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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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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대표 단편소설> 고정 간첩 (上)

닉네임
유중원
등록일
2023-02-10 10:55:34
조회수
239

고정 간첩


대로변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 흔해빠진 아파트나 현대식 빌딩 하나 없이 비좁은 골목으로 가득한 동작구 노량진2동은 이미 ‘노량진 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아직도 서울특별시에 이런 동네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쓰러질 것 같은 낡은 주택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좁은 골목에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는 시도 때도 없이 악취를 풍겼다.

노량진1동과 노량진2동 사이 지하철 노량진역에서 장승배기역 쪽으로 올라가는 장승배기로 이면 도로 골목에 그 건물이 있다. 대지 70평에 지붕은 박공벽에 맞배지붕을 얹어 놓은 색이 바랜 붉은 벽돌 3층 건물이 서 있는 것이다. 1층은 ‘북경반점’이라는 간판이 붙은 중국집이고, 2층은 간판도 없는 무역회사 사무실이고, 3층은 살림집이다.

그 ‘유한회사 대명상사’는 중국에서 수입하는 물품의 통관절차를 담당하는 탈북자 출신의 사십 대 초반 남자 직원 하나, 보세창고에 보관 중인 물품을 주류 도매상에 배송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남자 직원 하나, 은행에서 수출회사가 송부한 선적서류를 수령하고 물품대금을 결제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여직원 하나가 있고, 건물주인 오십 대로 보이는 사장님이 있다.

장해식(張咍飾) 사장은 원래 중국 길림성 화룡현 출신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인데 이십 대 초반에 두만강을 건너 만주로 갔고 그 후 중국 공산당 혁명의 성지인 산시성 연안으로 가서 모택동의 홍군에 입대하여 군인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국공내전 당시인 1948년 10월 홍군이 창춘을 포위할 때 국민당군과 치열한 전투 중 사망했다. 그래서 장해식은 혁명 유가족 자격으로 동생들과 함께 중국 공산당에서 대학까지 마칠 수 있게 지원을 받아 명문 대학인 북경 정법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것이다. 그리고 이십 대 말에 벌써 조선족 출신 중국인 신분이었지만 엘리베이터를 제작 수출하는 한국의 대기업 북경 지사장이 되었고, 중국 내 정법대 출신 인맥을 활용해서 탁월한 영업실적을 올렸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성실하여 지독한 일벌레였다. 제품을 팔기 위해서 중국의 도시는 물론이고 홍콩이나 태국, 싱가폴 등지까지 출장을 다녔고 서울에도 본사와 업무 협의차 자주 왕래하였다. 그는 그동안 쌓아 올린 탁월한 영업실적을 인정받아 국내 본사로 들어와 중국 수출업무를 담당하며 부장까지 승진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그는 중국 조선족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 때문에 임원급까지 올라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퇴직하고 작은 무역회사를 차린 것이다. 물론 그 회사에서 근무할 당시 회사의 도움으로 한국 국적을 무난히 취득하기는 했다.

그는 처음에는 중국에서 값싼 농산물인 호두, 땅콩, 고구마순, 버섯 등을 들여와 서울 경동시장 농산물 도매상들에게 넘겼다. 그러나 중국 농산물은 값도 싸고 물량도 많았지만 여러 가지 규제 때문에 수입에는 몇 가지 제한이 있었다. 반면에 북한산 농산물은 국내로 수입할 때 내부거래로 취급되면서 관세가 면제되었다. 그래서 국내에서 인기 있는 농산물을 중국 현지에서 싼값으로 대량 구입하여 북한 남포항에서 속칭 ‘포대갈이’라고 하는 농산물 세탁 과정을 거쳐서 북한 당국의 원산지 증명서를 발급받아 남한으로 가지고 내려오면 막대한 수익이 생겼다. 그 당시 그는 그 건물까지 매매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지금은 칭따오에서 칭따오 맥주를 수입해서 단골 주류 도매상들에게 판매하고 있었다.

그는 외동딸이 북경에서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고 딸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아내까지 북경에서 살고 있었으므로 가족들을 만나고 중국의 수출회사와 업무를 협의하려고 거의 두세 달에 한 번꼴로 중국에 출장을 다녀왔다.


간첩 (스파이)의 세계란……?!

스파이도 인간이다. 통상 사람들은 첩보원의 업무를 비도덕적인 것으로 보며 첩보요원 자체도 비인간적인 인격체로 보기 쉽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괴상한 인물도 아니고 슈퍼맨도 아니다. 그러한 인물들은 실제와 거리가 멀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장점과 단점 그리고 약점이 있는 사람들이다. 영웅적인 활약을 한 간첩들이라도 그들 역시 각자 독특한 개성과 성향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 공작 업무에 보통 이상 지능지수와 아주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성격에는 천진난만하고 명랑하며 장난기 넘치는 유연한 측면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질은 공작 업무를 수행하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갖가지 위험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데 도움을 준다. 공작원에게 이러한 자질이 부족하다면 냉혹하고 형식에 얽매여 메마르고 지나치게 엄격하여 직업적인 킬러처럼 잔인한 사람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

유능한 공작원이라면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야 한다. 공작원이 현장에서 유용하다고 생각해서 수집한 정보와 본부가 정보의 분석과정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자주 괴리가 있다. 이는 모든 정보기관의 공통된 특징이다. 그러므로 의견 충돌이 생긴 때에는 본부의 지시와 공작원의 행동 사이에 노골적인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걸 조정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가끔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없을 때가 있다. 항상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실패할까봐 두렵고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까 하는 등의 걱정 속에 살게 된다.

올바른 인간은 시간을 잘 지키고 업무에 충실하며 인간관계에서 겸손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비밀 공작원에게도 정확하게 똑같이 적용된다. 하찮은 공작원일수록 그들은 스스로를 영웅으로 묘사하고 자기가 수집한 쓰레기 같은 첩보를 떠벌리며 갖가지 민감한 작전에 늘 참가한다고 떠벌린다. 그런 공작원은 오래가지 못한다. 훌륭한 공작원은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말과 같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공작원은 두려움을 다스리기 위해 술을 많이 마실 수도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긴장을 해소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을 때가 가끔 있다. 몇몇은 깊은 죄책감으로 고통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여자 문제로 골치를 썩인다. 또 다른 사람들은 도박이나 마약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공작원 역시 긴장을 풀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취미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장해식은 청소년 시절부터 공산주의의 이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는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유일하게 올바른 가르침이라고 믿었다. 정통파 공산주의자였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는 자기가 죽는 날까지 공산주의 신념에 충실할 것이다. 자기를 직업적 비밀 공작원으로 생각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공작관이나 공작원 중에서 파견 정부의 공식지위(외교관)에서 활동하는 요원은 백색요원이라 하고, 이와 비교해 민간인 신분으로 위장해서 활동하는 요원들은 흑색요원이라고 하는데 그는 바로 흑색요원이다.

그는 특수 요원이 되기 위한 특별한 준비 교육이 부족했지만 공작 업무에 오랫동안 종사하면서 자신의 감각과 본능이 느끼는 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황은 항상 위험했다. 그래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어떤 길은 걸어서 통과해야 했다. 지하철을 타고 정거장에서 내려 갈아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등의 행위를 몇 차례 반복해 오랜 시간을 복잡하게 돌고 돌아서 도착해야 한다. 누가 뒤를 밟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야 한다. 계속 주변을 살피면서 지루할 정도로 이 길 저 길을 걷는다. 드디어 미행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접선 장소로 간다. 미행에 대한 의심이 들면 본능에 따라 접선을 포기하고 상점에 들어가서 물건을 사거나 하면서 시간을 끌고 나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돌아왔다.

