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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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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대표 에세이> 작가란 무엇인가 (2) 진정한 작가들 (上)

닉네임
유중원
등록일
2021-05-25 10:03:03
조회수
1058
작가란 무엇인가 (2)
진정한 작가들



작가란 무엇인가? 진정한 작가들이라고? 그들은 누구일까?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말하면 끝나는가.
비평가들은 무슨 자격으로 또는 무슨 문학적 실력이 있다고 작가를 판단하고 선정할 수 있을 것인가. 주관적 판단의 편견과 경솔함이란…… 부디 자중하길……
진정한 작가를 증명하는 것은 오직 작품 뿐이다.
원래 비평가는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는 중재자이지만, 비평은 누굴 위해 쓰는가? 작가? 독자? 제3자 (같은 비평가)? 자기 자신?
비평가가 판관의 지위에서 검증을 하는 시대는 진즉 지나갔다. 그들은 가끔 읽지도 않은 책을 칭찬하는 속물들이다. 그러므로 창작자보다 더 훌륭한 비평가는 없다. 비평가는 생각보다는 잘 모른다. 작품의 내부를 모르기 때문이다. 창작자는 자신의 작품을 비평하는 사람보다 작품에 대해 더 잘 안다.
비평은 쉽고 예술은 어렵다. (S. 보부아르) : 한 사람의 작가를 비평하는 것은 쉽지만 그 작가의 진가를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 (L.C. 보브나르그) : 비평은 예술가의 명성에 한 몫 끼려고 하는 비평가가 동원하는 기술이다. (G.J. 네이선) : 사람들은 비평해주기를 요청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것은 칭찬뿐이다. (서머싯 몸) : 작품을 쓰려고 해도 쓸 수가 없는 사람이 분명히 비평은 할 수 있다. (J.R. 로웰) : 비평가들의 말에 전혀 신경 쓰지 마라. 비평가의 동상이 세워진 적은 없으니까. (시벨리우스) : 비평가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욕하는 자들이다. (M.F.퀸틸리아누스) : 문학, 음악, 연극에 보이는 비평가의 일은, 모든 장사 중에서도 가장 비천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더 가치 있는 의견을 내뱉는 비평가는 대중이다. (마크 트웨인) : 비평가란 문학이나 예술면에서 실패한 무리들이다. (B.디즈레일리) : 일반적으로 말해서 비평가들은 시인, 역사가, 전기 작가가 되려고 했던 사람들로서, 자기의 재능을 시험해보고 실패했기 때문에 비평가로 전향한 것이다. (S.T.콜리지)

* * *

(알렉산드리아의 철학자) 필로
당신이 마주치는 사람 모두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이언 랜킨 (Ian Rankin)
작가가 되려면 스스로를 믿고 자신의 글을 믿어야 합니다.

리처드 프라이스
신이 당신을 싫어하신다면 당신의 가장 간절한 소망을 들어줄 것이다.

T.S.엘리엇
나쁜 시인은 모방하고 뛰어난 시인은 훔친다.

플래너리 오코너
하나의 대상을 오래 바라볼수록 그 속에서 더 많은 세계를 볼 수 있다.

안톤 체호프
내게 달이 빛난다고 말로 하지 말라. 깨진 유리에서 나온 빛 한 조각을 보여달라.

에드거 앨런 포
그는 미국 문학작품에 대해서는 약점을 인정사정없이 공격했다. 특히 형편없는 작품을 단순히 작가가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더 좋아하는 그릇된 민족주의를 경멸했다. 그들은 조잡한 구성과 그릇된 문법, 그리고 서툰 운율 때문에 맹렬한 공격을 당했다.
…… 훌륭한 화자는 마치 저자가 현실에 대해 굳은 믿음을 갖고 있는 것처럼 얘기해야만 한다. 하지만 동시에 작가가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은 경이로운 세계에 놀라듯이 얘기하기도 해야 한다. 때문에 그는 독자에게 자신의 얘기를 믿으라고 공공연히 주장하지도 또 그것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 작가는 믿기 어려운 현상을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에 의지하지 않는다. 그의 관심은 등장인물을 통해 있을 법하지 않은 현상들과 결국에는 환하게 드러나는 진실을 묘사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부지불식간에 가장 생생한 인간 지성의 결과물이 만들어지며, 독자들도 작가의 유머를 기꺼이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에 따르는 고통도 감수한다.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가 말했다. “나는 전율과도 같은 흥분을 느꼈다. 나는 오랫동안 생각은 해왔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 모호하고 혼란스러워서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시와 소설들을 드디어 포에게서 발견했다. 그는 그것들을 완벽하게 다루고 있었다. 처음 그의 책을 펼치는 순간, 너무도 놀랍고 기쁘게도 그동안 내가 꿈꾸어 왔던 주제들은 물론이고 오랫동안 계속 생각해왔던 문장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들은 이미 20년 전에 포가 쓴 것이었다.”

