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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대표 단편소설> 두만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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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등록일
2023-02-07 12:51:31
조회수
192
10월 초순이었다. 벌써 산골짜기에는 겨울을 재촉하는 서리가 내렸다. 그날 점심나절 김상빈은 장마당 노점식당에서 밀주를 마셨는데 그만 낮술에 너무 취해버렸다. 아무나 붙잡고 무슨 알아들을 수도 없는 신세타령을 하고 횡설수설했다. 그는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 누군가의 밀고로 체포되었다. 장마당에서 꽃제비 생활을 하면서 신성 불가침의 존엄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반당 반혁명 종파 분자로 몰려 체포된 것이다.
작은 구류장에 열 명 넘게 구금되어 있었고 모두 부동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아서 서로 아무 말도 못 했다. 높은 콘크리트 담장으로 둘러싸인 안전보위부 건물은 온통 회색빛을 띠고 있었는데 거기 취조실에서 보위원에게 혹독한 취조를 받았다. 책임보위지도원은 취조를 하면서 취조서를 작성했다.
열흘 동안 취조받은 내용은, 꽃제비가 술 마실 돈이 어디서 났는가, 도둑질한 게 틀림없는데 어디서 무얼 훔쳤는가, 혼자 한 게 아니고 틀림없이 누구와 함께 하였는데 공범은 어디로 도망갔는가, 장마당에서 도둑질하면 총살된다는 걸 모르는가, 유언비어 퍼뜨리면 총살인 거 몰랐나, 장마당에서 꽃제비를 했다면 틀림없이 중국에도 갔다 왔을 텐데 중국에는 몇 번이나 나갔다 왔는가, 연변지역 교회에 몇 번 갔는가, 선교사를 만났는가, 탈북자들은 민족 반역자이고, 오물이고, 똥개이고, 들짐승보다 못한 인간 추물인 거 몰랐는가, 남조선 괴뢰들의 가증스러운 심리전에 속은 거 아닌가, 남조선에 환상을 갖고 있는 거 아닌가, 남조선 사람은 불구대천의 원쑤인 거 몰랐는가,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비방한 이유는 무엇인가, 생명보다 더 귀중한 위대한 수령님을 비방한 이유는, 왜 수령님을 부를 때 위대하다는 말을 넣지 않았는가, 남조선 국정원으로부터 언제, 어디서, 무슨 방법으로 무슨 지시를 받았는가, 솔직히 말하면 용서해줄 수 있다 등등이었다.
만약 부인하면 손에 족쇄를 채우고 무릎을 꿇게 한다. 계속 매를 맞고 모진 고문을 당하게 된다. 그는 실제 중국에 간 사실이 없었고 국정원 쪽 끄나풀들과 만난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만 빼고 순순히 인정했다.
하지만 엄격한 조사 결과 군용기름을 빼내 팔아 국가재산탐오죄를 범하고 도망친 지명수배자인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노동교화소에 들어가 1~3년짜리 단기 노역을 하는 대신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게 된 것이다.
군용기름은 목숨보다 귀중한 국가의 핵심재산이었다.
10월 중순경, 그는 손에는 수갑이 채워지고 몸은 꽁꽁 묶인 채 호송원 두 명과 함께 혜산역에서 백두산청년선 열차를 타고 가서 길주역에서 평라선으로 갈아탄 후 화성에 있는 소문으로만 들었던 그 무시무시한 정치범수용소로 넘겨진 것이다. 북한의 수용소는 구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 또는 나치의 아우슈비츠를 연상시킬 정도로 악명높은 곳이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정치범수용소가 극비의 국가기밀로 분류되기 때문에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은 대외적으로 그 수용소의 존재 자체를 극구 부인한다. (북한에서는 정치범이라고 하지 않고 반혁명 분자라고 한다. 정치범수용소는 남한에서 쓰는 용어인데 정확하게는 강제노동수용소이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특별독재구역이라고 한다.)
수감 대상자는 초기에는 일제시대 지식인, 종교인, 지주 가족, 권력투쟁에서 숙청된 자, 1980년대는 유일사상 독재체제와 김정일 세습 비판자, 북송 재일교포 중에서 낙인찍힌 자, 납북자나 월북자, 외국물을 경험한 외교관이나 유학생, 1990년대 이후에는 한국행 탈북 브로커, 탈북 과정에서 한국인이나 외국인 접촉자, 기독교 활동가, 외부 정보 유입자, 구체적인 행동은 없지만 말로 반동 짓을 했다는 말 반동분자 또는 권력자에게 무조건 밉보인 자 등등이다.
그 엄격한 사회에는 도처에 감시자, 밀고자, 권력자들이 깔려있기 마련이고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면 수용소나 감옥에 가두어야 할 수백 가지 이유가 있다. 증거도 필요 없고 재판도 없다. 여차하면 무조건 죄목을 만들고 ‘반동분자’라는 죄목을 씌우면 되는 것이다.
그곳에는 오직 무자비한 폭력, 잔인한 고문, 굶주림, 끝없는 절망, 분노, 무고한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날이 밝으면 추운 방에서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서 아침밥을 먹고 나면 하루 종일 강제노동에 시달린다. 수용소의 일과는 종소리로 시작되어 종소리로 끝난다. 아침 기상 종소리로 시작하여, 일의 시작, 점심시간, 일이 끝나는 시간, 취침 시간, 비상소집 등 모든 것을 종소리로 알린다. 일 년에 단 4일만 쉬는데, 설날과 국가 최대 명절인 김일성의 생일 (4월 15일), 김정일의 생일 (2월 16일), 조선노동당 창건일 (10월 10일)이다. 그날은 만둣국과 옥수수로 만든 떡이 나왔다.
수용자들에게 유일한 낙은 작업 중간에 틈틈이 담배를 나눠 피우고, 옛날 좋았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유일한 희망은 경비병들에게 호되게 당하지 않고 그날 하루를 무사히 끝내는 것이다.