그는 자신이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이상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자각 이외에 아무런 개인적인 보상도 약속되지 않았지만 천생 끝없는 참을성이 요구되는 공작원의 고된 업무에 헌신했다. 정보 당국의 의심을 차단하여 보호막이 되어주는 무역업자로서 영업 활동과 공작 거점의 총책으로서 업무를 동시에 수행했다. 단순한 밀고자와 같은 역할은 거부했다. 어쩌다 굴러들어오는 정보 조각이 있으면 보고하는 그런 류의 공작원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임무를 훨씬 더 가치 있고 고결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가 공작원이 된 것은 순전히 이념 때문이었다. 이것이 공작원의 특질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이다. 그는 돈만을 위해서 일하는 공작원을 경멸한다.


천진은 ‘천자가 이곳의 항구로 들어왔다’고 해서 그 이름이 붙여졌는데 북경과는 바다를 이어주는 관문이다. 서울과 인천처럼, 또는 평양과 남포처럼 말이다. 북경에서 급행열차를 타면 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다.

고두현(高斗賢) 지부장은 북경에서 급행열차를 타고 내려왔고 장해식은 옌타이에서 4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천진으로 올라갔다. 지부장은 중국 주재 북한 대사관의 1등서기관이다. 중국 외무부에서 발급한 면책특권이 있는 외교관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는 북한 인민군 소장으로 정찰총국의 북경 지부장이다. 그 자리는 북한에서는 요직 중의 요직이었고 위대한 지도자 동지의 직접 추천 없이는 갈 수 없는 자리였다.

그는 금성정치군사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최고의 엘리트들만 갈 수 있는 정부 호위총국 행사호위부에서 10년 동안 복무했다. 그리고 호위총국에서 근무할 당시 북경대학교에 3년간 유학을 다녀왔다. 그 후 노동당으로 옮겨가서 35호실과 작전부에서 공작 업무를 담당하다가 노동당 공작부서들이 인민군 총참모부 산하 정찰국과 통합되어 정찰총국이 출범하면서 정찰총국 소속이 되었다. 나이는 오십 대 중반이다. 반평생을 산전수전 다 겪으며 침투와 파괴, 폭파, 살인, 공작과 역공작, 간첩과 이중간첩, 위선과 가면의 스파이 세계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얼굴은 온화했다. 엄청난 비밀을 감추고 있는 그런 어두운 얼굴이 아니다. 그의 그윽한 시선은 사람을 꿰뚫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사람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독특한 힘이 있다.

오늘은 이른 아침 첫 햇빛이 떠오르는 그 순간부터 공기는 나른하게 어른거린다. 정오 무렵이 되자 태양은 꼼짝하지 않고 정지해 있지만 용광로 같은 더위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혔다. 경전철 9호선을 타고 탕구역에서 내리면 바로 짝퉁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양화시장으로 갈 수 있다. 그들은 그 시장의 남쪽 좁은 이면 도로에 있는 중국인들만 상대하는 낡고 허름한 3층 건물 호텔에서 만났다. 1층 로비에 붙어있는 중국식당 별실이었다. 천장에는 낡은 선풍기가 느릿느릿 돌아갔다.

지부장이 말했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덥지요. 너무 더워…… 끈적끈적하지.”

장 동무가 말했다.

“무척 더울 모양입니다.”

“여기 음식이 괜찮아요.”

“저는 처음입니다만……”

“우리 식사를 하면서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이야기에 정해진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니오. 자유스럽게 합시다. 우리가 처음 만난 지도…… 너무 오래되었소. 우리는 비밀회의를 하는 게 아니니까 은어나 암호화된 대화를 할 필요는 없을 거요. 식탁에서 대화는 가볍고 유쾌해야 하니까……”

“모처럼 속 시원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다는 거…… 항상 입조심을 해야 하니까 가끔 입이 근질근질하지요.”

“축하하오! 장 동무! 이번에 대좌로 승진되었소. 만약 조국이 통일되면 경기도 지사 아니면 인천 시장쯤은 문제없을 거요.”

“감사합니다. 오늘은 제가 한턱 내겠습니다.”

“그건 잘 아시오. 적극 추천했단……. 우리 고첩 가운데 20년 넘게 활동한 경우는 드물어요. 북경 시절부터 계산해야 되니까 그렇소. 이중생활의 고통이란…… 위험하고 힘들지. 호랑이 굴에서 살고 있는 거란 말이지.”

“너무 과분합니다. 저는 정통으로 공작원 코스를 밟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직계가 아니라 몇 단계 떨어진 방계이지요. 저는 명색이 간첩인데 아직 총 한 방 쏘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그렇소만…… 이제는 그런 걸 따지는 게 무의미해요.

동무의 활약은 참으로 눈부셔요. 나는 호위총국이 지겨워서 자진해서 전출을 요청했어. 모험을 해보고 싶었거든. 젊은 장교 시절 휴전선 침투도 여러 번 했고 공작선을 타고 해안선 침투도 많이 했었지. 그리고 몇 번쯤 아주 위험한 특수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지만 고첩은 할 수 없었어.

사람마다 특징이 있는데 나는 위험하지만 짧은 순간 끝나는 특수 임무가 체질에 맞는 거요. 오랫동안 기다리면서 조직하는 데는 소질이 없어.”

“너무…… 지부장님은 언제쯤 본부로……”

“동무 말뜻을 헤아릴 수 있지. 나더러 언제쯤 승진하냐고 묻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북경이 좋다네. 여기서는 내가 최고라네.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지. 그런데 본부에 들어가면 옴짝달싹할 수 없어.”

“그래도 승진은 해야 될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내가 간다면 해외 담당 부국장이겠지. 이것도 내 희망 사항일 뿐이야. 하지만 총국장은 어림없지. 총국장 뒤에는 최고 지도자가 있으니까. 그건 측근 중의 측근인 최측근이 아니면 불가능해. 난 그 정도는 아니야. 그걸 바란다면……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네.”

“제게는 과분한 영광입니다.”

“그런 말 하지 마시오. 너무 늦은 감이 있어요.”

“지부장님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건 극비사항이오. 아무도 내가 여기 오는 줄을 모르고 있으니까…… 그냥 칭따오에 간 줄로만 알고 있을 거요. 오늘은 이것저것 할 말이 너무 많소. 그만큼 중요한 일이오. 여기는 안전하니까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소. 문서는 비밀을 절대로 보장할 수 없소.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지.”

“문서는 작성도 힘들고 읽는 사람이 행간을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작전은 보안이 중요한데 북경에서 이 작전을 아는 요원은 없어요. 당연히 대사도 모르고 있소. 어차피 공작에는 무식하고 관심도 없지만 말이오. 우리는 대사를 비롯해서 대사관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소. 그것도 우리의 임무 중 하나요. 걔들이 망명을 시도할 수 있거든. 대사는 우리 요원들을 경계하면서 싫어하지. 외무성과 우리 사이에는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어. 이리로 부른 것은 다 이유가 있어요. 북경은 너무 위험해요. 우리 쪽도 믿을 수가 없어. 쥐새끼들이 숨어있을 수 있으니까. 천진은 괜찮아요. 관광도시도 아니고 상업 도시이니까 무역업자가 들락거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거지. 인천항에서 여기까지 국제여객선인 ‘천인호’가 정기적으로 운항하지만 승객들은 대부분 보따리장사를 하는 장사치들이야.”