톨스토이
예술가와 역사가의 임무는 완전히 다르다. 그렇기에 사건과 인물에 대한 내 책의 묘사가 역사가의 묘사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 독자들을 놀라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는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역사 인물과 사건에 대한 개념이 공상이 아니라 역사가가 모을 수 있었던 한에서 역사 기록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예술가는 역사가와 마찬가지로 사료를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내 소설 속 역사 인물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부분에서 나는 허구를 지어내지 않고 사료를 이용했다. 그 사료는 내가 집필하는 동안 하나의 장서를 이루었다. 여기에 그 제목들을 적을 필요는 없겠지만 나는 언제라도 참고 문헌을 제시할 수 있다.

포드 매덕스 포드
그는「어떤 사람들은 하지 않는다 Some Do Not…」(1924),「더 이상 행진은 없다 No More Parades」(1925),「한 남자가 맞선다 A Man Could Stand Up」(1926),「마지막 구역 The Last Post」(1928)의 4부작을 썼다. 그는 이 4부작을 1922년에 시작했다. 당시 코트다쥐르에서 살고 있었는데, H.G. 웰스에게 쓴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전쟁으로 인한 신경증을 극복했고 마침내 정말로 글을 쓸 수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럴 수 없을 거라고 믿었는데 말입니다.” 솜 전투에서 겪은 뇌진탕과 정신적 쇼크 경험은 그를 뿌리째 뒤흔들었다. 불면증에 시달렸고 한동안 자신이 써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시대를 정의하는 서사 소설을 쓰지 못할까봐 염려했다. 그는 이 소설을 5년에 걸쳐 썼고 1927년 11월 2일 뉴욕에서 완성했다. 이 소설들은 포드가 제1차 세계대전 중 보병 장교로 참전한 경험의 축적물이다.

J.P. 사르트르
자신의 시대가 작가의 유일한 기회이다. 시대는 작가를 위하여 만들어지고 작가는 시대를 위하여 만들어진다. 1848년의 사변, 2월 혁명에 대한 발자크의 무관심, 파리 코뮌에 직면한 플로베르의 전전긍긍한 몰이해는 유감스러운 일이며 그것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도 애석한 일이다.
거기에는 무엇인지 그들이 영원히 잃어버린 것이 있다. 우리들은 우리 시대에 있는 아무것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더욱 좋은 시대는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눈앞에 있는 바로 이것이 우리들의 시대임에는 틀림이 없다. 우리들은 어쩌면 이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삶을 열어나갈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엘리아스 카네티 (Elias Canetti)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작가는, 자기 시대에 예속된 맨 밑바닥에 있는 종이다. 그는 끊을 수 없는 짧은 쇠사슬로 자기 시대에 단단히 묶여 있다. 그의 예속성과 부자유는 너무나 커서 그는 도저히 다른 곳으로 옮겨질 수도 없다.
좀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간단히 말한다면 진정한 작가는 자기 시대의 개 (dog)인 것이다. 그는 자기 시대의 땅 위를 마구 치달으면서 이곳저곳에 머문다.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지칠 줄 모르며, 위로부터 휘파람 소리에 민감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쉽게 사주 당하지만 일단 사주 당하여 흥분하면 좀처럼 되돌려 세우기가 힘든다. 그리고 그는 알 수 없는 악덕에 쫓기는 것이 된다. 모든 것에 그는 자기의 축축한 주둥이를 처박으며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그는 또한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와서는 새로 시작하기도 한다. 그는 결코 지칠 줄을 모른다.
(198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영국 작가. 에스파냐계 유대인으로 오스트리아에 살면서 빈 대학을 졸업하였고 1938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런던에 정착했지만 독일어로 작품을 썼다. 주요 작품으로는「현혹 (Die Blendung)」「허공의 코메디 (Komödie der Eitelkeit)」「군중과 권력 (Masse und Macht)」등이 있다.)

윌리엄 개디스 (William Gaddis)
작품이 까다롭지 않으면 나는 지루해서 죽을 것이다. 작가의 개입과 짧은 논평이 자주 등장했던「인식 (The Recognitions)」을 쓴 뒤 나는 너무 쉽게 썼다는 걸 깨달았는데 또다시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것을 쓰고 싶었다. 쓰기 어려운 내용을 쓰고 다른 문제들을 만들어내면서 억지로라도 자신을 단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에드몽 자베스 (Edmon Jabès)
문체는 고독이라는 무모함이며, 근심의 밀물과 썰물이다.
고독은 또한 자신의 새로운 기원에 비추어진 어떤 현실의 반영이며, 그 기원에서 우리는 혼잡한 욕망과 의심에 가득 차 영상을 본뜨는 것이다.
쓰기란 꿈의 영상으로 기호의 추상적인 현실을 다시 넘기는 일일 테다. 사유는 집착 없이 존재한다. 사유는 만남으로 살고 고독으로 죽는다. 글은 거울이 아니다. 쓰기란, 미지의 얼굴을 맞닥뜨리는 행위다. 신은 신 안에서 인간을 소모한다. 신의 언어는 부재의 언어다.
무한은 어떠한 담장도, 어떠한 장벽도 허용하지 않는다.

