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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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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대표 에세이> 독자의 (공개) 편지 (中)

닉네임
유중원
등록일
2021-07-22 15:07:55
조회수
618
3. (사소한 혹은 중대한) 지적 사항들


나는 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위해 실용적인 관점에서 또한 수술을 집도하는 냉철한 외과의사의 시선으로 이 소설을 해부해서 분석한다. 소설의 비평은 객관적 실체인 작품의 분석과 해부가 먼저이다. 분석과 해부하는 과정에서 동시에 또는 그것들이 끝난 후 비평이 시작되는 것이다. 프랑스나 미국의 고등학교, 대학에서의 문학 수업은 작품에 대한 아주 치밀한 분석부터 시작한다.

[나는 미시적 관점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자 한다. 당해 작품과 관련성도 없는 아주 고답적인 서구 문학이론을 일방적으로 원용하여 서평, 비평을 하는 것은 도대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작가와 독자를 위해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비평을 해야 한다. 그리고 비평은 객관적 입장에서 날카로우면서 비정하리만치 냉철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작가에게 자기 작품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역자 이혜승, 을유문화사, 2022년)에 나오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날카롭고도 세밀한 분석, 해석이야말로 그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소설의 서술에 있어서 작가의 자유를 부정하고 그 한계를 주장한 사르트르의 이론, 소설은 명백하게 드러난 사실관계, 역사적 사건, 인물, 실재에 철저히 구속된다는 움베르트 에코의 이론, 문학작품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체이기 때문에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지 않고 철두철미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신비평 이론의 관점에서 이 소설을 해부하고 분석한다.

(신비평은 문학작품을 자족적이고 자율적이고 그 자체를 목적으로 존재한다고 보면서 객관적으로 취급한다. 비평은 객관적이어야 하고 객관적 사물의 성격을 서술해야 한다고 한다. 신비평가의 독특한 방법은 해명, 또는 면밀한 해석 (close reading)이다. 한 작품 내 복합적인 상호 관계들과 구성 요소들의 다의성을 상세하고도 미묘하게 분석한다.)

다시 말하지만, 하위 장르에 속하는 판타지, 미스터리, 탐정 소설, 블랙 코미디, 풍자 소설, 좀비 소설, 고딕 소설 등 어떤 종류의 소설이건 간에 소설 속에 실제 역사적 사건이 등장한다면 명백한 사실 그 자체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Fiction과 Non-Fiction에서 허구와 비허구의 경계선은 아주 애매모호하고, 픽션의 경우 가공의 인물과 사건을 서술한 텍스트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허구적 진술이라 할 수 없는 실제 경험의 세계에서 가져온 많은 사실, 진실, 진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가 부정 왜곡 조작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이건 서구에서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철칙에 가까운 통설이라고 할 수 있다.)


헤밍웨이는 작가가 실제 일어난 사건, 인물, 실재를 소설로 옮겨와 형상화할 때에는 정확하게 그대로 묘사해야만 소설이 진실해진다고 했다. 그러니까 본질적인 부분을 절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소설의 진실성에 반한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어떤 사건, 인물, 실재를 소설 속에서 형상화할 때에는 그런 사건이 발생한 지 20년이건 30년이건 지난 다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만큼 시간이 지나면 그 사건의 실체가 명백해지고 사회적 또는 역사적 평가가 끝났기 때문에 작가는 실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은 장편소설 「영혼의 미로」에서 소설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독자들의 양해를 구했다. (내가 보기에는 아주 사소한 사항이었지만) 그가 말했다. 모든 소설은 픽션의 산물이다. 「잊힌 책들의 묘지」에 속한 네 권의 소설 또한 20세기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예외는 아니다. 몇몇 장면의 특징이나 연대기, 상표나 시대적 상황 등이 서사의 논리에 맞게 각색된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소설의 흐름에 어울리도록 페르민은 수구스 캐러멜이 스페인에서 인기를 끌기 몇 년 전에 그 맛을 즐기고, 몇몇 인물은 프란시아역의 둥근 지붕 아래서 기차를 내린다.

톨스토이

예술가와 역사가의 임무는 완전히 다르다. 그렇기에 사건과 인물에 대한 내 책의 묘사가 역사가의 묘사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 독자들을 놀라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는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역사 인물과 사건에 대한 개념이 공상이 아니라 역사가가 모을 수 있었던 한에서 역사 기록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예술가는 역사가와 마찬가지로 사료를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내 소설 속 역사 인물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부분에서 나는 허구를 지어내지 않고 사료를 이용했다. 그 사료는 내가 집필하는 동안 하나의 장서를 이루었다. 여기에 그 제목들을 적을 필요는 없겠지만 나는 언제라도 참고 문헌을 제시할 수 있다.

올더스 헉슬리

(글 쓸 때 안내 자료의 일종으로 지도나 도표, 일람표 등을 사용한 적이 있으신지요?)

다루는 주제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읽긴 합니다. 지리책은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멋진 신세계」에서 다룬 영국 장면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뉴멕시코 쪽에 대해서는 엄청난 양을 읽어야 했습니다. 그 장소에 대한 온갖 종류의 스미스소니언 보고서를 읽고 나서 그곳을 상상해보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정작 그가 자료를 통해서 상상해본 장소에 처음 간 것은 작품을 쓰고 난 6년 뒤였다. 6년이 지난 1937년에 프리다 로렌스를 방문할 때에야 그곳에 처음 가봤습니다.

움베르토 에코

나는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도 소설을 쓰는 데 있어 글을 쓰는 작업은 나중에 한다. 먼저 책들을 읽고, 카드들을 작성하고, 등장인물들의 초상화와 장소의 지도들, 시간적 연쇄의 도식들을 그린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펜이나 컴퓨터로 하는데, 그것은 내가 있는 장소와 시간, 소설적 아이디어의 유형이나 기록하고 싶은 자료의 유형에 따라 달라진다.

다른 측면은, 소설의 틀 내에서 믿을 수 없고 절대적으로 허구적인 것처럼 보이는 실제 사실을 사용하는 것이다. 내 소설은 수없이 많은 실화와 실제 상황을 이용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제가 소위 허구의 소설에서 읽은 것보다 훨씬 더 낭만적이고 소설적이기조차 하기 때문이다. 역사소설은 실제 사건을 허구화한 것이 아니라 실제 역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허구이다. 나는 역사소설을 성장소설의 요소와 결합시키는 걸 좋아한다. 내 모든 소설에는 많은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배우고 괴로워하는 젊은 인물이 등장한다.

「푸코의 진자」에서 주인공 카소봉은 파리의 에펠탑 발치에서 자신의 마지막 밤을 보내는데, 그 구조물을 아래에서 바라보면서 마치 괴물 같은 존재로 생각하며 거기에 최면에 걸린 듯한 상태로 있게 된다. 이 구절을 쓰기 위해 나는 두 가지 일을 했다. 한편으로 나는 에펠탑 아래에서 며칠 밤을 보내며 그 ‘다리들’ 한가운데에 선 채 아래에서 위쪽으로 모든 가능한 각도에서 살펴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에펠탑에 대한 모든 문학적 구절들, 특히 탑이 건축될 무렵에 쓰인 글들을 찾아보았다. 이 글들은 대부분 에펠탑에 분노하고 격분하고 있었고, 나의 주인공이 보고 느끼는 것은 산문이나 운문으로 된 그런 많은 텍스트들을 갖고 공들여 만든 콜라주이다.