“저는 충분히 조심하고 있습니다.”

“회사 상황은 어떻소.”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칭따오의 수출회사와는 거래가 원만합니다. 주류 도매상들은 아주 오래된 거래처이니까 서로 믿을 만하긴 합니다만 문제는 다른 수입회사들이 덤핑을 하면서 치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번 작전은 아주 중요해요. 공작명은 남산1호이지. 최고 지도자 동지께서 관심을 가지고 있소. 장군님의 입장을 생각해 보라고. 갑자기 쥐도새도 모르게 남쪽으로 내려갔단 말이오. 처음에는 설마 설마 했을 거요. 그럴 리가 없다고. 마침내 배신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느꼈을 충격과 절망감을 생각해 보시오. 용서할 수가 없는 거지. 복수밖에 없어요.”

“배신자라면 예수님을 밀고한…… 누구더라…… 기독교인들은 철천지 원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교회에 다니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인민의 아편이니까.”

“어떤 모임에서 점잖은 장로님한테서 어깨 너머로 귀동냥한 것이지요. 그분은 저에게 교회에 나와 하느님에게 귀의하라고 몇 번이나 강력하게 권유하였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여태 차일피일하고 있습니다.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서는 교회에 나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떤 교회는 탈북자들이 많습니다. 교회가 돈을 주니까 예배에 참석하는 겁니다.”

“교회에 다니다 보면 목사님의 설교에 현혹되어 진짜 빠질 수도 있어요. 그걸 조심해야 하오. 기독교라는 악마의 덫에 걸리면 안 되는 거요…….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이러저러한 단맛 쓴맛을 맛본단 말이지. 평범한 사람들도 아주 사소한 것을 가지고 협상을 하고 타협을 하지. 하지만 모든 약속을 다 지킬 수는 없는 거야. 경우에 따라서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게 바로 배신 아니겠소. 다시 말하면 우리는 살면서 언제든지 사소한 거짓말을 한단 말이오. 누가 거짓말을 안 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소.

하지만 말이오…… 그런 배신과 공화국을 배신하는 극악무도한 반역 행위는 차원이 다른 문제인 거요. 공화국은 배신자를 제일 싫어하오. 솔직히 말하면 제일 두려워하지. 반드시 응징을 해야 하는 거요. 그러니까 그 영감태기도 절대로 예외가 될 수 없는 거 아니겠소.”

“공산주의의 위대한 관습이고 전통입니다. 공산주의는 민주주의와 투쟁하는 것보다 변절자와 투쟁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탈린 동지는 트로츠키를 끝까지 추적해서 죽였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배신자는 용납할 수 없는 거요. 언젠가 남조선에서 목사도 올라왔고 작가라는 사람도 올라왔지 않소. 그리고 젊은 처녀가 수령님의 품에 안기겠다고 북으로 왔고…… 그게 말이야 아주 공개적으로 왔지.

우리 입장에서는 겉으로는 대대적으로 환영했지만 내심 아주 싫어했던 거요. 배신자니까. 남쪽에서 보면 그건 틀림없이 배신자 아니겠어.

배신이란 게 무엇이오? 배신자가 누구요? 밀고란 말입니다. 고자질쟁이, 밀고자란 말이오. 인간은 본능적으로 밀고자를 혐오하게 되어있어요.

내가 예를 하나 들 수 있지. 더러운 배신자이니까 인간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한때는 주사파의 핵심 인물이었지. 말하자면 그자가 제 발로 북조선으로 올라왔단 말이지. 수령님께 무릎을 꿇고 충성 서약을 한 후 간첩 교육을 받고 나서 노동당에 정식 당원으로 입당한 거요. 그러고 나서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남한으로 내려간 거지. 물론 우리 공작선이 공짜로 태워다 주었지. 그런데 그 후 어떻게 됐소? 그 인간이 무슨 북한인권단체를 세워가지고서는 주체사상을 잘근잘근 씹어대고 수령님을 대놓고 욕하고 북한을 지옥이라고 떠들고 다녔소. 혁명의 열정은 어느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기회주의자로 변신한 거지. 처음에는 그의 변심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

틀림없이 온갖 꼬임에 넘어간 거요. 그래서 혁명 동지들을 배신한 거요. 확고했던 신념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쉽게 무너질 수는 없는 거니까.

그렇지만 그 반동분자는 몸조심해야 할 거야.

반동분자! 반동분자 중 가장 비열한 반동분자!

다시 말하지만 말이오…… 지식인 중에서 배반자가 된 자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소위 지식인들이라는 인간들은 그 모양이오. 지식이 오염시키니까 그렇게 된 거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총국장님은 최고 지도자 앞에서 배신자를 처단하겠다고 장담을 했단 말이요. 첫 번째 작전에서 실패했으니까 면목이 없었던 거지. 그래서 이번 작전은 참으로 중요하오. 동무도 잘 알다시피…… 정찰총국은 출범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지. 정보기관과 공작기관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까 효율적이지 않은 거지. 그렇기 때문에 통합했단 말이오. 총국장님은 막강한 힘을 가졌지만 그만큼 책임도 무거울 것 아닌가. 무언가 눈에 확 띄는 작품을 지도자 동지께 보여줄 필요가 있단 말이지.”

“소속이 다른 조직을 통합하면 많은 어려움이 따를 텐데요?”

“내부적 알력과 경쟁은 단시일 내에 해소되는 게 아니지. 안전보위부가 날뛰고 있단 말이오. 우리하고 업무 영역이 겹치니까 말이지.”

“최근 안전보위부는 옛날 대남공작 방식과는 다르게 하고 있습니다. 공작원 남파시 검거되거나 임무가 탄로날 것을 우려해서 구체적인 임무를 부여하지 않은 채 탈북자로 위장시켜 내려보냅니다. 일단 남한에서 정착하여 합법적 신분을 취득하면 그때 2차로 침투한 공작원이나 국내 고첩망을 접선시켜 본격적인 공작임무를 수행케 하고 있어요.”

“안전보위부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어요.”

“먼젓번도 준비가 소홀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재수가 없었던 거지요. 남쪽의 국정원 조직이 생각보다는……”

“그런 말 하지 마시오. 그놈들은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있는 자본주의 개새끼들이니까. 걔들은 대공수사권을 가지고 조자룡이 헌 칼 휘두르듯이 온갖 짓을 저지르고 있지.

대북 정보보다는 국내 정보수집이 더 중요한 거야. 정신이 썩어빠져가지고 국가 안보가 아니고 정권 안보가 우선이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홍역을 치르지. 상층부는 정치권에 줄을 대고 제 살길 찾기에 급급해요.

그 조직이란 게…… 물불 안 가리고…… 비정한 집단이기도 하지. 피차 마찬가지란 말이지. 우린 오랜 적수이지만 서로에게서 많이 배우고 있어.

악명 높은 김형욱 부장을 살해하는 데 중정이 깊숙이 개입했어. 그게 오작교 작전이라네.

김형욱은 1992년인가 그 무렵에 법원에서 실종선고를 받았으니까 공식적으로는 그냥 실종된 것으로 처리되었지만 어디선가 살해된 게 틀림없어요.

불효자식이 말썽꾸러기 아버지를 죽인 셈이지.

그것들은 언제든지 필요하면 북을 제멋대로 이용해먹고 있소. 그래서 맨날 간첩조작을 하고 북풍조작을 하는 거 아니겠소. 생사람 잡아서 간첩 만드는 데 이력이 난 사람들이오.”