기에르모 카브레타 인판테 (Guillermo Cabrera Infante)
나는 글을 쓸 때 결코 난해한 것을 피하라고 하지 않는다. 독자가 내 글을 이해하면 좋은 일이고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으니까.
나는 영원히 고친다. 수정 작업은 책이 출판되는 시점까지도 끝나지 않는다. 어떤 작가들은 작업이 끝나면, 즉 책이 탈고되거나 출판되고 나면 그 책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린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에게 작품은 항상 고쳐야 하는 대상이고 더 좋게 써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완벽함은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목표이다. 그러므로 나는 임기응변을 믿지 않고 점진적 개선을 믿는다.

윌리엄 포크너
…… 자신의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라면 누구에게서나 혹은 모든 사람에게서 빼앗거나, 빌리거나, 훔치거나, 또는 구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가는 전적으로 부도덕한 인물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훌륭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 내 생각에는 만약 내가 나의 모든 작품을 다시 쓸 수 있다면 분명 더 잘 쓸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 확신이야말로 예술가에게는 가장 유익한 조건이다.
…… 마음에 드는 부분은 다 빼라. 만약 당신이 당신 문장의 아름다움과 음악적인 리듬과 뛰어난 재치에 넋을 놓고 있다면, 독자가 느끼는 독서의 즐거움보다 당신이 느끼는 글쓰기의 즐거움이 더 클 확률이 높다. 독자는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용서해서도 안 된다. 그냥 이야기를 하라. 그러면 스타일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 읽고, 읽고, 또 읽어라. 견습생 목수가 장인의 솜씨를 관찰하는 것처럼 쓰레기든 고전이든, 좋은 작품이든 나쁜 작품이든 닥치는 대로 읽어보고 작가들이 어떻게 쓰고 있는지 잘 살펴보라. 읽어라! 그리고 흡수해라. 그리고 글을 써라. 그 글이 좋은지 아닌지는 스스로 알아볼 수 있다. 좋은 글이 아니라면 창밖으로 던져버려라.

로버트 그레이브스 (Robert Graves)
나는 1975년에「모든 것과의 이별 (Goodbye to All That)」을 문장 하나도 놓치지 않고 완전히 새로 썼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누군가는 “어쨌든 이건 참 좋은 책이야. 이렇게 쭉 살아남았잖아.”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 책은 쭉 살아남은 게 아니다. 완전히 새로 고쳐 쓴 책이다.

할런 코벤 (Harlan Coben)
내가 쓴 책은 매번 더 좋아졌어요. …… 글의 수준도 그렇고 대화문도 그렇고. 게다가 책의 분량도 매번 조금씩 줄었죠. 제가 편집을 더 잘하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글쓰기는 다작이 결국 질의 향상으로 이어지는 몇 안 되는 작업 중 하나입니다. 더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됩니다. 확실합니다.

힐러리 맨틀 (Hilary Mantel)
저는 자료 조사는 힘닿는 대로 꼼꼼히, 정확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추측은 아무런 사실 자료가 존재하지 않을 때만 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그런 추측도 합당해야만 하고요. 자료에 틈이 있어서 그것을 메울 때도 사실에 비추어 봤을 경우 가능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들 인물에게 저는 그 정도의 학문적 연구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연구 결과가 정확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고요.
「울프 홀」을 위한 자료를 조사하고 집필하는데 5년을 보냈습니다. 역사에 모순되는 이야기를 쓰는 일을 피하기 위해 카드 묶음을 구해 인물들을 알파벳 순서로 정리했지요. 각 카드에는 특정 역사 인물이 소설에서 중요한 날짜에 어디에 있었는지를 기록했습니다. “정말로 잘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요컨대 서퍽 공작이 그 순간에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아야죠. 만약 그가 다른 곳에 있어야 하는 날인데 런던에 있었다고 하면 안 되니까요.”

무라카미 하루키
긴 소설을 쓰는 것은 서바이벌 훈련과 비슷해요. 신체적인 강인함이 예술적인 감수성만큼이나 중요하거든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그 자신에게 글쓰기란 권투와 같다는 헤밍웨이의 글이 제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건강을 잘 돌보았지요.
내가 작품에서 마약을 다루면 나도 마약을 하느냐고 묻는 나쁜 독자들이 있었지만 이는 그들이 문학이나 마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점을 드러낼 뿐이에요.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 작가는 글을 쓰는 매 순간 절대적으로 제 정신이어야 하며 건강해야 합니다. 글 쓰는 행위는 희생이며, 경제적 상황이나 감정적 상태가 나쁘면 나쁠수록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낭만적인 개념의 글쓰기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작가는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아주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레이먼드 카버
한 단편에 스무 가지나 서른 가지 다른 수정본이 있는 경우도 있어요. 열 개나 열두 개 이하인 경우는 없답니다.