「푸코의 진자」를 위해서는 이야기의 일부 주요 사건이 벌어지는 ‘기술 공예 박물관’에서 폐관 시간까지 며칠 저녁을 보냈다. 또한 성전 기사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그들 고위직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프랑스의 포레 도리앙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주인공 카소봉이 한밤중에 박물관에서 플라스 드 보스제까지, 그리고 에펠탑까지 파리를 가로질러 가는 장면을 묘사하기 위하여 나는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에 휴대용 녹음기를 들고 거리 이름들과 교차로들을 틀리지 않도록, 내가 무엇을 보았는가 나 자신에게 이야기하면서 며칠 밤을 보내기도 했다.

「전날의 섬」을 위해서는 물론 남태평양에, 내가 이야기하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지리적 장소에 가보았다. 하루의 다양한 시간에 바다와 하늘, 물고기들, 산호들의 색깔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또한 나는 그 당시 배들의 모형과 그림들에 대해 2~3년 동안 작업하였는데, 선실이나 다락방이 얼마나 컸는지, 어떻게 한 선실에서 다른 선실로 갈 수 있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책에서 약물에 관한 내용은 기본적으로 비유예요. 책임을 갖고 작업했어요. 아주 적극적으로 조사를 하고 속임수까지 써서 정보를 얻었어요. 많은 시간 실제로 사람들이랑 어울렸어요. 보스턴에는 재활시설이 열두 곳이나 있는데, 그중 세 곳에서 수백 시간을 보냈어요. 시설 내 휴게실에 앉아 있으면 갓 약물을 끊은 사람들이 남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제게 접근해요. 그들에게서 정보를 많이 얻었어요. 훨씬 더 긴 시간에 걸쳐 아주 은근한 방식으로요. 제가 특정한 인상을 만들어 내는 걸 꽤 잘하나 봐요. 전 헤로인 중독자 아니고 중독자였던 적도 없어요.

(새뮤얼 존슨의 전기를 쓴) 제임스 보즈웰

…… 자료를 모으고 생략된 부분을 채우고 서류 더미 속에서 자료를 찾는 데 얼마나 많은 노동이 드는지 자넨 상상도 못할 걸세.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당혹스럽고 짜증스러운지도 자넨 꿈에도 모르겠지. 자료를 정리하고 다듬는 것에 비하여 이런 사전작업은 아무것도 아니라네. 몇 번이나 포기할 생각을 했는지 몰라. 때때로 날짜 하나를 바로잡기 위해서 런던까지 단숨에 달려가야만 했어.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 누구도 나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난 사소한 부분을 수정하기 위해서 런던까지 갔지. 이런 나의 노력에 대해 그 누구도 칭찬하지 않겠지만 실수나 오류에 대해서 비난이 쏟아질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했어야만 했지.

힐러리 맨틀 (Hilary Mantel)은 말했다.

저는 자료 조사는 힘닿는 대로 꼼꼼히, 정확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추측은 아무런 사실 자료가 존재하지 않을 때만 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그런 추측도 합당해야만 하고요. 자료에 틈이 있어서 그것을 메울 때도 사실에 비추어 봤을 경우 가능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들 인물에게 저는 그 정도의 학문적 연구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연구 결과가 정확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고요.

장편소설 「울프 홀」을 위한 자료를 조사하고 집필하는 데 5년을 보냈습니다. 역사에 모순되는 이야기를 쓰는 일을 피하기 위해 카드 묶음을 구해 인물들을 알파벳 순서로 정리했지요. 각 카드에는 특정 역사 인물이 소설에서 중요한 날짜에 어디에 있었는지를 기록했습니다. “정말로 잘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요컨대 서퍽 공작이 그 순간에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아야죠. 만약 그가 다른 곳에 있어야 하는 날인데 런던에 있었다고 하면 안 되니까요.”

(마술적 리얼리즘 계열의 판타지를 쓰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말했다. 실제적인 주제에 대해 쓸 생각입니다. 그러나 저는 리얼리즘이 어려운 것이라고 봅니다. 특히 당대의 사실을 다룰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어떤 거리나 동네에 대해 단편을 하나 썼는데, 거기 사는 사람들이 즉각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할 수 있겠죠. 그래서 좀 더 편하게 글을 쓰기 위해 작가들은 조금이라도 시공간적인 거리가 있는 줄거리를 찾습니다. 저는 제 단편의 무대를 시간적으로는 좀 멀리 떨어진 50년 정도 과거로 하고 공간 역시 부에노스아이레스 내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거나 조금은 잊힌 동네로 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제가 작품 안에서 무엇을 언급하든 아무도 정확히 알아차리지 못할 테니까요. 이렇게 해야 작가가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저는 독자들이 시간적으로 좀 떨어져 있는 내용을 읽을 때 더 편안한 감정을 느낀다고 믿어요. 현실과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되고, 작가가 말하는 것을 비교해보거나 검토해보는 수고도 덜 수 있으니까요.


(1) 일반적으로 책의 제목은 책의 내용을 일부 알려주거나 주제를 명시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제목이 곧 작품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제목과 내용 사이에는 커다란 균열이 있거나 서로 상반되거나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 소설의 제목 「나라가 당신 것이니」는 성경 말씀을 흉내낸 것처럼 보이지만 소설의 내용은 물론이고 주제와도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나는 물론 이 소설의 주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 소설의 주제는 권선징악은 아니다. 통렬한 사회비판에 관한 것일까. 역사적 사건, 인물과 관련된 것일까. 북한 공산주의의 실체를 밝히고 고발하려고 한 것일까. 남북 또는 북미 간 국제관계에 관한 것일까. 중앙정보부의 온갖 실태를 고발하려고 한 것일까. 빨갱이들을 고발하려고 한 것일까. 현대 첩보전의 비밀을 밝히려 한 것일까. 은퇴한 공작원들이 느끼는 삶의 고뇌일까. 그들의 인간본성에 관한 것일까. 은퇴한 정보요원들의 마지막 임무에 관한 것일까. 성경 말씀에 관한 것일까. 초자연적 슈퍼맨에 관한 것일까. 불가사의한 초자연적인 존재에 관한 것일까. 김기왕 실장의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능력에 관한 것일까.)


(2) 이 소설에서는 성경 말씀의 인용이 지나치게 많다. 작가는 성경 말씀을 인용해서 뭘 의도했던 것인가. 과연 적소에 들어가 있는지 의문이다. 적소란 무엇인가. 정확한 단어, 문구가 문장 속에서 적소를 찾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인용이나 원용, 주석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에서는 인용의 효과가 현저히 반감되면서 소설을 망쳐버렸다.

또한 작가는 자신의 외국어 실력을 과시하고 싶은지 여기저기 끊임없이 일본어, 영어, 독일어, 불어, 중국어, 라틴어 등 여러 외국어를 남발하고 있다 (위즈덤 티스, 리즈너블, 투 머치 센티멘털, 메이크 노 센스, 엑스트라 킥, 엔딩 크레디트, 벨 에포크, 램프웨이, 퍼댄틱, 임프레시브, 라스트 센텐스, 루틴, 디테일, 키워드, 클리셰, 리버 뷰, 리버사이드, 립 밴 윙클, 노 프라블럼, 퍼펙트, 리버사이드, 엠오엠에이, 크립토나이트, 마스터피스, 누벨바그, 메피스토텔레스, 화이트아웃, 오르되브르, 라이방, 스타 러너 프로젝트, ESTA, 오마에모 모오 오와리다!, 마인 노이어 융게, 우엘로 아 솔레다드!, 오하요고자이마스!, 수페르, 파드레, 소울 푸드, 디오스 테 벤디가, 에르마노스!, 보이스, 비 이노센트 등등).

