황을 저에게 수시로 전달해주시고, 저로 하여금 일깨워주시고, 국가의 앞날을 버러지의 눈이 아니고 새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똑바른 눈이 되도록 길러주신데 대해서 제가 항상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당일에 있었던 상황은 1심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긴박한 상황에서 아마 어느 누구도 100명 중 90명은 반드시 그 행동을 그대로 취하리라 믿습니다. 지금 또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해도 저는 그 길밖에 취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지금 제가 그 진행과정에서, 어제도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만, 제가 궁정동 일대 모든 건물을 관리하고 있으며, 제 밑에 많은 부하들이 있습니다. 완전히 사살을 목적으로 했다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저는 구두로 지시만 했으면 됐습니다. 그러나 부장님의 뜻이 그것이 아니고, 이것이 과연 누구를 사살하고 누구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제가 생각하기에도 흔히 각하 정도는 납치하면 일이 되지 않을까 항상 속으로 염려했습니다만, 윗분이 하는 일을 제가 알 바도 아니고 하달하신 명령만 충실하기 위해서 했고, 전우를 살리려고 들어갔다가 오히려 희생시킨데 대해서 이 자리를 빌려서 다시 한 번 애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될 바에는 차라리 제가 그 장소를 피했어도 될 것을 살려보겠다는 마음으로 그랬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여기에 지금 제 부하였던 이기주, 유성옥, 유석술, 김태원 이들은 아무 뜻도 모르고 나왔고, 제가 지시한 대로 한쪽으로 몰아라, 왜냐하면 제가 총소리가 났을 때 일단 저희가 먼저 행동하지 않으면 부장님이 희생당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염려해서 한 군데로 몰라고 지시했고, 이 사람들은 내용도 모르고 따라 했다가 이 법정에 서게 되었다는 데 대해서 가슴아픕니다. 아무튼 이 부하들에 대해서만은 관대하게 처리해주실 것을 말씀드립니다.
어제 여기에서 검찰관께서 그 집은 사람 죽이는 집이냐 하는 질문 같지 않은 질문도 받았습니다만, 그 집은 사람 죽이는 집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건물은 대여섯 개가 있는데, 이것은 각하만이 전용으로 사용하시는 건물로서……

법무사 : 범죄에 관계되는 사항만…….

박선호 : 예, 그래서 이것을 제가 발표하면 서울 시민이 깜짝 놀랄 것이고, 여기에는 여러 수십 명의 일류 연예인들이 다 관련되어 있습니다. 명단을 밝히면 시끄럽고 그와 같은 진행 과정을 알게 되면, 이것은 세상이 깜짝 놀랄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균 한 달에 각하가 열 번씩 나오는데, 이것을……

법무사 : 범죄 사실에 관해서만!

박선호 : 예?

법무사 : 피고인의 범죄 사실에 관해서만 말하시오.

박선호 : 예. 그래서 제가 1년 연중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근무했고 상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말씀드립니다.


