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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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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證言」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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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등록일
2023-02-10 10:40:06
조회수
287
「증언 證言」 줄거리

1. 특별독재구역, 탈북
김상빈은 국가재산탐오죄로 16호 정치범수용소 (특별독재구역)에 수감되었지만 운 좋게도 돼지를 기르는 돼지 목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잡아먹을 수 있는 살찐 쥐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늦겨울 봄이 오는 어느 날 오후 황혼 녘에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목재를 싣고 있던 청진행 기차의 화물칸 연결고리에 몸을 바짝 붙여 숨어있다가 기차가 수용소 밖으로 이동할 때 기차와 함께 빠져나왔다. 그리고 청진을 거쳐 함경북도 회령에서 두만강을 건너 연길로 들어가 탈북했다.
연길에서 그 브로커 남자를 만났다. 그가 기도했다. “주님! 우리 주님! 여기 불쌍한 어린 양들을 지켜주소서. 이들을 끝까지 보호하소서. 먼저 이들이 자기 조국을 배반한 걸, 고향을 등진 걸, 부모님과 이별한 걸, 친구들과 헤어진 걸 용서해 주십시오. 태국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해 주소서. 자유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주님께서 함께하소서. 중국 공안들의 눈과 귀를 막아 주십시오. 태국에서는 북한으로 추방당하지 않고 대한민국 품에 안기도록 해 주소서. 남조선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하소서. 국정원의 지독한 심사에서 무사히 통과하도록 보호해 주소서. 하나원을 무사히 수료하도록 해 주소서. 마지막 부탁입니다. 좋은 직장을 찾을 수 있도록 해 주소서. 여자들은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도와주소서.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살게 해 주소서. 무서운 악몽을 꾸지 않도록 해 주소서. 불안 강박증에서 해방시켜 주소서. 아멘! 아멘! 아멘!”

2. 1997년 봄, 망명
경호원이 말했다. “불순 세력이 도처에 깔려있습니다. 저격이 있을지 모르니 이걸 받쳐입으셔야 합니다.”김학모 선생이 방탄복을 입고 나서 떠날 채비를 마치자 바로 출발하였다. 삼엄한 경호 속에 그들은 이른 아침 숙소를 출발해서 헬기와 방탄 승용차를 번갈아 타고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다. 1997년 이른 봄 경 북한의 권력 서열 10위 안에 들었던 거물 인사가 마닐라 공항에서 서울 공항을 거쳐 그렇게 망명을 한 것이다. 김학모의 암호명은 ‘톨스토이’였고 그를 수행해서 함께 망명한 이기배는 ‘푸쉬킨’이었다.
그는 만약의 경우 망명에 실패할 것을 대비해서 몸에 독약을 지니고 있었고 또한 아내 앞으로 유서를 써놓았다.
그가 망명하자 북한 정찰총국이 파견한 두 명의 공작원이 그에게 경고를 보내기 위해서 국정원이 관리하고 있던 배신한 이중간첩을 성남의 빌라에서 온몸이 벌집이 되도록 총을 난사하여 살해하였다. (쥐새끼 박멸작전이었다.) 그것은 북한은 배신자를 언제든지 응징할 수 있다는 신호였다.

