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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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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대표 단편선> 라이언 킹 lion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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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원 변호사
등록일
2016-08-30 17:32:13
조회수
1081
라이언 킹 Lion King





탄자니아에서 세렝게티 Serengeti 평원은 동북쪽으로는 롤리온도 사냥 제한구역이 있고 동남쪽으로는 응고롱고로 자연보호 구역이 있으며 서북쪽으로는 빅토리아 호와 그루메티 사냥금지 구역, 이코롱고 사냥금지 구역과 접해 있고 국경을 넘으면 케냐의 마사이마라 국립 보호구역과 접해 있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광대한 초원에는 키가 큰 코끼리 풀이 자라고 있고, 2~4미터 높이의 둥근 둔덕으로 되어 있는 흰개미들의 오래된 집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고, 우산아카시아 나무는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그리고 강의 유역 계곡에는 녹색의 작은 숲이 있다. 거기서는 황금빛 햇살이 초록 나뭇잎 사이로 빛나고 방울새들이 맴돌며 시끄럽게 지저귄다.

그 평원에는 마사이 족이 목축을 하며 살고 있다. 세렝게티란 이름은 ‘끝없는 평원’을 뜻하는 마사이 족의 말 ‘시린게트’에서 유래한 것이다. 세렝게티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독립된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곳은 동물들이 지구의 모든 평원을 지배했던 아득한 옛날을 방불케 한다. 그러므로 세렝게티는 위대하고, 행복하고, 불공정하고, 잔인하고, 참담했다.

세렝게티에서 죽음은 언제나 가까이 있다. 삶과 죽음의 땅. 삶의 가장 원초적인 현장. 땅에서는 피비린내가 난다. 맹수와 먹잇감이 쫓고 쫓기며 죽음의 군무를 추고 있는 곳이다.

사자들은 떼로 덤벼들면서 지친 먹잇감이 피로에 지쳐 발을 헛디뎌 휘청거릴 때를 노린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큰 육식동물.

백수 百獸 들의 왕.

성서에 자주 나오는 사자 ― 사자의 입에서 저를 구해주소서. (시편 22:22), 정말 경계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키려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베드로의 첫 번째 서한 5:8), 울지 마라. 보아라, 유다 부족에서 나온 사자를. 곧 다윗의 뿌리가 승리하여 일곱 개의 봉인을 뜯어내고 두루마리를 펴게 되리라. (요한계시록 5:5)



세렝게티는 동물의 천국이다. 그곳에서는 130만 마리가 넘는 긴 얼굴에 수염이 나고 초승달 모양의 뿔이 달린 검은 꼬리 누 영양과 헤아리기조차 불가능한 아프리카 찌르레기가 연례 이동을 한다. 매년 6월쯤 남동부의 초원이 건조해지면 아직 물이 풍부하고 푸른 풀이 자라고 있는 북쪽으로 간다. 그리고 건기(6~10월)가 끝나고 다시 우기가 시작되면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렇지만 그곳에는 철 따라 이동하는 동물들 외에 사슴, 토피, 리드벅, 임팔라, 물소, 흑멧돼지 같이 비교적 이동거리가 짧은 초식동물들도 도처에서 풀을 뜯고 있다.

연례행사처럼 일어나는 발굽 동물들의 대이동.

엄청난 수의 누 영양, 얼룩말, 가젤 영양이 우기 뒤에 새로 자란 풀을 뜯기 위해 철 따라 떼 지어 이동하는 것이다. 그들은 떼를 지어 입과 코에서 괴상한 신음 소리를 내며 발로 땅을 차기도 하며 아주 천천히 나아간다.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며 머리를 기계적으로 끄덕이고 풀을 뜯고 움직인다. 그리고 가끔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그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아주 옛날 까마득한 태초의 정적이었다.

