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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대표 에세이> (아주 사소한) 법률상식

닉네임
유중원
등록일
2021-06-02 12:32:30
조회수
315
(아주 사소한) 법률상식





우리는 거의 매일 크고 작은 사건 사고 소식을 접한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고 조사하고 때로는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도 한다. 법이 규정한 대로 사법절차가 진행된다. 물론 사법절차는 적법절차여야 한다. 여기에는 법이 규정한 법률용어들 ― 피의자, 참고인, 피고인 (민사소송에서는 피고라고 한다), 현행범인 체포, 내사, 입건, 자백, 진술거부권, 수사, 피의자신문조서, 특별사법경찰관리, 구속영장 청구, 영장실질심사, 구속기간의 연장, 송치, 기소, 판결 선고 등등 ― 이 등장하는데 우리들은 그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을까.
수사란 범죄혐의의 유무를 명백히 하여 공소의 제기와 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하여 범인을 발견, 확보하고 증거를 수집, 보전하는 수사기관의 활동을 말한다 (대법원 1999.12.7. 선고 98도3329 판결 참조). 수사는 수사기관에서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판단되는 때에 개시되지만 위 단계 이전에 범죄의 혐의 유무를 확인하기 위하여 행하는 수사기관의 활동을 내사라고 한다. 고소나 고발, 자수가 있으면 원칙적으로 수사가 개시되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수사기관이 여러 가지 수사 단서를 바탕으로 내사를 하여 어느 정도 구체적인 범죄혐의를 인지한 경우에 비로소 수사가 개시되는 것이다.
내사이건 수사이건 단서가 있어야 하고, 물증이 있어야 하고, 목격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수사기관은 잠복근무를 하고 함정수사를 하고 도청하고 지문을 감식한다. 사진 촬영, DNA 검사, 마약 분석, (호흡기록기 pneumograph, 정신전류계 psychogalvanometer, 맥박측정기 cardiophygmograph로 구성된) 거짓말탐지기 검사, 최면술 조사, 진술 분석 (statement analysis), 프로파일링 (profiling) 기법을 활용한다. 그리고 가끔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한다. 피의자는 거의 예외 없이 처음부터 완강하게 결백을 주장하기 때문에 범죄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자료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와 같은 수사 개시의 형식적 절차를 보통 입건이라고 한다. 입건의 경우 수사기관은 범죄 인지서를 작성하고 정식으로 사건을 수리한다. 내사 단계에서 범죄혐의를 받는 자를 피내사자 또는 용의자라고 하고 수사기관에 의해 범죄 혐의자가 입건이 되면 그때부터 피의자가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수사를 받게 된다.
탈북자의 경우 국정원의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하는 탈북자에 대한 예비 조사가 내사라고 할 수 있고, 탈북자가 남파간첩이어서 위장 탈북한 것으로 밝혀지면 그때부터 입건되어 국정원의 특별사법경찰로부터 수사를 받게 된다.
지금 항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한강공원에서 숨진 채 발견된 손○○ 사건의 경우 그 친구 A는 아직 범죄혐의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피의자가 아니라 참고인에 불과하다. 물론 참고인은 수사가 진행되면서 나중에 피의자로 전환되기도 한다.
(이 사건의 경우 경찰의 잠정 결론은 A에게 범죄혐의가 없다는 것이고 5월 30일 밤늦게 방영된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 역시 A에게 범죄혐의가 없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친구 A의 핸드폰이 발견되고 거기에서 A의 혈흔은 나오지 않았다. 사고사일 확률이 큰 것이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말이 없기 때문에 이 사건의 궁극인 실체적 진실은 영원히 미궁에 갇힐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음모론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조회수 장사를 하는 악성 유튜버들이 계속 난동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유튜브에서 믿도 끝도 없이 나도는 헛된 소문에서 벗어나야 한다.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피해자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끊어야 한다. 확증편향과 소망편향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우리 경찰의 수사력과 공정성을 믿어야 하고 SBS의 공신력을 신뢰해야 한다.)
어쨌거나 참고인은 수사기관에서 진술하는 제3자이다. 그러므로 법원 또는 법관에 대해서 진술하는 증인과는 다르다. 보통 수사기관에서 참고인으로 진술한 자가 공판절차에서 증인이 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수사기관의 참고인에 대한 조사는 원칙적으로 임의적인데 반하여 증인은 출석 의무를 지는 등 강제적이다. 참고인의 경우에도 진술거부권이 있고 변호사가 참여할 수 있다.