그는 16호 수용소에 수감되면서 처음 2개월 동안은 운 좋게도 돼지를 기르는 돼지목장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런 다음 목재 작업반에 배치되어 일했다.
수용소의 일반적인 식사는 옥수수로 만든 밥과 소금에 절인 염장 배추가 전부였고 항상 배고픔에 시달렸다. 일반 주민들도 식량 배급이 끊겨 온갖 고통을 겪고 있는데 수용소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일 년을 가도 육류는 국물이나마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그곳에는 잡아먹을 수 있는 살찐 쥐가 많아서 그걸 잡아먹으면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었다. 수용소에는 쥐, 개구리, 뱀, 곤충들이 들끓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는데 다른 곳에서는 더 이상 쥐를 볼 수 없을 때에도 돼지목장에는 잡아먹을 수 있는 쥐가 많아서 좋았다.
그곳 쥐들은 돼지 사료를 너무 잘 먹어서 살이 쪄 통통하다. 쥐의 배를 갈라 내장을 끄집어내고 통째로 불에 그슬려서 털을 완전히 털어낸 다음 박박 문질러 씻어 그대로 솥에 넣어 푹 삶는다. 그러면 고소한 냄새와 함께 탑탑하고 부연 국물에 기름기까지 둥둥 뜨는데 그 국물과 흐물흐물해진 살, 뼈, 작은 발까지 씹어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국가재산탐오죄로 강제 수용되었다. 그는 수용된 그 순간부터 머릿속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하루빨리 이 지옥을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16호 수용소는 함경북도 화성의 첩첩산골에 있는데 평안남도 개천에 있는 완전통제구역인 14호 수용소만큼 경비가 그렇게 삼엄하지 않았다.
수용소 구역의 외곽에는 전기가 흐르는 철책선을 설치해 경비대가 이중으로 감시를 하여 외부인의 접근과 수감자들의 탈출을 막고 있었다.
처음 탈출 계획은 철조망 근처로 갈 구실을 만들어줄 작업을 기다리는 일이었다. 추운 겨울날에 거기서 하루 종일 나무를 자르고 쌓는 작업을 하게 된다. 20명 정도를 산으로 보냈다. 그날 수감자 무리는 산비탈 꼭대기 근처에서 작업에 착수했다. 날씨는 청명했지만 너무 춥고 바람이 불었다. 몇 명은 벌채한 나무에서 작은 도끼로 가지를 베어내고 나머지는 나무를 쌓았다. 작업반장이 말했다. “오늘도 목재 작업을 한다. 곧 목재 운반하는 열차가 들어올 것이다. 우리 독신자반은 자기에게 맡겨진 작업량을 완수하기 전에는 산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말라. 날밤을 새서라도 하루의 목표는 무조건 달성해야 한다. 만약 달성을 못 하면 식사는 없다. 알겠어! 알겠는가!”
장작 모으기 작업은 모처럼 찾아온 뜻밖의 행운이었다. 장작을 모으면서 철조망 쪽으로 슬며시 다가갔다. 철조망 높이는 2미터 가량이었고 그 부근에 바로 철책선이 설치되어 있다. 전기 철책선에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거리였다. 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선 여러 가닥이 높은 기둥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고압 전선의 위아래 간격은 20~30센티미터 가량이었다. 전선을 건드리지만 않고 넘어가면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잘 몰랐다. 무릎을 꿇고 두 전선 사이로 장갑을 낀 양손을 밀어 넣은 다음 머리와 어깨를 집어넣을 수 있을까. 그렇지만 만에 하나 전선과 접촉되면 불빛이 번쩍이고 살이 타면서 죽게 될 것이다. 지뢰밭은 없기 때문에 철조망과 철책선 밑으로 몸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언 땅을 파내고 50미터가량 기어나간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감시탑은 수감자들이 나무를 하는 곳에서 북쪽으로 300미터 떨어진 곳에 높이 솟아 있었다. 경비병은 구식 AK-47 총을 어깨에 둘러멘 채 둘씩 나란히 걸어다니며 철조망 안쪽을 순찰했는데 순찰을 도는 간격이 30분으로 꽤 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업을 책임지는 작업반장은 같은 수감자 신분이어서 무기가 없었고 통제도 느슨한 편이었다. 수용소 철조망 저 너머로 나무가 우거진 언덕이 완만하게 내리뻗어 있었기 때문에 몸을 숨기고 걸어가는 데 어려움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철책선을 넘어 탈출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그는 한겨울이 다 가고 봄이 오는 무렵 어느 날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목재를 싣고 있던 청진행 기차의 화물칸 연결고리에 몸을 바짝 붙여 숨어있다가 기차가 수용소 밖으로 이동할 때 기차와 함께 빠져나왔다. 그날 황혼이 내리면서 짙은 어둠이 적막과 함께 빠르게 퍼졌다. 그는 어둠 속에서 재빠르게 움직였다. 감시탑의 전등 불빛이 인공 달빛처럼 어둠을 헤치고 철조망 주변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기차는 첩첩산중 그 많은 굽은 길을 돌아 나아가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듯 가끔 길게 경적을 울렸다.
기차가 함경북도 경성군 북쪽 지역에 이르러 저속으로 힘겹게 언덕길을 올라갈 때 뛰어내릴 수 있었다. 일단 수용소를 빠져나오자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어둠 속에서 뛰어내린 곳은 언덕 맨 위쪽이었기 때문에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길밖에는 없었다. 그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발을 조심스럽게 디디면서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처음에는 나무들 사이를 뚫고 갔다. 잡목이 우거진 언덕은 밀려드는 어둠 속에서 제 색깔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더듬거리며 몇 시간을 걸어가자 탁 트인 골짜기가 나왔다. 개울물이 바위틈 사이로 줄줄 흐르고 있었다. 거기 부드러운 풀밭에서 잠시 쉬면서 빛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손으로 가리고 담뱃불을 붙여 깊게 들이마셨다.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추위 속에서 새벽녘까지 잠을 잤다. 추위도 잠을 이길 수는 없었다. 잠에서 깨어나자 어깨와 등이 뻐근하고 다리도 무거웠다. 주위에 벌써 잿빛 안개가 자욱했다.