존 치버
우선 ‘진실’과 ‘현실’은 납득할 만한 기준이 세워지지 않는 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고정된 진실은 없다. 거짓말에 대해서 말하자면, 소설에서 거짓은 중요한 요소이다.
내가 썼던 두 편의 단편을 읽었는데 너무 가볍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깊게 고민한 문제들이었지만 지금 보니 여전히 고민의 깊이가 부족해 보이고 큰 울림도 전혀 없으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 역시 결여되어 있는 듯하다. 내가 알고 있던 가장 깊은 고통과 쾌락으로부터 이끌어낸 그 글들이 왜 경박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걸까? 서두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만약 내가 대화체 산문을 써야 한다면 (가끔 그럴 때가 있긴 하다) 다음과 같은 제약을 난 흔쾌히 인정해야만 한다. 즉 모든 글들이 심장의 애절한 울음이 될 수 없고 정교하게 다듬은 돌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진부한 표현이나 내 작품에서 발견하게 되는 특성, 즉 그저 공간만 채우고 있는 글에 대해서는 이를 진정으로 거부한다.
중년의 시기에는 신비로움이 있다. 미혹이 있다. 내가 이 시기에 성취할 수 있는 최대한은 일종의 외로움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아름다움마저 힘없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고 심지어 사랑 역시 그러하다. 뭔가 일이 잘못됐음을, 길을 잘못 들어섰음을 직감하지만 언제 그렇게 돼버렸는지 나는 모르며 앞으로 알게 될 가망성도 전혀 없다.

폴 오스터
…… 1인칭으로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별로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 부분은 첫 번째보다 더 개인적인 내용이 많았는데, 소재에 깊숙이 침잠해 들어감에 따라 내가 점점 더 그 소재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 쓰기 위해서, 내가 아닌 제3자를 대하는 것처럼 해야 했습니다. 내가 3인칭 서술을 취하면서 다시 쓰기 시작했을 때, 막힌 글이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혼자가 되었을 때, 그러니까 완전한 고독의 상태에 들어갔을 때, 나는 더 이상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집필하는 과정에서 나는 곧 남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커트 보네거트
저는 지구상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그 공습으로 이득을 봤다고 말했지요. 그 공습은 전쟁을 0.5초도 단축하지 않았고, 그 어디에서도 독일군의 방어나 공격을 약화하지 못했고, 집단수용소에서 단 한 사람도 해방시키지 못했어요. 오직 한 사람만이 이득을 보았지요. 둘도, 다섯도, 열도 아니에요. 단 한 사람이에요. 바로 접니다. 그 책을 쓴 덕분에 사망자 한 사람당 3달러씩 받은 셈이 되었죠. 상상해보세요.

줄리언 반스
위대한 책은, 이전에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세상을 묘사하는 책입니다. 서사 능력이나 성격 묘사, 문체 같은 특징을 제외하고 하는 말입니다. 그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사회에 대해서나 정서적인 면에서, 아니면 둘 다에 대해 새로운 진실을 말해준다고 인식되는 책이지요. 전에는 입수할 수 없었던 진실, 즉 공식적인 기록이나 정부 문서, 신문이나 텔레비전에는 절대 나오지 않은 진실 말입니다.

프랑수아즈 사강
예술은 기습적으로 현실을 가져와야 해요. 예술은 우리가 별 의미 없게 여기는 한 순간을 가져오고, 다시 또 한 순간을, 그리고 또 다른 순간을 가져와서는 그 순간들을 재량껏 바꿔서 지배 정서로 결합된, 특별하고도 연속적인 순간을 창조해요.

토머스 울프
나는 결국 내 스스로 지핀 불에 데었다는 것, 나 자신의 화염에 소진 되었다는 것, 그리고 여러 해 동안 내 삶을 흡입한 맹렬하고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의 송곳니에 의해, 내 존재가 갈가리 찢겼다는 것을 알았다. 말하자면, 빛의 세포 하나가 낮이건 밤이건 내 삶의 모든 깨어 있는 순간에, 또한 모든 잠자는 순간에, 뇌와 마음과 기억에서 언제나처럼 빛나리라는 것, 벌레가 내 몸을 먹으면서 자신의 빛을 유지하리라는 것, 어떤 오락, 어떤 음식과 음료도, 어떤 여행과 어떤 여자도 그 빛을 깨뜨릴 수 없으리라는 것, 그리고 죽음이 그 전적이고도 결정적인 어둠으로 내 삶을 덮을 때까지, 나는 결코 그 빛에서 해방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침내 나는 내가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자신의 삶을 작가의 삶으로 바꾼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깨달았다.