수사기관에서 피의자의 범죄혐의가 어느 정도 입증되고 필요할 경우 검사는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구속영장은 반드시 검사가 청구하므로 청구권자는 검사이다. 피의자에 대한 구속은 검사가 관할 지방법원 판사에게 청구하여 구속영장을 발부받고, 사법경찰관은 검사에게 신청하여 검사의 청구로 관할 지방법원 판사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는다. (다만 범죄를 현재 실행 중이거나 실행의 즉후인 자를 말하는 현행범인의 경우 특정 범죄의 범인임이 명백하고 체포의 필요성이 인정되면 누구든지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 현행범인으로 체포한 피의자를 구속하고자 할 때에는 체포한 때로부터 48이내에 위와 같은 절차에 따라 검사는 관할 지방법원 판사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여야 한다.) 구속전 피의자심문이란 구속영장의 청구를 받은 판사가 구속 전에 피의자를 직접 심문하여 구속의 요건을 판단한다는 것을 말하며, 영장실질심사라고도 한다.
공소가 제기된 사건은 법원의 형사재판으로 넘어가는데 그때부터 피의자는 피고인으로 신분이 전환 된다. 그러므로 검사는 공소장에서부터 피의자 대신 피고인으로 기재한다. 공소란 검사가 법원에 대하여 특정한 형사사건의 심판을 구하는 소송행위이다. 수사와 공판을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 형사소송법은 사인 소추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공소는 사소 (私訴)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공소권이란 공소를 제기하고 유지하는 검사의 고유 권리를 말한다. 기소독점주의. 이러한 검사의 공소권은 법원의 심판권, 피고인의 방어권과 대비되기도 하면서 함께 형사소송구조의 기본개념을 이루고 있다.

피고인은 재판을 받는다. 공판정은 판사가 지배한다. 판사는 검고 칙칙한 유니폼을 걸친 채 아주 무표정한 얼굴로 목에 힘을 주고, 유죄판결 (혐의입증), 무죄판결 (증거불충분), 가끔 공소기각, 일부유죄와 일부무죄 판결을 선고한다.
형사사건에서 재판이 끝날 무렵 검사는 구형을 한다. 공판검사는 수사검사의 의견을 참고하기는 하지만 구형량에 있어서 어느 정도 재량이 있다. 그래서 소위 ‘올려 (up) 구형’ 또는 ‘내려 (down) 구형’을 한다. 죄질이 나쁘고 반성의 기미가 없으면 괘씸죄에 걸려서 올려 구형을 하게 되고 죄를 순순히 인정하고 반성을 하는 피고인에게는 내려 구형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매우 드물고 특수한 경우지만 ‘백지 구형’ 및 ‘무죄 구형’도 있다. 내가 알기로는 백지 구형은 형사재판 역사상 몇 차례 있었지만 무죄 구형은 2012년 9월 6일 박형규 목사의 재심 사건과 같은 해 12월 28일 윤중길 진보당 사건의 결심 공판에서 단 두 번 있었다. (임 모 공판검사가 백지 구형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독단적으로 무죄 구형을 한 것이다. 그래서 검사의 품위를 훼손했다는 엉뚱한 이유로 정직 4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그녀는 이 징계의 부당함을 들어 4년여 동안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판사는 검사의 구형량에 꼭 기속되지는 않지만 구형량을 보면 선고 형량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판사도 구형량에서 자유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구형량과 선고 형량에 차이가 많이 나면 판사는 관대하다는 평판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검사의 불만이 있을 수 있고 차이가 너무 적으면 피고인의 원망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선고 형량은 판사들 사이에서도 편차가 심하다. 더욱이 같은 판사가 선고하는 동일한 범죄에 대한 형량이 들쑥날쑥하는 경우도 있다. 양형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없고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제멋대로 선고한다. 그래서 그런 판사를 (변호사들이 제일 싫어하고) ‘럭비공 판사’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의 경우는 다르다. 가능한 범위에서 특별히 선고형량을 깎아주고 집행유예를 붙여주고 구속적부심과 보석의 경우 편의를 봐준다. 전관예우라는 위대한 전통과 관습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판사 자신이 조만간 옷을 벗고 나가서 변호사 개업을 할텐데 자신도 그런 혜택을 누려야만 할 것 아닌가.
