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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제목

<유중원 대표 단편선> 김명성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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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변호사
등록일
2016-06-21 17:29:54
조회수
1215
김명성 의원


욕심보다 더 큰 죄는 없고 만족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은 없다.
― 노자

노인을 구두쇠로 만드는 것은 장차 돈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다. 이 악덕은 어느 편이냐 하면 노인의 연령과 체질이 낳은 결과이다. 그들은 젊은 시절에 쾌락을 좇고 장년기에는 야심을 좇는 똑같은 자연스러움에 의해 이 욕심에 빠져 있는 것이다. ― J. 라 브뤼예르

김명성 원장은 금년 82세이다. 1973년 충주에서 ‘김명성 외과의원’으로 개업하였다가 12년 전인 2003년에 ‘김명성 의원’으로 이름을 바꿔 계속 같은 자리에서 병원을 운영 중에 있다. 그는 대학병원에서 일반외과 수련의 과정을 마친 후 스텝으로 몇 년 간 더 근무하다가 그만 두고 고향에서 개원을 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2016년 초여름을 말한다) 김명성 의원에서 충주시는 물론이고 전국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대형 의료사고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워낙 큰 사건이어서 연일 신문과 TV에 보도되었고 그 병원은 결국 보건소에 의해 당분간 폐업 조치가 내려졌다.
보건소와 경찰서가 합동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 병원에서는 대량 납품으로 개당 100원 밖에 되지 않는 1회용 주사기를 내원한 환자들에게 수십 번 씩이나 반복 사용하면서 C형 간염 환자가 속출한 것이다.
보건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2013년부터 3년 반 동안 그 병원에서는 주로 비만치료용인 지방분해 주사와 피로회복용 영양제 주사를 집중적으로 처방하였는데 그 누적 환자 수가 26,000여명에 이르렀다. 질병관리본부가 이들 전부를 대상으로 부랴부랴 역학 조사에 나섰는데 채혈검사를 통해 C형과 B형 간염 감염 여부와 함께 에이즈 검사를 실시한 것이다. 그 결과 에이즈 감염자 5명, C형 간염 감염자 2,100명으로 집단 감염 사태가 밝혀진 것이다.
이 사건은 보건 당국이나 의료계는 물론이고 충주시와 전국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도대체 병원이라는 데서 어떻게? 이럴 수가?
그 중에서 김 원장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는 아직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에이즈 감염이라고 밝혀졌고, 그의 아내와 4명의 간호조무사들 역시 C형 간염 감염자였다. 그의 아내는 그때 다시 병원에 나와서 이런저런 업무를 지시하면서 사실상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집단 감염의 원인은 1회용 주사기를 사용 즉시 버리지 않고 계속 반복적으로 사용했고, 주사기에 남은 주사액을 버리지 않고 재사용했기 때문이었다.

김 원장은 2003년 갑작스런 뇌출혈로 대학병원에서 긴급수술을 받았지만 장애등급 2급 판정을 받았다. 혼자서 걸음을 잘 걷지 못할 정도였고 특히 수전증이 심했으며 이에 따라 다른 정상적인 거동도 어렵게 되자 운전수의 도움으로 출퇴근을 하였고 간호조무사 출신인 아내가 병원을 사실상 대신 운영했었다.
그래서 수술이 도저히 불가능 했으므로 외과의원에서 일반의원으로 전환한 것이다. 아내는 의사회가 주최하는 각종 행사나 특히 의사 연수 교육에 대리 출석 했으나 의사들은 김 원장이 고령인데다 한 때는 의사회 회장까지 역임했기 때문에 모른 척 눈감아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꾸준한 재활치료 끝에 3년쯤 지나자 눈에 띄게 건강이 호전되었다. 지팡이에 의지하긴 했지만 잘 걷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손떨림 증세도 많이 완화되었고 무엇보다도 우렁찬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그는 다시 의기양양해져서 팔방미인의 활동을 재개하였다.
그런데 2013년에 이르자 김 원장의 건강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자신의 나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병원에서 늦게까지 무리하게 진료를 지속했던 것이다.
그 해 이른 봄, 오랜만에 김 원장과는 대학 동창이고 내과의사였던 친구와 만나게 되었다.
그는 고향이 부산이었지만 대학병원 스텝으로 있을 당시 김 원장이 충주에는 좋은 내과의원이 없으니 여기에 와서 개업하면 큰돈을 벌 것이라고 장담해서 충주로 내려와서 개업했던 것이다. 그리고 김 원장이 먼저 의사회 회장을 했고 그 다음으로 이어서 그가 의사회장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내과의사는 65세가 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때까지 환자가 넘쳐나던 병원을 돌연 폐업하였다. 지금은 가끔 친구들과 바둑을 두고 골프를 치거나 여행을 다니고 세 명의 손자들과 유유자적하며 살고 있다.
내과의사와 김 원장은 퇴근 무렵 병원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내과의사가 오랜만에 그 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찾아왔던 것이다. 그 무렵 별로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다시 수전증 증세가 심하게 나타나서 청진기를 쥔 오른손이 덜덜 떨렸고 오래 전부터 스스로 치매 증상을 의심해서 치매 약까지 복용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그래서 주위에서 이제 연세가 있으시니까 그만 두시고 쉬시라고 해도 그럴 때마다 불같이 화를 내고 자신은 지금 멀쩡하고 환자를 진료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장담한다는 것이다.
그는 주위에 말했다고 한다. ‘내가 솔직히 말해서 손이 떨려서 외과 수술은 못하겠지만 다른 진료를 보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왜 그런 말이 떠도는지……’
내과의사가 말했다.
“건강은 어떤가? 그 후유증이 여전한가?”
“괜찮아, 괜찮다고. 뭐가 어때서……”
“다행이구먼. 우리 나이에는 건강이 최고지, 그렇지 않은가. 의사들이 의외로 자기 건강에는 무관심한 편이거든.”
“그렇지, 그렇다네.”
“그러나 말일세, 나이를 생각해 보게나. 재산도 충분히 있겠다, 뭐가 문제인가? 다시 말하면 폐업을 하고 나서 남은 인생을 실컷 즐기라는 걸세……”