3. 고정 간첩
장해식 사장은 원래 중국 길림성 화룡현 출신이다. 그는 혁명 유가족 자격으로 중국 공산당에서 대학까지 마칠 수 있게 지원을 받아 명문 대학인 북경 정법대학을 졸업했다. 현재 동작구 노량진2동에서 주류를 수입하는‘유한회사 대명상사’를 운영하고 있다.
고두현 지부장은 중국 주재 북한 대사관 1등 서기관이다. 그래서 중국 외무부에서 발급한 면책특권이 있는 외교관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는 북한 인민군 소장으로 정찰총국 북경 지부장이다. 그가 말했다. “우리 조상님들은 대대로 남원면에서 살았다네. 조상님들이 언제쯤 제주도에 들어갔고 남원에 정착했는지는 알 수가 없어. 1948년 11월 남원 지구를 관할하던 국군 토벌대가 마을 주민들을 동네 어귀 빈 공터에 모아놓고‘지금 곧 철수하지 않는 자는 빨갱이의 협력자로 간주하여 즉결처분한다’라고 선포하고 나서 그냥 머뭇거리는 사이 마을에 석유를 들이부어서 전부 깡그리 불태워버렸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총을 쏘았어. 그때 아무 죄도 없는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나 등 모두 몰살당했다네. 그 당시 우리 아버지는 목포에서 졸업반 고등학생이었어. 철없는 어린 학생이 무얼 알았겠는가. 이데올로기니…… 공산주의가 뭐고 민주주의가 뭔지 그런 단어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어. 그런데 부모님과 누나가 죽고 자신은 졸지에 빨갱이 자식이 되었으니 갈 길은 하나밖에 없었어. 모진 운명에 의해 내몰렸단 말이지. 그때 제 발로 걸어서 지리산으로 들어갔다네. 그리고 맥아더가 인천에 상륙하고 나서 인민군이 퇴각할 때 천신만고 끝에 북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네.”
고두현 지부장은 남한에 15년 동안이나 박혀있는 거물 고첩인 장해식에게 북경이 통지한 시간과 장소에서 공작명 남산1호와 접선하여 무기 등을 건네줄 것을 지시한다.

4.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
탈북민은 입국한 후 먼저 국정원이 운영하는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 외곽에 있는 중앙합동신문센터에 수용되어 신문을 받는다. 거길 통과하면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하나원에서 일정 기간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온다. 그리고 북한이탈주민법에 의해 북한이탈주민의 지위에서 여러 가지 생활 보호를 받게 된다. 김상빈은 2010년 6월 초순 경 합신 센터에 수용되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수십 장의 진술서를 쓰고 열 번이 넘는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받았다. 일반적인 탈북자와는 조금 다른 경우였다.
김상빈은 합신 센터에서 3개월에 걸쳐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인적 사항 및 학력, 경력, 탈북 경위 등에 의심을 품은 조사관의 집중 추궁을 받은 데다, 위장한 인적 사항과 동일한 지역 출신의 탈북자와 대질신문 등으로 인적 사항 및 학력, 경력이 허위임이 탄로나자, 결국 정찰총국 소속 대남 공작원으로서 김학모 처단 등 임무를 부여받고 김상빈 이름으로 위장하여 국내 입국하였다고 실토하였다. (그의 본명은 심학무였다.)
그때 김학모는 87세의 고령으로 자연사를 앞두고 있었지만 정찰총국은 자연사하기 전에 살해하여 복수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용의자는 죄가 있든 없든 어쩔 수 없이 심리적으로 쫓기게 된다. 조사실은 조사관들이 압도한다. 조사관들은 3명씩 조를 짜서 신문했다. 한 사람이 강압적으로 나오면 또 한 사람은 타이르듯이 부드럽게 나오고 가장 젊은 사람은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들이 나가고 나면 다른 조사관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길게 쓸데없는 서론부터 시작했다. 신문은 하루 종일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연달아 똑같은 질문을 하여 얼을 빼놓는다. 그들은 세밀한 질문목록을 가지고 있다.
조사관들은 잘 알고 있다. 남파 간첩이 입을 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오랫동안 머릿속에 인이 박일 정도로 절대로 비밀을 자백해서는 안 된다고 교육을 받은 사람이 갑자기 입을 열고 극비 정보를 발설하거나 자백을 한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기 때문에 몇 번씩이나 심리적 우여곡절을 겪어야 한다. 그들은 회유와 협박을 번갈아가며 한다. 순순히 자백하고 2년에서 3년만 형을 살 것인지, 10년에서 20년까지 형을 살 것인지 선택하라고 한다. 간첩 혐의를 인정하면 북에 있는 가족들을 데려다주고 돈도 주고 집도 주고 나중에 직업도 마련해주고 한국에서 걱정 없이 살게 해주겠다고 회유한다. 간첩 혐의를 인정하는 것이 마치 한국에 애국하는 일인 것처럼 말한다. 조사관들은 탈북민들을 회유하면서 언제나 KAL기 폭파범인 김현희를 예로 들어서 설득했다. 김현희는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이고도 범행을 자백했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보호를 받고 호의호식하면서 잘살고 있다고 하면서 사진과 기사를 보여주기까지 했다.