북한과 중국 간 국경은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두 개의 강이 가로막고 있으니 국경선은 압록강이 3분의 2를 차지하고 두만강이 3분의 1을 차지한다. 두만강은 지역에 따라 폭이 좁고 깊이가 시냇물처럼 얕다. 겨울에는 강물이 얼어 있기 때문에 걸어서 건널 수 있다. 하지만 여름에는 추위 걱정은 없지만 대신 구름같이 달려드는 모기떼 때문에 죽을 고생을 해야 한다. 망할 놈의 모기들은 날이 샐 때까지 공격을 그칠 줄 모른다.
국경지역 중국 쪽 강둑에는 중국 국경수비대가 5백 미터나 1킬로미터 간격으로 서 있다. 그들의 임무는 불법 월경자를 찾아서 체포하는 것이다. 그들은 체포하자마자 수비대 막사로 데리고 가 조사를 한 후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에 인계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항상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 빙두라고 하는 북한산 마약은 질이 좋고 독하기로 소문이 나 있어서 중국에선 최고의 선물로 쳤다. 그래서 잡히면 마약을 뇌물로 주고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북한산 마약이라면 사족을 못 쓰니까. 김상빈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준비를 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경우는 발생하지 않았다.
김상빈은 수용소 내에서 충분히 귀동냥해서 들었기 때문에 두만강의 어느 지점을 건너야 하는지, 국경 근처 검문소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거기에는 중국에서 체포되어 인계된 후 역적 취급을 받으면서 수감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북한 국경경비대는 국가안전보위부 소속이다. 국경을 넘다가 잡히면 월경자는 초소로 끌려가 보위지도원에게 1차 조사를 받게 된다. 그런 다음 지역 보위부에 넘겨진다. 하지만 국경경비대원 역시 뇌물만 주면 사족을 못 쓴다. 초소로 끌려가기 전에 미리 손을 써야 한다. 그는 몰래 감춰두었던 돈으로 준비를 했다. 경비대원이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면 약간의 현금과 담배 몇 갑, 과자 몇 봉지를 쥐여주면 된다. 현금의 경우 북한 돈보다 위안화가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경비대원에게 자신이 군인이며 휴가를 얻어 중국에 있는 친척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말하면 된다.
경성군은 청진시와 붙어 있다. 청진은 북한에서 평양, 함흥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대도시이다. 그날은 청진시 청암구역 교원리로 가서 하루 동안 푹 쉬었다. 거기서 지인의 도움으로 돈과 담배 등 준비물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는 비상금과 귀중한 물품을 부드러운 헝겊에 싸서 사타구니 사이에 단단히 묶었다. 부령군에서는 어떤 민가에서 저녁을 얻어먹고 하룻밤을 잤다. 다음날 저녁 늦게 회령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걸어서 간단하게 건널 수 있는 수심이 얕은 두만강 줄기를 찾아 온종일 걸었다.
그는 지역을 통과할 때마다 경비대원을 피할 순 없었다.
“여기 담배가 있어요.” 그는 경비대원에게 먼저 장백산 담배 두 갑을 건넸다. 경비대원은 담배를 받아 재빠르게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그에게 빨리 지나가라고 손짓했다. 두 번째 검문소에서 다른 경비대원이 공민증을 달라고 했지만 이번에도 그는 담배와 과자 한 봉지를 내밀었다. 모두 어리고, 얼굴은 새카맣고, 몸은 깡마르고, 굶주려 있다. 그들은 공민증에는 도대체 관심이 없고 담배와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 움막같은 간이 초소에는 권총을 찬 건장한 체격의 하사와 어깨에 68식 보총을 맨 상병이 근무 중이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연길에 사는 친척을 만나러 가디요. 두만강이 아직 풀리지 않았디요? 괜찮갔디요?”
상병이 말했다. “아직은…… 얼음이 완전히 녹지 않았어. 여기저기 찾아보면 강바닥이 드러난 곳도 있으니까.”
그가 말했다. “제가…… 가진 게 얼마 없어서……”
곧바로 본색이 드러났다. 하사가 능글맞게 비웃으며 총을 겨눴다.
“그대로 갈 수는 없다니까. 가지고 있는 거 전부 내놓으라고. 돈어치를 해야 할 거 아냐. 알았어? 이 간나새끼! 쏴 버릴 거야!”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 좋아하시네. 다시 만날 일은 없어. 빨리 옷을 벗어. 불알이 보이게 쭉 내리란 말이야.”
김상빈은 당황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이라고 직감했다. 심장이 쿵쾅거렸고 손바닥에는 땀이 배어 나왔다. 그는 옷을 내리기 위해 허리를 굽히면서 하사의 총을 낚아챘고 연달아 하사의 얼굴과 상병의 머리통을 내리쳐서 기절시켜버렸다. 하사의 코가 뭉개져서 바닥에 피가 튀었다.
그는 재빨리 얕은 언덕과 숲을 지나 강쪽으로 내달렸다. 강폭은 150여 미터 정도 되었다. 살얼음이 낀 강바닥을 골라서 그는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바닥이 깊지 않아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건너편 중국 쪽 강둑에서 뒤로 돌아서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북한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하늘이 서서히 어두워져 가고 있다. 두만강은 어둠 속에 누워 있다. 저 멀리 자작나무 군락지 너머로 바라보면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가는 그 땅은 그가 떠나야만 하는 조국이고 고향이었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가슴이 죄는 듯한 불안감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쉴 수조차 없다. 너무 외롭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 이 한밤에 남편은 / 두만강을 탈 없이 건넜을까? / 저리 국경 강안을 경비하는 / 외투 쓴 검은 순사가 왔다갔다 / 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 발각도 안 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옛날부터 함경도 지방에 기근이 들어 초근목피로 연명하게 되면 식량을 찾아 두만강을 건너서 만주 간도 지역이나 연해주로 유랑했다. 말없이 흐르는 두만강은 의지가지없는 실향민들의 피눈물로 얼룩진 한 많은 강이었다.