루스 렌델 (Ruth Rendell)
렌델은 ‘웩스퍼드’ 시리즈 소설을 24권이나 썼다.
저는 웩스퍼드가 지겨워지지가 않아요. 웩스퍼드가 바로 나니까요. 물론 저랑 외모는 다르죠. 하지만 그의 사고방식, 신념, 사상, 취향은 저랑 똑같아요. 웩스퍼드가 좋아하는 책은 제가 좋아하는 책이에요.
이야기의 계획을 세우려고 멈추면 이야기가 사라져 버리더라고요. 그래서 이야기가 떠오르는 대로 그냥 적어요. 대신 다시 살펴볼 때 꼼꼼히 보죠. …… 많은 사람들이 제가 쉽게 글을 쓰는 줄 알아요. 제 안에서 그냥 흘러나온다고요. 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저는 글을 쓰는 일이 어려워요. 왜냐하면 공을 많이 들이니까요. 저는 몇 번이고 다시 써요. 뭔가 엉성하거나 큰 소리로 읽기 곤란하다면…… 그 글은 쓸 수 없어요. 누구나 자기가 쓴 글을 혼자 큰 소리로 읽는 과정을 꼭 거쳐야 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조르주 심농 (Georges Simenon)
저는 모든 인물의 가족에 대해 알아야 해요. 비록 실제로 소설에서 쓰지는 않더라도 조부모까지는 알아야 하죠. 저는 과거 전체를 알아야 합니다. 어린 시절, 출신 학교, 열여덟 살에 입었던 옷까지도요. 각 인물이 사는 집의 도면, 전화번호, 주소, 하루 일과, 형제자매, 기타 시댁이나 처가 식구들이 있는지, 서로 자주 연락하는 사이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Robert Louis Stevenson)
이 일을 익히기 위해 나만큼 노력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나는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묵묵히 버텨 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세상의 다른 어느 작가보다도 부족한 재능으로 더 많은 것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 나는 특히 마음에 드는 책이나 단락을 읽으면 …… 무언가 두드러진 힘이나 만족할 만큼 독특한 문체가 있으면 그 자리에 앉아 그런 특징을 흉내 내려고 시도한다. 성공하지는 못해도 …… 리듬, 조화, 구성, 부분의 조정에 대한 연습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해즐릿, 램, 워즈워스, 토머스 브라운 경, 디포, 호손, 몽테뉴, 보들레르, 오베르망을 온 정성을 다해 원숭이처럼 흉내 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문학은 만들어낸 이야기이다. 허구는 허구이다. 이야기를 실화라고 부르는 것은 예술과 진실 모두에 대한 모독이다. 모든 위대한 작가는 위대한 사기꾼이다. 하긴 최고의 거짓말쟁이인 자연도 마찬가지이다. 자연은 언제나 속인다.
이야기꾼은 우리에게 재미를 준다. 우리는 그에게서 가장 단순한 형태의 정신적인 흥분, 생생한 감정,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을 여행하는 즐거움을 얻는다. 어쨌든 조금 다른 것을 원하는 사람들은 교사로서의 작가를 바라본다. 선전가, 도덕가, 예언자, 이것이 요즘 떠오르는 순서이다. 우리가 교사를 찾는 것은 도덕적인 교훈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지식, 즉 단순한 사실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대한 작가는 언제나 위대한 마법사라는 것이다. 우리가 작가들 각자의 천재성이 빚어낸 마법을 이해하고, 그의 작품에 나타난 문체와 이미지와 패턴을 연구하려 할 때 가장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레이엄 그린 (Graham Greene)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와 일종의 연대감을 맺고 있어야만 한다. 아이가 자궁에서 탄생하듯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의 몸에서 탄생한다. 그런 다음 탯줄을 끊고 나간 인물은 점점 자라서 독립체가 된다. 작가가 자신이 창조한 인물에 대해 더 잘 알수록 작가는 이 피조물과 거리를 두기가 더 쉬워지고 그 인물이 성장할 여지를 남길 수 있게 된다.

존 그리샴 (John Grisham)
나는 내 소설이 순수 문학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내게 소설의 핵심 요소는 플롯이다. 내 목표는 독자가 페이지를 얼른 넘기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의 관심을 흩트리는 여유를 부릴 수 없다. 계속 독자의 시선을 붙들어야 하고 그 유일한 방법은 서스펜스라는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 주인공에서 시작해야 한다. 독자가 신경을 쓸 만한 인물이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어려운 과제다. 주인공을 곤경에 처하게 한 다음 빠져나오게 하여야 한다. 독자들이 곤경에 처한 주인공을 염려하도록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독자를 잃게 된다. 그것이 기본적인 서스펜스이다. 그걸 내가 발명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아침에 진지한 문학 작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과랑 오렌지를 비교해서는 안 된다. 윌리엄 포크너가 위대한 문학 천재이지, 나는 아니다.

스티븐 킹
작가가 되고 싶다면 다음 두 가지를 반드시 해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 내가 아는 한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지름길은 없다. 매일 4시간 내지 6시간은 읽고 쓰는 데 할애하라. 그럴 시간을 낼 수 없다면 좋은 작가가 되기를 바라선 안 된다.
작가는 네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형편없는 작가, 기본은 하는 작가, 좋은 작가, 훌륭한 작가. 형편없는 작가가 기본은 하는 작가나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성실하게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시기적절한 도움을 받는다면 기본은 하는 작가가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가능하다.