적재적소에 들어간 게 아니니까 전혀 불필요한 건데 말이다. 그들 외국어는 문맥과 일치하지도 않으면서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묵과할 수 없는 말장난이다. 소란스러움만 가득하다. 그건 풍자나 아이러니, 유머나 해학과도 거리가 멀다. 흰소리에 다름 아니다. 플로베르는 ‘정확한 단어’를 그렇게 강조했는데 말이다. 독자의 가독성을 떨어뜨리고 소설에 악영향을 미치는 외국어의 무절제한 사용은 자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편집자는 왜 이런 걸 걸러내지 못했을까. 편집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편집자는 뭘 했는가. 편집자는 직무유기를 했다고 할 수 있다.


(3) 이 소설에서는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동시에 두 개의 관점, 다시 말하면 시점 (point of view)을 통해 제시되는 경우가 있다. 이중 초점화 (double focalization)가 일어나는 것이다. 작가가 시도 때도 없이 개입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면 불가피하게 혼란이 일어난다. 그건 문학비평에서 소설의 기교와 관련한 애매성 (ambiguity)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애매성은 텍스트에서 한 가지 이상의 해석을 허용하는 경우를 말하기 때문이다. 윌리엄 엠슨에 의하면 이것은 “같은 언어작품에 대해 다르게 반응할 여지를 주는 언어상의 모든 뉘앙스”를 말한다.


(4) 프롤로그 (prologue), 에필로그 (epilogue)

이 소설의 스토리 진행은 명확하지 않다. 그게 작가의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독자를 고문한다. 왜 소설의 첫머리에 프롤로그가 나오면서 느닷없이 염소가 등장하는가. 독자를 놀라게 해서 계속 읽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면 또는 복선을 깔기 위해서라면 완전히 실패했다. 독자를 너무 혼란케 할 뿐이다.

프롤로그란 문학의 경우 소설의 첫머리에 서문 대신 쓰는 글을 말한다. 연극의 경우에는 극의 앞부분에서 한 명 또는 여러 명의 배우가 극의 내용을 소개하거나 또는 그 대사를 말한다. 음악의 경우에는 서곡의 성격을 띤 악장을 말한다.

보르헤스는 말했다. 다행히 내가 아는 한 지금까지 프롤로그론을 정립한 사람은 없었다. 뭔가를 누락시켰다고 해서 고민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누구나 알 테니까. 거의 대부분의 경우 프롤로그는 뒤에 나올 내용들에 대한 찬양 일색이거나 고인에 대한 애도와 다를 바 없이 무책임할 정도의 과장이 넘쳐 흐르다 보니 까다로운 독자들은 일종의 관례 정도로 치부해 버리곤 한다. 그런가 하면 탐미주의적 해설이나 논증을 담아 낸 프롤로그의 예도 있다. 워즈워스가 자신의 「서정 가요집」 2판 서두에 단 길이 기억될 서문이 바로 그것이다. 몽테뉴의 수상록에 실린 간결하지만 감동적이었던 머리말 역시 놀라운 걸작에 실리기 부족하지 않을 만큼 놀라운 서문이었다. 세월이 흘러도 결코 잊지 못할 수많은 역작들의 서문은 본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에필로그란 시나 소설 등에서 내용이 완결된 후 작가 자신의 주장, 해석 또는 최종적인 결말 등을 진술하는 종결 부분을 말한다. 난해한 작품의 경우 에필로그를 읽게 되면 작품의 주제, 소설 속에서 미심쩍었던 부분,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그렇다.) 연극에서는 극의 마지막에 추가한 대사나 장면, 또는 극의 마지막에 배우가 관객에게 연극에 대한 해석이나 최종적인 결말, 인사말 등을 하는 부분을 말한다. 음악의 경우 곡의 끝에 붙는 종결 부분을 말한다.

작가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의미는 물론이고 그 쓰임새에 대해서도 오해를 하거나 착각을 한 것 같다. 이 소설에서 프롤로그는 소설의 서문으로서 또는 스토리 전개의 길라잡이, 실마리 역할과 기능을 하지 않는다. 느닷없이 튀어나온다. 그런데 에필로그는 왜 등장했는가. 프롤로그와 상응하기 위해서? 이 소설에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서로 긴밀하게 또는 필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스토리의 진행에서 과연 필요한 것인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5) 이 소설에서 빨갱이는 아주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된다. 단순한 간첩은 물론이고 주사파, 종북 좌파, 단순한 진보적 인물까지 전부 빨갱이가 된다. 그래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전 대통령도 빨갱이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등 웬만한 좌파 인물은 전부 빨갱이가 된다.

이게 작가의 관점인지 묻고 싶다.


(6) ‘내가 매일같이 조간신문을 사는 것도 부고란 때문이었다.’ (31면)

요즘 세상에도 조간신문을 매일 사 보는 사람이 있는가? 어디에서 조간신문을 살 수 있단 말인가. 편의점에도 신문을 팔지 않는다.


(7) 왜 목사는 조간신문의 부고란을 통해서 암호를 보내야 하는가? 우스운 일이다. 얼마든지 전화, 팩스, 무엇보다도 인터넷을 통해서 이용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 목사는 손에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307면). 그러니까 목사는 충분히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다. 더욱이 그는 전지전능한 신적 인물이 아닌가.

요즈음 북한 정찰총국의 공작원들은 암호문을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서 주고받는다. 고도의 보안성을 갖춘 사이버 암호통신을 이용하는 것이다.


(8) 이 소설에서 세 명의 전직 중정 요원들은 진즉 은퇴해서 (중정의 공작원들도 공무원 신분이고 정년이 있다. 그들은 1997년경 퇴직하였으므로 2019년 현재 22년이 지났다.) 이미 70대에 접어들어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들인데 지금도 마치 접선하는 것처럼 미행을 따돌리기 위해서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탄다. 완전히 은퇴해서 평범하게 살고 있는데 왜 그렇게 행동해야 되는가.

……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전동차에서 내렸다. 때맞춰 반대편에서 달려온 전동차로 옮겨 탔다가 다음 역에서 내렸다. 다시 원래 노선으로 복귀해 다음 열차에 올라탔다. 꼬리가 붙었다면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으리라. …… 전동차에 뛰어들고 환승역을 기다렸다. 한번 더 노선을 바꿨다. (58면)


(9) 네온 간판 속 ‘선샤인 통증 클리닉’

이 클리닉은 전직 중정 요원인 피셔맨이 운영한다. 김배우의 코드 네임이 피셔맨이다. 그는 침을 놓을 줄 안다. 그렇지만 마취과나 통증의학과 전문의는 아니다. 어떻게 전문의가 아닌데 ‘통증 클리닉’이라는 간판을 걸고 병원을 운영할 수 있단 말인가.


(10) 옛날 이문동 (또는 석관동)에 자리잡고 있었던 중앙정보부의 본부 건물은 미국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을 본떠서 오각형 건물이었을까. 내가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30년이 넘게 그 정보기관에서 근무했던 전직 직원에게 확인한 바에 의하면 중정 본부 건물은 오각형 건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중정 본부 건물은 보안을 추구했기 때문에 복도 양편으로 엇갈리며 (문을 열고 닫을 때 맞은편 방에 노출되지 않도록) 출입문을 냈었던가. (255면) 그런데 출입문을 복도 양편으로 엇갈리게 만든 건물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남영동 대공분실이고 중정 본부 건물은 일반 사무실과 똑같았다.