“그 사람들은…… 못하는 짓이 없군요.”

“자기들은 온갖 짓을 다 하면서 말이야. 북을 대놓고 욕한단 말이지. 남쪽에서 돌아다니는 것은 대개 걔들이 조작해서 퍼뜨린 거지.”

“정말 나쁜 사람들이에요.”

“공화국의 이념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강철 같은 의지가 필요하지.

북조선이 유토피아는 아니오. 물론 실패한 유토피아도 아니오. 처음부터 유토피아는 없었소. 소련에서부터 혁명의 첫 단추는 잘못 끼워졌단 말이오.

그렇지만 공산주의도 결국 인간이 하는 짓이야.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단 말이지.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남을 어떤 진실이 존재한다는 거지. 공산주의는 자유보다는 평등을 강조하니까 인류의 위대한 열망을 표현하고 있어요.

사회적 평등 추구는 시대를 초월한 주제인 거요. 아무리 핍박을 받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하오. 그게 우리의 자존심이오.

우리 공화국은 절대로 침몰하지 않아요. 핵무기가 있지 않소. 그게 우릴 지켜줄 거요.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핵을 양보할 수는 없는 거요.”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국정원을 가볍게 여기자는 말은 아니오.”

“국정원 사람들이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그래서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탈북자를 가장한 침투는 당분간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벌써 열 명 넘게 발각되지 않았습니까. 특히 2008년 8월 불거진 원정화 사건 때문에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 사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상황입니다.”

“탈북자들의 동향은 어떻소?”

“지금까지 내려온 탈북자는 3만 명이 넘을 겁니다. 탈북자 단체가 대략 70개인지 80개인지가 될 겁니다. 많다고 보면 많고 적다고 보면 적을 수도 있지요. NK지식연대라는 단체가 있는데요, 북한에서 전문학교, 대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지식인들로 조직된 최초의 탈북자 단체입니다.

회원이 무려 400명 가까이 됩니다. 탈북자 단체 중에서는 규모는 물론이고 영향력이 가장 큰 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 단합이 잘 안 되고 서로 으르렁거립니다.”

“여태껏 몰랐던 자본주의 제도를 새로 경험해야 하니까 듣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을걸?”

“모순적이긴 합니다만……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내려왔지만 북에서 듣던 것과는 사정이 다르니까 실망하고 다시 탈남하는 탈북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남쪽에서는 동남아 출신처럼 외국인 취급을 하는 겁니다.”

“그 인간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소?”

“누구 말씀인가요?”

“김일성종합대학 책임지도교원 말이요.. 걔가 모든 걸 처리했으니까 영감이 내려올 수 있었소.”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조용히 숨어 지내고 있지요.”

“그들 탈북자나 단체들과 관계는 어떻소?”

“우리는 같은 북한 출신이니까 정서적으로 통하는 데가 많습니다. 접촉하는 데 문제점은 없습니다. 몇몇 탈북자 단체는 국정원이 관리하거나 기무사가 관리하고 있어요. 그런 단체는 아예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습니다.”

“동무 밑에는 유능한 일꾼들이 있는 것 같소. 현재 영감이 살고 있는 집, 사무실, 건물들과 동선을 정확히 파악했고 수십 장의 사진도 찍었소. 본부는 아주 만족하고 있어요.”

“남자는 15년 전쯤 탈북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완전히 동화하지 못하고 환멸을 느꼈지요.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죠. 지금은 잠실에 있는 어느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탈북자들이나 탈북자 단체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합신센터나 하나원에 대해서는 그 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자는 순수 서울 깍쟁이 출신입니다. 아주 딱 부러지게 똑똑하고 거기다 신념이 확고합니다. 그래서 믿을 만하지요. 둘은 처음에는 연인 관계에 있었는데 지금은 동거하고 있습니다. 아마 정식 결혼은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식을 낳을 계획도 없는 것 같고요.”

“남산1호 심사는 어떻게……?”

“현재 합신센터에서 조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6월 5일 입국했으니까요. 합신센터는 내곡동 본부 건물과는 별개로 시흥시 변두리 조남동에 있습니다. 잘 아시겠습니다마는 모든 탈북자들은 거기서 반드시 엄격한 조사를 거쳐야 합니다. 거기가 지독하다고 소문이 났지요. 거기 조사관들은 아주 악질들입니다. 탈북자의 약점을 잡아내기 위해서 온갖 짓을 다 하고 있습니다. 회유와 협박은 물론이고 가끔 폭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남산1호가 그걸 통과해야 된단 말이지?”

“보통 탈북자라면 2개월 가량 소요됩니다. 하나원으로 가서 또다시 석 달 동안 교육을 받게 되지요. 가을쯤에나 완전히 풀려나는 겁니다.”

“거기서 외출이나 외박이 가능하다고 하던데……?”

“하나원은 상당히 느슨하기는 합니다. 면회도 가능하고 특별한 경우에는 며칠씩 외박도 가능합니다.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이번 임무가 성공하는 거요. 그게 절대적이오. 그런 다음에야 무엇이든지…… 못하겠소. 보안이 중요해요.”

“우리는 남산1호가 합신센터를 나와서 하나원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면밀히 체크할 겁니다.”

“시간이 별로 없소. 장군님도…… 영감태기도 많이 늙었으니까 건강이 좋을 리 없고…… 올해가 2010년이오.”

“저로서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건 분명히 알아야 하오. 역할 분담이 되어 있고 그에 따라 책임 소재가 다르다는 거지.”

“무슨 말씀인가요?”

“설봉지도국은 남한으로 침투하고 국정원을 통과하는 데까지만 책임을 진단 말이지. 그 후에는 모든 게 북경지부 소관이요.”

“그렇게 분리할 필요가 있는가요?”

“첫째는 통신보안 때문이야. 그래서 불가피한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지. 북경과 서울 간에는 이메일이나 핸드폰을 사용해서 편리하게 통신을 할 수 있지만 평양과 서울 사이에는 국정원의 통신감청 때문에 여의치 않아. 서울과 북경간, 북경과 평양간 삼각통신이 훨씬 편리하고 안전하단 말이지.

둘째는 장 동무가 관련되어 있다네. 이번 임무에는 동무의 역할이 아주 중요한데 소속이 북경 지부란 말이지.”

“통신 연락은 임무 수행에 아주 중요하지요.”

“나는 총국장님과 직접 연결되어 있네. 그리고 모든 권한이 위임되어 있지. 지도국장 말일세…… 그 사람 성실하고 인간적으로 괜찮은 사람이야. 그러나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네. 재일동포 출신이거든. 물론 조총련에서 밀어주고 본인도 열심히 하니까 올라갈 수 있었겠지.

그렇지만 이번에도 실패하면 두 번째 실패니까 입장이 어려워질 거야. 어디 험한 데로 좌천을 당하거나 숙청을 당하지 않겠어?”

“지부장님께서 막중한 책임을 지고 계시군요.”

“장 동무의 근황을 설명해 보시오. 보고서에는 빠져 있는 부분 말이오.”

“제 관할은 충청도, 인천, 경기도 서남부 지역이지요. 서해 쪽 해안선을 끼고 있습니다. 성남이 있는 경기 동부나 경기 남부는 관할 밖이지요.”

“경기 동부에 대해서는 미련이 남아 있긴 하네.