5. 똑똑한 놈 세 놈만 데리고 나를 지원해
김재규 부장이 약간 흥분된 말투로 말했다. “자네들 어떻게 생각하나. 나라가 잘못되면 자네들과 나는 죽는 거야. 오늘 저녁에 내가 해치운다. 방에서 총소리가 나면 너희들은 경호원들을 처치하라. 육군총장과 2차장보도 와 있다. 너희들 각오는 다 되어 있겠지.”
박선호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박선호는 다시 김 부장의 귀에다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각하까집니까?”
김재규는 고개를 끄덕하면서 “응” 했다.
박선호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거짓말을 했다. “오늘 저녁은 좋지 않습니다. 경호원이 일곱 명이나 됩니다. 다음에 하지요.”
“안 돼. 오늘 처치하지 않으면 보안이 누설되어서 안 돼. 똑똑한 놈 세 명만 골라 나를 지원해. 다 해치워.”
박선호가 주춤하는 기색을 보이자 김 부장은 다시 말했다. “오늘 밤 내가 해치우겠으니! 방에서 총소리가 나면 자네들은 경호원을 처치하라!”
박선호 의전과장은 그 명령을 받았을 때 내심 크게 놀랐다.
“좋습니다. 그러시면 30분의 여유를 주십시오.”
“안 돼. 너무 늦어.”
“30분이 필요합니다. 30분 전에는 절대로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알았어.”
박선호는 경비 조장 이기주와 자신의 승용차 운전기사 유성옥에게 M15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게 하고 식당 쪽을 맡으라고 지시한 뒤 만찬장 옆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정인형 청와대 경호처장과 안재송 부처장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땅콩을 먹으며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만찬장의 총성은 대기실에 있는 박 과장에게 행동을 개시하라는 신호였다. 그 순간 정인형과 안재송은 본능적으로 권총에 손이 갔다. 그러나 신호만 기다리고 있던 박선호의 손이 더 빨랐다. 박선호가 말했다. “꼼짝마, 움직이면 쏜다.” 그 순간 정인형은 잠시 주춤했다. 박선호 과장과 정인형 처장은 해병간부후보생 16기생으로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고 안재송 부처장은 역시 해병간부후보생 24기로 두 사람의 후배였다. 박선호가 호소했다. “우리 함께 살자” 정인형과 안재송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더 이상의 총성은 들리지 않았다. 만찬장의 상황은 끝난 듯 했다. 박선호는 일순 방아쇠에 걸린 집게손가락에 힘을 풀었다. 안재송은 올림픽 속사 권총의 선수 출신이다. 총에는 누구보다 자신 있는 인물이었다. 그 순간 안재송이 정 처장의 눈을 잠시 바라보고 나서 권총을 꺼내려고 상반신을 돌리는 순간 박선호의 권총이 먼저 불을 뿜었다. 동시에 안재송의 맞은편 그러니까 박선호의 오른쪽 2미터 앞 소파에 앉아 있던 정인형이 몸을 튕겼다. 그는 박선호를 덮치려고 했다. 박선호는 권총을 겨눈 채 입구 쪽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박선호의 발이 문지방에 걸렸다. 순간적으로 몸을 약간 뒤뚱거렸던 박선호는 바로 코앞까지 다가서는 정인형을 향해 연거푸 두 발을 쏘았다. 그는 박선호를 덮치듯 앞으로 고꾸라졌다.
비슷한 순간 안가의 주방에서는 청와대 경호관 김용섭과 경호실 특수차량계장 김용태가 총에 맞아 죽었다.