밀수꾼들은 회색 구름이 함박눈을 펑펑 퍼부을 때 얼음장 깔린 강물을 건넜다.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선혈을 뿌린 역사의 현장이었다. 너무나 억울하면서도 하소연할 길 없는 민족의 비운을 낱낱이 지켜본 역사의 증인이었다. 조국을 잃은 젊은 청춘들의 달랠 길 없는 분노와 절망과 원망을 표상했다.
중국에 무사히 도착하자 긴장이 풀렸지만 밤이 되면서 산속은 기온이 급강하해서 온몸이 뻣뻣해지고 기진맥진했다. 그는 추위를 이겨내고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서 숨겨가지고 있던 마약을 몇 차례나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 야산에서 잠을 잤다. 아직 따뜻한 봄은 오지 않았다. 겨울옷을 몇 겹이나 껴입어도 추위는 뼛속까지 파고든다. 다음날 새벽녘에 가까스로 잠이 깨면 얼굴에는 서리가 잔뜩 덮여있다. 두만강에서 피어오른 짙은 안개는 아침 햇살에 멋쩍은 듯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는 인적이 드문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회령군 인계리 부근 두만강을 건너 산악 경로를 따라 중국 길림성 연길시 지신진까지 이동하고 용정을 거쳐 오후 늦게 연길 시내로 들어갔다.
연길은 길림성에 속해 있고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중심 도시로 ‘미니 코리아’로 불린다. 거리는 북한의 도시들과는 다르게 활기가 넘쳐났다. 사람이 사는 도시였다. 연길 서시장 도로 맞은편에 낡은 아파트가 즐비하였다. 그가 연길에서 용정 방향으로 걸어가다 서시장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돌자 6미터 폭의 첫 번째 도로가 나왔다. 거기에 당숙이 하는 규모가 꽤 큰 한국식 중국 음식점이 있었다. 일층 창문에는 주먹만한 빨간 글씨로 ‘연길 중국식당’이라고 쓰여 있다. 그 식당은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국의 중식당에서 나오는 요리에 중국식 향신료를 듬뿍 친 한국식도 아니고 중국식도 아닌 특별한 중화요리와 한국의 갈비찜과 비슷하게 돼지갈비와 쇠고기 등을 적당한 크기로 썰고 간장으로 양념을 한 후 푹 끓여서 익혀낸 홍사오 요리가 별미여서 그걸 중국 백주와 함께 팔았는데 한국 관광객들 사이에서 맛있다고 입소문이 나 있었다.
그는 점심시간이 지나서 한가할 때 식당 안으로 들어가 말했다.
“제가…… 좀……”
오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얼굴이 통통한 조선족 남자가 주인이었다.
그는 낮술을 마셨는지 얼굴이 불그죽죽했고 말할 때마다 입에서는 시금털털한 술 냄새가 났다.
그가 말했다.
“북조선에서 왔단 말이지? 내가 도와줄 일은 없으니 빨리 가란 말이야.”
“아니지요……”
“빨리 가라니까. 지금 감시가 심해서 걸리면 내가 죽는다니까.”
“제 아버지를 아시잖아요?”
“뭐라고? 네 아버지가 어쨌다고……?”
“제 고향은 양강도 갑산입니다. 아버지 성함은 심근수입니다. 몇 년 전에 암으로 돌아가셨지요.”
“재종 형이니까 조카란 말이지. 아버지를 만난 지가 꽤 오래됐지만…… 얼굴 생김새가 아버지를 닮긴 닮았구나.”
“틀림없습니다……”
“네 이름이?”
“본래 이름은 심승진입니다만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서 김 씨 이름으로 가명을 쓰고 있습니다. 남조선에 가서도 김 씨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만약의 경우 북에 있는 가족들에게 화가 미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본명을 쓰면 위험할 수 있으니까 가명이 필요할 거다. 김 씨는 가장 흔한 성이니까. 고향과는 연락이 끊어진 지가 오래되었지. 국경 무역하는 게 무슨 죄가 된다고 수용소에 집어넣으려고 하니까 그때부터 북에는 발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남조선으로 가고…… 인민군 2군단 3사단에서 복무하다 제대하고 나서 함흥으로 갔습니다만…… 가족들과는 생이별을 하고 이리저리 장마당을 떠돌아다녔습니다.”
“네 몰골이 말이 아니구나. 여긴 식당이니까 남는 음식이 넘쳐나지. 많이 먹고 몸을 추슬러야 한다.”
“감사합니다. 정말……”
“당분간 여기 있으려무나. 내가 사정을 잘 알고 있으니 다른 말은 필요 없다. 북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으니 남으로 내려가겠다는 거겠지.”
“남쪽으로 가기 위해서 중국인 신분을 취득할 수 없을까요?”
“나는 옛날 어수룩할 때 중국 호구부 제작을 해서 중국 사람이 되었지. 지금은 그게 불가능해. 절차가 까다롭고 돈도 많이 들지. 돈을 많이 쓴다고 해서 된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포기할 수밖에 없다.”
“브로커를 통해 갈 수밖에 없겠군요.”
“다른 방법이 없지.”
“아저씨는 남한에 갔다 온 적 있나요?”
“중국 국적이니까 여권이 있어서…… 무슨 무역을 해볼까 해서 한국에도 몇 번 다녀왔지만…… 한국에 가보니까 탈북자들 역시 사회 밑바닥 생활을 하고 있었어.”
“북한과 비교하면 안 되겠지요.”
“그건 알아야 한다. 우리 식당에서 오래 있을 수는 없어.