그러니까 건기에는 비가 그치고 강이 마르면서 초목이 누렇게 말라 비틀어져 발밑에서 바스러진다. 이때가 되면 녀석들은 푸른 풀과 물을 찾아서 지축을 울리는 우레 같은 발굽소리를 내면서 북쪽 케냐의 마사이마라 평원으로 대이동을 감행한다. 마라 강에 득실거리는 그 무시무시한 나일 악어 떼들이 그들이 힘겹게 헤엄쳐 강을 건너기를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동물들이 본래의 익숙한 서식지에서 또 다른 낯선 서식지로 먼 여행을 하는 이유는 먹을 것을 찾아서, 짝짓기를 하여 자손을 번식하고 새끼를 키우기 위해서 또는 생존 그 자체를 위해서이다. 그들은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더듬어 무작정 출발하고 그러고 나서 다시금 본능적 감각에 의해 기억을 재생시킨다. 그들은 원대한 목적의식이 있는 것처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방향 감각을 가지고, 이동 중에 부딪히는 온갖 종류의 난관들을 극복하면서, 수많은 무리가 우왕좌왕하지 않고 한꺼번에 그 머나먼 길을 이동하는 것이다. 그들의 대이동은 타고난 본능과 대담한 결단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들은 세렝게티에서 마라 강을 건너고 국경을 넘어 마사이마라까지 걸어간다. 그들이 지나가면 길이 생긴다. 땅에는 원래 길이 없었다. 하지만 많이 오가면 길이 생긴다. 길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건축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인 주식회사 공간의 상무였고 사막 여행가였던 김규현은 2000년 여름 사하라 남쪽을 횡단하던 중 길을 잃고 탈수증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죽었다.

(그의 사하라 여행과 죽음의 과정은 장편소설 ‘사하라’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김규현은 그때 하염없이 생각했다.

세렝게티의 늙은 수사자가 멀리 여기까지 와서 시체를 먹어 치운다면, 그건 차라리 잘 된 일이야. 나는 외톨이 늙은 수사자에게 언제든지 동류의식을 느끼고 있으니까……. 그리고 모든 생명체들이 폭포수처럼 꿈틀대는 대초원을 잊을 수는 없지. 그 광활하고 장엄한 광경이란……. 해질녘의 대초원이란 마치 꿈에서 보는 것처럼 거의 추상적이었지. 그것은 그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주절거리고 있었던 거야. 그건, 지금 돌이켜보면 장엄한 음악이었으니 언어로 번역하기는 불가능했던 거야. 다시 세렝게티에 가볼 수 있을런지? 지금 기약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데 백수의 왕인 사자도 척박한 사하라에서는 도저히 견디지 못한다. 동부 아프리카의 세렝게티 평원이나 마사이마라 평원은 사하라와는 몇천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져 있다. 세렝게티의 사자들은 건기가 되어 먹잇감들이 북쪽으로 대이동을 하고 나면 텅 빈 허허벌판에서 몹시 굶주리게 된다. 건기에는 누구나 힘들다. 그때는 사자들의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진다. 반면에 마사이마라의 굶주린 사자 가족들은 탄자니아의 세렝게티에서 부터 영양가 있는 푸른 풀을 찾아서 이동해 온 수많은 누, 얼룩말, 가젤 무리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통과하기를 목을 길게 뺀 채 눈이 빠지게 기다린다.



우리가 생명체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순간부터 그 대상은 주체성을 부여받으므로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된다. 원래 타자는 무아의 존재가 아니라 인간처럼 자아를 가진 존재다. 불교에서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불교는 ‘살생하지 말라’고 말한다. 불교의 계율 중 하나는 살생계 殺生戒 이다. (그러나 십계명은 ‘살인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는 그 순간부터 우리 속으로 들어오게 되므로 더 이상 타자가 아니다. 우리와 상대는 교대로 발신자가 되고 수신자가 되므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된다.

우리는 검은 갈기가 무성한 그 늠름한 수사자를 라이언 킹이라고 부르자. 그는 왕의 자격이 충분하다. 그는 적어도 죽을 고비를 두 세 번은 넘겼다. 그는 혼자서 다른 사자 무리의 기습적인 공격을 어렵사리 방어했고 그때 입은 가슴 부위 상처 감염으로 인한 생사의 고비에서 살아남았다. 그때 강가 모래언덕에 며칠 동안이나 죽은 듯이 누워 있으면서 생사의 기로를 헤매였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임기응변에 뛰어나고 끈기가 있으며 왕이 갖춰야 할 자질인 힘과 용기, 아량, 관대함을 갖추고 있다.

