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의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

글로벌 특허전쟁 관전기의 마지막 편으로 일본에서의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애플이 2011년 4월 15일 삼성전자를 상대로 미국에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하자 삼성전자는 공세적 대응 차원에서 같은 해 4월 21일 한국의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일본의 동경지방재판소에 애플을 상대로 특허침해금지 및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이에 일본에서 애플은 같은 해, 8월 23일 동경지방재판소에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침해소송을 추가로 제기하게 된다.

동경지방재판소는 2012년 8월 31일 우선 애플의 침해주장에 대하여 삼성의 손을 들어주는 중간 판결을 내리면서 애플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바 있다. 애플이 주장한 ‘미디어플레이어 콘텐츠와 컴퓨터의 정보를 동기화하는 방법’ 특허에 관하여 재판부는 애플의 특허 기술이 삼성전자엔 적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삼성이 애플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갤럭시S와 갤럭시S2, 갤럭시노트, 갤럭시탭에 대한 애플의 판매금지 가처분신청도 기각되었다. 이제 일본 법원에서는 애플의 바운스백 특허(화면을 가장 하단으로 내리면 화면이 위로 튕기면서 끝임을 알리는 기술)와 앱스토어 구조표시에 관한 사용환경(GUI) 관련 특허 등에 대한 침해여부 판단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한편 삼성이 애플에 대해 제기한 특허침해소송은 다른 지역과 조금 다른 부분이 발견된다. 다른 곳에서 삼성은 애플을 공격하는 무기로 표준필수특허(SEP)를 내세웠지만 일본에서는 일반특허의 침해를 이유로 하였다. 이에 대하여 동경지방재판소는 얼마 전인 2013년 2월 28일 애플의 아이폰3GS와 아이폰4, 아이패드 등이 삼성전자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며 삼성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삼성은 이에 불복하여 현재 항소심인 지적재산고등재판소에 계속되어 있는 상태이다. 참고로 2005년 일본은 지적재산고등재판소를 설치하여 특허침해소송과 심결취소소송의 관할을 집중한 바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미 살펴본 대로 미국에서의 연방지방법원과 ITC 절차가 상당히 애플에게 우호적으로 진행되었고 한국에서는 양사의 주장이 모두 일부 인용되었던 반면 일본에서는 삼성과 애플의 주장을 매번 기각하는 판결이 나왔다는 것이다. 동경지방재판소는 아직까지 애플과 삼성 그 누구의 손도 일방적으로 들어주기 보다는 양비론(兩非論)과 유사한 판단을 내려왔다.

일본의 모 일간지는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 결과를 전하면서 “일본회사들은 모기장 밖에 있는 신세다”라는 논평을 냈다고 한다. 여기서 ‘모기장 밖에 있다’는 건 중요한 이슈에 끼어들지 못하고 소외돼 있다는 일본식 표현이다. 이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양강(兩强)의 특허전쟁이 자신의 안방에서 벌어지고 있음에도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일본 업계의 처량한 신세를 꼬집은 것이다. 기실 스마트폰 시장을 둘러싼 특허전쟁이라는 화려한 무대에 일본기업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굳이 꼽자면 소니(Sony Ericsson) 정도가 이름을 올리고 있을 뿐인데, 그것도 스마트폰 신흥강자로 대
두되고 있는 중국의 ZTE나 화웨이(HUAWEI)보다 존재감이 못하다.

일본기업의 몰락을 설명하는 유력한 분석으로, 일본의 스마트폰 업체들은 그동안 기기를 만들기만 하면 국내 통신회사가 전량을 구매해 줬고 국내시장만 상대해도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상황에 안주했기 때문에 세계시장 공략에 소극적이었던 것이 오늘과 같은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의 통신서비스 시장의 상황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것이지만 삼성의 경우 아이폰 출시 이후 옴니아폰(윈도모바일OS)의 참패를 조기에 안드로이드OS라는 구원투수로 대응하면서 초반 부진을 만회하는 전략에 전사적 역량을 집결했던 것이 미지근하게 상황을 관망했던 일본기업들과의 차이점이라고 할 것이다.

특허전쟁 관전기를 연재하면서 이번 사건을 통해 특허의 역할과 가치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최근 스마트폰과 관련하여 업계와 일반인들에게 특허가 혁신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에서의 경쟁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는 공감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있다. 애플과 삼성은 세계 각국 법원을 넘나들며 2년 이상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는 전면전(全面戰)을 펼쳤고, 이러한 법적 분쟁이 지구전(持久戰) 양상을 띠면서 정작 당사자들에게 남겨진 실익이 무엇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아마도 지식재산권을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유사한 사안에 대한 전세계적인 비교법적 연구 자료가 양산된 것이 소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각국 법원의 예의 더딘 진행과 이따금 내려지는 각국 특허청(PTO)의 특허무효 판정은 기업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다루었던 특허들의 유효성에 대하여 근본적인 의구심마저 들게 하였다.

요즘 같은 특허전쟁의 불씨가 배태된 것은 지금부터 10여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과 일본 등을 위시한 지식재산 선도국들은 소위 친특허(pro-patent) 정책에 입각하여 한동안 너나할 것 없이 소프트웨어, 영업방법(BM) 특허 등을 쉽게 내준바 있다. IT 전 분야의 기술이 융합된 스마트폰 시장은 2007년 애플의 아이폰(iPhone) 출시 전까지는 한자리 시장점유율을 나누어 가진 소수의 사업자들이 특허풀이나 상호라이선스 등을 통해 그럭저럭 평화로운 질서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2007년 아이폰의 등장으로 스마트폰 시장이 일반휴대전화 시장을 급격히 대체하면서 애플과 구글 진영으로 재편되었고, 그 과정에서 스마트폰 시장의 주도권을 두고 요번과 같은 대규모 특허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이 전쟁에는 애플과 삼성뿐만 아니라 노키아, RIM, MS 등 기존 사업자들도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지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20세기 초반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요셉 슘페터(Joseph Schumpeter)는 경쟁이 아닌 독점이 혁신에 기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시각에서는 경쟁은 기업이 단기적인 한계비용에 초점을 두게 되고 장기 효율적인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를 배제하게 될 뿐이라고 한다. 이 시각에서는 경쟁의 이익은 혁신의 희생을 통한 소모적 대가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특허와 같은 지적재산권의 보호는 일정한 경우 경쟁을 제한하면서 혁신을 직접적으로 보호하고자 하는 경쟁제한 허용규범으로 정당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고전적인 명제에 대하여 최근 실증적 연구는 혁신(innovation)이 개별 산업의 특성에 따라 주로 경쟁(competition)에 의존할 수도 있고 특허와 같은 지적재산권의 보호에 더 의존할 수도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화학이나 제약 산업에서는 경쟁보다 특허보호가 기술혁신에 더 중요하나, 반도체나 컴퓨터 산업에 있어서는 특허보다 경쟁에 의해 주로 혁신이 이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애플과 삼성 간의 특허전쟁은 글로벌 특허경영의 중요성과 아울러 특허(표준필수특허와 디자인특허를 막론)가 행사되는 국면에 따라 지식재산제도가 추구하는 혁신의 증진과 보호라는 목적에서 오히려 멀어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전쟁이라는 거사(?)가 한창 진행 중이지만 각지에서 들려오는 당사자의 승패소식에 말초적으로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다. 이제야말로 특허전쟁의 원인과 특허제도의 양면성을 깊게 성찰하여 관련 법제와 법집행 개선방안 등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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