연길은 최일선이야. 국정원 요원들과 안전보위부 요원들, 중국 공안들이 밤낮없이 눈에 불을 켜고 설치고 있어. 거기다 탈북 브로커와 인신매매범까지. 선교사들도 믿을 수 없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이 안 되니까. 그렇다고 국정원 쪽 사람들이 탈북자 편도 아니야. 귀찮게 생각할 뿐이야.”
“연길이 북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만만치 않군요. 두만강만 무사히 건너면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보위부 끄나풀들이 설쳐대니까 감시가 심하단 말이지. 걔들은 눈에 불을 켜고 탈북자들하고 남쪽에서 올라온 공작원들을 색출하고 있어. 시도 때도 없이 중국 공안들이 호구조사를 나온단 말이야. 매달 그것들한테 바치는 돈이 얼마나…… 그래서 음으로 양으로 많이 봐주는 거지만…….
지금부터 남조선으로 가는 길을 알아봐야 한다. 나는 엮이고 싶지 않으니까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탈북 브로커는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지만 그들 중에는 협잡꾼이 많이 있지. 연길에만 탈북 브로커가 이백 명이 넘는다고 하니까. 질이 나쁜 브로커는 탈북자를 유인해서 중국 농촌에 팔아먹기도 하고…….”

며칠 후 새벽부터 가는 비가 내리다가 그쳤지만 날씨는 다시 추워졌다. 간판도 없는 작은 커피숍에 들어갔다. 아늑하고 따뜻했다. 실내에는 다채로운 색깔로 벽을 채색했고 미국 영화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말로만 들었던 에스프레소를 주문할 수 있었다.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가 흘러내리면서 처음 듣는 은은한 소리에 비로소 외국 땅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커피는 악마처럼 검고 사랑처럼 달콤하다고 했는데. 젊은 여자가 중국식으로 큰 컵에 쓰디쓴 커피를 듬뿍 담아서 내놓는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컵에 언 손을 녹인다. 아침 추위가 가시는 것처럼 느껴진다. 커피를 아주 천천히 음미하면서 창밖을 내다본다.
열흘이 지났다. 이름은 잘 모르지만 기다리고 있던 브로커로부터 한국산 LG 손전화로 전화가 왔다. “한국에 가자고 한 사람이 맞는가. 준비는 다 됐습니까. 지금부터 몸조심하세요. 쓸데없는 말은 해서는 안 된단 말입니다. 무지개 다리에서 만납시다.”라고 하였다. 그 목소리는 지극히 사무적이었지만 위압적이고 명령조였다. 곧장 그곳으로 가서 브로커를 만나 승용차를 타고 가서 어떤 아파트의 4층으로 올라갔다.
그 아파트에는 탈북자로 보이는 남자 두 명과 젊은 여자 한 명이 이미 와 있었다. 그들의 눈에서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모두 너무 긴장해서 잔뜩 굳어있었기 때문에 얼굴에서 웃음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때 거기서 그 브로커 남자를 만났다. 다소 살이 찐 보통 체형으로 사십 대 말인지 오십 대 초반으로 보인다. 그가 정확한 남한 말을 사용하였지만 진짜 남한 출신인지 북한에서 탈북했는지 원래 연변 조선족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고 더욱이 그들 브로커 무리의 총책인지 아니면 중간 관리자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말을 할 때마다 먼저 안경의 검은테를 만지작거렸다.
“남조선으로 가고 싶단 말이지. 남조선이 천국일까? 지옥일까? 그걸 알아야만 하지.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야. 이것도 사업이니까 돈을 내야지. 사업에는 반드시 조직과 돈이 필요하단 말이지. 그렇다고 해서 큰돈을 벌려고 하는 건 아니야. 하느님의 사업을 계속하려면 자금이 필요한 거지.”
김상빈이 말했다. “얼마쯤이죠. 제가 지금은 돈이 많이 없습니다.”
“선금은 이미 받았단 말이지. 그러니까 잔금이 남아있는 거야. 한국 돈으로 600만 원이야. 이번에는 안전한 코스로 가야 하니까 거리가 멀고 시간이 오래 걸린단 말이야. 요즘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니까 단가가 많이 올랐지. 갚을 방법은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지. 하나원을 퇴소하면 정착금이 나오니까 한국에 도착해서 갚으라고.
현금 차용증을 쓰라고. 읽어보고 이름을 쓰고 지장을 찍으란 말이야. 우리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야 하니까. 만약 한국에 도착해서 갚지 않으면 그때는 이걸로 소송을 제기하는 거야. 여러 번 속았으니까 할 수 없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끝까지 추적하니까 떼어먹을 생각을 하면 안 되지. 내 말을 끝까지 잘 들으라고. 말을 듣지 않으면 중간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떨구어 버릴 테니까. 그러면 탈북은 고사하고 객사할 수밖에 없어.”
그러고 나서 그는 두 손을 모아 눈을 감고 경건하게 기도를 올렸다.
“주님! 우리 주님! 여기 불쌍한 어린 양들을 지켜주소서. 이들을 끝까지 보호하소서. 먼저 이들이 자기 조국을 배반한 걸, 고향을 등진 걸, 부모님과 이별한 걸, 친구들과 헤어진 걸 용서해 주십시오. 태국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해 주소서. 자유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주님께서 함께 하소서. 중국 공안들의 눈과 귀를 막아 주십시오. 태국에서는 북한으로 추방당하지 않고 대한민국 품에 안기도록 해 주소서. 남조선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하소서. 국정원의 지독한 심사에서 무사히 통과하도록 보호해 주소서. 하나원을 무사히 수료하도록 해 주소서.
마지막 부탁입니다. 낯선 언어와 문화에 하루빨리 적응하도록 도와주소서. 남과 북이라는 이중의 정체성 때문에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해 주소서. 좋은 직장을 찾을 수 있도록 해 주소서. 여자들은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도와주소서. 여생을 행복하게 살게 해 주소서. 무서운 악몽을 꾸지 않도록 해 주소서. 불안 강박증에서 해방시켜 주소서. 아멘! 아멘! 아멘!”