그는 왕이다.

그는 다른 수사자들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세고 가장 공격적이다. 우아하고 기품이 있다. 건강함과 강인함을 나타내는 짙은 검은 갈기는 암사자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고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수사자들에게는 엄중한 경고의 신호가 되었다.

사자 무리는 (8~12살쯤 되는) 다 자란 수사자 한두 마리가 무리를 이끄는 게 보통이다. 라이언 킹의 입 주위에는 이른바 사자의 지문이라고 할 수 있는 독특한 무늬의 검은 점이 여기저기 박혀 있고 윤기가 도는 회갈색 털, 움푹 들어간 가슴, 골이 져 있는 어깨 근육 등 세렝게티의 수사자 중에서 단연 가장 잘생겼다. 떠오르는 황금빛 태양에 비친 그의 얼굴에는 삶의 지혜를 표상하는 크고 작은 상처가 여러 군데 나 있다. 코에는 깊숙이 베인 상처가 있었고 콧등은 살짝 부어올라 굳어 있다.

그리고 바람에 휘날리는 무성한 짙은 색 갈기란……? 고양잇과 동물 중에서 왜 유독 수사자에게만 갈기가 있는 것일까? 길고 무성한 갈기는 수사자를 위풍당당하게 보이게 한다. 사자들은 갈기의 색깔이 진하면 힘이 세고 연하면 약하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갈기가 무성할수록 힘이 더 세다. 그러므로 갈기의 용도란 적수에게는 ‘나는 힘이 세지, 네 놈이 집적거릴 상대가 아니야. 다시 말하지만…… 섣부른 짓은 하는 게 아니야.’라고 보여주는 것이고, 암놈에게는 ‘나에게 오라고, 어서 오라고. 그대의 그윽한 향기가 바람결에 실려 오네. 나는 당신의 부드러운 움직임에 얼이 빠져버렸네.’라고 보여주는 것이다.

라이언 킹은 움직일 때마다 근육이 파도처럼 출렁인다. 그의 동작 하나하나는 대단한 위엄이 있었고 확신에 차 있었고 목표가 뚜렷했다. 그는 여기저기에 잠시 멈춰 서서 이마를 나무 둥지에 부비고 다시 땅을 긁고 오줌을 뿌려서 냄새로 영역을 표시했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행위였다. 그는 자기 영역에서 느릿느릿 걸어서 바스락 소리조차 내지 않고 사바나의 덤불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가끔 심장에서 울려 나오는 쉰 기침 소리를 내고 그 다음에는 소리를 한껏 높여 위엄 있게 으르렁거렸다. 음량이 엄청나기도 했지만 소리 자체가 깊고 거칠었다. 백수의 왕이 가진 원초적인 힘과 자신감, 위협이 가득 담긴 소리였다.

이 지역은 내가 지배하는 왕국이고 나는 왕이라고 주위에 경고하는 것이다.

그는 그가 지배하는 사자 무리 안에서 존경을 받고 있다. 그리고 왕으로서 특권을 가지고 있다. 그가 낮게 으르렁대며 먹잇감을 포식하는 동안 무리의 다른 암사자들과 새끼들은 근처에 물러서서 차례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영역은 세렝게티 북쪽에 있는, 누 영양과 가젤, 얼룩말 같은 먹이동물들이 물을 마시기 위해서 모여드는 강의 합류 지점이다. 라이언 킹은 이곳에서 중간 규모인 암사자 8마리와 새끼 사자 11마리로 구성된 거대 프라이드 pride (사자들의 공동체) 를 다스리고 있다.

그는 다른 프라이드 출신으로 떠돌이 수사자 생활을 하면서 온갖 고난을 겪었고 그러면서 힘을 길렀고 그리고 이 무리의 늙은 수사자를 공격해서 무참히 패배시켰다. 척추동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결투 의식. 이러한 결투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약자에게 너무 큰 상처를 입히지 않으면서 누가 강자인지를 판가름하는 것이다. 그러나 백수의 왕들의 결투란 의례적일 수가 없다. 너무 격렬해서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사자의 일생에서 라이벌 수컷과의 대결은 일생일대의 큰 사건이다. 성급한 행동은 중상을 입거나 죽음까지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담해야지만 또한 신중해야 한다.