(11) ‘행복한 집들은 이유가 다르지 않지만 불행한 집들은 제각각이다. 이 유명한 첫 문장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98면)

이 문구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아니라 「안나 카레니나」에 나온다. 그런데 나는 국내외를 불문하고 무수히 회자되는 이 문구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다. 행복도 삶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 종류가 많다. 행복에 높은 가치를 둘수록 실망할 가능성도 커지고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다 보면 오히려 자멸의 길로 들어설 수가 있다. 그러므로 개인마다, 가정마다 행복한 이유는 다르다. 행복이건 불행이건 간에 사람들이 처한 조건이나 상황, 인생에 대한 가치관 같은 관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톨스토이가 아내 들으라고 쓴 푸념일세. 그러다 말년에 쫓겨났지만.’ (98면)

과연 그랬을까.

…… 소피아 (톨스토이의 아내)의 히스테리와 편집증이 점점 심해지자 걱정된 가족들은 모스크바에서 정신과 의사를 불러들였다. 의사는 소피아의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 부부가 떨어져 있는 편이 좋다고 권고했지만, 소피아는 영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남편의 관심을 얻으려는 노력이 갈수록 절박해져, 이제 소피아는 보란 듯이 아편을 내보이며 음독자살하겠다고, 아니면 연못에 몸을 던져서, 그도 아니면 안나 카레니나처럼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하겠다고 남편을 협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 소피아가 일기장에 기록한, 유달리 절절했던 순간이 있다. “나는 울음을 터뜨리면서 그이를 꼭 끌어안았고, 당신을 잃을까 봐 너무 무섭다고 말했다. 그이를 세상 누구보다 더 사랑하지 않은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톨스토이도 소피아를 향한 사랑의 맹세로 이에 보답했고, 절대로 당신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 1910년 10월 28일 밤,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은 작별 편지를 써놓고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줄곧 내게 제공되어온 이런 사치 속에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느꼈고, 그래서 나는 내 마지막 나날을 혼자 조용히 보내기 위해 속세를 포기하오.” 잠에서 깨 편지를 읽은 소피아는 그대로 뛰쳐나가 죽으려고 연못으로 들어갔지만, 몸이 채 잠기기도 전에 구조되었다. 물에서 끌려나온 소피아는 딸을 향해 실성한 듯 외쳤다. “네 어미가 물에 빠져 죽으려 한다고 당장 아버지에게 전보를 보내.” 그러나 톨스토이는 그녀의 전갈을 받지 못했다. 집을 나간 지 며칠 안 되어 몸져누운 것이다. 그는 아스타포보라는 작은 마을의 기차역 관사에서 폐렴에 걸려 병상에 누운 채로 발견되었다. 러시아 문학의 거장은 그토록 갈구하던 마음의 평화를 찾지 못하고, 집을 떠난 지 열흘 만에 이렇게 외치며 마지막 순간을 맞았다. “탈출…… 반드시 탈출해야 해!” (섀넌 매케나 슈미트 / 조니 렌던 지음, 허형은 옮김, 「미친 사랑의 서」 참조.)


(12) 재단사는 중학교 신입생이던 시절 모 신문 신춘문예에 2명의 최종 심사 후보에 올라갔다. 심사평인즉, ‘악마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소름 돋는 상상력이지만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끝내 넘어서지 못했다.’ (104면)

그런데 중학교 신입생이라면 나이가 불과 12~13살이다. 그런 신입생이 역대 최연소 당선자가 될 뻔했다는 말인가.

(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신춘문예 사상 중학교 신입생이 신춘문예 최종 후보에 오른 적은 없다.


(13) 목사 (김기왕 실장)는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된다. 그런데 왜 느닷없이 선거법 위반인가. 무턱대고 선거법 위반이라고 서술하면 끝나는가. 작가는 뭣 때문에 선거법 위반이 되었는지 밝혔어야 한다. 왜 횡령죄인가. 안가는 김실장의 개인 소유가 될 수 없다. 어떻게 아파트를 몇 채나 해먹고 감옥으로 갈 수 있단 말인가. 안가는 중정의 관련 부서에서 직접 비밀리에 철저히 관리한다. 그리고 아파트가 안가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지 않은가. 수많은 아파트 주민들이 수시로 드나드는데 보안을 생명으로 하는 안가를 아파트에 둘 수 있겠는가. 보통 단독주택이나 건물로 한다. 10‧26 사건이 발생했던 궁정동 안가를 생각해 보라. 안가는 사용 목적에 따라 몇 개월만 사용하고 폐쇄되기도 한다.

왜 압구정동 아파트이고 한남동 아파트이어야 하는가. 1980년대부터 압구정동은 현대아파트 때문에 아파트 타운으로 유명하기는 했다. 하지만 한남동은 그 시절 아파트 타운이 아니었고 한남동 아파트가 유명해진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단국대 부지에 최고급 아파트가 들어서면서부터 한남동 아파트가 유명해진 것이다. 그러니까 그 옛날에는 압구정동의 아파트는 건설된 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재건축 이야기는 나올 수가 없었다. 30년이 된 2010년대 이후의 일이다.


(14) ‘우리에게 미술관은 또다른 일터였다. 해외 공작의 단골 접선지 미술관만큼 미행을 감지하기 용이한 곳이 없다. 두어 번 특이한 감상 경로를 바꿔보면 꼬리가 붙었는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보는 눈이 많아 서로 허튼짓을 저지르기도 어려웠다.’ (135면)

그런데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스파이들은 꽁꽁 숨어서 비밀리에 행동한다. 그게 스파이들의 행동 원칙이고 철칙이다.

미술관은 무수한 관람객들이 드나들고, 경비원이 서 있고, CCTV가 감시하고 있는데 거기서 접선한단 말인가.


(15) ‘블랙 요원에게 건너갔어야 할 외교행낭을 중간에 털린 것이다. 위조 여권과 위조 비자라 현지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었다.’ (135면)

작가는 비밀리에 공작 업무를 수행하는 블랙 요원과 대사관의 정식 외교관 신분으로 위장하여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화이트 요원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외교행낭이라면 당연히 화이트 요원에게 해당하는 사항이다.


(16) ‘“김부장을 잡은 기무사령관이 회사 넘버원으로 올 때만 해도 다 죽었구나 싶었어. 취임사에서 대역죄라는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나. 첫 간부회의에선 해체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입에 올렸고.” 피셔맨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141면) 그러니까 전두환은 그 당시 (1980년 무렵) 보안사 사령관이었지 기무사 사령관이 아니었다. 보안사령부가 기무사령부로 이름을 바꾼 것은 1991년이었다.


(17) 국정원 직원은 ‘특정직공무원’으로 분류된다. 국정원 신규 채용시험에 합격하면 특정직 7급 공무원이 된다.

중앙정보부의 직제상 장관급인 부장 밑으로 차관급인 1차장과 2차장이 있고 그 밑으로 기획관리실장이 있다 (나중에 언제부터인가 3차장이 신설되었다).

중앙정보부나 국가안전기획부, 국가정보원은 법률에 의해 설립된 국가의 행정기관이고 그곳 직원들은 거의 모두가 공채를 통해서 채용된 국가 공무원들이다. 미국 CIA나 소련의 KGB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들 기관에는 최고의 엘리트들만 들어갈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대학 졸업생들이 이들 기관에 들어가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굉장히 어렵다. 요즘의 경우에는 일류대학 출신의 경우에도 3수, 4수를 하는 경우는 보통이다.