다음 날 아침에 그 브로커로부터 “지금 분위기가 좋지 않아. 어느 선교사가 북쪽으로 넘어가서 방송에 나와 남한을 비난했단 말이지. 그게 의문이라고. 그가 제 발로 걸어들어간 건지 또는 납치된 건지. 북쪽과 남쪽 요원들이 신경과민이야. 잘못 걸리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고. 몸조심해야…… 더 안전한 선을 찾고 있다. 며칠 더 기다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일주일 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브로커가 “출발할 때가 되었다. 빨리 나오라.”고 해서 무지개 다리에서 브로커를 만났다.
그들은 택시를 타고 연길병원 앞에서 왕청현 출신 다른 조선족 브로커에게 인계되어 또 한 명의 탈북자와 함께 왕청에 있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 5층으로 올라갔다. 그 낡은 아파트 건물은 쓰레기가 널려 있고 사람들의 배설물에서 악취가 진동하는 막다른 뒷골목 끝에 홀로 서 있다.
그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잤다.
이십 대 중반의 젊은 여자 등 모두 5명의 탈북자가 브로커 두 사람과 함께 왕청을 출발해서 장춘행 기차를 탔다. 그들 일행은 마치 중국에 사는 조선족이 장기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위장하였다. 그들은 출발할 당시 기차 안에서 절대로 입을 열지 말 것, 서로 아는 척을 하지 말 것, 화장실에 갈 때 한꺼번에 가지 말 것, 실수로 중국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애매하게 웃을 것, 만약 일행 중 누가 무슨 일을 당해도 섣불리 나서지 말 것 등의 주의사항을 들었다.
길림성의 성도이고 동북 3성의 중심지여서 교통의 요지인 장춘에 도착했다. 대합실은 무척 넓었고 많은 사람들이 붐비면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다. 어디선지 모르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가 흩어졌다. 너무 많은 사람들 때문에 그만 넋을 잃었다. 북쪽은 어딜 가나 조용하고 한산하지 않은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높고 낮은 왁자지껄한 목소리들이 마구 뒤섞여서 솟구쳐 올랐다가 내려앉았다. 다른 일행들은 여전히 굳은 얼굴을 풀지 못하고 서로 외면한 채로 띄엄띄엄 떨어져 앉아있다. 2층 대합실 창문으로 내려다보면 동서남북으로 여덟 개의 기차 선로가 뻗어있다.
김상빈은 생각했다. 나는 벌써 북쪽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많은 것을 보았다. 도시의 간판, 밤이면 번쩍이는 네온사인, (화장품, 가방, 술, 담배, 여성 속옷, 남성용 면도기, 시계 등등을 주제로 한) 화려한 광고판들, 그것들을 파는 상점들, 오고 가는 자동차들, 수많은 인파, 면도도 하지 않고 목덜미와 손등에 문신이 가득한 젊은 남자, 딱 붙어서 껴안고 가는 젊은 연인들. 시끌벅적하고 정말 흥미로웠다. 같은 공산주의 국가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벌써 2010년 봄이다. 2010년은 내게 어떤 해가 될 것인가. 나는 복잡하고 들뜬 기분에 휩쓸려 마음이 편치 못하다. 나에게 미래가 있고 인생의 목표가 있었던가.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당분간 잊어버리자. 목표란 게 실패하거나 성공하거나 둘 중 하나 아니겠는가. 하지만 뭔가 중요한 게 나를 계속 짓누르고 있다. 초조하고 짜증나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가 없다. 정말 두려운 것은 나 자신이다.
그럴 때마다 평양에 두고 온 그녀가 생각났다. 여자가 날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을까. 그녀는 말끝마다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했으니까 믿어도 될까.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붙들어 두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한 것일까. 그녀의 육체가 그걸 증명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의 겉모습은 참모습과는 다를지 모른다. 여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종의 인간이지 않은가, 여자에게는 바다와 같이 변하기 쉬운 성질이 있지 않은가, 여자의 마음은 누구든지 그 밑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이라고 하지 않는가, 여자는 남자를 죽이는 차가운 물이고 남자를 빠지게 하는 깊은 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는 갑자기 심장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만큼 혼란스러웠고 초조했다.
10시간을 대합실에서 기다리다 천진행 기차를 탔고 선양을 거쳐서 천진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천진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하남성의 성도인 정주에 도착했다. 기차 안에서도 가장 두려운 것은 중국 공안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철저히 중국인 행세를 해야 한다. 그들 일행은 다른 중국 사람들처럼 기차 안에서 먹고 마시고 잠을 잤다.
특급 열차는 희미하게 쓸쓸한 휘파람 소리를 내며 푸릇푸릇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평야와 얕은 산, 강, 호수, 늪지대, 버드나무가 쭉 늘어선 운하, 아침 안개를 통과하면서 빠르게 달렸다.
김상빈은 선잠이 들었다가 깨면 얼굴을 창문에 바짝 대고 밖을 바라보면서 모옌의 소설 「붉은 수수밭」에 나오는 수수밭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그 소설의 배경이 산동성이었는데 기차는 산동성의 지평선마저 보이지 않는 넓은 평야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 소설에서는 붉은 수수를 이용해 품질이 아주 좋은 고량주를 만들어낸 걸로 되어있다. 작가는 전쟁의 잔혹성과 일본군의 잔악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지만 그가 보기에는 여자 주인공 따이펑리엔과 남자 주인공 위잔아오이의 사랑이 진정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정주역에서 곤명행 버스를 탔다. 검문소가 없는 노선의 시외버스를 연거푸 갈아타야 한다. 정주에서 우한과 양자강을 건너서 창사와 구이양을 거쳐 곤명에 도착했다. 도시를 거칠 때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바뀌었다. 그때마다 브로커는 강조했다. “대합실에서 신기하다고 두리번거리면 안 돼. 수상한 사람으로 보이게 된다니까. 그저 평범하게 행동하라고. 버스에 오르면 바로 안전벨트를 매고.” 낮에만 달리고 밤에는 여관에서 잠을 잤다. 하루 종일 비좁은 버스를 타고 멀미를 하고 구토 증세를 느끼며 장거리 여행을 하고 난 다음이라 아무리 허름해도 여관방에서 허리를 펴고 잠을 자는 것은 호사스러운 일이었다.