새로 무리를 장악한 라이언 킹은 새끼 사자를 모두 죽이고 번식을 새로 시작했다. 그는 에스트로겐이 넘쳐나는 발정기에 들어선 암컷들이 애교스럽게 꼬리를 칠 때 한없이 즐거웠다. 그는 사랑을 나누면서 환희에 차서 히죽히죽 웃었고 너무 사랑스러워서 암컷의 목덜미를 자근자근 깨물며 가볍게 으르렁거렸다. 그는 거뜬히 8마리의 암사자를 차례로 상대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미가 서로 다른 새끼 사자들이 거의 같은 시기에 태어났다. 암사자들이 무리 지어 사는 이유가 힘을 합쳐 사냥을 하거나 죽음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새끼를 보호하고 가장 좋은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렇게 되면 암사자들이 양육 집단을 형성해 자기 새끼는 물론 남의 새끼에게도 젖을 먹이고 보호한다. 이런 공동 보육은 그 자체로 효율적이기도 하지만 무리의 암컷들이 친족관계를 이루고 있어서 가족적 유대감이 깊게 형성되는 것이다.



‘고양이는 목숨이 아홉개’라는 말이 있을 만큼 목숨이 질긴 동물이다. 그러나 대형 고양잇과 동물인 사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냉혹한 세렝게티에서 사자의 삶은 힘겹고 불확실하다. 하지만 모든 생물체는 한 번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수명이 짧기로는 지구상 최고의 포식자인 사자나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동물이나 다를 게 없다. 다 자란 수사자는 운이 좋고 명이 질기면 야생에서 12~14살까지 장수할 수 있다. 반면에 암사자는 수명이 더 길어서 16~18살까지 살 수 있다. 그러나 갓 태어난 새끼의 수명은 훨씬 더 짧다. 새끼들의 절반이 두 살을 넘기지 못한다. 다 자랄 때까지 살아남는다 해도 제명에 고이 죽는다는 보장이 없다.

사자들은 대부분 서로 싸우다 죽는다. 그래서 사자들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격렬한 싸움에 의한 죽음은 ‘자연사’의 범주에 포함된다. 자연 상태에서 사자의 가장 주된 사망 원인은 다른 사자와 싸움인 것이다. 먹이, 영역, 성공적인 번식, 생존을 위해 다투다가 생긴 상처들이 훈장처럼 얼굴과 몸에 새겨 있다. 자연 상태에서 가벼운 상처는 저절로 아문다. 반면에 운이 나쁘면 싸움에 진 사자는 치열하게 싸우다 즉석에서 죽거나 피를 흘리며 불구가 돼 절뚝거리며 도망치는데 결국은 세균 감염이나 굶주림으로 서서히 죽게 된다. 그러므로 사자에게 최대의 적은 사자다.

사자들이 무리 지어 생활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호랑이도 퓨마도 혼자서 산다. 고양잇과 동물 중에서 무리를 짓고 연대해서 사는 동물은 사자가 유일하다. 다른 고양잇과 동물들에게는 없는 사회적 행동이 사자에게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물소나 기린처럼 덩치가 큰 동물을 사냥하는 데 필요해서 적응한 것이고 (먹잇감 한 마리가 잡힐 확률은 그것을 쫓는 데 가담한 사자의 수만큼 증가한다), 어린 새끼들을 잘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고, 영역 다툼에 꼭 필요해서이다. 영역을 지키는 일은 막중하다. 그래서 가장 살기 좋은 영역, 즉 강물이 합류해 먹이동물이 몰려드는 곳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사자들은 뭉치게 된다. 그렇게 귀하고 드문 최적의 서식지를 독차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자 무리들이 하나로 뭉쳐 동아리를 이루는 것이다.