하지만 전관예우는 법조 브로커와 함께 법조계 최대의 비리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두 개의 악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나는 전관예우 때문에 패가망신한 몇몇 변호사를 알고 있다. 또한 수임료의 배분을 둘러싸고 브로커와 치사한 다툼을 벌인 끝에 원수가 되어 헤어진 부장판사 출신의 몇몇 변호사도 알고 있다. (그런 적나라한 실상은 단편소설 ‘찍새와 뽀찌’를 참조 바람.)
경찰과 검찰이 철저히 수사를 해서 기소를 하는데 왜, 어떻게 무죄가 선고될까. 2019년도 사법연감 자료에 의하면 2019년 무죄건수는 구속사건 142건, 불구속사건 6,726건을 포함하여 도합 6,868건이었다.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는 법리 오해도 있지만 대부분 증거불충분이다.
무죄는 검사의 수치다. 죄 없는 사람을 억지로 죄인으로 만들어서 처단하려고 한 것이다. 무죄는 검사의 크나큰 실수이고 검사의 자존심 문제이다. 그렇지만 국민을 기망하는 행위이고 인권유린에 해당하는 행위이다. 검찰 조직은 왜 이런 검사들을 감싸는 것일까. 그들은 ‘인간이 하는 일에 왜 실수가 없을 수 있을까?’라고 변명할지도 모른다.

경찰에서는 사법경찰관과 사법경찰리가 수사를 하고 (그들은 정복을 입고 근무하는 일반 경찰과는 달리 사복을 입고 수사만 한다), 검찰에서는 검사가 검찰주사를 참여시켜 수사를 한다. 일반 형사사건 중에서 살인, 강도, 성폭력, 폭력, 절도, 방화 등 중요 사건이나 검찰이 자체적으로 인지한 특수한 사건은 경찰의 수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수사를 개시하고 종결한다. 그러면 검찰과 경찰의 수사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전혀 다르지 않다. 경찰 수사와 검찰 수사 모두 범죄의 구성요건 해당 사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러므로 수사할 사항이나 내용에 뚜렷한 구분은 없어서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다.
수사에는 반드시 따라야 할 순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경찰 수사와 검사의 수사는 일체가 되어 서로 연결되어 있다. 피의자는 언제든지 자신의 진술을 반복하고 부정하고 철회하고 수정할 수 있다. 수사관은 지겹도록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또는 매번 표현을 바꿔가며 질문해서 마침내 필요한 답변을 얻어낸다. 그러나 피의자가 진술한 답변이나 수사관의 질문 모두를 조서에 기재하는 것도 아니다. 범죄사실을 입증하는 데 필요한 부분만 선별한다. 그러므로 피의자는 이중의 조사를 받는 셈이므로 무척 짜증이 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피의자란 범죄혐의가 짙은 자로 범죄자일 개연성이 있으므로 정식 입건하여 수사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인정된 사람을 말한다. 경찰이나 검사 등 수사기관은 범죄 혐의자를 조사하면서 문답식으로 된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한다.
이 조서는 우선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어야 하고 (피의자가 조사가 끝난 후 조서에 대해 이의나 의견이 없음을 진술하고나서 조서에 간인한 후 기명 날인 또는 서명하게 되면 그 조서는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다), 그리고 그 조서에 기재된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되어야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다시 말하면 그 조서에 기재된 진술이 피고인이 진술한 내용과 동일하게 기재되어 있음이 영상녹화물이나 그 밖의 객관적인 방법에 의하여 증명되고, 그 조서에 기재된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피의자 신문에서 범죄자는 자백을 한다. 자백은 증거의 왕이다. 미국 연방대법관 윌리엄 브레넌은 ‘자백만큼 뿌리 깊은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증거는 없다. 사실관계를 판단하는 사람들이 자백에 너무 큰 비중을 부여하기 때문에 자백이 증거로 제출되면 재판은 더 해볼 것도 없게 되어 버린다.’라고 말했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에 의하여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 또는 재판에 있어서 피고인의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고 명백히 규정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이러한 헌법 조항은 수사기관에 의하여 완전히 무시되었으므로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수사기관은 지나치게 자백에 의존한다. 옛날 중앙정보부의 인혁당 사건을 돌이켜보자. 중정 수사관들은 간첩 사건을 조작하기 위하여 남산 분실 지하 조사실에서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온갖 잔인한 폭력을 행사해서 억지 자백을 받아내고 그렇게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는 사형 판결의 유일한 증거가 되었다. (상세한 것은 소설 「차라리 피고인이 되고 싶다」참조) 김근태 의원은 1985년 치안본부 소속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23일 동안 불법 감금된 채로 고도로 숙련된 고문 기술자들에 의해 가혹한 물 고문, 고춧가루 고문, 전기 고문을 당하면서 억지 자백을 하고 그 피의자신문조서에 근거해서 7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상세한 것은 소설 「자백과 고문」참조) 그리고 1987년 박종철 군은 참고인 신분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다가 물 고문으로 사망했다. (상세한 것은 소설 「광화문 광장」참조. 이들 소설은 블로그 https://blog.naver.com/jungwon4760 에 들어가면 읽을 수 있다.)