김명성 원장이 처음 개업할 당시는 정말 굉장했다. 그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의 모든 동창생들과 동문들에게 개업 인사장을 돌렸고 충주 시내의 모든 광고판에는 개업광고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택시기사들과 버스 회사에 리베이트를 주면서 교통사고가 나면 즉시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도록 만반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 바쁜 와중에도 로타리 클럽이나 각종 친목회 모임, 동창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마당발이었다.
그래서 병원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 당시 20개의 입원실에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마취 전문 간호사, 물리치료사, 엑스레이 기사, 사무장, 식당 종업원 등 16명의 직원을 거느리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돈을 갈퀴로 긁어모은 것이다. 몇 년 만에 대지 300평에 5층 건물을 지어서 병원을 이전하였고 그 후에도 충주시 외곽의 과수원 땅 5만 평을 사들였고 수안보에 있는 3층 온천탕 건물을 사들였다.
지금 김 원장의 재산은 부동산의 경우 5층 빌딩이 30억 원, 충주시 연수동 쪽에 뉴타운이 개발되면서 지목이 밭에서 대지로 변경되어 땅값이 몇 배로 뛴 과수원 땅이 100억 원대, 수안보 온천탕 건물 10억 원, 김 원장이 현재 살고 있는 연수동 60평 아파트 5억 원, 기타 나대지 200평 10억 원 등이 있다. 그러나 현금성 자산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는데 그는 모두 오직 은행에 예금으로만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그 많은 재산 말일세. 지금부터라도 자식들에게 물려줄 준비를 하란 말일세. 이미 늦었을 수도 있어. 평생 모은 것을 다 국가에 세금으로 바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벌써부터 그럴 수는 없는 거라네. 그건 내가 당장 죽는 걸 전제로 하는 건데 난 죽지 않아. 10년 이상은 더 살 거야. 그래서 천천히 해도 상관없어. 지금부터 골치 썩을 필요는 없다네.”
“병의 종류는 너무 많고 같은 환자라도 치료 경과가 많은 차이가 있지 않은가. 새로운 첨단 의학지식이 매일처럼 쏟아지고 있다네. 그걸 늙은 김 원장은 감당할 수 없을 걸세. 꼭 병원을 계속하고 싶으면 젊은 의사를 고용하게. 그러고 나서 뒷방에서 유유자적 쉬란 말일세.”
“그래서? 내가 지금 허튼 소릴 하는 것으로 들리는가? 이렇게 멀쩡한데 말이야. 요즈음 젊은 의사란 게 도대체 믿을 수가 없으니 맡겨둘 수가 없는 거야. 그리고 충주에서 데리고 있자면 한 달에 적어도 천만 원을 줘야 할 거라네. 그래도 금방 도망갈 거고.”
“허허……고집이 대단하구만. 우리 나이면 밤새 안녕 못 할 수도 있는 게야. 급사할 수 있단 말일세. 방금까지 멀쩡하다가 어느 순간 훅 가버리는 거지.”
“정 원장과 나는 세상을 보는 눈이 이렇게 다르니? 늙어가는 사람만큼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는 거라네. 하지만 노인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네.
내 말을 들어 보게나. 의사는 대표적인 전문직이야. 그러니까 정년이 따로 없는 거지. 한 번 의사가 되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죽을 때까지 의사를 할 수 있는 거야. 그리고 말일세. 나이 먹은 의사들은 어린이나 젊은 사람들보다 주로 비슷한 연령대의 환자를 진료하게 되지. 나이 먹은 의사의 진료 방식에 대해서는 환자가 알아서 판단하는 거야. 그러니까 환자의 선택을 침해할 수는 없다는 말일세. 그렇지 않은가?”
보건소는 최근 김명성 원장의 아내에 대해 무면허 의료행위를 이유로 김 원장에 대해서는 약물 규정에 따라 경찰에 고발 조치하였다. 또한 주사기 등 일회용 의료품을 재사용했을 경우 현행 의료법 상 자격정지 1개월을 제외한 처벌 조항이 따로 없어 무면허 의료행위로 고발했다. 주사기 재사용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식 밖의 일이지만 이를 처벌할 마땅한 규정이 없었던 것이다. 보건소 측이 무면허 의료 행위 지시와 그 책임을 들어 김 원장 부부를 고발한 것은 이 같은 법적 허점 때문이었다.
한 편, 대한의사협회는 김 원장의 주사기 재사용과 아내의 대리 의료 행위를 심각한 범죄 행위로 규정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보건복지부에 면허 취소를 의뢰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세상은 어느새 바뀌었다. 옛날이 그리웠다. 옛날에는 수술 실수로 환자가 죽어도 쉬쉬하면서 사무장이 대충 돈으로 해결하였다. 그 무렵에는 의사회 회장과 경찰서의 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었고, 뿐만 아니라 지청의 검사들과도 가끔 식사를 하고 술대접을 하였기 때문에 큰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무마될 수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병원의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들을 진료실에서 또는 빈 입원실에서 성추행을 하거나 거의 반 강제적으로 (지금의 기준에서 보면 당연히 성폭행에 해당하겠지만) 성관계를 가졌지만 도대체 문제될 수가 없었다. 병원 원장으로서 권위를 내세워서 돈 몇 푼 쥐어주고 거뜬히 해결했던 것이다. 그까짓 감염이 무슨 대수라고 이 난리란 말인가. 지들이 뭘 안다고. 약을 간단히 처방하면 될 것 아닌가.