사자들은 사냥을 하지 않을 때는 하루 종일 누워서 빈둥거린다. 사냥은 배고플 때만 가끔 한다. 사자들에게는 달빛이 없어 가장 캄캄할 때가 최적의 사냥 시간이다. 밤에는 녀석들의 밤눈이 밝아서 먹이동물보다 더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바나에서 하는 일 없이 덤불 속에서 꼬리로 파리나 쫓으며 빈둥거리고 있는 녀석들을 발견할 수 있다. 사자들은 주로 이렇게 시간을 보낸다. 라이언 킹의 영역에서 정오쯤이면 기온은 38도까지 치솟고 간혹 더 올라갈 때도 있다. 더울 때 사자 무리는 나무 그늘 아래서 다리를 뻗은 채 벌렁 드러누워서 끊임없이 헐떡거린다.



사자는 하이에나를 극도로 싫어한다. 먹잇감을 두고 치열하게 양보 없는 싸움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사자는 하이에나를 만나면 사납게 공격해서 물어 죽이고 하이에나는 사자의 새끼를 만나면 역시 그렇게 한다.

영화 ‘라이언 킹’에서 하이에나는 맹목적으로 집단행동을 하고 군침이나 질질 흘리고 지저분하고 어리석은 침입자로 묘사되었다.

큰 포식동물이 먹다 남긴 것으로 연명하는 도둑이나 청소부.

하이에나에게는 매우 억울한 평판이다. 왜냐하면 동부 아프리카에서는 사자가 하이에나의 먹이를 빼앗는 경우를 훨씬 더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이에나는 고르지 않은 털과 균형이 안 잡힌 몸매를 갖고 있다. 게다가 암놈의 생식기가 수놈의 생식기와 닮은 것이 우스꽝스럽다. 이 때문에 자웅동체라는 오해가 생겼다. 하이에나는 못 먹는 게 거의 없다. 마사이족은 시체를 숲에 방치하여 하이에나가 먹어 치우게 한다. 하이에나는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하다. 청소부 하이에나는 엄청난 양의 사체를 먹어서 치워 버리기 때문이다. 하이에나는 다음 먹이를 언제 얻을지 모르기 때문에 기회 있을 때마다 배를 가득 채운다.

마라 강 물속에서는 하마들이 물을 내뿜으며 굼벵이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저 멀리로는 코끼리 무리가 보였다. 쫓기는 가젤은 이제 녹초가 되었지만 녀석을 쫓는 얼룩하이에나 무리는 여전히 끄떡없다. 마지막으로 전속력을 낸 포식동물은 비틀거리는 먹잇감에 달려들어 쓰러뜨린 다음 먼저 내장을 꺼낸다. 하이에나들의 끙끙대는 소리, 낄낄대는 소리, 길게 울부짖는 소리,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하이에나가 게걸스레 먹잇감을 뜯어 먹으면서 내는 소리는 사자에게 도저히 참기 어려운 매혹적인 유혹이다. 하이에나를 쫓아버리면 먹이를 독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사자의 울부짖는 소리가 세렝게티 사바나에 울려 퍼진다. 라이언 킹은 황갈색 눈을 하이에나들에게서 떼지 않은 채 살과 피 냄새를 맡으려는 듯 콧구멍을 씰룩거리며 다가갔다. 하이에나들이 먹이를 버리고 달아나자 라이언 킹이 가젤을 가로챈다. 사냥꾼은 낙담한다. 그리고 억울해서 떠나지 못하고 근처를 슬금슬금 배회한다. 녀석들이 꼬리를 들어 올리고 귀는 쫑긋 세운 채 낮게 깔리는 으르렁거리는 소리로 공격 신호를 보내며 접근하지만, 라이언 킹은 꿈쩍도 안 한다.



사자들이 사냥을 하면 제일 먼저 불청객인 독수리들이 피 냄새를 맡고 벌써 하늘을 빙빙 돌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야생 육식조류 중에서도 이 독수리는 덩치가 유난히 크고 너무 흉물스럽게 생겼다. 이 독수리는 둥글게 구부린 더럽고 거친 깃털 속에 벌거숭이 대머리를 파묻고, 바위 꼭대기나 나무 우듬지에 무리지어 앉아 있다가, 사체 냄새를 맡으면 경쟁적으로 쏜살같이 사체에 내려온다.

세렝게티의 독수리들—아프리카흰등독수리, 루펠독수리, 주름민목독수리.