우리는 현대의 문명사회에서 고문이나 허위 자백은 옛날 일로 생각하기 쉽다. 고문은 아주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막연하게 고문은 있을 수 없고 피의자가 정신질환이 없는 한 허위 자백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사람들은 사형될지 모른다고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를 인정하기도 한다. 재판에서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사형을 선고해버린다. 사람은 왜 짓지도 않은 죄를 인정해버리는 걸까? 재판에서는 왜 거짓 자백을 발견하지 못하고 잘못된 판결을 내리는 걸까? 모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정이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경찰의 피의자 신문은 인기 있는 TV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되어 대중을 매료한다. 피의자를 신문하고 자백을 얻어내는 장면은 때로는 극적이기 때문에 연극과 영화에도 등장한다.
그러면 현대의 과학수사는 믿을 수 있을까. 첨단 기기, 사진 촬영 장비, 고도로 정밀한 현미경, 도감청 장비 등이 엄청나게 발달하였다. 그렇다면 DNA 검사, 거짓말탐지기, 약물 분석, 음성, 체모, 지문, 족적, 혈흔 검사 등을 100% 믿을 수 있을까. 오류의 가능성은 전혀 없을까. 담당자의 태만, 미숙, 실수, 시약의 오염, 기술적 에러, 기기의 오작동, 조직적인 은폐, 조작, 부패, 정치적 목적에 의해 오류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과학수사 기관인 국과수는 경찰청 소속이고 대검에는 과학수사부가 있다. 과학수사는 수사기관에서 하므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편향될 수 있다.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이 있었다. 그 당시 국과수의 문서감정실장인 김 모가 유서의 필적을 허위로 감정한 것이다. 2012년 10월 대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 2014년 서울고법의 무죄선고에 이은 2015년 5월 대법원의 무죄확정 판결. 강기훈은 노태우 정권을 규탄하며 분신 자살한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의 유서를 대필하고 죽음을 방조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24년이 지난 후 벗어났다. 물론 무죄확정 판결 후에도 당시 수사검사나 판사 등 관련자 누구도 그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수사는 일단 시작되면 나름대로 생명력을 얻는다. 수사가 시작되면 ‘무죄추정의 원칙’이 아니라 ‘유죄추정의 원칙’이 작동한다. 솔 캐신 (Saul Kassin)은 ‘피의자 신문은 처음부터 유죄로 추정하고 진행하는 과정이다. 대상자에 대해 선험적으로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고 또 자백을 받아 내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권력자의 선입견이 지배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이다.’ 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뚜렷하거나 분명한 목적지가 없어도 수사에는 일종의 가속도가 붙는다.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수사는 사전에 성실한 준비작업을 해 놓아야만 물 흐르듯 진행되는 것이다. 수사관은 교과서에서 수사 기법을 배우는 게 아니다. 다른 수사관이 하는 걸 어깨너머로 보면서 알아야 한다. 아무도 일부러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능숙한 수사관은 피의자를 위협하거나 협박하지 않는다. 이들은 단호하고 사무적인 어조로 말한다. 과장된 연기도 없다. 탁자를 내려치지도 않는다. 고함도 지르지 않는다.
수사의 핵심은 피의자 신문이다. 그 신문은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환경에서 이루어진다. 옛날 남영동 대공 분실이나 중정의 남산 분실, 보안사의 서빙고 분실이 그러했다. 수사관들은 피의자들의 심리를 조종하고 또 기만하는 신문 방법과 전략에 관해 고도의 전문적인 훈련을 받는다. 노련한 수사관일수록 질문을 많이 한다. 모순된, 불쾌한, 잔인한, 엉뚱한, 쓸데없는, 장난치기 위한 질문 등 범죄 사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온갖 종류의 이런 저런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피의자는 수사를 받는 입장에서 대답을 거절하기는 곤란하다. 어떻게 수사관의 비위를 거스를 수 있겠는가. 잘못하면 짜증을 내고 비웃고 욕설을 내뱉을지도 모르는데. 그렇지만 이런 질문과 대답은 조서에 기재되지 않는다.