기욤 뮈소 (Guillaume Musso)
작가에게 독자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작가는 독자들과 대화하기 위해 글을 쓴다. 그러나 작품에는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 알맹이는 소설에 수분을 공급해주는 수액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영혼을 휘어잡고 목숨이 글에 달려 있기라도 하듯 일관되게 밀어붙이게 해주는 힘을 말한다. 그리고 글은 너무 건조하면 안 된다. 감정이 느껴져야 한다.
소설은 감정과 감동의 산물이다. 지적인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글이 아니다. 그러니까 주인공이든 조연이든 잠시 등장하는 행인이든 그들의 감정을 오롯이 피부로 느낄 수 있어야만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건 건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할 일이 못 된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에게 적합한 일이다. 대단히 파괴적인 정신분열 상태를 요구하니까. 글을 쓰기 위해 작가는 이 세상에 속해 있는 동시에 밖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강은 ‘작가는 가엾은 동물이다. 자기 자신과 더불어 우리 안에 갇혀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작가는 파트타임 직업이 아니다. 하루 24시간 내내 일에 얽매여야 한다.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기회도 없이 늘 경계 상태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갑자기 머릿속에 소설을 풍성하게 해줄 수 있는 표현, 등장 인물들에게 입체감을 부여해줄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경우 지체없이 메모해두어야 하니까.
작가는 글을 쓰는 동안에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 있는 동안 작가는 여러 사람의 운명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창조주가 되는 것이다.

존 가드너 (John Gardner)
…… 훌륭한 작가들은 소설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것들에 관해 ‘말해줄’ 수 있다. 단 하나, 인물의 감정만 빼고. 두려움, 사랑, 흥분, 의심, 당혹, 절망은 행동이나 몸짓, 대화, 혹은 설정에 대한 물리적 반응 같은 ‘사건’의 형태로 주어질 때만 비로소 진짜 현실이 된다. 디테일은 소설의 생명선이다.
…… 진정한 소설가 되기는, 그 일에 모든 것을 건 사람이 아니라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모든 것을 건 사람이라면, 아무리 어렵더라도 다른 일보다 이게 쉽다.
어떤 일에 ‘미친다’는 것은 구원일 수도 있고 죽음일 수도 있다. 진정한 소설가라면 소설에 사로잡힌 동시에 무심해져야만 한다.
반 고흐는 살아생전에 그림을 단 한 점도 팔지 못했다. 에드거 앨런 포는 거의 팔리지 않는 시와 소설에 끝내 매달렸다.
소설 쓰기에 사로잡히되, 자살이 아니라 굉장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로 떠밀릴 만큼만, 판매나 대중의 이해 여부 따위에는 무심해질 만큼만 사로잡혀야 한다. 사로잡힘은 소설가 자신에게도 그의 친구들에게도 곤혹스러운 상황이지만, 이를 겪지 않고 성공하는 소설가는 있을 수 없다.
작가는 언제나 자기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대해 쓸 때 가장 잘 쓴다. 다른 그 무엇보다 (글쓰기 빼고) 철학에 관심이 가는 작가라면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좋은 영화를 찾아보고,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열심히 경청하면 정교하고 독창적인 이야기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소박한 작가, 다시 말해 대중 작가 (folk writer)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삶에 대한 진실성만이 아니라 영민함과 작품성으로 독자를 압도하는 대작가가 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좋은 교육을 통해 내면 깊숙이 셰익스피어 희곡의 수려함을, 제임스 조이스나 안드레이 밸리나 토마스 만의 특이한 천재성을 이해하는 작가와, 오로지 ‘세상’을 아는, 여기에 보탤 수 있는 지식이란 동네 잡화점이나 북클럽이나 월든북스 (서점 체인) 지점에서 손에 넣을 수 있는 대중 서적 정도인 작가는 똑같이 총명하다 해도 설명하기 어려운 격차를 지닌다. 교육을 받지 못한 작가는 우선 자신만의 시공간에 갇혀 있다.
그러니 마치 망치, 칼, 드릴, 집게 같은 투박한 연장 몇 개 밖에 가진 게 없는 목수와도 같다. 다른 시공간에서 사용하는 정교한 도구들에 대해 전혀 모르는 탓에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는 최선의 방식이 무엇이 되어야 할까 혼자 궁리해도 그저 두어 가지 방법을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매우 훌륭한 소설가들을 포함해 대다수 소설가는 절대 예술로 생계를 해결하지 못한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여러분이 나의 작품을 풍요롭게 해준다고 생각해요. 경험이 노력을 요하는 일이듯이 책 읽기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이잖아요. 내가 뭔가를 읽을 때마다 내가 읽은 그것은 얼마간 바뀐답니다. 내가 뭔가를 쓰면 그것은 각 독자들에 의해 매번 바뀌지요. 모든 새로운 경험은 책을 풍요롭게 해요. 여러분들도 그걸 알 거예요. 나는 지금 성경을 생각하고 있는데, 수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그게 얼마나 풍요로워졌는지 여러분도 알 수 있을 거예요. 햄릿은 그를 창조한 셰익스피어가 생각했던 것보다 콜리지 이후에 훨씬 더 풍요로운 인물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나 자신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사상가가 아니라는 걸 잘 알아요. 여러 가지 것에 매우 어리둥절해한다는 의미에서 생각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말이에요. 나는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애를 쓰고, 보통은 다른 작가들로 하여금 나를 대신해서 생각하게 함으로써 그런 이해와 해석을 발견하게 된답니다. 다시 말해서 흄, 버클리, 쇼펜하우어, 브래들리, 윌리엄 제임스 그리고 그리스인들의 생각을 빌리는 거예요. 난 그런 생각들을 문학적 목적을 위해 사용해요. 나 자신을 무엇보다도 문학가라고 생각하지요. 나는 마침내 스페인어로 글을 쓰는 약간의 기술을 터득했어요. 그리 대단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내가 원하는 것을 그럭저럭 글로 표현할 수 있고, 상당히 듣기 좋은 가락으로 써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읽고,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많은 것을 그 이야기에 담아내지요. 이것은 내가 이야기 작가라는 것을 의미해요. 자신이 의도한 것만 쓰는 작가는 매우 빈약한 작가일 테니까요. 작가는 순수한 자세로 써야 해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하고 있는 게 자신의 시가 아닌 거예요.

