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ITC에서의 삼성과 애플의 특허분쟁

미 무역위원회는 준사법기관 수입품 자국산업 침해여부 판단
지난 3월말 애플 제소에 삼성이 특허침해 했다 예비판정
갤럭시 S4·아이폰5 제소 품목에 없어 결정효과 미미할 듯

글로벌 특허전쟁의 최대 격전장으로 미국 연방지방법원과 함께 미국 무역위원회(ITC)를 들 수 있다. 지난번에 연방지방법원에서의 삼성과 애플의 1심 소송을 다루었으므로 금번에는 ITC에서의 삼성과 애플 간 분쟁을 다룬다. 먼저 ITC에 대하여 생소하게 느끼는 독자도 계실 것 같아 우선 ITC에 대하여 간략한 설명을 드리고자 한다.
ITC는 우리 산업통상자원부(정부조직개편 이전 산업자원부) 내의 무역위원회와 유사한 미국의 준사법기관이다. 전통적으로 각국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하여 반덤핑관세나 세이프가드 등의 무역제재를 취하였으나 근래에는 원산지 표시위반, 지적재산권 침해 등 불공정 무역행위에 대한 수입금지 제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미국에서 연방대법원의 이베이(ebay) 판결 이후 법원에서 금지명령(injunction)을 발하기 위한 요건이 엄격해짐에 따라 미국관세법 제337조에 의거하여 미국에 수입되는 제품이 지적재산권을 침해할 경우 불공정 무역행위임을 이유로 ITC에 수입배제명령(exclusion order)을 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ITC는 법원의 소송과 달리 모든 수입품에 대하여 미국 연방 전체를 관장하며, 전문성이 있는 행정판사(Administrative Law Judge, ALJ)가 심리하고 처리기간이 정해져 있어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된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다만, 무역제재의 특성상 특허침해소송에서 가능한 손해배상은 다루지 않으며 구제발동을 위해서 ‘국내 산업(domestic industry)’이 피해를 입었다는 요건이나 적어도 제소대상 물품과 관련되는 ‘국내 산업’이 존재하여야 한다는 요건이 요구된다. 행정판사(ALJ)가 특허침해 여부에 관한 조사절차를 거쳐 예비판정을 한 이후 위원회가 특허침해를 최종 판단하면 대통령의 특별한 조치가 없는 한 수입배제명령 등이 발효되게 된다.
본론으로 돌아가 삼성과 애플 간의 ITC 분쟁은 삼성이 먼저 포문을 열면서 시작되었다. 애플이 2011년 4월 15일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에 특허소송을 제기하자 삼성은 27일 같은 법원에 애플을 제소하면서 약 두달 뒤인 6월 28일 ITC에 삼성의 특허를 침해한 애플 제품의 수입 금지를 신청한 것이다. 애플도 이에 뒤질세라 7월 5일 ITC에 자신의 지적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삼성전자 제품의 미국 내 수입 금지를 신청하였다.
양사가 서로 침해한 것으로 주장하는 내역을 살펴보면, 삼성은 모바일 전자기기(Mobile Electronic Devices), 무선통신장치(Including Wireless Communiction Devices), 음악과 데이터를 처리하는 장치(Portable Music and Data Processing Devices), 태블릿PC에 관한 총 4건(표준특허 2건, 상용특허 2건)의 특허침해 혐의로 애플을 제소했고, 애플은 전자 디지털 미디어 장치와 그 구성요소(Electronic Digital Media Devices and Components)에 해당하는 특허 7개(디자인특허 2개 포함)를 침해한 혐의로 삼성을 맞제소하였다.
