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의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

이번에는 눈을 돌려 삼성과 애플의 글로벌 특허전쟁의 또 다른 격전장인 유럽 쪽을 살펴본다. 애플이 먼저 2011년 4월 15일 삼성전자를 상대로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북부지방법원에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하자 삼성전자는 공세적 대응 차원에서 같은 해 4월 21일 한국의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같은 날 독일과 일본에서는 각각 만하임지방법원과 동경지방법원에 애플을 상대로 특허침해금지 및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한국과 미국에 이어 금번에는 독일에서의 삼성과 애플 간의 특허소송의 경과와 에피소드를 전하고자 한다. 이 대목에서 그 많은 유럽국가 중에서 왜 하필 독일인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유럽에서의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은 독일 이외에도 네덜란드,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진행되었고 현재도 진행 중에 있다. 이유를 밝히자면 경제규모와 법률제도 두 가지 측면에서 유럽국가 중에는 독일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럽 경제에서의 독일의 위상을 쉽게 알려주는 농담이 있다. 이탈리아 사람, 스페인 사람, 그리스 사람이 술집에 갔다. 과연 누가 술값을 냈을까. 정답은 바로 독일 사람이다. 유럽 재정위기 이후 유행한 이 농담은 유럽이 처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2010년 4월 그리스의 구제금융 신청에서 비롯된 유로존(EU가입국 중 유로화를 사용하는 17개국) 재정위기는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으로 파급되었고 막대한 국가부채와 높은 실업률로 인한 혼란 상황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최대 출연국은 다름 아닌 독일이다. 올 초에 국제통화기금(IMF)이 예측한 2013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은 유로존 평균이 -0.2%인데 반해 독일은 0.6%, 프랑스는 0.3% 정도이다(1%의 경제성장률이 예상되는 영국은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이 아니며 최근 EU 탈퇴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어 논외로 한다).

법률제도에 있어 독일의 법제도가 우리 법제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더 이상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특허법과 특허소송 분야는 최근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으나, 일본을 거쳐 도입된 대륙법(독일법) 체계를 근간으로 함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흔히 유럽특허청(EPO)에 대한 특허출원을 가지고 유럽특허(?)를 얻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유럽공동체의 디자인이나 상표제도와는 달리 특허권은 EPO출원만으로 유럽 전 지역에서 동일하게 보호받을 수 없다. 특허권의 해석과 보호, 사법적 구제는 각 국가별로 진행되며 상호 관련성도 크지 않다. 독일에서의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은 만하임, 뒤셀도르프, 뮌헨 지방법원 등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독일이 특허분쟁의 중심에 놓이게 된 것은 독일 자체의 시장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유럽시장으로 접근하는 관문 역할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판매금지처분(내지 가처분)이 인용되는 경우 유럽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유럽 내 특허분쟁의 약 95%가 독일법원의 판결에 의한다고 한다.

독일에서의 삼성과 애플 간 분쟁에서 중요한 쟁점은 각자가 침해를 주장하는 특허의 유무효 여부도 있지만(올해 4월 뮌헨지방법원은 애플의 ‘밀어서 잠금 해제’ 특허를 무효로 판단한 바 있다), 삼성이 보유하고 있는 표준필수특허(Standard Essential Patent, SEP)에 대하여 어느 정도까지 권리행사가 가능한지 여부에 있다. FRAND 선언이 이루어진 표준특허에 관하여 최근 EU 집행위원회는 구글의 모토로라 모빌리티 인수에 대해 최종승인결정을 하면서, 표준특허라 하더라도 침해금지청구권의 행사 그 자체가 반경쟁적인 것은 아니고 특히 표준특허권자가 FRAND 조건에 관해 성실히 협상하지 않는 상대방을 상대로 금지명령을 청구하는 것은 제반 사정에 비추어 합법적일 수 있으며 라이선스 협상이 실패한 경우 표준특허권자는 종국적으로 상대방을 상대로 금지명령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본 바 있다.