그런데 국정원의 일개 국장인 김기왕 실장이 이들을 고아원에서 꺼내 중정의 정식 요원으로 키운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작가는 이 부분에서 일종의 복선을 깔려고 의도한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심각하게 어긋난다. 소설의 개연성과 필연성, 핍진성이라는 관점에서 소설이 실패할 조짐이 나타난다.)

다시 말하지만, 이 소설은 수많은 역사적 사건이 핵심 요소가 되어 스토리 진행을 지탱한다. 리얼리즘 소설이다. 지금, 여기, 우리의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형상화되어야 한다. 가상의 세계를 토대로 한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부정 왜곡 조작할 수 있는가? 작가의 상상력이 지나쳤던 것일까? 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은 역사적 사건, 인물, 실재에서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대학생과 헬기라면 주사파 수괴 검거 작전 아닌가. 팔공산 약수만 마신다던 부장? 골동품 수집이 취미이던 1차장? 금붙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2차장? 주지가 언급한 사람은 누구일까?’ (221면)

그런데 중정의 부장과 차장은 국가의 막중한 책무를 진 정무직 공무원이다. 그것도 최고의 엘리트 공무원이다. 그런 그들이 팔공산 약수를 마시고, 골동품 수집이 취미이고, 금붙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런 부패한 인물들이 아니다.

김기왕 실장 (목사)은 실장의 지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그렇지만 강력한 조직 체계를 가지고 있는 중정에서 실장은 1급 공무원으로 여러 국장 중 한 명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의 권한은 극히 제한적이다. 어떻게 일개 국장이 국가안전기획부 최고 설계자가 될 수 있겠는가. (144면)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국가 최고의 정보 수사기관인 안기부를 설계하려면, 그건 정권 차원에서 대통령이 직접 관여할 사항인 것이다.


(18) ‘“우리도 프로 야구 리그가 생기는 겁니까?” “서울, 충청, 경북, 경남, 호남에 한 팀씩 만들 계획이네. 경기 ‧ 인천 ‧ 강원을 하나로 묶어 총 여섯 팀.”’ (157면)

김기왕 실장이 어떻게 무슨 힘으로 프로 야구 팀 창단을 주도했단 말인가. 1981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민정서, 여가선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프로 스포츠 한번 해봐라”라고 지시를 내렸다. 실무를 담당한 이상주 당시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 비서관은 대통령의 지시대로 대한야구협회와 대한축구협회에 프로화를 타진하고, 당시 야구 선수인이었던 이호헌과 이용일이 18쪽 분량의 ‘프로야구창립계획서’를 만들게 되었다. 축구계가 프로화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고 보고한 것과 달리 야구계는 “정부 보조 한 푼 없이 프로 야구를 출범시킬 수 있다”라고 보고했고, 이 제안이 당시 집권자들의 구미를 당기게 되었다. 이후 각 지역을 연고지별로 분할하고 창단 기업을 물색하게 되었다. (위키백과, ‘KBO 리그’ 참조.)


(19) ‘닭장에서 막 꺼내온 달걀로 멍든 부위를 문지를 때조차 몰락한 귀족이 거느릴 법한 비애가 느껴졌다. 외오촌 어른이 독립운동 자금을 대다 가산을 날린 동네 부호였다는 얘기를 들어서만은 아니다.’ (147면) 그런데 우리나라에 귀족 계급이 있었던가. 몰락한 양반이면 몰라도 몰락한 귀족이라니……


(20) ‘용맹한 호랑이는 강한 새끼일수록, 자기를 빼닮은 새끼일수록 더 혹독한 담금질을 겪게 하는 법이니까.’ (144면)

나는 장편소설 「사하라」를 쓰면서 사자, 표범, 호랑이, 하이에나, 치타 같은 고양잇과 동물의 행동과 습성을 관찰하기 위하여 수백 편의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았다. 그런데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자기가 낳은 새끼를 구분하지 않고 지극 정성으로 돌본다. (나는 이들 동물 중에서 사자를 가장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갈기가 무성하지만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 수사자를 좋아한다.)


(21) ‘“북측 대남사업부 부장이 극비리에 내려와 모처에 머물고 있었지. 회사에서 붙인 코드 네임이 뭐였더라?” “제비였네.” “제비는 접선 장소를 십오 분 간격으로 바꿨어. 남산타워였다 창경궁이었다, 갑자기 남대문시장이 되었지. 뺑뺑이가 따로 없었네.”’ (152~153면)

내가 확인한 바로는, 2009년 이전에는, 조선노동당에서 대남공작을 담당하는 부서는 통일전선부, 대외연락부, 작전부, 35호실이 있었고, 인민군 총참모부에는 정찰국이 있었고, 국가안전보위부가 있었다. 그러니까 대남사업부는 없었다. 더욱이 대남사업부 부장이 극비리에 서울을 방문한 경우도 없었다.

그런데 북측 대남사업부 부장이 외국 관광객 필수 코스를 훤히 꿰고 있으면서 제맘대로 접선 장소를 남산타워, 창경궁, 남대문시장으로 바꿀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낙원동의 극장에서 만나 회담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남북간 국가적 사안에 관해 회담하는데 어두컴컴한 극장 안이란 말인가.

더욱이 북에서 사업부 부장이라면 장관급인데 최고급 일류 호텔로 모셔야 될 것이 아닌가. 옛날 북의 고위 인사가 밀사로 서울에 왔을 때 숙소는 조선호텔이었다. 그가 서울에 온 사실이 드러나면 안 되기 때문에 그 당시 중앙정보부는 호텔 투숙객 엘리베이터를 피해 아케이드 출입문만 통과하게 했다. 그때는 이후락 부장이 직접 서울 모처 안가에서 고위인사에게 식사 대접도 하고 손수 승용차를 몰아 3.1빌딩 꼭대기 식당에도 데리고 갔다.


(22) ‘손에 손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노인들이 인도를 순식간에 뒤덮었다. 푸른 다윗의 별, 이스라엘 국기도, 심지어 일장기도 눈에 띄었다.’ (178면)

2017년 촛불혁명 당시나 그 이전이나 그 후 우파 단체에서 주도하여 노인들이 출동했던 데모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노인들이 전부였고 푸른 다윗의 별이 그려진 이스라엘 국기나 더욱이 일장기는 등장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데모에서 난데없이 이스라엘 국기가 등장하고 더욱이 국민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일장기가 등장할 수 있겠는가.

극우 단체들의 시위에 성조기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극우 단체에는 반북 성향의 탈북 단체들의 회원이 집단으로 가입되어 있고 그런 탈북 단체들의 주된 수입원은 미국 쪽에서 보내는 후원금이기 때문에 미국 지원 단체에 보여주기 위해서 성조기를 들고 나오는 것이다.


(23) 나는 아무리 인터넷이나 기타 자료를 샅샅이 조사했지만 고려 목종 때 지어졌다는 백린사는 찾을 수 없었다. (195면)


(24) 영남 알프스는 울산시, 울주군, 밀양시, 양산군, 청도군에 걸쳐 있는 해발 1,000m가 넘는 산악군이다. 수려한 산세와 풍광으로 유럽의 알프스와 견줄 만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지산 (1,241m), 간월산 (1,069m), 신불산 (1,159m), 영축산 (1,081m), 천황산 (1,189m), 재악산 (1,108m), 고헌산 (1,034m), 운문산 (1,188m), 문복산 (1,015m) 등 9개 산이 있다.