왕청에서 처음 만난 그녀의 이름은 박정아이다. 그녀는 처음 보았을 때 잔뜩 긴장해 있었으므로 얼굴은 생기 없이 창백하고 무표정했다. 그러나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검은 머리카락은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보면 세련되었고 상당한 지식인처럼 보인다. 아마 평양에서 태어나서 평양외국어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짐작되었다. 영어와 중국어에 완전히 능통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왜 탈북하려고 하는가? 그녀 집안의 든든한 배경이었던 고위층의 갑작스런 몰락에 따른 여파로 숙청과 추방이라는 구체적으로 말 못 할 사정이 있지 않을까?
김상빈이 말했다. “평양 출신인 것 같은데……”
“피차 어려운 사정이 있을 테니까…… 더 이상 물어보지 마세요.”
“그저 함께 여행하면서 무난히 지내면 좋을 거요. 서로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순조롭게 가고 있어요. 사람을 너무 의심할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브로커들도 같은 동포니까 우릴 함부로 하지는 않은 거 같습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돈인지 아니면 우릴 돕는 건지 도무지 헷갈려요.”
박정아가 말했다. “이렇게 만난 게 천만다행이지만…… 모든 게 여전히 안개 속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여행일까요. 비행기를 타면 연길에서 인천까지 2시간이고, 배를 타면 단둥에서 인천까지 16시간이면 가는데…… 우리는 목숨 걸고 탈출하는 거예요. 잡히면 송환될 거고 그러면 끝장이니까. 우리에게 내일은 없어요.”
여자는 울고 있었다. 크게 흐느끼며 우는 게 아니라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눈물만 흘렸다.
“저를 지켜줄 수 있나요?”
“지켜준다는 게……?”
“보호가 필요하지요. 온통 늑대들이……”
“장담할 순 없지만…… 제가 다하겠습니다.”
“너무 무서워요. 독한 술을 마시고 싶군요.”
“술이 필요할 겁니다. 제 경험으로는 그게 더 좋아요. 아쉽군요. 국경을 넘으면서 추위를 이겨내려고 전부 삼켜버렸지요.”
“조금 갖고 있어요.”
“브로커가 압수하지 않았나요?”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넣었지요. 그때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면도칼을 가방 속에 가지고 있었는데 그건 빼앗겼죠. 양쪽 귓불 뒤쪽을 내려오는 경동맥을 깊이 찔러서 그으면 실패할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고……?”
“뒤쪽 경동맥을 찌르려면 힘들 텐데요. 독약을 마시면 편리할 겁니다.”
“독약은 급히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김상빈은 거짓말을 했다. 지금 옴짝달싹할 수 없는 현실에서 제 한 몸 간수하기도 어려운데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도 낭떠러지 끝까지 쫓기고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남자는 연약한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더욱이 젊고 예쁜 여자에게 남자다운 호기를 부리고 싶었다.
그가 들뜬 기분으로 말했다. “길에서 만난 두 사람이…… 사랑을……” “우린…… 사랑에 빠지면 안 돼요. 너무 위험해요.”
“우리 처지에 사랑은 사치란 말인가?”
밤이 되자 아늑하면서 평화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여관 방은 조금 퀴퀴한 냄새가 났지만 침대 시트는 깨끗했다. 그는 손이 떨렸다. 그녀는 입술을 굳게 닫고 있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는다. 심장 박동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 온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드디어 입술이 열리고 그녀가 꿈틀거렸다. 가벼운 손길은 점점 과감해졌다. 이제는 그녀의 머리칼, 얼굴, 목, 가슴, 샅을 어루만졌다.
밤이 되면 김상빈은 그녀와 함께 술을 마셨다. 밤의 불빛은 둥근 식탁에 놓인 술잔을 은은하게 비췄다. 중국 백주 중에서 주정도가 낮은 것이 아니라 65도나 되는 것을 마셨다. 목구멍 속 깊이 들이마셨다. 그러고 나서 담배를 연거푸 피워댔다. 그런데 그 독한 술은 한 모금을 입에 넣으면 혀끝이 타는 것처럼 얼얼하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이튿날 머리가 아프지 않고 속도 쓰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저씨는 마지막 헤어질 때 여비에 쓰라면서 약간의 돈을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일이 의외로 잘 되었구나.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한다.”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날씨가 더욱 온화해져서 강과 호수에 짙푸른 물이 넘쳐 흐르고 온 세상이 초록색으로 뒤덮이면서 아열대의 풍경과 냄새가 진하게 풍기기 시작했다.
루쉰의 소설 「아Q정전」은 지금 버스가 달리고 있는 중국 남부의 깊은 농촌이 배경이다. 그 소설에 나오는 아Q는 집도 절도 없고, 직업도 없고 가족도 없고, 고향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재산도 없다. 당연히 글씨를 읽을 줄도 모르고 쓸 줄도 모른다. 나이 서른이 다 되었음에도 여자와 한 번도 접촉해보지 못했다. 김상빈은 북에 있을 때 「광인일기」와 함께 그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버스 안은 무척 덥고 그의 기분은 정말 우울하고 찝찝했다. 그는 달리는 버스의 창밖을 내다보면서 자신의 현재 처지가 아Q보다도 나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운남성 성도인 곤명에 도착하여 도시 변두리에 있는 어떤 평범한 가정집에서 잠을 잤다. 곤명에서 브로커가 바뀌었다. 이번 브로커는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마음씨 좋은 조선족 아저씨였다. 그는 친절했지만 손톱 끝이 구부러질 만큼 손톱이 길었고 손톱 사이에 때가 새까맣게 끼어있었다. 지독한 골초여서 끊임없이 담배를 피웠다. 그가 피우는 담배는 중국인들이 주로 피우는 ‘중화’라는 상표의 담배였다.