양 사의 ITC 제소내용은 한국이나 미국 법원에 제소된 것들과 다른 부분이 있다. 이는 미국에 출원·등록한 특허가 한국과 다른 부분도 있고 ITC 특허침해 판단의 경향 등을 고려하여 청구원인을 재구성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삼성은 한국에서, 애플은 중국(언론에서 자주 보도되는 ‘폭스콘’이라는 제조회사)에서 제품을 제조한다. 궁금한 독자분들은 갤럭시폰의 내부(배터리 교체 부분)에 ‘제조자/제조국가:삼성전자(주)/대한민국’이나 아이폰 뒷면에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라는 표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양 사 모두 제품의 원산지(原産地)가 미국 이외의 국가인 관계로 미국 내 시판을 위해서는 통관 절차가 필요하므로 ITC 제소가 가능한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면서 미국회사 간의 특허침해소송이 발생하는 경우 소송과 별개로 중국에서 제조한 타사 제품의 미국 내 반입을 막기 위하여 ITC에 제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당초 무역구제제도는 특정 국가의 자국 산업보호를 위한 비상의 수단으로 기능하였으나 다국적 기업이 보편화되고 연구개발-기획·디자인-제조-판매 등의 일련의 생산과정이 글로벌 단위에서 나누어 수행되면서 지금의 ITC 분쟁(특히 IT산업 분야에서는 더욱)은 다국적 기업들이 미국 시장의 주도권을 다투는 장으로 변질된 감이 있다.ITC 절차에서는 비침해나 신청인의 특허 무효화 이외에 법적 대응논리가 소송처럼 다양하지 못하다. 표준 관련 특허로 표준화기구에 공정하고 비차별적으로 라이선스를 주겠다고 서약한 FRAND 표준 특허에 대하여, 이는 로열티에 관한 계약법적 이슈이므로 ITC에서 수입금지 형태로 다루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ITC는 FRAND 표준 특허도 일반특허와 마찬가지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피신청인이 ITC절차에서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고자 할 때 통상 자신이 보유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근거로 상대방을 ITC에 역제소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이러한 도식(?)에 따라 당사자들은 ITC 절차가 끝나기 전에 협상을 거쳐 슬그머니 분쟁을 끝내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삼성과 애플은 현재 스마트폰 시장의 주도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합하고 있는 상황이고, 이번 특허전쟁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큼 자존심이 걸고 다투고 있는 상태이니만큼 협상을 통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의 ITC 분쟁경과를 말하자면 특허소송과 마찬가지로 미국 내에서 진행되는 ITC 절차는 삼성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먼저 삼성의 제소에 대하여 ITC의 행정판사(ALJ)는 2012년 8월 예비판정에서 애플이 비침해하였다는 판정을 내렸다. 이후 삼성의 재심사 요청을 받아들여 현재 심리가 계속 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ITC는 애플이 삼성의 특허를 침해했는지에 관한 최종판정을 무려 네 차례나 미루었다. 2013년 1월 14일에 최종 판정을 내릴 예정이었지만 표준특허와 관련해 검토할 서류가 많다는 이유로 2월 6일, 이후 다시 3월 7일로 연기했다. ITC는 3월 13일으로 더 미룬 뒤 또다시 5월 31일로 심리를 연기한 상태이다. 이는 다분히 시간끌기식 진행이라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으며, ITC 절차의 신속성이라는 장점이 퇴색한 대목이다.
한편 애플의 제소에 대하여 지난 3월말 ITC의 행정판사(ALJ)는 삼성전자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텍스트 선정기능이 애플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예비판정을 했다. 이에 앞서 2012년 10월 예비판정에서는 삼성전자가 애플의 특허 4건을 침해했다(당초 7건의 특허 중 1건은 철회, 2건은 비침해 판정)고 보았다. 그러나 삼성의 재심사 요청에 따라 지난해 10월에 이루어진 예비판정 중 삼성전자의 침해로 인정했던 이어폰 플러그에서 마이크나 다른 장치를 인식하는 기능은 애플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은 것으로 금번에는 변경되었다. 이에 대하여 ITC는 금년 8월 1일에 삼성의 특허침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릴 예정이다.
만일 ITC가 애플이 삼성의 특허를, 삼성이 애플의 특허를 1건이라도 침해한 것으로 최종 판정하고 미국 대통령이 ITC의 수입금지결정을 수용한다면 양 사는 더 이상 해당 제품을 미국에 수출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최근 출시된 삼성의 갤럭시S4나 애플의 아이폰5는 제소된 제품 목록에 빠져있어 ITC의 수입금지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이것이 양 사에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전망이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에서 ITC 구제절차의 장점은 실종된 듯하며, 오히려 추가적인 법적 분쟁에 수반되는 천문학적 비용이 사회적 낭비(물론 ITC가 소재한 워싱턴 D.C. 소재 로펌에는 분명 큰 호재일 것이다)라고 보인다. 그럼에도 IT산업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특허전쟁으로 인하여 ITC 제소건수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ITC 분쟁절차가 무역구제절차 본연의 취지에서 벗어나 미국시장에서의 경쟁제품 판매금지와 같은 네거티브 공방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현실에 대한 문제 인식과 해법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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