지리산 빨치산은 6‧25 전쟁이 일어나자 낙동강 전선까지 밤낮없는 강행군을 개시했다. 무주에서 소백산맥 육십령을 넘어 함양군 안의면에서 다시 북상해 거창군 거창읍에 도착했다. 그 후 북쪽을 향한 빨치산 부대가 맨 먼저 지난 곳은 미군 폭격으로 거대한 폐허가 되어버린 영천이었다. 영천에서 보현산 줄기를 넘어간 부대는 울진군에 들어서면서는 일월산을 타고 본격적으로 태백산맥으로 접어들었다. (안재성 지음, 「이현상 평전」 참조)

이 소설에서는 휴전회담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 지리산에서 패퇴한 빨치산 잔당이 영남 알프스를 최후 거점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199면) 어떻게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이렇게 부정 왜곡 조작할 수 있단 말인가. 빨치산은 바로 북으로 향했지 남쪽에 있는 영남 알프스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5) 주사파 두목을 체포하러 가는데 안기부의 부장, 1차장, 2차장 등 윗대가리들이 헬기를 타고 출동했다고? (197면)

전술한 것처럼 안기부의 부장은 장관급이고 차장은 차관급인데 엄청나게 공사다망하다. 어떻게 안기부의 최고위급들이 일개 주사파 두목을 체포하러 가는데 출동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그렇게 한가하지도 않고 그건 자기들의 직무에 속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보안사령관이나 경찰청장도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서 직접 출동해야 한다. 차라리 옛날에 전두환 중정 부장이 어떤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서 직접 출동했다고 했으면 더욱 극적이었을 것이다.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서는 안기부의 특별사법경찰관리가 사전 구속영장을 발부받거나 임의동행 형식으로 범죄 혐의자를 체포한다. 대부분의 경우 임의동행 형식으로 끌고 갔다가 나중에 영장을 청구한다.


(26) 1986년 11월경 학생운동사에서 최초의 비학법 주사파 조직으로 평가 받는 구국학생연맹 (구학련)은 실질적으로 와해되었다. 3월에 결성되었으니 8개월의 단명이었다. 그 해 가을 김영환은 부산까지 내려가 피신해 있었는데 부산지역 학생들과 약속을 마치고 은신처로 돌아오던 중에 미리 잠복하고 있던 안기부 요원들에게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는 안기부 남산 지하실에 끌려가 47일 동안 조사를 받았다. 그중 27일을 쉬지 않고 무수한 고문을 당했다. 오죽했으면 조사과들이 “너를 보기가 끔찍하다”고 말할 정도로 처참하게 맞았다. 그가 안기부에 잡혀 들어갈 때 키 1백75cm에 몸무게 55kg였으나 완전히 말라깽이가 되었다. 팔 다리 등을 몽둥이로 사정없이 때리고 팔다리가 퉁퉁 부어올라 뚱보처럼 되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팔이나 다리를 누르면 1cm 정도 푹 들어가는데 손가락을 떼어도 이것이 원상 회복되지 않고 10분 정도 지나야 제대로 돌아왔다. 몸이 완전히 엉망이 되었다. 그냥 의자에 앉아만 있어도 고문에 대한 공포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차라리 원산폭격과 같은 기합을 받으면 가벼운 고통 때문에 그나마 고문에 대한 공포를 잊어버릴 수 있었다.

1심에서 검사가 15년을 구형했지만 7년을 선고 받았고, 2심에서 3년 6개월로 형이 감경되었으며, 1988년 12월에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그렇게 징역생활을 하고도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1989년 2월 그는 또다시 지하조직 반제청년동맹(반청)에 가입했었다.

그런데, 영남 알프스에 있는 어느 절에서 주사파 두목을 체포했다고? 주사파 두목이라면 단연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이다. 1990년대 중후반까지도 그 책은 운동권 입문 과정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로 꼽혔다.

그는 1989년 7월께 남파간첩 윤택림 (북한 대외연락부 5과장)에게 포섭돼 노동당에 입당했다. 그는 대학 후배 조유식과 함께 1991년 5월 16일 강화도 해안에서 북한 반잠수정을 타고 입북해 김일성을 두 차례 면담하고 간첩 훈련을 받은 다음 14일간 머물다가 제주도 인근 해안으로 귀환했다.

2012년경 북한의 인권 운동가로 변신한 김영환은 중국 공안 당국에 체포되어 국가안전위해죄로 114일 동안 구금되었다가 풀려나 추방되었다. 그리고 1999년 7월 29일 중국에 2년간 체류하다가 귀국한 다음 국정원 수사관들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나서 반성문을 쓰고 공소보류로 석방되었다.

그는 반성문에서 ‘동포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북한을 민주화시키기 위해 모든 힘을 바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므로 주사파의 두목은 절에서 체포된 게 아니다. (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주사파 중에서 사찰에서 체포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리고 ‘주사파 넘버원의 전공이 영문학이었다는 사실을 무심코 지나칠 그분이 아니었다.’고 했지만, 김영환 (1963년생)은 82학번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과연 졸업장을 받기는 받았는지?

80년대 중반에는 학생운동이 어느 한 사건이 아니라 연속적 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운동 이념도 한 해가 다르게 새로운 내용으로 채워졌다. 한국 사회를 미국의 식민지로 규정하고 반미 투쟁을 전면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철서신’이나 ‘기수 (일명 해방서신)’ 등 지하 팜플렛이 여기저기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1985년부터는 학생운동이 매우 복잡한 혁명이론을 만들어 내고 치열한 이론논쟁이 벌어졌다. 반정부시위도 격렬하고 다양해졌다. National Democratic Revolution은 민족민주혁명을 의미하는데, 기본적인 인식은 한국 사회의 모순 구조가 민족적 모순과 파쇼적 모순이 중첩되어 있다는 것이다. 민족적 모순에서 소위 반제투쟁이 나오고, 파쇼적 모순에서 반파쇼 투쟁이 나온다. NDR이 나온 다음에 조금 더 있다가 NLPDR이라는 게 나온다. 그게 바로 National Liberation and People’s Democratic Revolution이라는 민족해방민중민주혁명이었다. 이게 너무 크니까 분열해서 PD하고 NL이 갈라진 것이다. 나중에 NL은 주사파 쪽으로 가고, PD는 정통 맑스주의 쪽으로 갔지만 NL에 밀려서 소수파로 전락했다.

NL은 PD 계열을 민족적 현실을 외면하고 마르크스 – 레닌주의를 무작정 추종하는 사상적 사대주의자라고 비판했다. (도서출판 눈 편집부 엮음,「강철서신」, 김영환 지음, 「다시 강철로 살아」, 한기홍 지음, 「진보의 그늘」, 박찬수 지음,「NL현대사」등 참조)


(27) 중정의 공작원들에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코드 네임은 없었고 공작 명칭 (예컨대 흑금성)만 있었다. 더욱이 공작원의 명칭이 ‘라이카’, ‘피셔맨’일 수 없다. 그런 영문 명칭은 사용하지 않는다. 내가 전직 중정 요원으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그렇다.

북한에서 내려온 남파 간첩의 경우 그들은 ‘봉화1호’, ‘남산1호’, ‘청계산1호’ 같은 명칭을 쓴다.


