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국민참여재판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면 통상절차보다 공판중심주의, 직접심리주의가 강조되고 있다는 지적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배심원들이 의식적으로 공판중심주의나 직접심리주의를 이해하고 이를 지향하기보다는 기존 법조인들이 서류 형태의 증거를 근거로 판단하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두드러지는 현상으로 보입니다.

배심원들은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직접적인 증거를 판단의 주된 근거로 삼으며, 반면에 수사기관이나 사인(私人) 사이에서 작성된 서류형태의 증거에 대하여는 비교적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배심원들은 증인신문이나 피고인신문을 할 때에는 매우 집중하고 메모를 하는 등 주의를 기울이지만, 상대적으로 서증조사 시간에는 지루해하거나 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필자가 지금까지 진행한 총 42건의 국민참여재판 중 배심원이 평의 도중 증거서류들을 다시 보여 달라고 한 경우는 2~3건에 불과하였으며, 이 또한 진단서나 CCTV 동영상 등 주요증거를 확인하는 정도에 그칠 뿐 수사서류를 확인하고자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배심원들의 이러한 경향은 기존 법조인들이 서증을 중요시하여 특별한 이유 없이 그 증거력을 배척하지 아니하는 것과 비교하여 현격한 차이라고 할 것입니다.

재판부의 판결과 배심원 다수의 평결이 불일치한 서울북부지방법원 2013고합28 사건의 경우 이러한 배심원의 성향이 뚜렷이 드러난 사건이라 할 것입니다.

피고인이 사건 이후에 피해자의 오빠에게 써준 ‘자백취지의 진술서’에 대하여 배심원들은 피고인이 ‘진술서’를 쓰기 전에 피해자의 아버지로부터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학교도 못 다니게 하겠다며 협박하는 전화를 받아 피해자의 오빠가 기다리고 있는 카페로 갔고, 심리적인 압박 때문에 피고인의 오빠가 불러주는 대로 그대로 써준 것일 뿐이라는 피고인 측 주장을 받아들여 그 증거능력 또는 증명력을 배척하였고, 피해자의 법정진술 또한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배심원의 평결이유는 적시되지 않으므로 필자의 추측임) 배심원 9명 중 7명이 무죄평결을 하였습니다.

반면, 재판부는 피고인의 ‘자필 진술서’가 작성된 경위, 작성된 장소, 피해자의 오빠가 가필하게 한 내용의 양, 가필한 내용 이외의 진술에도 자백 취지의 내용이 있다는 점, 피고인이 이익으로 주장하는 내용 또한 함께 쓰여 있으며, 피고인의 나이와 피해자 오빠의 체격, 작성 당시 협박이나 강압적 수단이 없었던 점, 피해자의 부가 전화로 협박을 하였다고 볼만한 별다른 사정이 없으며 오히려 피고인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의 부는 카페에 가지도 않은 점 등을 자세히 따져 ‘진술서’가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작성되었다고 판단하여 그 증거능력을 인정하였으며 위 진술서 및 다른 증거들을 근거로 피고인을 유죄로 판단하였고 위 판결은 항소심에서 그대로 확정되었습니다.

이렇듯 배심원들이 서증형태의 증거에 대하여 신뢰도가 낮은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배심원선정절차에서 대다수의 배심원후보들은 ‘법원의 배심원선정기일 출석 통지서를 등기로 송달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라는 질문에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법원에서 보낸 우편물을 받고 두려움을 느꼈다’고 대답하며, ‘수사기관이 범죄를 조사할 때에는 실제보다 은폐하거나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 한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즉 배심원들 중 상당수가 피의자나 참고인이 ‘수사기관이라는 곳에서 처음 조사를 받다보니 두렵고 위축되어 사실과 다른 대답을 하였다’며 피의자신문조서나 참고인진술조서의 내용을 부인할 때 쉽게 동감하고 수긍하는 것으로 보이며, 수사기관이 작성한 서류에는 과장이나 허위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실생활에서 사인(私人) 간에 문서를 작성할 때 인간관계나 기타 이유로 사실과 다른 내용을 기재하는 경우가 많은 우리나라 문화에 따른 개인적인 경험도 배심원들이 서증에 대한 낮은 신뢰도를 설명할 수 있는 주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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