곤명에서 단둥에서 출발한 다른 탈북자들과 합류했다. 일행은 11명으로 불어났는데 남자가 3명이고 여자가 8명이었다. 그들 일행은 다음날 다시 멍라행 버스를 탔고 국경 도시인 멍라에 도착하자 역시 어떤 가정집에서 며칠을 기다렸다. 저녁 무렵 어둠이 내리자 소형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동안 이동한 후 중국과 라오스 국경 부근 고산족이 사는 외딴 마을에 15시간을 걸어서 다음날 밤늦게 도착하였다.
그날 밤 내내 비가 내렸다. 굵은 빗방울이 가늘어지고 있다.
외딴 마을에는 브로커들의 안가가 있었다. 넓은 거실 천장에는 선풍기가 돌고 있고 구석에는 커다란 검은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다. 중국 옷을 입은 중년의 여성이 부엌에서 밤참인 만두가 쌓인 큰 쟁반과 찻주전자를 들고 들어왔다. 그녀가 차를 따르기 시작한다.
브로커가 말했다. “조금은 안심해도 되겠구먼. 더 이상 차를 탈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도 마지막까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만 하지. 자! 자! 만두를 들면서 차를 많이 마시라고. 차는 심신을 안정시키는 데 특효약이야.”
중국 쪽 국경에 경비가 강화됐다. 그래서 마약 밀매범들이 주로 이용하는 험한 산길을 이용해야 했다. 안가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여 5시간 가량 국경 초소를 멀리 우회하고 산속 오솔길을 걸어 라오스 북부 산길을 이동했다. 계곡에는 진흙과 물웅덩이들이 있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웅덩이에는 악취가 나는 썩은 물이 들어차 있고 날파리들이 들끓었다. 갈대로 엮은 지붕 끝이 거의 땅에 닿을 듯한 오두막 한 채가 초원 끝자락에 서 있다. 산 그림자가 계곡 위쪽으로 점점 올라가면서 아름다운 황혼녘이었다.
먼동이 터오는 새벽녘 무렵 산길을 벗어나자 브로커가 “여기서부터 라오스……”라고 말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라오스 북부 국경 도시인 루앙남타 외곽이었다. 희뿌연 아침 안개와 울창한 나무들 때문에 도시의 윤곽을 멀리서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아침의 태양이 숲으로 쏟아져 내리면서 산 중턱에 드리워진 안개가 슬그머니 사라졌고 황금과 녹색이 뒤섞인 아름다운 색채가 탄생했다. 그리고 잠들어있던 숲속의 생명들이 하나둘 기지개를 켜면서 깨어났다.
라오스에 도착하여 작은 마을 입구 노점에서 콩가루와 향신료를 잔뜩 넣은 굵은 쌀국수와 삶은 계란과 양배추를 섞은 라오스식 샐러드, 양배추로 만든 수프, 입안에서 불이 나는 라오스의 국민 음식인 땀막홍 등을 느긋하게 먹은 후 브로커들이 준비해 놓은 사파리차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라오스의 이름도 없는 싸구려 여관에서 하룻밤을 잤다.

그다음 날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에 라오스와 태국 국경을 흐르는 메콩강으로 갔고 선체 바깥으로 모터가 달린 폭이 좁은 목재 카누 두 척에 나눠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가니 도착한 곳이 태국이었다. 메콩강에 서식한다는 악어들은 아직 잠을 자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강은 여전히 수위가 높고 물살은 느릿느릿하면서도 빨랐다. 강바람이 시원했다. 김상빈은 손을 뻗었고 물살이 손에 부딪히면서 방울방울 맺혔다 떨어졌다.
그 아저씨와는 배를 타기 직전 거기서 헤어졌다. 그가 말했다. “여기서 헤어져야 된다고. 내가 체포되면 안 되니까 방콕까지 따라갈 수는 없어. 다시 한번 말하지만 태국서는 단체 관광객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라구. 남조선까지 무사히 도착해야지. 그렇지만 남조선이 천국은 아니니까 그렇게 알라구. 열심히 살아야 하지. 그리고 북쪽 고향을 잊으면 안 되지.”
그들은 태국에 무사히 도착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에서 날아온 벌레들이 얼굴에 달려들었다. 그들은 물웅덩이를 피해서 걸었다. 발바닥이 느껴지는 습지의 땅바닥은 푹신했다. 중간중간 쉬어가면서 느긋한 걸음으로 걸어갔다. 이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중국 대륙을 북에서 남쪽으로 종단하고 동에서 서쪽으로 횡단하는 데 20여 일이나 걸렸다. 김상빈은 폐쇄 사회에 살면서도 가끔 무한정 멀리 떠나는 여행을 꿈꾸며 살아왔지만 이번 여행은 너무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래서 지독한 불안과 공포에 짓눌린 나머지 마음 편한 여행이 될 수 없었다. 즐거운 휴가를 보내기 위한 여행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 일행은 하나원을 마칠 때까지 최소한 6개월 이상 생사고락을 같이할 사람들이었다. 태국에 도착하고 나서 짧은 시간이지만 처음으로 활짝 웃었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으며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메콩강변의 국경 도시인 치앙라이 훨씬 북쪽 변두리였다. 약 두 시간 동안 배를 타고 가서 강변에 내려 마을을 향해 30분 정도 걸었다. 멀리서 사람들이 그들을 환영하는 것처럼 반갑게 손짓을 하였다. 점점 거리가 좁혀지고 나서 경찰 신분증을 흔들면서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태국의 사복 경찰들은 마치 그들이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일행을 대표해서 태국 경찰과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국경 불법침입죄로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작성일:2023-02-07 12:51:31 175.209.21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