수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수사관은 (피의자가 죄를 지은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추정하는 경향인) 수사관 반응 편견 (investigator response bias)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자백을 하지 않으면 온갖 종류의 고문을 하기도 한다. 먼저 욕설, 협박, 강요, 회유를 하고 그 다음에는 손찌검, 발로 걷어차기 시작한다. 옛날에는 아주 다반사였지만 지금은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완전히 근절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경찰은 피의자 신문의 목표가 진실을 찾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기만과 교묘한 속임수들에 의존해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경찰은 자주 범행을 시인하는 진술과 자백을 얻어내야 한다는 엄청난 조직적, 사회적 압력을 받는다. 법은 완벽하지 않고 또한 수사기관 역시 완벽하지 않다. 그들도 인간이다. 자질과 성품이 각기 다르다. 누구는 유능하고 정직하지만 누구는 노골적으로 부패할 수도 있고 무능력할 수도 있다.
피의자나 피고인은 수사절차나 공판절차에서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신문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진술거부권이 있다. 소위 말하는 묵비권 (right to silence)이다. 이러한 진술거부권은 영미의 자기부죄거부의 특권 (privilege against selfincrimination)에서 유래하는 권리이다. 피의자나 피고인의 인권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중요한 방어권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이 진술거부권이 완전히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심학무 (2010년 실화사건을 엄밀하게 재현한 미발표 장편소설 「2010」에 나오는 남파간첩. 소설「두만강」,「고정간첩」,「전향」 등 참조)는 피의자 신분으로 국정원 특별사법경찰에게 본격적인 수사를 받는다. 특별사법경찰은 삼림, 해사, 전매, 세무, 군대의 수사, 기타 특별한 사항에 관하여 사법경찰의 직무를 행하는 자를 말한다. 특별사법경찰은 그 직무 범위가 사항별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경찰청 소속 일반 사법경찰과 구별되지만 그 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일반 사법경찰과 동일한 지위와 권한을 가지게 된다. 구체적인 특별사법경찰의 직무를 행할 자와 그 직무의 범위는 법률로 정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교도소장, 구치소장, 소년원장 또는 소년분류심사원장, 산림보호에 종사하는 공무원,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서 식품 또는 의약품 단속 사무에 종사하는 공무원, 철도공안 사무에 종사하는 공무원, 관세법에 의한 세관공무원, 근로기준법에 의한 근로감독관, 선장과 국가정보원 직원, 군사법경찰 등이 특별사법경찰의 직무를 수행한다.
심학무는 피의자 신분으로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20일 동안 12번 조사를 받았고 검찰에서는 30일 동안 10번 조사를 받았는데 공안부 검사는 피의자 신문의 신빙성을 담보하기 위해 영상녹화 장치가 설치된 특별 조사실에서 영상녹화까지 했다.
(사법경찰관이 피의자를 구속한 때에는 10일 이내에 피의자를 검사에게 인치하여야 하고, 인치하지 아니하면 석방하여야 한다. 검사가 피의자를 구속한 때 또는 사법경찰관으로부터 피의자의 인치를 받은 때에는 10일 이내에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하면 석방하여야 한다. 다만 판사는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수사를 계속함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한 때에는 10일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한도에서 검사의 구속기간의 연장을 1차에 한하여 허가할 수 있다. 다만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에서는 예외가 인정된다. 국가보안법은 판사에게 일정한 경우 사법경찰관에게 1차, 검사에게 2차에 한하여 매회 각 10일 이내의 기간 동안 구속기간의 연장을 허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는 국가보안법이 규정한 범죄사실에 관해 철저히 조사를 받았다. 그들은 범죄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범죄의 동기가 중요하고 범죄자도 인간이므로 인간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자라온 가정환경이나 교육, 학교, 종교, 정치 활동, 정신상태, 인생관 등등을 추가적으로 조사했다. 완전히 발가벗겨 버린 것이다. 그러나 구속영장 청구서, 공소장, 법원의 판결문은 모두 범죄사실과 그 범죄사실을 입증하는 증거 자료만을 요약 적시하고 적용 법 조항을 기재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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