거기는 운동 기풍이 굉장히 강했거든. 마치 묵가 집단과 같았어. 일종의 공동체였으니까 개인적인 요소는 등장할 수가 없었지. 개인 소유가 없었어. 노동을 통해 돈을 벌어오면 공동체에 내놓았다네. 그리고 합숙하면서 새벽에 함께 기상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어. 걔들은 고도로 조직화됐고 상명하복의 군대식 문화였어. 그리고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보이는 북한 말투나 북한식 표현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았지. 동지라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았어. 모두 가명을 썼단 말이야.

그러나 지금은 희미한 기억만 남았다네.

우리는 분리분할의 원칙, 횡적연계 금지, 단선연계 원칙, 월선금지를 철저히 지켜야 하오. 남의 일에 대해서는 알아도 안되고 간섭해서도 안되는 거요. 그쪽과는 절대로 접촉해서는 안되는 거요.

우리가 자칭 좌파 인사들을 포섭하는 데 계속 실패했다는 것을 아시오.

우리 쪽에서 신분을 밝히고 접근하면 반신반의하면서 그냥 도망가요. 종북이니 친북이니 하는 딱지가 붙으면 출세에 지장이 있으니까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했단 말이야.

처음 주사파가 등장하니까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르오. 드디어 결정적인 혁명의 계기가 시작되었다고 보았던 거요. 뭔가 한 줄기 희망이 보였소. 아주 고맙게도 남쪽 주사파는 독자적으로 주체사상을 수용해서 대학 운동권의 주류 세력으로 부상했단 말이야. 걔들은 스스로 반미, 반독재, 자주화 노선을 내걸었어. 김일성 주석께서 ‘남조선 혁명은 남조선 인민의 힘으로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으니까 그 말씀에 딱 들어맞는 거요. 우리는 반신반의하면서 지켜보다가 마침내 접촉을 시작한 거요. 걔들 말이야…… 김일성 주석님을 수령으로 모시고 북한에 흡수 통일되는 걸 진심으로 바라는 인간들이었어. 그걸 군사독재정권이 악랄하게 조작한 게 아니란 말이지.

우리가 순진했는지 무지했는지…… 김칫국부터 마신 격이었지. 너무 흥분했었다니까. 결정적인 시기가 되자 꽁무니를 뺀 거요.”

“뒤늦게 그들의 실체를 파악한 거군요?”

“한때 운동권이었다고 내세우면서 출세의 발판으로 삼으려고 하는 거요. 좌파라든가 운동권이라는 단어는 묘하게도 신선한 매력을 풍긴단 말이오.”

“지금은 주사파가 소멸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서부 해안 지역이오. 서해안은 지리적으로 해안선을 따라 황해도 일대와 연결되어 있고 황금어장을 끼고 있지 않소.”

“서해안 일대 선착장에는 1톤도 안 되는 작은 낚싯배에서부터 10톤이 넘는 꽃게잡이 어선에 이르기까지 각종 어선이 수없이 정박해 있습니다. 외지에서 온 바다 낚시꾼들이 좋아하는 섬들이 있습니다.

사시사철 밤낮으로 바다낚시가 가능합니다.”

“낚싯배나 어선을 가장해서 침투하거나 탈출하기가 용이하지 않겠소.

거길 빠져나오면 바로 공해상이니까 우리 선박들이 대기할 수 있어요.”

“그렇습니다. 단점이 있긴 합니다. 서해안은 수심이 얕아서 상어급 신형 잠수함이 작전하기에는 매우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오. 그 대신 수심이 깊은 동해가 있지 않소. 서해 해안선에 있는 군의 경비 초소, 레이더 기지를 정탐해야 한단 말이오.

그리고 서해안의 조석과 조류, 다시 말하면 물살의 흐름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오. 특히 북방한계선 부근 연평도와 강화도 해역의 물살이 중요하단 말이오. 거기가 황해남도와 연결되어 있지 않소. 우리 전선서부지구사령부가 작전 지휘를 하고 수산사업소 어업지도선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지만…… 정확한 남쪽 자료가 필요하지. 그런 중요한 자료는 해양경찰청이나 국립해양과학기술원에 있을 거요.”

“그곳 바다는 참으로 묘한 곳입니다. 조류가 하루에도 6시간 간격으로 4번씩이나 바뀝니다. 그때마다 물살의 빠르기가 달라집니다. 밀물이 들어오는 시각과 썰물이 시작되는 시각, 고조와 저조에 이르는 시각, 물살의 속도 등에 대해서는 늙은 어부들이 감각적으로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강화도나 연평도 주둔 해병대의 동향에 대한 정찰을 치밀하게 할 필요가 있어요.”

“강화도 대산리나 월곳리에서 개풍군 남쪽까지는 2킬로미터 남짓밖에 되지 않습니다. 교동면 지석리에서 연백군 해남리까지는 1.2킬로미터에 불과합니다. 해상침투를 위해서는 강화도에서부터 시작해서 전북 위도까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반잠수정이나 모터보트를 타고 와서 해안 침투가 용이한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높은 파도가 치거나 기상 상태가 좋지 않으면 레이더에 거의 잡히지 않습니다. 군부대의 경계상태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쓸모있는 정보를 수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러 가지 사소한 조각들을 모아서 모자이크처럼 조합해나가는 것이오.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사실들을 서로 꿰맞추면 거기에서 일관성 있는 어떤 흐름을 찾을 수 있지. 이건 정보 분석팀이 해야 할 일이지만. 요즘 인터넷에는 온갖 정보가 넘쳐난다네.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니까. 오죽하면 인터넷에 핵무기 제조법까지 떠돌고 있겠는가. 그런 까닭으로 극도로 민감한 정보가 널리 퍼져있지.

자칭 판타지 사이트에서는 사람을 구워 먹거나 삶아 먹는 방법을 소개한 인육 조리법까지 나온다고 하니까.”

“기막힌 세상이군요. 그게 바로 자본주의 도덕이 썩을 대로 썩었다는 증거입니다. 퇴폐적인 생활에 물들어서 자유방종이 한계에 다다른 겁니다.”

“장 동무가 ‘한국의 하와이’라고 부르는 제주도에 대한 보고서를 마지막으로 올린 게 언제쯤이오?”

“3년 전입니다. 그 당시 제주도 일대를 관광객으로 가장해서 샅샅이 현지 답사했습니다.”

“거기다 해군기지를 건설한다고 하니까 인민무력부 총참모부에서는 난리가 난 거지. 대남 공작원들을 침투시킬 주요 루트를 잃게 되니까. 기지가 있으면 병력도 대폭 증강되고 경계도 강화될 테니까. 그리고 제주도는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해.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 특수부대가 제주도를 기습 점령해서 교두보를 확보한 다음 뒤통수를 칠 수 있거든.”

“역부족이었습니다. 기지 건설 반대가 결국 실패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그 섬에서 행복한 몇 달을 보냈습니다. 여행하는 기분으로 처음 갔거든요. 바다가 무척 아름다워요. 바닷바람이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매서웠지요. 부두의 어부들과 생선 비린내가 그립습니다.”

남쪽 바다는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났다. 새벽 3시쯤이면 벌써 어부들이 포구에 나와 조업 준비를 시작하고 야간 조업을 마친 어선들은 아침 일찍 포구에 닻을 내린다. 어부들은 거친 바닷바람과 햇빛에 시달린 탓으로 얼굴에 잔주름이 잔뜩 잡혀 있다. 이제 바람소리가 속삭이듯 잠잠해지고 바다는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누워 있다. 잠에서 일찍 깬 갈매기들이 어선 주위를 빠른 속도로 맴돈다. 공중에서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거나 속도를 늦추지도 않는다. 그것들 울음소리는 깜빡 착각할 만큼 고양이 울음소리와 비슷하다. 바닷가를 휘감아 감싸고 있던 회색 안개는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밀려 시나브로 흩어진다.