그때는 멀리서 독수리들의 움직임을 감지한 하이에나들까지 눈을 희번덕거리며 쫓아온다.



사자들에게 독수리는 하이에나와 마찬가지로 정말 귀찮은 존재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자들은 그들의 성화가 너무 귀찮아서 어느 정도 배를 채우면 역겨운 트림을 하며 물러난다.

하이에나와 독수리는 먹잇감을 앞에 두고 다투는 라이벌 사이이지만 둘은 서로 돕는 사이다. 독수리는 하이에나의 먹이를 먹고, 하이에나는 독수리 떼를 보고 가까운 곳에 짐승의 사체가 있는 걸 알아차린다. 독수리 떼의 방해를 받은 하이에나는 결국 고깃덩어리를 크게 잘라 내고는 조용한 곳을 찾아 떠났다.

독수리 중 몇 마리는 구부정한 자세로 먹잇감에 눈독을 들이며 진득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맹렬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다. 발톱을 세우고 곧추서서 서로 할퀴어대고 격렬히 다투며 짐짓 공격하는 시늉을 한다. 머리 위에는 만찬을 즐기려는 또 다른 녀석들이 끊임없이 날아와 머리를 낮추고 서둘러 내려앉느라 땅에서 뒹굴며 무리에 끼어든다.

먹잇감을 먹다가 잠시 멈춘 독수리의 부리에서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녀석의 목과 머리에는 깃털이 별로 없다. 덕분에 사체에 고개를 깊숙이 박아도 핏덩이와 내장, 오물이 덜 달라붙는다.

독수리는 탐욕과 끝없는 욕망의 상징으로 욕을 가장 많이 먹는 새다. 찰스 다윈도 독수리를 일컬어 역겹다면서 녀석의 민머리는 썩은 고기를 파먹기에 알맞은 형태라고 했다.

하이에나와 독수리.

네발짐승과 두발짐승은 확실히 서로를 존중한다. 하이에나는 독수리에 의존해 사체의 위치를 알아내고, 독수리는 사체를 신속히 해체하기 위해 하이에나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하이에나들이 넉넉히 배를 채우고 물러나면서 독수리들에게 와도 좋다는 신호를 보낸다. 이제 독수리들이 사체를 찢고, 삼키고, 엿보고, 실랑이를 벌이게 된다.

독수리가 없으면 악취를 풍기는 사체들이 더 오래 남아 있게 된다. 그 결과 곤충의 수가 급격히 불어나고 사람과 가축, 그리고 다른 야생동물들에게 질병이 번지게 된다. 독수리들은 누의 태반을 먹어치워 소들이 악성 카타르에 걸리지 않도록 방지한다. 또 몇 시간 안에 사체에게 살점을 발라먹고 뼈만 남김으로써 사람과 가축에게 눈병을 옮기는 곤충의 수를 억제한다.

그러니까 독수리들은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봉사를 하고 있다. 바로 동물의 사체를 신속히 처리하는 일이다. 세렝게티 생태계에 서식하거나 누 130만 마리가 케냐와 탄자니아 사이를 이동하는 기간 동안 이곳으로 날아오는 독수리들이 역사적으로 세렝게티의 모든 육식 포유동물보다 더 많은 고기를 소비했다.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라이언 킹은 어느덧 열세 살이 되어 많이 늙었다. 인간으로 치자면 80대의 노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왕국을 지배한 지도 6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동안 매번 젊은 수사자들의 목숨을 건 집요한 공격을 거뜬히 물리쳤다. 그러나 지금은 늙은 노인이 되어 만사가 귀찮은 표정이다. 그저 덤불 속 그늘에 누워서 고작 낮잠을 자는 게 전부다. 눈에는 어느덧 눈곱이 매달려 있다.

젊은 형제 수사자가 도전에 해왔다. 라이언 킹은 참혹하게 패배하여 세렝게티의 응가레 난유키 강 유역에 있는 자신의 왕국을 넘겨주어야만 했다.