5. 대화와 설득, 전향
그 무렵 (2010년 여름경) 심학무는 국정원의 높은 분인 북한 담당 염무성 국장과 강남에 있는 대공상담실에서 면담하게 되었다.
염무성 국장이 심학무를 만난 것은 국정원의 오랜 두통거리였던 거물 고정간첩인 장해식을 체포하기 위해서였다. 장해식과 심학무가 접선하는 곳에 수십 명의 정예 요원들이 잠복해있다가 장해식을 체포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심학무는 전향을 하기만 하면 기소를 면제해주고, 정착, 대학원 진학, 주택 제공, 결혼 등을 보장해주겠다는 온갖 유혹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제의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배신자를 응징하기 위해서 내려왔는데 자신이 배신하면 안 된다는 거였다. 그는 전향을 거부한 것이다.

마주보고 대화하는 사람들도 마음은 천 리나 떨어져 있다.
논쟁에서 상대방을 압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설득한 것은 아니다.

6. 국정원 특별사법경찰관의 피의자신문조서
서울중앙지검 공안부 검사의 피의자신문조서
심학무는 피의자 신분으로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국정원 특별사법경찰관으로부터 총 8번 조사를 받았고 2010년 9월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구치소 독방에 수감되었다. 그 후 서울중앙지검 공안부 검사에게 30일 동안 10번 조사를 받았다. 그는 조사 당시 피의자 신문의 신빙성을 담보하기 위해 영상녹화까지 한 후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기소됐다.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심학무가 완전히 자백하고 역사적 증언을 했으므로 암살 공작의 구체적인 과정이 낱낱이 밝혀진다. 우리는 이 소설의 줄거리, 혹은 화자나 인물들의 목소리에서 북한의 실제 현실을 남북 분단의 깊은 상처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수사관과 피의자는 문답 형식으로 진행되는 조서의 작성 중간에 때로는 조서에 기재되지 않는 이러저러한 대화를 하기도 한다. 그 대화 중에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의 이면이 밝혀지기도 했다.)

7. 2010년 겨울, 기억과 회상
이제 겨울이다. 겨울이 오면 초록은 실색한다.
겨울은 사람을 더 깊이 품어준다.
이상경 검사가 심학무를 구속 기소한 후 1심 재판을 앞두고 심학무를 소환했다. 조사실 옆 별실로 들어오게 해서 친절하게도 직접 커피를 내려서 함께 마시면서 대화를 나눴다.
“검사는 수사라는 관점에서 범죄 사실을 신문하지. 그런데 내 귀를 의심할 만큼 기가 막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마치 꾸며낸 것처럼 들린단 말이야. 이게 현실인지 아닌지…… 만약 내가 소설가라면 작가적 관점에서 그 험난했던 여정을 따라가면서 아주 세세하게 재구성할 수 있었겠네.”
“냉철한 검사가 어떻게 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 작가는 절실한 감성이 있어야 하는데요.”
“내가 작가가 되었다면 검사와는 달리 작가적 기준이 있겠지. 작가는 보통 사람이 모르는 작가만의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으니까. 예술이야말로 실체적 진실이라고 할 수 있겠지. 예술은 거짓과 위선과의 싸움에서 궁극적으로 항상 승리했으니까.”
“글쎄요. 전 잘 모르지만…… 예술은 때로는 비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기기도 하고…… 처참하게 패배하기도 하고.”
이 검사 역시 이산가족이었다. 그들은 과거를 기억하고 회상하면서 울었다.
눈물은 슬픔의 소리 없는 말이다. 어느 거룩하고 깊은 절망에서 비롯된 눈물이기에 가슴에 솟아올라 눈에 고인다.
검사는 칼자루를 쥐고 있었고 나는 칼날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수컷 고양이 성체였고 나는 한 마리 가련한 생쥐였다. 그래서 검사를 두려워했다. 모든 걸 부인하고 모르쇠로 일관할 수 없었다. 그랬다면 그는 신경질을 부리고 짜증을 냈을 것이다.
염무성 국장은 9월 말쯤인가 10월인가 결국 명퇴를 하고 나서 고향으로 내려갔다. 바다낚시를 하면서 피폐해진 심신을 안정시키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낚시질은 신선한 공기로 영혼을 씻는 기회라고 하면서. 어느 날인지 모르지만 황혼녘 무렵 바닷가 언덕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게 실족사인지 자살인지가 판명 나지 않았다.