“알뜨르에서 섯알오름 가는 길목에 서 있는 검은 비석을 보러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게 제주 4·3 당시 희생자 추모비인데 추모비 뒤에는 웅덩이 두 개가 있습니다. 그 당시 대표적인 학살 현장이었지요. 군인들이 예비검속이라는 명목으로 연행한 양민들을 그 자리에서 총살했더군요. 그러고 나서 숨진 양민들을 웅덩이에 던져버렸습니다. 웅덩이가 개방된 건 그로부터 10년 뒤였는데 유족들이 시신을 수습하려 했으나 살은 썩어 문드러졌고 뼈는 엉켜있어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왕 갔으니까…… 제주도 음식을 실컷 즐기지 그랬어.”

“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동쪽으로 출발하여 한 바퀴 일주했지요. 그러면서 보말칼국수, 돔베고기, 모자반으로 끓여낸 몸국, 메밀가루를 반죽해 돼지비계로 지진 전에 무채를 넣고 말아 만든 빙떡, 꿩메밀칼국수, 접짝뼈국, 제주 전통 육개장을 번갈아 가며 자주 먹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다금바리 회와 흑돼지 삼겹살, 은갈치 조림이야말로 술안주로는 최고였습니다. 소주와 함께 먹으면 정말 별미였습니다. 그런 안주로 술을 마시면 소주를 몇 병이라도 마실 수 있습니다. 옆에 함께 마실 여자가 있으면 금상첨화이지요.”

“제주도 해안선을 샅샅이 조사했는데……?”

“제주도민의 반대 운동이 워낙 거셌으니까 성공할걸로 예상했었죠.

그렇지만 기지 건설이 시작되면서 병력이 대폭 증강되고 경비가 강화되었습니다. 공작선이 침투하는 게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중국 어선들도 제주도 부근 바다에서는 조업하지 않습니다. 서해로 올라온 것이지요. 서해 북방한계선 인근 해역에서 불법으로 조업을 합니다. 그러니까 제주도 해안은 우리에게는 이제 쓸모가 없습니다.

서해 바다에는 효녀 심청이가 몸을 던졌던 인당수가 있습니다. 인당수는 그 옛날 중국 무역선과 우리 무역선이 오가던 서해 바닷길에 있었지 않습니까. 얼마 전만 해도 서해 바다에서는 우리 어선들과 중국 어선들이 뒤섞여 고기도 잡지만 매매도 하고, 물물교환도 하고, 마약 거래도 하고, 밀수 행위도 했습니다. 바다에 떠 있는 국제 암시장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부터 다른 엉뚱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그 섬은 나에게는 고향이나 다름없소만 한 번도 가보지 못했소.

마침내 제주도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내 개인사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구만…… 글쎄 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네.”

“무슨 말씀인가요?”


화산섬 제주도는 한반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섬에는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낯익은 듯 낯선 이국적 풍광이 넘쳐난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지질공원. 옥황상제의 셋째 딸인 ‘설문대할망’에 관한 전설이 전해지는 섬. 제주도를 품고 있는 어머니 같은 한라산. 검은 화산암과 보석처럼 빛나는 에메랄드빛 바다의 어울림. 거친 듯 부드러운 바닷바람.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 또다시 봄이 온다고 했지만 제비는 육지에 오기 전에 먼저 제주도에 들른다. 일 년 내내 꽃이 핀다. 유채꽃을 시작으로 왕벚꽃이 피면 봄이 왔음을 알 수 있다. 여름이면 수국으로 풍성하고 가을이면 온통 달빛을 머금은 하얀 메밀꽃이 만발한다. 겨울이 한창인 때도 붉은 물감을 칠한 듯 동백꽃으로 물든다. 남쪽 나라의 낭만이 흘러넘치는 섬이다.

1948년 4월은 예년과는 다른 봄이었을까.

겨울 동안 멀리 시베리아 동토에서 불어온 찬 바람은 한반도 남단 제주해협을 건너면서부터 한결 부드러워져서 해안가 절벽과 한라산 산허리에 가볍게 부딪혔다. 울창한 숲은 바람의 영향으로 가지들이 뒤엉켜 휘어진 채로 부자연스러운 자세가 되어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새벽이면 바다에서 피어오르는 해무가 해안가를 뒤덮었고 파도는 하얀 이빨을 드러낸 채 몸부림치며 포효하였다. 최근 며칠 동안 바람이 잦아들고 기온은 따뜻해서 올해는 봄이 일찍 올 것 같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마을의 돌담 밑에는 벌써 금잔화가 피기 시작했고 섬 전체에 봄기운이 돌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관덕정 주변 왕벚나무에는 벚꽃이 만발했다.

제주도에는 너무나 아픈 역사가 있다. 1948년 4월 3일 일어난 사건을 제주4·3사건이라고도 하고 제주4·3항쟁이라고도 한다.

제주도 섬 전체를 무려 8년간이나 뒤흔들었던 비극적 사건이었다. 역사의 암흑 속에 파묻혔던 그 사건은 반세기를 지나서야 지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당시 제주도민 30만 명 중에서 10명 중 1명꼴로 무고한 양민들을 폭도로 몰아서 학살한 것이다. 집단 학살이었다. 우리 역사를 통틀어 한 지역에서 학살된 인원으로는 가장 많았다. 1949년 가을쯤이 되자 사태는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산해서 귀순 또는 투항했고 토벌대에 의해 대부분의 산사람들이 체포되었다.

그들은 한 달 내내 밀항선 크기의 작은 화물선에 실려 본토로 이송되었다. 이송 도중 배에서 마구잡이로 총살되어 바다로 내던져지는 일도 있었다. 그들의 행선지는 목포형무소, 대구형무소, 서울의 마포형무소였는데 스무 살 미만의 청소년은 인천소년형무소로 보내졌다. 형무소에 들어가기 전까지 미결이었던 그들은 형무소 운동장에 집합하여 한 명씩 호출을 받은 뒤 법무장교가 닥치는 대로 무기형, 20년 형, 10년 형 등 즉석에서 형을 언도하였다.

하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자 그 즉시 전부 총살형에 처해졌다. 그때 화물선에 태워져 섬을 떠난 사람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1947년 3·1 독립기념일에 제주시 관덕정에서 시작된 3·1 시위 사건 이후 빨갱이 사냥의 특공대로 서북청년회와 본토 경찰들이 들어왔다. 제주도민은 모두 빨갱이였다. 그들이 말했다. ‘정어리도 물고기인가. 제주도 새끼도 인간인가.’ 서북들에 의한 약탈, 강간, 살인이 끊임없이 행해졌다. 서북들은 걸음걸이와 풍채에서 어딘지 모르게 건달 깡패 냄새가 배어 있었다. 간부급으로 행세깨나 하는 서북들은 경찰도 군인도 아닌 주제에 대낮에도 거들먹거리며 버젓이 미제 카빈 소총이나 M1 소총을 어깨에 메고 다녔다.

국군 토벌대는 섬을 완전히 봉쇄해놓고 작전이란 이름으로 마을 단위로 양민을 집단적으로 학살했다. 초토화 작전에 의해 중간 산간 마을은 흔적도 없이 타버렸고 해안 마을도 대부분 사라졌다. 도민들의 시체를 낡은 타이어와 함께 기름을 뿌려서 태우는 검은 연기가 섬 하늘을 뒤덮었다. 그들은 제주도민은 빨갱이이고 빨갱이는 인간이 아니니 죽여도 된다고 했다.