어니스트 헤밍웨이
내가 알기로는 헤밍웨이의 장편소설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1926년), 「무기여 잘 있거라 Farewell to Arms」(1929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1940년) 등 세 편에 불과하다.
그런데 「무기여 잘 있거라」는 주인공의 아들이 사산아로 태어나고 연인 캐서린은 죽는다. 그 마지막 장면은 ‘그들을 쫓아내고 문을 닫고 전등을 꺼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조각상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나는 밖으로 나와 병원을 떠나 빗속을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 (김성곤 옮김, 시공사) 이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장면을 쓰는 데 헤밍웨이는 39번이나 고쳐 쓰고 나서야 만족했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을 쓰는 일이란 꼭 맞는 단어와 문장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그 부분을 쓰기 위해서 무려 47개의 다른 결말을 만들어냈다. 2012년 스크리브너사가 출간한 「무기여 잘 있거라」 신판에 실려있다. 다음은 그중에서 5개를 고른 것이다. (토니 로시터 지음,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글쓰기 비법」, 204~210면 참조)
(1) 그는 이 이야기에 속하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옛이야기의 결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공정하지는 않지만 으레 그런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죽음 외에는 끝이 없고 탄생은 시작일 뿐이다. (이 결말에서는 주인공 헨리의 아들이 살아서 태어나는데 여기서 ‘그’는 헨리의 아들을 가리킨다.)
(2) 마침내 나는 잠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깨어난 것을 보면 잠들었던 것이 틀림없다. 내가 깼을 때 열린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왔고 나는 비가 내린 뒤의 봄 아침 내음을 맡았다. 마당의 나무에 드리워진 햇빛이 눈에 들어왔고 한동안 늘 그랬던 듯했다.
(3) 문제는 그것에 대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신을 믿고 신을 사랑한다면 그것도 괜찮을 것이다.
(4) 결국 아무것도 기억조차 못 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걸 알고 있다.
(5)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다. 캐서린은 죽었고 당신도 죽을 것이고 나도 죽을 것이다. 그것만이 내가 약속할 수 있는 전부다.

올더스 헉슬리
(글 쓸 때 안내 자료의 일종으로 지도나 도표, 일람표 등을 사용한 적이 있으신지요?)
다루는 주제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읽긴 합니다. 지리책은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멋진 신세계」에서 다룬 영국 장면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뉴멕시코 쪽에 대해서는 엄청난 양을 읽어야 했습니다. 그 장소에 대한 온갖 종류의 스미스소니언 보고서를 읽고 나서 그곳을 상상해보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정작 그가 자료를 통해서 상상해본 장소에 처음 간 것은 작품을 쓰고 난 6년 뒤였다. 6년이 지난 1937년에 프리다 로렌스를 방문할 때에야 그곳에 처음 가봤습니다.