(28) ‘이어지는 페이지들에는 미국 CIA 비밀 특수부대, 소련 KGB 초능력 부대, 동독 슈타지 게슈탈트 부대, 이스라엘 모사드 오메가 부대 등등 해외 사례들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298면)

동독의 정보기관인 슈타지에 ‘게슈탈트’ 부대가 있었다고? 게슈탈트 (gestalt)는 심리학 용어이다. 형태심리학이라고 번역되지만 일반적으로 게슈탈트를 그대로 사용한다. 그런데 심리학 용어를 부서 명칭으로 사용하는 정보기관이 있다고? 내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모사드에 오메가 부서가 있다고? 작가는 알파와 오메가에서 제멋대로 이름을 따온 것이 아닐까? 모사드의 작전 부서 중에 유명한 ‘메차다’가 있는데 이 부서는 암살, 납치, 폭파 전문이다. 산하에 ‘단검’이라는 의미의 ‘키돈’이라는 암살 전문 조직이 있다. 그들의 표어가 ‘일어나서 먼저 죽여라 (Rise and Kill First)’이다. 모사드는 현재까지 알려진 것만 2,700번이나 암살 작전을 수행했다. 아랍 측에서는 ‘살인 기계’라고 비방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담하다.


(29) ‘건강한 육체에서 순도 높은 자백이 나오는 법. 너덜너덜해진 몸뚱이부터 회복시키는 게 김배우만의 방식이었다. 손상된 상태에 맞춰 적절한 영양을 공급했고 양질의 휴식과 수면을 위해 룸 컨디션을 세심히 관리했다. 남영동이라는 지옥을 거쳐온 빨갱이들에겐 천국이나 다름없었으리라.’ (68면)

피셔맨은 자백을 받는 기술자로서 인간 거짓말탐지기이다. 그래서 치안본부 소속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온갖 고문을 해도 자백하지 않는 피의자를 중정 산하 남산 분실로 데리고 가서 자백을 받아낸다.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옛날에는 중정의 남산 분실과 보안사의 서빙고 분실,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간첩 사건이나 공안 사건을 수사했다. 조직 체계상 서로 계통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수사한 사건은 서울지검 공안부로 송치되고, 역시 중정의 남산 분실에서 수사한 사건은 서울지검 공안부로 송치된다. 어떻게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수사한 사건이 중정의 남산 분실로 간단 말인가. 참으로 어이없는 서술이다.

또한 이 소설에서는 중정의 공작원과 수사관을 혼동하고 있다. 피의자의 자백을 받아내는 중정의 수사관은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에 의한 특별사법경찰관리이다. 그러므로 중정 내에서도 지휘 계통이 완전히 다르고 담당 업무도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수사 라인과 정보 라인이 서로 불가침의 영역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국가정보기관의 활동은 정보활동, 방첩활동, 비밀공작활동 등 3가지로 구분된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공작원 또는 공작관으로 주로 비밀공작활동에 종사한 것이다.

조만간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경찰청으로 통째로 이관된다. 그러면 국정원은 수사에서 손을 완전히 떼고 정보 업무에만 매달리게 된다.


(30) 사랑니에 관한 고찰

사랑니 (wisdom tooth, 소설에는 wisdom teeth라고 나오는데 teeth는 tooth의 복수형이다.)는 위턱에 18번과 28번, 아래턱에 38번과 48번이 있다. 그런데 사랑니를 뺀 자리에 독약 앰플을 집어넣어 숨길 수 있을까. 내가 아무리 조사해 보아도 치아를 뺀 자리에 청산가리 독약 앰플을 집어넣어 숨겼다는 정보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 좁은 구멍으로 앰플이 들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제 앰플은 길이가 5~10센티미터쯤 된다.)

독약 앰플이라면 북한 간첩들의 전매 특허다. 그들은 그걸 ‘독약 앰플’, ‘앰플’, ‘필터’라고 한다. 북한 간첩들이 독약 앰플을 꺼내 자살을 시도한 경우를 살펴보자. KAL 858기 폭파사건의 경우 북한 간첩 김승일과 김현희는 체포되자마자 독약 앰플을 꺼내 자살을 시도했는데 김승일은 즉사하고 김현희는 바레인 살마니아 병원에서 살아났다. 그들은 담배 필터에 앰플을 숨겼다. 또다른 경우는 어떤 남파 간첩들은 허리춤에 숨기거나 옷깃에 숨겼다. (남파 간첩 관련 수사 기록에 그렇게 나온다.)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 부장은 1972년 5월 김일성과 회담하기 위하여 극비리에 북한을 방문하면서 양복 주머니 속에 청산가리 독약을 넣고 갔다. 비상상황이 닥치면 입에 털어 넣으려고 한 것이다.


(31) 경북북부교도소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에 위치한 교도소다. 경북북부제1교도소, 경북북부제2교도소, 경북북부제3교도소, 경북직업훈련교도소로 이루어져 있다. 제3교도소가 구 청송보호감호소이다. 삼면이 물살 빠른 반변천으로 둘러싸여 있고, 나머지 한 면 또한 공덕산의 깎아지를 듯한 절벽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 중정의 김기왕 실장이 이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출옥하는 장면이 나온다.

‘출소일은 영혼마저 녹아내릴 듯한 삼복염천의 한복판이었다. 교도소 철문을 걸어나오던 그분은 수감 당시 겨울 코트 차림 그대로였다. 그분은 코트도 벗지 않은 채 땀범벅이 된 얼굴로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나눴다. 우리는 그분 주위를 빙 둘러 인의 장막을 치고 우리가 준비한 모시 적삼으로 갈아입을 때까지 기다렸다. 두부 한 모를 천천히 씹어 마지막 한입까지 다 삼킨 뒤 마침내 그분이 입을 뗐다.’ (47면)

안기부의 직원들은 엘리트 공무원이다. 그들은 국가관이 투철하고 내부적으로 일사불란한 지휘체계 아래 규율이 엄격하다. 그들이 한때 공안사범의 수사 과정에서 고문으로 악명을 떨쳤지만 범죄 집단도 아니고 개인적인 일탈도 거의 없다. 국가안전기획부법에 의하면 그들이 범할 수 있는 죄는 제18조 (정치관여죄), 제19조 (집권남용죄) 등인데 이들 범죄는 결국 정치적 사건과 관련된 것이고 이들 범죄로 기소된 경우는 안기부 (또는 국정원) 역사상 몇 건 되지도 않는다. 어쨌거나 이들 범죄는 청송교도소에 수감될 범죄가 아니다. (실제 그런 예도 없다.)

김기왕은 딸이 셋이나 있는데 그렇다면 아내가 있을 것 아닌가. 출소한 날 아내가 여름옷을 챙겨서 제일 먼저 달려갔을 것 아닌가. 또한 그들이 그렇게 존경하고 떠받드는 지존인데 왜 자주 면회를 가지 않았을까. 왜 뒷바라지를 하지 않았는가. 왜 필요한 물품들을 차입해 주지 않았을까.


(32) ‘유독가스처럼 번져가던 위기감. 언제부터였는지, 누구의 지시였는지 우리는 새 정부에 넘어가면 안 될 것들을 닥치는 대로 태우고 있었다. 내란음모죄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인물, 해외 반정부 활동중에 납치되어 수장 직전까지 갔던 인물, 그런 자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누군가의 자조 섞인 농담처럼 증거를 완벽히 인멸하려면 회사 건물 전체에 휘발유를 끼얹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297면) 그렇지만 중정도 국가기관이고 직원들도 국가 공무원이고 문서는 대부분 공문서로서 일정한 보존 기간이 있다. 어떻게 공문서를 닥치는 대로 태울 수 있는가.