1948년에 제주도에서 4·3 사건이 일어났고 그해 10월에 일어난 여순반란사건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10월 8일 정부는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제주도 경비사령부를 설치했다. 본격적인 토벌을 위해서 여수 주둔 제14연대에 출동 명령을 내렸지만 10월 9일 연대 병력들이 인사계 오창수 상사의 지휘하에 ‘동족상잔을 강요하는 제주도 출동 명령’을 거부하며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 사건은 군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지만 바로 진압됐고 14연대 병력이 여수와 순천에서 차례로 패퇴해서 지리산으로 들어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1948년 11월 중순, 지창수가 이끄는 200여 명의 잔여 병력이 지리산으로 들어와 이현상의 지리산 유격대에 합류하여 주력 부대가 되었다.

고두현 지부장의 아버지인 고대삼은 1949년 이른 봄 아무도 모르게 목포를 떠나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구례 쪽을 통해서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그는 제 발로 걸어들어왔으니 유격대 대원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군복과 계급장, 견장, 모자, 훈장은 없었다. 대신 99식 구형 장총 한 자루와 수십 발의 총알을 배정받았고 두툼한 누비옷을 받았다. 먼저 총 쏘는 방법부터 배웠다. 대장이 말했다. “우리는 동지애, 형제애로 똘똘 뭉쳐있습니다. 우리는 저 깊은 영혼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 동무들! 우리 빨치산에는 세 가지 각오가 있습니다. 얼어 죽을 각오, 맞아 죽을 각오, 굶어 죽을 각오입니다.”

지리산 산봉우리 중에서 천왕봉이 제일 높다. 해발 천 미터가 넘는 산봉우리가 사십 개가 넘지만. 지리산은 장엄한 산악군을 이룬다. 빨치산이 숨기 좋은 골짜기가 무수히 많다. 대부분 비옥한 흙으로 덮여있어 숲이 울창하고 물이 풍부했다. 골짜기마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흘러서 식량만 조달된다면 몇 달이고 숨어있을 수 있었다. 숲속 깊숙한 동굴이 그들의 아지트였다.

동굴은 입구가 좁았고 S자형으로 굽어 있었지만 안쪽은 넓었다. 동굴 안은 따뜻했다. 취사를 하면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토벌대에게 위치를 알리는 신호가 되기 때문에 취사는 동굴 제일 안쪽에서 이루어졌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아니어서 연기는 동굴 밖으로 나오기 전에 시나브로 사라졌다.

빨치산들은 맨땅에 거적을 깔고 서로 체온으로 몸을 덥히며 잠을 잤다. 고대삼은 밤이면 선잠이 들었고 몇 번이나 몸을 뒤척이면서 잠에서 깼다. 그는 자다가 악몽을 꾸는 경우가 많았다. 잠에서 깨면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사람의 몸에서 나는 악취가 새삼스럽게 코를 찔렀다. 사람들은 딱지처럼 비듬으로 덮인 머리와 덕지덕지 온몸에 낀 십 년 묵은 때 때문에 몸 전체에서 숨이 막힐 만큼 쉰내를 풍겼다.

제일 연장자인 오십 줄의 아저씨는 한 번도 닦은 적이 없는 것 같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늘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돌멩이에 대고 장죽을 두들기고 나서 빈 담뱃대를 힘껏 빨아 공기를 통하게 한 뒤 담배쌈지에서 잘게 썬 담배를 꺼내 담배통에 채워 피웠다. 그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콧구멍으로 담배 연기를 연신 내뿜었다. 가끔 식량 보급 투쟁에서 빼앗아온 귀한 소주를 마셨다. 술이 목구멍을 넘어가면서 취기가 온몸으로 퍼졌다. 그들은 낮에는 동굴 속에 숨어있다가 밤이 되면 나왔다. 현지 출신들이 많았기 때문에 산속 샛길과 지형지물에 익숙했고 기습이나 매복, 도피에 능숙했다.

그 무렵 광양군 백운산의 동쪽 방면인 경남 하동군과 인접한 진상면에는 국방 경비대 15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유격대는 병력의 수나 무기에서 월등히 앞선 국군 토벌대나 경찰과는 정면에서 대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숨바꼭질을 하면서 밤에 주로 활동하였다.

하지만 야간 행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 금기사항이 있었다. 능선, 소리, 연기였다. 능선을 타면 밤중에도 뚜렷이 눈에 띄었다. 반드시 능선에서 몇 발짝 아래 울퉁불퉁한 경사지를 걸어야 했다. 당연히 길이 없고 가팔랐기 때문에 무척 힘들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고요한 밤중에서는 말소리나 발소리, 돌이 구르거나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가 아주 멀리까지 들렸고, 연기는 메케한 냄새가 멀리까지 퍼졌다.

국군이나 경찰은 유격대원을 생포하면 마을 주민들을 모아놓고 논두렁이나 산기슭에서 공개적으로 총살해버리기 일쑤였다. 걸을 수 없는 부상자나 데려가기 귀찮은 환자들은 발견하면 주저 없이 그 자리에서 사살했다. 죽은 대원들의 코나 귀를 베어 가져가는 일도 늘었다. 부대 상관들에게 토벌 실적을 자랑스럽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였다.

북한 노동당은 1949년 8월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유격대를 남파했다. 노동당은 이들을 제1병단과 제3병단으로 나누어 남파하였다. 이현상 부대는 지리산 지구를 맡아 제2병단으로 명명했다. 현지에서는 여전히 그 유명한 ‘지리산 유격대’로 불렸으나 공식적인 명칭은 제2병단이 되었다. 제1병단은 강원도 홍천군 오대산 지구를 맡았다. 제3병단은 태백산 지구를 맡았는데 제주 4·3 항쟁을 주도했던 김달삼이 이끌고 있었다. 하지만 제1병단과 제3병단은 일찍 와해되었다. 오대산의 제1병단은 12월에 대규모 국군 토벌대를 만나 궤멸되었고 살아남은 잔여 병력은 태백산 지구로 남하해 제3병단에 흡수되었으나 제3병단 역시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대부분 사살당했다.

고대삼은 1949년 8월 한여름 지리산 유격대의 상황을 보고하고 작전을 협의하기 위해서 연락병으로 제3병단에 파견되었다. 하지만 부대가 궤멸되기 직전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와 단신으로 이현상 부대로 복귀하였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지리산 유격대와 함께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었다. 그들이 낙동강 전선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인민군 부대는 보급이 완전히 끊기면서 한미 연합군의 총공세에 밀리기 시작했다.

밤새 퍼부었던 맹렬한 사격이 멈췄다. 총알도 떨어졌고 수류탄도 없다. 날이 밝자 아침 햇살에 생생한 풍경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체들은 참혹했다. 산산조각이 난 팔과 다리, 머리가 안 달린 몸통, 아무것도 안 달린 머리통들이 핏물과 누런 체액이 고인 웅덩이 속에서 뒹굴고 있었다.