6. 한 번 보고 싶다
박정희의 비밀요정에 다녀간 외부 여자가 어림잡아 200명 이상에 이르다는 얘기였다.
유신정권 말기, 박정희의 비밀요정 행사는 지나치게 잦았다. 대통령이 혼자서 하는 소행사나 측근 권력자 서너 명이 함께하는 대행사가 한 달이면 열 차례씩이나 열렸다. 그러니까 사흘에 한 번꼴로 주연을 벌였다는 얘기다. 그때마다 외부에서 술 시중드는 여자들을 불러왔다. 대통령의 주연 담당이던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는 휴일도 없을 만큼 하루도 쉴 수가 없었다.
박선호는 해병대 대령 출신이다. 채홍사 역할은 도대체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죽고 싶을 만큼 싫었다. 하지만 부장님에 대한 의리를 저버릴 수 없었다.
유신 정권이 황혼 녘에 들어선 1979년 가을 어느 날, 박선호와 비밀 연회장 담당 사무관 남효주는 은밀하게 탄식을 주고받았다. 명색이 공직자로서 자신들이 하는 일이 부끄럽기도 하려니와 한편으론 국정 최고책임자의 행실이 한심해 보였던 것이다.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술자리 여인들에게 주는 화대는 지금 (2017년) 돈 가치로 쳐서 보통의 경우 100만 원 정도였고 유명세를 계산해 더 보태는 경우 200만 원 이었다. 일반인들이 상상하기보다는 꽤 짠 편이었다. 재벌이나 국회의원들이 요정에서 이름 있는 모델이나 연예인들에게 뿌리는 팁에 비하면 어림도 없는 액수였다.
물론 권력의 힘도 작용했겠지만 시중의 유명한 ‘마담’들이 거느리는 화류계 여인 중엔 대통령의 술자리에 가고 싶어 하는 자원자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었다. 대표적으로 그런 자원자들을 골라 보내주는 마담이 장충동 모 요정의 ‘김 마담’ 이었다. 특히 연예계에서 스타로 뜨기 전인 20대 초반의 나이 어린 신참들은 김 마담으로부터 은밀한 제의를 받으면 대부분 쾌히 응낙했다. 이들은 그 자리에 갔다 온 ‘경력’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며 그것으로써 연예계의 정상에 한 발 다가간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박선호는 급할 때 종종 김 마담에게 도움을 청하곤 했다.
술자리 여자를 최종 심사했던 차지철 경호실장은 요정에 소속돼 있는 여자들을 가급적 데려오지 못하게 했다. 고위층과 함께 하는 술자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연예계 지망생이 가장 무난한 대상이었다. 그 중엔 유수한 대학의 연예 관련 학과 재학생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원칙으로 같은 여자를 두 번 이상 들여보내지 않았다. 단골을 만들면 보안상이나 기타 부담스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반강제 차출도 있었다. 박 대통령이 국산 영화를 관람하거나 TV 연예프로 등을 보다가 마음에 든 배우나 가수의 이름을 대며 “한번 보고 싶다”고 하면 큰 물의가 일어나지 않는 한 대개 불러왔다. 다만 유부녀로서 본인이 거절하면 강제하지는 않았다.
갑작스런 궁정동 연회 차출 지시로 배우의 영화나 TV 프로그램 촬영 스케줄이 펑크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연예계의 힘 있는 ‘협회’에서 무조건 출두하라는 연락이 가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일로 한두 차례씩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는 연예계의 제작진 사이에서도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채홍사가 구해온 여자들은 술자리에 들어가기 전 경호실의 ‘규칙’에 따라 보안서약과 함께 그날의 접대법을 엄격하게 사전 교육 받았다. 우선 이 자리에 왔던 사실을 외부에 발설하면 안된다. 대통령을 비롯해서 고위 인사들의 대화 내용에 관심을 표하지 말 것, 특히 대통령이 말을 걸어오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응석을 부리지 말 것 등이다.
대통령의 술자리 여인은 반드시 복수 추천으로 양 옆에 앉혔다. 한 사람은 이름이 알려진 스타였고, 다른 하나는 대부분 연예계 지망 신참이었다. 박 대통령은 술이 취하면 이 중 마음에 드는 쪽으로 몸이 기울었다. 그리고 그 다음 일은 차지철 경호실장과 궁정동 안가의 담당자만이 아는 사항이었다. 그중 한 은막의 스타는 대통령의 후처가 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박선호와 궁정동 안가 요원들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한번 궁정동 행사에 참석하고 나간 뒤 박 대통령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게 된 어느 스타는 그 후 행사에 연속 출연을 요구했다. 물론 중정은 같은 여자를 두 번 이상 불러들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 이를 잘랐다. 그러자 어느 날 그녀의 어머니가 박선호 의전과장을 찾아왔다.
“각하께서 우리 아이를 좋아하는데 당신들이 가운데서 차단시켜도 되는 겁니까?”
딸이 대통령의 연심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한 스타의 어머니는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큰소리를 칠 만큼 기세등등했다. 이 밖에도 대통령의 술자리에 다녀간 연예계 지망생의 부모가 사후에 그 사실을 알고 항의해서 돈으로 해결한 일, 대통령의 전용 병실이 있는 국군 서울지구병원의 간호장교 임신중절 사건 등이 옛 궁궐 속의 비밀처럼 묻혀 있었다.

박선호는 다른 피고인들과 함께 보통군법회의에서 1979년 12월 20일 사형선고를 받았고 고등군법회의에서 1980년 1월 28일 항소기각 선고를 받았으며 대법원에서 1980년 5월 20일 상고기각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1980년 5월 24일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그날 김재규 중정부장, 이기주 중정 경비원, 김태원 중정 경비원, 유성옥 궁정동 안가 행정 차량 운전사 등과 함께 서대문에 있는 서울구치소 사형집행장에서 사형이 집행된 것이다. 이 사건 가담자 중 유일한 군인이었던 박흥주 대령은 단심으로 재판이 끝났기 때문에 1980년 3월 6일 이미 총살형으로 사형이 집행되었었다.

독재자는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부도덕한 짓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다시는 독재자가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참고자료
김재홍 지음,「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 66~75쪽 참조
김재홍 저,「운명의 술 시바스」, 20~21쪽 참조
김재홍 저,「대통령의 밤과 여자」, 19~29쪽, 336쪽, 338~346쪽, 361~363쪽 참조
정병진 저, 「궁정동 총소리」, 47~53쪽 참조
안동일 지음,「나는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
조갑제 실록,「박정희의 마지막 하루」
작성일:2019-07-23 13:49:57 211.104.150.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