하급심인 뒤셀도르프 지방법원에서는 표준특허권자가 요구한 조건이 FRAND하지 않다는 이유로 침해금지청구를 허용하지 않은 사례와 표준특허권자가 요구한 조건이 합리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라이선스 체결에 이르지 못한 경우 침해금지청구를 인용한 사례가 모두 있었다. 한편 작년 5월 2일 만하임 지방법원은, 마이크로소프트가 H.264 비디오 코덱을 윈도우7과 X Box 360에 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해 달라는 모토로라의 신청을 받아들인 바 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FRAND의 법적 성격에 관하여, FRAND 선언 그 자체는 제3자와의 사이에서 라이선스 또는 계약으로서 효력을 갖거나 또는 계약체결의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단지 협상의 개시를 위한 청약의 유인에 해당한다고 보는 한편, FRAND 선언이 모든 잠재적 침해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금지청구권 행사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다만 표준특허권자가 상대방의 라이선스 조건을 거절하는 것이 명백한 독점금지법 위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침해금지청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 같은 쟁점에 대하여 참조할 수 있는 독일연방대법원(BGH)의 판례로 Orange Book Standard 사건이 있다. 이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은 특허권자의 금지청구에 대하여도 독점금지법 위반의 항변이 가능함과 아울러 그 적용요건을 구체적으로 판시한 바 있다. 당시 원고인 필립스사(필립스는 CD-R 표준규격 특허권을 가지고 있었다)의 특허침해 주장에 대하여 실시자인 피고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원고가 정당한 사유 없이 피고에게 실시허락을 해주지 않거나 독일 내의 다른 경쟁업자들에 비하여 지나치게 높은 실시료를 요구한 것은 독점금지법 위반이므로 원고의 금지청구는 배척하여야 한다고 항변한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원고의 금지청구가 독일 민법(제242조) 상 신의칙에 반한 것으로 보아 위와 같은 항변을 인정하였다. 다만 그러한 항변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침해자가 예측되는 상당한 실시료를 특허권자에게 지급하거나 적어도 이를 공탁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되,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금액이 상당한 실시료인지는 별개의 소송 절차 등을 통해 나중에 확정하면 무방하다고 보았다. 삼성의 표준필수특허 및 FRAND 조건 준수 여부에 대하여 금지청구소송이 계류되어 있는 만하임 지방법원 판결의 귀추가 주목된다.

표준특허에 있어 FRAND 선언과 침해금지청구권의 허용 여부에 관하여 각국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독일의 판례는 독일과 유럽시장에만 영향을 미치는데 그치지 않고 독일법의 영향권 내에 있는 일본과 우리나라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표준특허 실시의 FRAND 조건을 개별 사안에서 법원이 적정하게 판단해 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FRAND 조건에 대하여 현재 확립된 판단 기준이 없기 때문에 소송을 통한 분쟁이 불가피한 현 상황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법원의 사법적 판단기준(아쉽게도 사후적 판단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이 판례로 집적되기를 기다리기 전에 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표준 채택절차를 마련하기 위한 표준화기구들의 추가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독일에서의 특허전쟁 이야기가 나왔으니 유럽의 축구전쟁 이야기로 맺고자 한다. 유럽 각국의 축구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챔피언스리그이다. 올해는 사상 최초로 분데스리가 1위(바이에른 뮌헨)와 2위(도르트문트)팀이 결승에서 격돌하게 되었다. 독일 분데스리가는 90년대 이후 유럽리그랭킹에서 3대 빅리그(스페인, 잉글랜드, 이탈리아)의 지위를 내주고 한때 하향세를 겪었다. 그러나 꾸준한 구단의 재정혁신과 유소년 정책의 활성을 통해 리그 부흥에 확실히 성공했다. 비록 특허전쟁이 기업들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그 이면에서 국가 간의 대리전 성격도 있어서 독일의 축구전쟁 경험이 우리 기업과 정부에 시사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특허전쟁에서의 핵심무기는 바로 ‘특허’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양질의 강력한 특허는 우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기술 각 분야에 대한 물적·인적 투자가 필요하다. 물적 투자가 R&D투자라면, 인적 투자는 연구개발을 수행할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만일 특허전쟁이 지구전(持久戰)으로 바뀐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공계 기피현상은 크게 우려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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