이제 북으로 북으로 후퇴해야만 했다. 영천에서 보현산 줄기를 타고 넘어간 인민군 패잔병 대열은 울진군에 들어서면서는 일월산을 타고 본격적으로 태백산맥 깊은 산속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노출된 평지 위로 행군을 하면 미군 폭격기의 먹잇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험악한 태백산맥 준령을 타고 북으로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행군은 고통스러웠다. 많은 대원들이 길게 줄을 지어 무작정 걷고 있어서 이탈하는 사람을 붙잡을 수도 없었다. 누구라도 길가에 주저앉아버리거나 용변을 본다며 대열을 벗어나면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었다. 그래도 10명 정도의 여성 대원들은 힘들다는 내색 없이 하루 50킬로미터의 강행군을 거의 초인적으로 견뎌내고 있었다. 그녀들은 얼굴에는 때가 덕지덕지 끼었고 머리칼은 헝클어지고 몸에는 심한 냄새가 풍겼다. 그런 와중에도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고 수다를 떨었다. 미군 정찰기들이 그들을 계속 추적했다. 밤이 되면 어두컴컴해서 방향을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간헐적으로 대포 소리가 들렸다.

고대삼은 심한 부상 때문에 부축을 받으며 걸으면서 계속 숨을 헐떡였다. 얼굴은 창백해지고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자주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늦가을의 장대비가 쏟아졌다. 비가 멈추면서 무성한 덤불 속에서 새들이 부드럽게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으로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버려진 초가집에서 밤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물에서 맑은 물을 마셨다. 공기는 부드럽고 향기로웠다. 모두들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렸다.


“그게……? 제주 4·3 사건이 지부장님과 관계가 있다고요……?”

“우리 조상님들은 대대로 남원면에서 살았다네. 조상님들이 언제쯤 제주도에 들어갔고 남원에 정착했는지는 알 수가 없어. 너무 까마득한 옛날 일이니까. 우리 조상들은 돌담을 두르고 흙냄새가 나는 초가집에서 살았어. 여름철에는 농사꾼이고 겨울이 되면 바다에서 어민으로 살았지.

할머니는 물허벅을 담은 구덕을 지고 다녔지. 쌀이 엄청 귀했으니까 조밥과 감자가 주식이었어. 가족들은 낭푼에 담은 지슬밥에 마농지뿐인 밥상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식사를 했어. 시골 변소는 돼지우리를 겸하고 있으니까 사람의 똥이 돼지의 사료가 되고 또 그 돼지를 인간이 먹는 셈인데 그 돼지의 생김새가 멧돼지와 비슷하니까 흑돼지라고 했어. 나는 아직 먹어보지 못했지만 아버님 말씀에 의하면 고기가 쫀득쫀득하고 기름기가 적어서 그 맛이 일품이었다고 해. 그래서 술안주로는 최고라고 하셨지.

1948년 11월 남원 지구를 관할하던 국군 토벌대가 위귀, 수망, 한남리를 깨끗하게 소탕하고 이어서 태흥리를 불태웠지. 마을 주민들을 동네 어귀 빈 공터에 모아놓고 ‘지금 곧 철수하지 않는 자는 빨갱이의 협력자로 간주하여 즉결처분한다’라고 선포하고 나서 그냥 머뭇거리는 사이 마을에 석유를 들이부어서 전부 깡그리 불태워버렸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총을 쏘았어. 눈 뜨고는 차마 볼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거지.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막연했으니까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어.

그때 아무 죄도 없는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 누나…… 모두 몰살당했다네. 나에게는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가 되는 거지. 그 당시 우리 아버지는 목포에서 졸업반 고등학생이었어. 철없는 어린 학생이 무얼 알았겠는가. 이데올로기니 공산주의가 뭐고 민주주의가 뭔지 그런 단어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어.

그런데 부모님과 누나가 죽고 자신은 졸지에 빨갱이 자식이 되었으니 갈 길은 하나밖에 없었어. 모진 운명에 의해 내몰렸단 말이지. 그때 제 발로 걸어서 지리산으로 들어갔다네. 그 유명한 지리산 유격대에 합류한 거지. 어쩔 수 없었다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맥아더가 인천에 상륙하고 나서 인민군이 퇴각할 때 천신만고 끝에 함께 북으로 올라올 수 있었지. 그때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다네. 아버지는 왼쪽 다리에 총상을 입고 계속 조금씩 피를 흘렸는데 함께 북으로 후퇴하던 어떤 유격대 여인이 자기 속옷을 뜯어서 상처를 동여매 주면서 지극 정성으로 돌봐주었는데 그분이야말로 생명의 은인이었지. 바로 우리 어머니였다네.

아버지는 왼쪽 다리를 심하게 다쳤기 때문에 제대할 수밖에 없었지. 그 후 평양의 김형직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평양시 보통강구역 신원동에 있는 신원고등중학교 사회분과 교원으로 복무하다가 부교장을 끝으로 퇴임하셨지.”

“지부장님 역시 빨치산 가족 출신이군요.”

“그 덕분에 금성정치군사대학에 갈 수 있었지.”

“김일성종합대학 못지않게 좋은 대학이지요.”

“우리 아버지의 평생 소원이 있었다네. 남원에 가서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의 시신을 수습해서 안장하는 것이었네. 그놈들이 감쪽같이 암매장을 해버렸지. 유해를 발굴해서 봉안을 하고 조상 제사를 지내야만 자손으로서 도리를 다하는 것 아니겠나. 그리고 원혼들의 안식을 위해서 저승으로 천도하는 시왕맞이 굿을 한번 치러야 할 거야.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그건 내가 완수해야 할 평생의 과업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그건 남북이 통일되거나…… 최소한 평화가 정착되어서 남북 간 왕래가 자유로워질 때나 가능하겠군요.”

“장 동무는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소. 지금 대남 침투는 휴전선을 통한 육상 침투로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남쪽 감시장비가 너무 좋아.

그러니 해상침투가 중요한데 그 지역은 서해안 일대요.”

“준비를 잘 해야겠지요.”

“지금 활동하고 있는 정보원들은 이미 늙어가고 있소. 걔들은 전혀 쓸모없는 내용이 엉성한 정보만 보내오고 있어. 새로운 피가 필요한 거야. 흔들리지 않는 투철한 사상을 갖고 있는 참신한 인물을 찾아야 하오.

물론 포섭 대상에게는 금전이나 이성에 대한 욕망이 있을 수 있고 이념이나 체제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 있어요. 걔들은 머릿속에 온갖 울분과 증오, 불평불만이 가득 들어있을 거라고.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고 아첨에 약하단 말이야. 그런 약점을 파고들어야 하지.

그렇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돈보다는 이데올로기와 자존심이 중요하오. 포섭에 성공하면 철저히 세뇌 공작을 하는 거지.”

“세뇌 공작은 정말 중요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제2전선이나 통일전선 전략은 유효하오. 용도 폐기된 게 아니란 말이지. 인민해방전쟁에는 그거 없이는 승리가 불가능한 거야. 그래서 각계각층에 침투하는 게 중요하지.”

“남쪽은 자본주의가 번성하여 잘살고 있으니까 북을 깔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부익부 빈익빈 사회가 될 수밖에 없는 거지. 양극화는 필연적이고 빈부격차는 더욱더 심해질 수밖에 없어요.”

“남한 사회는 물질만능주의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출생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낮습니다.”

“그게 바로 자본주의의 병폐 아니겠소.”

“물질이 전부가 아닌 거죠?”

“절대 다수의 프롤레타리아가 밑바닥으로 버려질 수밖에 없는 거요. 먹고살 만 하다고 해서 불만이 사라지는 게 아니오. 상대적 박탈감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거지.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프다고 했지 않소.”

“지금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 정도로 추산되고 있어요. 그런데 말이죠. 같은 노동자이면서도 서로 돕기는커녕…… 연대의식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죽기 살기로 ‘나부터 살자’라고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서 삿대질을 하고 있어요.”
작성일:2023-02-10 10:55:34 175.209.21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