젊은 형제 수사자가 언감생심 도전한 것이다. 젊은 수사자는 젊은 힘을 과시하며 경멸의 빛 가득한 위협적인 눈빛으로 쏘아 보았다. 그때 이미 패배는 예정되어 있었을까? 그러나 라이언 킹은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지상의 왕이었다. 왕의 권위와 체면을 생각해야 했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와 고통과 경악이 뒤섞여 있다. 그는 엄청난 두려움을 감추어야 한다. 그들의 선제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합세하여 인정사정 없이 덤벼들었다. 즉각적으로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두 마리가 왕을 둘러싸고 번갈아가며 뒤쪽에서 왕에게 달려들어 등뼈를 공격하고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날카로운 송곳니로 엉덩이를 물어뜯었다. 왕은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며 그 순간을 모면하려고 몸을 이리저리 휙 돌리고 으르렁거리며 필사적으로 저항하였다. 땅에서 피어오른 먼지가 휘날렸고 왕은 제자리에서 빙빙 돌며 울부짖었다. 두 마리는 수적 우세를 이용해서 계속 번갈아 뒤로 빠졌다가 다시금 달려들어 왕을 물어뜯었다. 왕의 뒷다리와 엉덩이에 커다란 상처 구멍이 생기면서 피가 줄줄 흘렀다. 왕은 슬금슬금 뒤돌아보며 떠났다. 당장은 목숨이 붙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패배자 신세였다.

젊은 형제 수사자는 무리의 암사자들을 마음대로 차지하기 시작했다. 라이언 킹을 아비로 둔 새끼 사자들은 자취를 감췄다. 무리를 정복한 수사자들에게 죽임을 당했거나 버려져서 굶어 죽었을 것이다. 또는 그냥 방치돼서 하이에나의 밥이 됐을 것이다. 이제 암사자들은 다시 교미기에 접어들었고 젊은 수사자들의 새끼가 태어날 것이다.

라이언 킹이 그의 전임 왕을 잔인하게 축출했듯이 젊은 수사자는 라이언 킹을 쫓아냈다.

이제부터 라이언 킹은 더 이상 왕이 아니다.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홀로 떠나야 하는 늙은 수사자는 외롭고, 처량하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외톨이가 되어 떠돌아야 하는 서글픈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발이 느린 늙은 수사자는 날렵한 먹잇감을 도저히 쫓아갈 수 없어서 사냥을 못하므로, 결국 굶어 죽게 된다. 그래서 톰슨가젤은 늙은 수사자 곁을 지나치면서도 두려워하기는커녕, 경멸의 눈초리로 힐끔힐끔 곁눈질한다.

그의 친자식인 어린 사자들을 위엄 있게 꾸짖고, 발정난 암사자를 따라다니며 치근거리던 행복한 시절은 먼 옛날 일이 되었다. 사바나의 가시덤불 속에서 더위에 지치고 목이 마른 늙은 수사자는 맥 빠진 쉰 목소리로 그르렁거리며 남겨 놓은 가족들을 그리워하였다.

라이언 킹은 스스로의 힘으로 결혼하고, 가족을 갖고, 남편이 되었고, 아버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왕국을 건설하였다. 그는 늙었지만 풍부한 경험으로 자신과 가족에게 닥친 온갖 위험을 이겨내고 그의 영역을 지켰다. 그러나 그도 나이 들고 쇠약해지고 병들었다. 그러므로 많은 날들을 지배해왔던 끊임없는 욕망, 열망, 원한, 감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라이언 킹은 죽음을 서두르지도 않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그저 무심하게 홀로 응가레 난유키 강 하류 삼각지 덤불 속에 누워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세상은 그를 까마득하게 잊어버릴 것이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바쁘게 돌아갈 것이다. 그가 떠나던 날, 뒤돌아보았을 때 암사자들은 남의 일처럼 무심하게 외면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울지 않았다. 그는 배신감을, 한없는 비애를, 삶의 무상함을 느꼈다. 세상은 돌고 돈다. 그것은 운명처럼 예측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자연법칙처럼 너무나 명백한 것이다. 지구는 삼각형이나 사각형이 아니고 원이기 때문이다.



노인에게는 오직 과거만 있을 따름이어서 그는 과거로 눈을 돌린다. ― B.S. 라즈나시
작성일:2016-08-30 17:32:13 14.32.96.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