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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제목

<유중원 대표 단편선>재판?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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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변호사
등록일
2016-08-05 12:59:00
조회수
1060
재판? 아니면?


악인은 착한 자를 노리고 죽이기를 꾀하지만 야훼께서 그 손에 버려 두지 않으시고 유죄선고 받지 않게 하신다.
― 구약성서


신부의 미사복처럼 또는 옛날 시골 장례식에서 남자 상주들이 입었던 검은 두루마기 상복처럼 생긴 거추장스러운 법복을 걸친 판사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들어왔다.
재판장은 자그마한 체구에 4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벌써 반쯤 머리가 벗겨졌고 권위를 가장하려는 듯 굵은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있다. 그는 괜히 안경테를 만지작거렸다.
그는 한껏 정중한 목소리로 말한다.
“피고인은 피고인이 틀림……”
피고인은 오랜 구속 때문에 점점 피로하고 무력해져서 얼굴에는 신경쇠약 증세까지 나타났다. 그래서 자신에게는 일생일대 중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재판은 물론이고 만사가 귀찮아서 실어증 환자처럼 좀처럼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뭐…… 뭐라…… 뭐라고요…… 여…… 여…… 예……?”
판사가 말했다. “검사는 기소를…… 절차가…… 형식이…… 중요…… 간단…… ”
검사는 처음 입장할 때는 활기차고 힘이 넘쳐 보였다. 그러나 입가에는 비웃는 미소가 감돈다.
검사가 혀짤배기 소리로 공소장을 낭독한다.
피고인 (그런데 피고인이 남자였나? 여자였나? 헷가리는데……) 은…… 새벽 무렵…… 원일 원룸 101호에서…… 피해자 (피해자가 남자인 건 확시하지…… 확시하다고. 사진에 남자처럼 보였거든. 그렇다면 이것들이 호모들이란 말인가? 아니면…… 뭐더라…… 라즈부언들인가?) 와 함께…… 케이브 TV에서 방영하는…… ‘여자의 저주’라는 영화르 보던 중 (그 영화의 제목도 헤가린다…… 여자의 저주? 남자의 저주? 엄마의 저주? 아빠의 저주? 운명의 저주? 죽음의 저주? 악마의 저주? 신의 저주?) 무슨 마인지 피해자의 마에 배신감을 느끼고 분한 나머지 (그렇지, 분하다고 했거든……) 평소 호신용으로 핸드백에 넣고 다니던 기이 15센티미터의 카으 꺼낸 다음 (카 기이가?) “네 놈이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느냐”라고 마하며 (그때, 네 년이? 그리고……? 혹시……?) 그 카로 피해자의 목과 가슴 부위 등 전신으 수십 차례나 찌르고…… (수십 차례라고? 설마? 그렇다면 수차례?) 피해자가 일어나 저항하다 바닥에 쓰러졌음에도 계속해서…… 피해자의 온몸을 다시 수십 회 찌러…… 피해자로 하여금 그 자리에서…… 실혀사로 사망에 이르게 하여 사해하였다. (그때 왜? 결정적으로 심장을 단 번에 찌르지 않고?)
판사가 말했다.
“피고인은……? 이…… 인…… 인정……?”
변호사가 지극히 사무적으로 말했다.
“그냥…… 부인……”
변호사는 졸리운 듯 어리벙벙한 얼굴 표정이다. 지난밤에 밤늦게까지 술을 퍼마시고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아니면 무슨 불길한 악몽이라도 꾸었는지? 그 악몽이란 게? 아침에 느지막하게 출근할 때 요즘 들어 더욱 보기 싫은 마누라가 잔소리 깨나 늘어놓았는지?
이때 다른 판사들 중 (판사는 세 명이었던 것 같다.) 하나는 졸리운 듯 연신 하품을 하며 어서 재판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눈치이고, 또 다른 판사는 스마트폰으로 게임에 너무 열중하여 얼굴에는 작은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재판장이 말했다.
“검사…… 증거……”
검사가 날카로운 칼날이 번쩍이는 칼을 들어 올렸다.
“…… 이거! 기억나겠지!”
갑자기 피해자 가족들로 보이는 몇 몇 방청객들이 흥분한 듯 술렁거렸다.
검사가 으르렁거렸다.
“이거루다…… 막…… 찌러…… 바보처럼 단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그때 피고인이 감고 있던 눈을 부릅떴고 검사에게 달려들었고 인정사정없이 검사의 뺨을 갈겼다. 그러고 나서 의기양양하게 피고인석으로 돌아왔다. 그는 법정을 휘젓고 다니면서 판사들과 변호사의 뺨도 실컷 때리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다. 방청석에서 요란한 박수소리가 들렸다.
완전히 대머리이고 얼굴이 주름투성이인 중년 남자가 주먹을 휘두르며 연거푸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외쳤다. “이건 재판이 아니야! 개판이라니까! 진짜 개판!” 여기저기서 “잘 했어, 잘 했다고. 속 시원하네, 속이 다……”라고 외치고 손뼉을 치며 호응하였다.
방청석이 벌집을 쑤신 듯 소란스러워졌다. 재판장이 법정의 질서를 회복하고 재판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인지 “조용…… 조용…… 제발…… 용서…… 용서……”하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외쳤다.
피고인은 여전히 씩씩거린다.
“개…… 개…… 개 같은…… 개 같은 자식……”
검사가 머쓱해서 피고인을 새삼스럽게 쳐다본다.
재판장이 말했다.
“변호사는…… 증거…… 동의……”
“부…… 부동…… 부동의……”
피고인이 외쳤다.
“야! 야! 다 인정…… 인정한다니까. 왜 칼을 가지고 와서…… 지…… 지랄 ― 이야!”
검사와 판사들과 변호사가 거의 동시에 말했다.
“죄…… 죄송……”
재판장이 말했다.
“재판을…… 마칩니다. 이렇게 힘들어서야! 당장 때려치우고 싶구만! 실기했어…… 실기를. 검사가…… 구형을……”
검사가 말했다.
“그렇지요. 시기했……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그러니까…… 구형은 무슨…… 그냥…… 알아서……”
변호사가 말했다.
“그렇지요…… 그냥 알아서…… 적당히…… 아니면…… 니 맘대로…… 관대하게……”
재판장이 말했다.
“피고인…… 마지막으로……”
피고인이 일어섰다.
“더…… 더러…… 더러워서……. 이게…… 무슨…… 무슨 재판…… 재판이라고……”

3주 후 선고기일이었다.
재판장이 말했다.
“피고인…… 피고인이 맞지요?”
피고인이 말했다.
“피고인……? 누가……? 아닌데요. 왜?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가요? 피고인은 여자…… 나는 남자…… 남자…… 보시다시피…… 뭐냐하면…… 거시기를…… 보여…… 줄까요……?”
판사들과 검사, 변호사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서로 네 탓이라고 하는 표정이었다.
피고인과 방청객들은 모두 너무 즐거운 나머지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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