(33) 김기왕 실장의 묘비에는 ‘Ki Wang Kim, Mar. 1920 ~ Feb. 2019’라고 새겨져 있다. 그러니까 김기왕 실장은 1920년 3월생이고 2019년 2월 사망했다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는 가짜인 것으로 밝혀졌지만.) 어쨌거나 그는 1997년 말 제15대 대통령 선거 직후이거나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을 전후하여 국정원에서 파면된다. 그때 나이가 77세 또는 78세가 된다.

국정원 직원은 정년이 있다. 국가안전기획부직원법 (현재는 국가정보원직원법)에 의하면, 연령정년의 경우 5급 이상 직원은 60세, 6급 이하 직원은 57세, 기능직 직원은 40세~57세이고, 계급정년의 경우 2급 직원 5년, 3급 직원 7년, 4급 직원 11년, 5급 직원 15년이다.


(34) 김기왕 실장은 ‘밤하늘의 별자리만큼이나 많은 간첩단을 발본색원하는 등’ 수많은 공작 작전을 수행했다고 한다. 과장이 지나치게 심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은가. 첩보소설이라면 하드보일드 문체로 냉철하게 써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터무니없이 과장되게 쓰면 소설의 신뢰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독자의 신뢰를 저버리게 된다.

중정의 공작원은 상급직인 공작관과 그의 지휘를 받는 하급직인 공작원으로 나뉜다. 공작관이 30년을 근무해도 그가 취급할 수 있는 사건은 불과 몇십 건을 넘을 수 없다.


(35) 김기왕 실장은 안기부에서 파면되고 나서 더욱이 청송교도소에서 징역을 살고 만기 출소했다. 그게 20여년 전 일이다. 그가 미국으로 망명했다고? 왜 망명했는가. 이미 형사처벌을 달게 받았으니까 미국으로 그냥 출국하면 되는 것이다.

김 실장은 중정에 근무하는 동안 수많은 공작 작전을 수행했다. 국정원 엘리트 직원으로 국장급까지 승진하였으니 아주 예리한 지성의 소유자로 합리적이고 의지가 강한 인물이어야 한다. 그의 큰딸은 미국의 명문대학인 아이비리그 출신이고 미국 시민권자이다.

그런데 (전술한 것처럼) 뒤늦게 전지전능한 신이나 마술사 같은 인물인 것으로 변신하는가.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역사적 인물과 사건이 핵심 요소인 이 첩보소설에서 뜬금없이 전지전능한 신이 되다니. 소설 전개에 있어서 그렇게 해야 할 일말의 필연성도 없는데 죽도 밥도 안 되게 그렇게 만들어 놓았으니. 그래서 작가는 가뜩이나 부실한 이 소설을 근본적으로 파괴하여 완전히 망쳐놓았다.

(…… 젊은이도 아니고 노인도 아닌, 산 자도 아니고 죽은 자도 아닌 기이한 외모의 사내. …… 그분은 실장님도 목사도 아닌 객수에 시달리는 백 세 노인. …… “연탄가스, 뺑소니. 역시 우연한 사고가 아니었던 거야.” …… “자기 사람으로 부리려고 그런 십자가까지 지운 건가?” ……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 “뼈가 열세 군데나 부러진 아버지가 신문을 꽉 쥐고 있었어. 빌어먹을 글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자책해왔는데 이제 보니 일부러 쥐여놓은 거였네. 내 죄책감을 극대화하려는 정교한 디테일이었던 거야.”)

작가는 시간과 공간과 그 모두를 거스르는 존재를 그려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김기왕을 신적 인물로 만들었다는 것인가. 작가는 냉철해야지 센세이셔널리즘에 빠져 허우적대면 안 된다. 이 소설은 21세기 현대 첩보물이다. 이 소설의 주제, 플롯, 스토리의 배경, 분위기, 목소리 등등의 관점에서 보면 논리적 일관성이, 핍진성이 여지없이 허물어진다.

작가가 이런 식으로 황당무계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면,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SF임을 선언하고 나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가상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넘나들고, 역사의 주요 현장을 종횡무진 오가는 식으로 스토리를 전개했으면 어땠을까?

(K. 에이미스는 과학소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산문으로 된 이야기로, 우리가 아는 세상에서는 절대로 나타나지 않을 것을 주요한 주제로 다룬다. 과학소설은 과학의 영역과 기술의 영역 혹은 사이비 과학이나 사이비 기술 영역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인간 세계의 질서나 기원, 외계인 등의 혁신적 상황에 대한 가정에 기초한다.’)

아니면 처음부터 김 실장을 고차원적인 지식과 마술적 힘을 갖춘 악몽을 꿈꾸는 초현실적 신비한 마술사로 등장시켜 완전무결한 환상소설로 썼으면 어땠을까? 환상의 세계가 현실의 실체와 보이지 않는 이면을, 인간의 어두운 내면 세계를 더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작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상상력을 마음껏 동원하여 마법을 부릴 수 있었을 것이다.


(36) 이 소설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아이오와 옥수수밭이 나오고 원형 천막이 나오고, 선샤인 클리너가 나오고, ‘보신탕’ 대신 ‘염소탕’이 나온다. 그렇다고 신비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도 아니다. 참으로 해괴망측하다. 거기가 한국도 아니고 미국인데 웬 보신탕…… 염소탕…… 이란 말인가.

최신 무기와 장비로 무장한 막강한 백악관 경호원들을 상대로 미국의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시도하는데, 그렇다면 최신 과학기술을 활용한 초현대적인 시설이어야 하고 첨단 무기들이 등장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하필 아이오와 주 옥수수밭이어야 하는가. 아이오와 주는 L.A.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데 말이다. 미국에서 밀과 옥수수밭이 거대하게 펼쳐져 있는 곡창지대이면서 돼지와 젖소를 많이 키우는 주는 중서부 12개 주이다. (일리노이 주, 인디애나 주, 아이오와 주, 캔자스 주, 미시간 주, 미네소타 주, 미주리 주, 네브래스카 주, 노스다코타 주, 오하이오 주, 사우스다코타 주, 위스콘신 주)

왜 목사는 레이저 총과 전자장비를 설치한 최신 방탄차가 아니고 백마를 타고 나타났는가. 21세기 현대 첩보전에서 웬 백마? 미국 현직 대통령인 트럼프를 암살하려고 하는 인물이 말이다. (혹시 북한의 김정은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을 올라가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보았던가?)


(37) 이 소설은 현대 첩보물임에도 불구하고 70대 중반의 할아버지들인 은퇴한 전직 공작원들이 한국도 아니고 낯선 미국에 가서 맹렬하게 총을 쏘고 추격전을 벌이며 활극을 연출한다. 라이카는 그 옛날 캠퍼스에서 사격연습을 한 이후 처음으로 총을 쏘는데 말이다. 마치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를 보는 것 같다. 마지막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가관이다. 왜 그런 장면이 필요했던가. 재단사는 죽고 둘은 살아남아 마지막 대결을 하는 극적 장면으로 대미를 장식하려고 그랬던가. 이들 장면은 소설을 완성하기는커녕 너무 궁색스럽다. 이 소설의 대단원은 오리무중이거나 황당무계하거나. 이 소설은 스스로 자멸했다.
작성일:2021-07-22 15:07:55 121.138.194.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