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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제목

<유중원 대표 단편소설> 옛날 옛날에

닉네임
유중원
등록일
2023-12-16 12:28:14
조회수
44
옛날 옛날에



세월은 거짓말을 밝혀내고 진실을 빛낸다.


2018년 11월 중순 쯤 전남 순천시의 지역 신문 부고란에 금년 93세인 강동욱 (姜棟郁) 변호사의 별세 소속이 실렸다.
강 변호사는 약관의 나이에 소년 등과한 순천이 낳은 천재로 일제 치하에서 마지막이었던 1945년 조선변호사시험에서 최연소로 합격하고 나서, 주로 광주, 목포, 군산, 순천 등지에서 향판으로 근무하던 중 뜻한 바 있어 순천지원장을 끝으로 변호사를 개업했고, 유신정권 시절 연이 닿은 정권 실세의 도움으로 두 번에 걸쳐 유정회 국회의원을 했으며,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첫 번째 실시된 순천시장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고, 했다.

1945년 8월 15일
경성부 변호사시험 고사장

그해 변호사시험은 8월 14일부터 실시되었다. 첫째 날 오전 10시에 시작되어 12시에 끝난 첫 시험은 민법 과목이었고 오후 2시에 시작되어 4시에 끝난 두 번째 시험은 형법이었다.
그런데 둘째 날 오전 상법 시험이 끝나고 나서 전대 미문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날 정오 무렵 일본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이 선언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해졌다. 수험생들보다 먼저 이 소식을 접한 일본 총독부 관리들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오후 시험을 포기하고 철수해 버렸다.
그래서 응시자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고 난감하기가 이를 데 없는 상황에 처해버렸다. 다시 말하면 해방 당일 오전까지 상법 등 세 과목만 시험을 치르고 중단되어 버렸으니 응시자 전원이 합격도 아니고 불합격도 아닌 아주 어정쩡한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때 강동욱은 200여 명의 본시험 응시생 중에 끼어 있었다. 그는 고보를 졸업한 후 경성법전에 두 번이나 응시했으나 낙방했다. 집안 식구들을 볼 면목도 서지 않고 너무 상심한 나머지 법전 시험을 끝내 포기하였지만 그래도 오기가 남아 있어서 그 당시 독학자의 등용문인 조선변호사시험은 응시 자격에 제한이 없었으므로 예비시험을 거쳐서 본시험에 응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강동욱은 그 당시 본시험을 치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오직 시험장의 분위기를 살피고 본시험에 대한 경험을 쌓을 요량으로 응시를 강행한 것이다. 그렇지만 방에다 붓글씨로 쓴 시험문제들을 처음 보는 순간 공황상태에 빠져버렸으니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조차도 감을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당시는 시험장에서 고등시험 사법과와는 달리 법전 사용이 불가능했으니 눈앞이 캄캄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시험감독관 눈을 피해서 백지 위에다 열심히 쓰고 있는 것처럼 하면서 낙서를 끼적거렸을 뿐이다. 특히 둘째 날은, 첫째 날 그만큼 고역을 치렀으므로 그만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이왕지사 둘째 날까지만 참고 견디기로 했고 셋째 날은 진짜 포기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런데 시험이 그런 식으로 중간에 흐지부지 끝나버렸으므로 내심 얼마나 안도했는 지 모른다.

그때 응시자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분분했다. 응시생들은 편이 갈라져서 의법회(懿法會) 또는 이법회(以法會) 등을 구성하여 재시험을 실시해야 한다고도 했고, 아예 전원 합격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들의 논거는 다음과 같았다.
변호사시험 중단의 책임은 응시생이 아니라 당연히 조선총독부에 있는 것이고, 만일 끝까지 실시하였다면 응시자 전원이 합격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조건 불성취의 책임을 수험생에게 전가하는 것은 어불성설로 부당한 처사이다. 그래서 응시생 전원을 합격시켜야 한다.

조선총독부 시험위원회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이유가 없었으니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정신차릴 틈이 없을 만큼 혼란한 정국에서 항의가 계속되었으므로 어쩔 도리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전원을 합격시키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응시생 200여명 중에서 연락이 닿았던 106명에게 변호사시험 합격증서가 수여되었다.
(1922년부터 1944년까지 치러진 조선변호사시험에서 조선인 합격자는 134명에 불과했는데 1945년 그해 합격증서를 교부받은 인원은 무려 106명에 이르렀다.)

그때 강동욱은 약삭빠르고 야비한 인간이어서 의법회에 선착순으로 가입했다. 나이도 어린 주제에 젊은 혈기로 마구 떠들어 댔다.
“나는 억울합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 아닙니까? 꼭 찍었던 문제들이 줄줄이 나와서 정신없이 일필휘지로 쓰고 있었는데. 무슨 놈의 재시험입니까. 전원 합격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혈서를 써서 항의합시다. 우리 뚤뚤 뭉쳐서 이런 불의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정의는 반드시 이깁니다.”
그는 무난히 합격증서를 받은 후 그해 11월에는 사법관시보로 임용되어 실무수습을 마치고 판사로 임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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