김 원장은 두 번 이혼하였다. 첫 부인한테서 일남 일녀의 자식이 있는데 그 아들은 서울 압구정동에서 성형외과 개업을 하여 진료 중에 있으나 경쟁이 심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딸은 사립대 미대를 나온 무명화가로 외과 의사였던 남편과 이혼하고 지금은 중학생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둘 째 부인은 그 병원의 간호사였는데 아들만 둘이 있다. 모두 서른이 넘었지만 결혼도 하지 않고 백수건달로 지내고 있다. 현재 셋 째 부인과는 고등학생인 아들 하나가 있다.
김 원장은 충격을 받고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내가 지금 죽을 거라고. 왜, 허망하게 죽어야 한단 말인가? 어림없는 소리야. 10년은 더 살 거라고. 끄덕없다고. 에이즈도 날 어떻게 할 수는 없어. 그러니까 증상이 없는 거지. 지금도 마음만은 청춘인 걸. 걔 말이야, 얼굴은 어른거리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군. 정말 죽여줬는데…… 또 걔는 어떻고……
그러나 그는 그 충격 속에서 2003년에 이어 두 번째 뇌출혈이 왔고 증세가 급속히 악화되어 갔으며 이제 거의 의식을 잃었다. 4평 남짓한 1인용 병실에서 영양공급 튜브를 달고 있는 생명유지장치에 의지해서 환자용 특수 침대에 누워있다.
자식들이나 처는 이제 그가 회복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빨리 죽기를 내심 바란다. 그러므로 그가 얼마나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지, 그 고통에서 하루빨리 해방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전혀 관심이 없다. 누구하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생각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거야. 살아있는지 이미 죽은 건지. 끝났다고, 끝났어.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죽으려면 빨리 죽으라고. 병원비로 재산을 축내지 말고. 진즉 재산을 정리해 놓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평생을 살 것처럼 거들먹거리더만.
전처 자식들과 현재 부인 사이에는 그 많은 재산을 둘러싸고 서로 눈치를 보면서 여차하면 소송도 불사할 태세이다.

C형 간염은 B형 간염과 달리 백신이 없는 질환이다. 게다가 C형 간염에 걸릴 경우 약 15퍼센트 정도는 급성 증상을 보이지만 나머지 대부분 환자들은 만성 보균자가 되면서 이 가운데 상당수가 간경화 등 합병증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의들은 ‘만성 질환자의 일부는 간암으로까지 진행될 수 있는 무서운 질환이 C형 간염’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의료과실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서울 서초동에 있는 로펌은 재빨리 대응하였다. 노련한 사무장 4명을 풀어서 피해를 입은 환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해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그 로펌에서는 우선 김 원장의 모든 재산, 그러니까 토지와 건물,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는 물론이고 은행의 예금구좌까지 샅샅이 뒤져서 가압류를 한 후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는데 총 청구 금액이 무려 350억 원이 넘었다.
작성일:2016-06-21 17:29:54 121.135.238.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