8. 대전교도소, 독방
심학무는 2011년 이른 봄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면서 징역 10년형과 자격정지 10년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대전교도소 1.5평 독방에 수감되었다.
그는 이상경 검사에게 보내는 편지에 썼다.
…… 하지만 참고 기다린다면 언젠가는 휴전선의 철책이 헐리고 매설된 지뢰가 파헤쳐지는 날이 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천지개벽할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릴 수 없습니다. 서로 용서하고 화해를 한다면 말입니다.
제가 며칠 밤을 지새우며 얼마나 많은 고뇌를 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잊어버려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주제 – 배신과 복수, 용서와 화해, 평화
이 소설은 5천 페이지가 넘는 실제 간첩사건들의 수사기록과 재판기록, 국가정보원의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30권이 넘는 참고문헌을, 특히 자서전과 회고록, 수백 매의 사진 등 1차 자료를 토대로 쓴 역사소설이고 분단소설이다. 역사적 실재를 증언한다. 다만 역사의 빈 공간, 이면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탐색했을 뿐이다.
진실과 조작의 경계선에서 겪어야 할 작가의 고통. 악마의 유혹.
작가는 이 소설이 논픽션 스토리텔링은 아니기 때문에 소설작법에 따라 소설적 언어로 형상화하는 데 5년 동안 수십 번씩 수정하고 수정하면서 심혈을 기울였다. (역사적 사실과 맥락, 문학적 진실을 융합해서 소설로서 성공했는지는, 작가 스스로 심각하게 회의적이다. 언제쯤 작품과 화해할 수 있을까?)
작가는 「증언」을 통해서 공산주의의 폭력성과 잔혹함을 고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역사상 모든 독재정권의 본질적 속성이었으니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는 북은 악이고 남은 선이라는 선과 악의 이항대립으로 보지 않는다. 냉전시대의 이분법을 벗어나지 않는 한, 남과 북이 서로 실체를 인정하고 용서하고 (남을 용서하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화해하지 않는 한 평화는 요원하다. 1945년 8월 15일 남북 분단이 고착되고 1950년 6·25 전쟁을 겪으면서 남과 북은 끊임없이 분열 대립하고 있다. 북한 정권의 유일한 무기는 핵 무기이다. 우리 땅에서 핵 전쟁이 발발하면 국토는 초토화되어 불모지가 될 것이다. 우리가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전쟁으로 간다면 그건 민족의 파멸일 뿐이다.
그런데 인간의 신념이란 무엇인가? 신념은 정신의 양심이라고 했다. 그는 역사적 소명으로 증언을 했지만 끝내 전향을 거부했다. 그가 시간의 풍파를 이겨내고 여전히 사상, 이념, 주의, 주장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작성일:2023-02-10 10:40:06 175.209.21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