움베르토 에코
나는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도 소설을 쓰는 데 있어 글을 쓰는 작업은 나중에 한다. 먼저 책들을 읽고, 카드들을 작성하고, 등장인물들의 초상화와 장소의 지도들, 시간적 연쇄의 도식들을 그린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펜이나 컴퓨터로 하는데, 그것은 내가 있는 장소와 시간, 소설적 아이디어의 유형이나 기록하고 싶은 자료의 유형에 따라 달라진다.
다른 측면은, 소설의 틀 내에서 믿을 수 없고 절대적으로 허구적인 것처럼 보이는 실제 사실을 사용하는 것이다. 내 소설은 수없이 많은 실화와 실제 상황을 이용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제가 소위 허구의 소설에서 읽은 것보다 훨씬 더 낭만적이고 소설적이기조차 하기 때문이다. 역사소설은 실제 사건을 허구화한 것이 아니라 실제 역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허구이다. 나는 역사소설을 성장소설의 요소와 결합시키는 걸 좋아한다. 내 모든 소설에는 많은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배우고 괴로워하는 젊은 인물이 등장한다.
「푸코의 진자」에서 주인공 카소봉은 파리의 에펠탑 발치에서 자신의 마지막 밤을 보내는데, 그 구조물을 아래에서 바라보면서 마치 괴물 같은 존재로 생각하며 거기에 최면에 걸린 듯한 상태로 있게 된다. 이 구절을 쓰기 위해 나는 두 가지 일을 했다. 한편으로 나는 에펠탑 아래에서 며칠 밤을 보내며 그 ‘다리들’ 한 가운데에 선 채 아래에서 위쪽으로 모든 가능한 각도에서 살펴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에펠탑에 대한 모든 문학적 구절들, 특히 탑이 건축될 무렵에 쓰인 글들을 찾아보았다. 이 글들은 대부분 에펠탑에 분노하고 격분하고 있었고, 나의 주인공이 보고 느끼는 것은 산문이나 운문으로 된 그런 많은 텍스트들을 갖고 공들여 만든 콜라주이다.
「푸코의 진자」를 위해서는 이야기의 일부 주요 사건이 벌어지는 ‘기술 공예 박물관’에서 폐관 시간까지 며칠 저녁을 보냈다. 또한 성전 기사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그들 고위직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프랑스의 포레 도리앙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주인공 카소봉이 한밤중에 박물관에서 플라스 드 보스제까지, 그리고 에펠탑까지 파리를 가로질러 가는 장면을 묘사하기 위하여 나는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에 휴대용 녹음기를 들고 거리 이름들과 교차로들을 틀리지 않도록, 내가 무엇을 보았는가 나 자신에게 이야기하면서 며칠 밤을 보내기도 했다.
「전날의 섬」을 위해서는 물론 남태평양에, 내가 이야기하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지리적 장소에 가보았다. 하루의 다양한 시간에 바다와 하늘, 물고기들, 산호들의 색깔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또한 나는 그 당시 배들의 모형과 그림들에 대해 2~3년 동안 작업하였는데, 선실이나 다락방이 얼마나 컸는지, 어떻게 한 선실에서 다른 선실로 갈 수 있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책에서 약물에 관한 내용은 기본적으로 비유예요. 책임을 갖고 작업했어요. 아주 적극적으로 조사를 하고 속임수까지 써서 정보를 얻었어요. 많은 시간 실제로 사람들이랑 어울렸어요. 보스턴에는 재활시설이 열두 곳이나 있는데, 그중 세 곳에서 수백 시간을 보냈어요. 시설 내 휴게실에 앉아 있으면 갓 약물을 끊은 사람들이 남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제게 접근해요. 그들에게서 정보를 많이 얻었어요. 훨씬 더 긴 시간에 걸쳐 아주 은근한 방식으로요. 제가 특정한 인상을 만들어 내는 걸 꽤 잘하나 봐요. 전 헤로인 중독자 아니고 중독자였던 적도 없어요.

(새뮤얼 존슨의 전기를 쓴) 제임스 보즈웰
…… 자료를 모으고 생략된 부분을 채우고 서류 더미 속에서 자료를 찾는 데 얼마나 많은 노동이 드는지 자넨 상상도 못할 걸세.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당혹스럽고 짜증스러운지도 자넨 꿈에도 모르겠지. 자료를 정리하고 다듬는 것에 비하여 이런 사전작업은 아무것도 아니라네. 몇 번이나 포기할 생각을 했는지 몰라. 때때로 날짜 하나를 바로잡기 위해서 런던까지 단숨에 달려가야만 했어.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 누구도 나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난 사소한 부분을 수정하기 위해서 런던까지 갔지. 이런 나의 노력에 대해 그 누구도 칭찬하지 않겠지만 실수나 오류에 대해서 비난이 쏟아질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했어야만 했지.

옥타비아 버틀러
영감은 잊어버려라. 습관이 훨씬 더 믿을 만하다. 습관은 영감에 관계없이 당신을 지탱해줄 것이다. 습관은 이야기를 끝까지 쓰고 다듬는 데 도움을 주지만 영감은 그렇지 않다. 습관은 계속 쓰는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
스타일은 매우 단순한 문제다. 리듬이 전부다. 일단 리듬이 생기면, 작가는 잘못된 단어를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나처럼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가득 채워놓고도 아침 반나절이 지나도록 한자리에 앉아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단지 올바른 리듬을 찾지 못해서.
소설이 형편없어서 절망적임. 이런 걸 어떻게 잔뜩 설레기까지 하면서 쓸 수 있었는지 모르겠음. 어제까지는 이렇게 생각했음. 오늘은 다시 좋게 보임.

다이앤 애커먼
이제껏 내가 들은 최고의 조언은 “스스로 자신감을 꾸며내라”는 말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마다 불안과 공포가 밀려오기 마련이다. 훌륭한 작가와 예술가 중에는 작품 활동을 하는 내내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이 무수히 많다. 어찌 안 그럴 수 있을까? 예술에는 본질적으로 위험이 따른다. 그러니 쉽지는 않지만, 때로 스스로 자신감을 꾸며낼 필요가 있다.
나는 젊은 작가들에게 자신의 호기심과 열정을 따르라고 조언하고는 한다. 당신의 마음을 끈 것이라면 다른 이들의 마음도 끌 거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결국 당신은 자신이 열렬히 좋아하는 것에 평생을 바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처럼 쓰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당신만의 고유한 것을 찾아내라.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나는 저렇게가 아니라,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와 ‘저렇게’는, 비록 이것이 아주 이상하게 들릴 수 있긴 하지만, 확연히 서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데이비드 제임스 푸아상
내 인물들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 그들은 자신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거나 정말로 원하는 것을 주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삶에서 나는 내 속마음을 소매 끝에 두지만, 소설에서 나는 말하고 싶은 바를 제대로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인물들에게 끌린다.
작성일:2021-05-25 10:03:03 14.32.9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